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嗣子不才,君宜自取/사자가 재목이 아니면 그대가 해도 좋소!

solpee 2019. 6. 11. 12:26

 

《後梁4 均王 貞明 6 庚辰, 920

 

 

 7.오의 선왕은 중후하고 공손하며 신중하였는데, 서온 부자가 정사를 오로지하니, 왕은 일찍이 불편한 생각이 있어도 말이나 얼굴에 나타내지 아니하였으며, 서온이 이로 인하여 그를 편안하게 여겼다.

 7.夏,四月,吳宣王重厚恭恪,徐溫父子專政,王未嘗有不平之意形於言色,溫以是安之。

 

 나라를 세우고 칭제하게 되었는데 더욱 즐겁지 않았고, 대부분 술에 빠져서 음식을 적게 먹어 드디어 병석에 눕게 되었다.

 及建國稱制,尤非所樂,多沉飲鮮食,遂成寢疾。

 

 5월에 서온이 금릉에서부터 들어와서 조현하고, 마땅히 계승할 사람을 논의하였다. 어떤 사람이 서온의 뜻에 맞추어 말하였다.

 "촉선주가 무후에게 말하기를 '계승할 아들이 재목이 아니면 그대가 의당 취해도 좋소.'라고 하였습니다."

 五月,溫自金陵入朝,議當為嗣者。或希溫意言曰:「蜀先主謂武侯:『嗣子不才,君宜自取。』」

 

 서온이 정색을 하고 말하였다.

 "내가 과연 속으로 이를 탈취하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면 당연히 장호를 죽인 초기에 하였지 어찌 금일에까지 이르렀겠느냐? 양씨에게 아들이 없다면 여자가 있기만 해도 역시 마땅히 그를 세워야 한다. 감히 망언을 하는 사람은 목을 벨 것이다."

 溫正色曰:「吾果有意取之,當在誅張顥之初,豈至今日邪!使楊氏無男,有女亦當立之。敢妄言者斬!」

 

 마침내 왕명을 가지고 단양공 양부를 영접하여 감국으로 삼고 양부의 형인 양몽을 옮겨서 서주단련사로 삼았다.

 乃以王命迎丹楊公溥監國,徙溥兄濛為舒州團練使。

 

 기축일(28)에 선왕이 죽었다.

 6월 무신일(18)에 양부가 오왕의 자리에 올랐다. 어머니 왕씨를 높혀서 태비라 하였다.

 己丑,宣王殂。六月,戊申,溥即吳王位。尊母王氏曰太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