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燕人苦劉守光殘虐,軍士多歸於契丹/유수광의 잔학한 행위에 군사들은 거란에 귀부하였다.

solpee 2019. 6. 10. 18:59

 

《後梁4 均王 貞明 2 丙子, 916

 

 

 37.애초에 연인들은 유수광의 잔학한 행위에 괴로워하다가 군사들이 대부분 거란에 귀부하였고, 유수광이 유주에서 포위되자,  그의 북방 변경에 있는 사민들 대부분이 거란에게 약탈되었으며, 거란은 나날이 더욱 강대해졌다.

 37.初,燕人苦劉守光殘虐,軍士多歸於契丹。及守光被圍於幽州,其北邊士民多為契丹所掠,契丹日益強大。

 

 거란황제 아율아보기는 스스로 황제라 칭하니 그 나라의 사람들은 그를 천황왕이라 불렀으며, 처인 술률씨를 황후라 하고 백관을 두었는데, 이에 이르러 연호를 神冊으로 고쳤다.

 契丹王阿保機自稱皇帝,國人謂之天皇王,以妻述律氏為皇后,置百官。至是,改元神冊。

 

 술률후는 용맹스럽고 결단력이 있고 임기응변이 많아서 야율아보기는 군사를 출동시키고 무리를 통제하면 술률후를 항상 그의 모의에 참여시켰다.

 述律后勇決多權變,阿保機行兵御眾,述律后常預其謀。

 

 야율아보기는 일찍이 사막을 건너서 당항(하투)을 공격하면서 술률후를 남겨서 그들의 장막을 지키게 하였는데, 황두·취박의 두 실위(흑룡강 상류 양 언덕과 얼고나하일대 의 민족)가 빈 것을 이용하여 군사를 연랍하여 그곳을 노략질하자, 술률후가 이를 알고 군사를 챙겨서 그들이 오기를 기다렸다가 분발하여 쳐서 대파하니, 이로 말미암아 그 명성이 여러 북방족들 사이에 떨쳤다.

 阿保機嘗度磧擊党項,留述律后守其帳,黃頭、臭泊二室韋乘虛合兵掠之。述律后知之,勒兵以待其至,奮擊,大破之,由是名震諸夷。

 

 술률후에게는 어머니와 고모가 있었는데, 모두 평상에 걸터앉아서 그의 절을 받으면서 말하였다.

 "나는 오직 하늘에 절하는 것이지, 사람에게 절하는 것이 아닙니다."

 述律后有母有姑,皆踞榻受其拜,曰:「吾惟拜天,不拜人也。」

 

 진왕이 바야흐로 하북을 경영하면서 거란과 관계를 맺어 후원을 삼고자 하여 야율아보기를 숙부로 섬기고 술률후를 숙모로 섬겼다.

 晉王方經營河北,欲結契丹為援,常以叔父事阿保機,以叔母事述律后。

 

 유수광이 말년에 쇠약하고 곤핍하여 참군 한연휘를 파견하여 거란에 구원해 주기를 요구하니 건란 황제가 그가 절하지 않은 것에 화가 나서 들에게 말을 먹이도록 하였다. 한연휘는 유주 사람이며, 지혜와 모략이 있고 글쓰기를 잘하는 것으로 자못 알려졌다.

 劉守光末年衰困,遣參軍韓延徽求援於契丹。契丹主怒其不拜,留之,使牧馬於野。延徽,幽州人,有智略,頗知屬文。

 

 술률후는 거란황제에게 말하였다.

 "한연휘는 절개를 지키고 굴복하지 않았으니 이는 오늘날의 현자인데 어찌하여 소와 말을 기르게 하여서 욕보이십니까? 의당 예의를 갖추어 그를 채용해야 합니다."

 거란황제가 한연휘를 불러서 더불어 이야기하고서 이를 기뻐하며 드디어 모주로 생각하고 행동거지에 관하여 물었다.

 述律后言於契丹主曰:「延徽能守節不屈,此今之賢者,奈何辱以牧圉!宜禮而用之。」契丹主召延徽與語,悅之,遂以為謀主,舉動訪焉。

 

 한연휘가 비로소 거란에 아를 세우고 부를 열게 하였으며, 성곽을 쌓고 시리를 세워서 한인들을 거처하게 하고 각기 배우자를 소유하도록 하여 황무지 땅을 개간하고 곡식을 심게 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한인들이 각기 편안하게 생업을 하였고, 도망하는 사람들이 줄어들었다.

 延徽始教契丹建牙開府,築城郭,立市裡,以處漢人,使各有配偶,墾藝荒田。由是漢人各安生業,逃亡者益少。

 

 거란이 여러 나라를 위엄으로 굴복시킨 것은 한연휘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얼마 되지 않아서 한연휘는 진양으로 도망하였다.

 契丹威服諸國,延徽有助焉。頃之,延徽逃奔晉陽。

 

 진왕이 그를 막부에 두려고 하였는데 장서기 왕함이그를 질투하자, 한연휘는 스스로 불안해하다가 동쪽으로 돌아가서 어머니를 보살피게해 달라고 요구하고 진정을 지나다가 고향사람 왕덕명의 집에 머물렀는데, 왕덕명이 가는 곳을 물으니, 한연휘가 말하였다.

 晉王欲置之幕府,掌書記王緘疾之。延徽不自安,求東歸省母,過真定,止於鄉人王德明家,德明問所之,延徽曰:

 

 "지금 하북은 모두 진이 소유하였으니 마땅히 거란으로 가야할 뿐입니다."

 왕덕명이 말하였다.

 "배반하였다가 다시 가는 것인데 죽음을 맞게 되지 않을까?"

 한연휘가 말하였다.

 "저들은 내가 떠나오면서부터 손과 눈을 손상시킨 것 같다고 여깁니다. 지금 가서 그곳에 이르면 저들의 손과 눈이 완전히 회복될 것인데, 어찌 나를 해칠 수 있겠습니까?"

「今河北皆為晉有,當復詣契丹耳。」德明曰:「叛而復往,得無取死乎?」延徽曰:「彼自吾來,如喪手目;今往詣之,彼手目復完,安肯害我!」

 

 이미 어머니를 살펴보고 나서 드디어 다시 거란으로 들어갔다. 거란황제는 그가 왔다는 소식을 듣고 크게 기뻐하며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것 같이 여기며 그의 등을 어루만지며 말하였다.

 "저번엔 어디에 갔었소?"

 既省母,遂復入契丹。契丹主聞其至,大喜,如自天而下,拊其背曰:「曏者何往?」

 

 한연휘가 말하였다.

 "어머니를 생각하여 보고하고 돌아가려고 하였지만 들어주지 않을까 두려워하였으니, 그러므로 사사로이 돌아갔을 뿐입니다."

 거란황제가 그를 대우함이 더욱 두터웠다. 칭제하게 되자 한연휘를 재상으로 삼고 누차 승진하여 중서령에 이르렀다.

 延徽曰:「思母,欲告歸,恐不聽,故私歸耳。」契丹主待之益厚。及稱帝,以延徽為相,累遷至中書令。

 

 진왕이 사신을 파견하여 거란에 도착하자, 한연휘가 진왕에게 편지를 보내서 북쪽으로 간 의도를 기술하고 또 말하였다.

 "영명하신 주군을 사모하지 않은 것은 아니고 고향을 생각하지 않은 것도 아니며, 머무르지 못한 까닭은 바로 왕함의 참소가 두려웠을 뿐입니다."

 晉王遣使至契丹,延徽寓書於晉王,敘所以北去之意,且曰:「非不戀英主,非不思故鄉,所以不留,正懼王緘之讒耳。」

 

 이어서 어머니를 부탁하연서 또 말하였다.

 "저 한연휘가 이곳에 있으면 거란은 반드시 남하하여 말을 기르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끝내 동광시대에는 거란이 깊이 들어와서 약탈을 하지 못하였는데 이는 한연휘의 힘이었다.

 因以老母為托,且曰:「延徽在此,契丹必不南牧。」故終同光之世,契丹不深入為寇,延徽之力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