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後梁1 太祖 開平 元年》 (丁卯, 907)
1.봄, 정월 4일 양왕은 패주에서 군사를 휴식시켰다.
1.春,正月,辛巳,梁王休兵於貝州。
★.후량(907~923)은 주전충 주우정 2대 16년 존속 78주 관할. 당 희종 건부4년 황소에 붙어서 난을 일으키다 황소를 배신 당 동화절도사가 된다. 중화 4년에 이극용과 황소의 난을 진압하고 환관과 연합 반대세력을 제거하고 선위를 받았다. 오대의 첫 왕조다.
2.회남절도사 홍농군왕 양악이 ... 부친상을 치르면서도 밤낮으로 술을 마시며 음악을 연주하게 하고 열 아름이나 되는 초를 만들어 촛불을 밝혀놓고 격구를 하였는데, 촛불 하나의 경비가 수만이었다.
2.淮南節度使兼侍中、東面諸道行營都統弘農郡王楊渥既得江西,驕侈益甚,...중략...渥居喪,晝夜酣飲作樂,然十圍之燭以擊球,一燭費錢數萬。
혹은 단기로 나가서 유람하였는데 좇는 사람들이 분주하게 도로를 질주하였지만 간 곳을 알지 못하였다. 좌·우경호대장 장호와 서온이 울면서 간하자, 양악이 화가 나서 말하였다.
"너희는 나를 인재가 아니라고 말하면서 어찌 나를 죽이고 스스로 이일을 하지 않는가?"
或單騎出遊,從者奔走道路,不知所之。左、右牙指揮使張顥、徐溫泣諫,渥怒曰:「汝謂我不才,何不殺我自為之!」
두 사람이 두려워하였다.
양악이 장사들을 선발하여 '동원마군'이라 칭하고 가깝고 신임하던 사람들을 폭넓게 임명하여 장리로 삼았는데, 임명된 사람들이 권세를 믿고 교만하고 멋대로 하면서 공훈을 세운 옛 사람들을 능멸하였다.
二人懼。渥選壯士,號「東院馬軍」,廣署親信為將吏;所署者恃勢驕橫,陵蔑勳舊。
장호와 서온이 은밀히 반란을 일으킬 것을 모의하였다.
양악의 아버지인 양행밀의 시기에는 친군 수천 명이 아성 안에 군영을 두고 있었는데, 양악이 밖으로 옮겨 나가면서 그 땅을 활터로 삼았으니, 장호와 서온은 이로 말미암아 두려움이 없었다.
顥、溫潛謀作亂。渥父行密之世,有親軍數千,營於牙城之內,渥遷出於外,以其地為射場,顥、溫由是無所憚。
양악이 선주를 점령하면서 지휘사인 주사경·범사종·진번에게 명령하여 친병 3천을 거느리게 하였고, 자리를 승계하게 되자 소환하여 광릉으로 들어오게 하였다.
渥之鎮宣州也,命指揮使朱思勍、范思從、陳璠將親兵三千;及嗣位,召歸廣陵。
장호와 서온이 세 장수로 하여금 진배를 좇아 강서를 공격하게 하고 이어서 홍주를 지키면서 반란을 모의하였다고 무고하니 별장 진우에게 명령하여 그를 죽이게 하였다.
顥、溫使三將從秦裴擊江西,因戍洪州,誣以謀叛,命別將陳祐往誅之。
진우가 샛길로 배속으로 달려가서 엿새 만에 홍주에 도착하여 미복을 하고 짧은 병기를 품고서 지름길로 진배의 장막 속으로 들어가니 진배가 크게 놀라자 진우가 그에게 연고를 설명하고, 마침내 주사경 등을 불러 술을 마시면서 진우는 주사경 등의 죄를 헤아리고 그들을 붙잡아서 목을 베었다.
祐間道兼行,六日至洪州,微服懷短兵徑入秦裴帳中,裴大驚,祐告之故,乃召思勍等飲酒,祐數思勍等罪,執而斬之。
양악이 세 장수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장호와 서온을 더욱 시기하여 그들을 죽이려고 하였다.
9일에 양악이 새벽에 일을 보고 있을 때에 장호와 서온이 경호원 200을 인솔하고 칼날을 드러내어서 뜰 안으로 곧장 들어갔는데, 양악이 말하였다.
渥聞三將死,益忌顥、溫,欲誅之。丙戍,渥晨視事,顥、溫帥牙兵二百,露刃直入庭中,渥曰:
"네가 과연 나를 죽이려고 하느냐?"
대답하였다.
"감히 그러는 것이 아니지만 왕의 좌우에 있는 사람들 가운데 정사를 어지럽히는 사람들을 죽이려고 할 뿐이오."
이어서 양악이 신임하는 10여 명의 조싱을 헤아린 다음에 끌고 내려가서 채찍으로 쳐서 죽였는데 이를 '병간'이라고 불렀다.
「爾思欲殺我邪?」對曰,「非敢然也,欲誅王左右亂政者耳!」因數渥所親信十餘人之罪,曳下,以鐵□擊殺之,謂之「兵諫」。
제장들 가운데 그들과 더불어 하지 않는 사람은 장호와 서온이 점차 법령을 가지고 그들을 죽였으니, 이에 군정이 모두 두 사람에게 돌아갔고, 양악은 통제할 수가 없었다.
諸將不與之同者,顥、溫稍以法誅之,於是軍政悉歸二人,渥不能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