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唐紀34 肅宗 至德 元載》 (丙申,756)
3....현종은 환관 왕낙경을 파견하여 앞에 가도록 하여 군현에 알려서 머무를 곳을 설치하도록 하였다. 식사할 시간에 함양의 망현궁에 도착하였는데, 왕락경은 현령과 더불어 달아났으므로 중사가 징소하였으나 이민 가운데 호응하는 사람이 없었다.
3.六月,上遣宦者王洛卿前行,告諭郡縣置頓。食時,至咸陽望賢宮,洛卿與縣令俱逃,中使徵召,吏民莫有應者。
해가 정오를 향하였으나 현종이 아직 먹지를 못하였으므로 양국충은 스스로 호떡을 사서 바쳤다. 이에 백성들이 다투어 거친 쌀로 지은 밥을 바쳤는데 보리와 콩을 섞었지만 황제의 손자들은 다투어 손으로 움켜쥐고 먹어서 잠깐 사이에 다 떨어졌으나 아직도 배가 부를 수가 없었다. 현종은 그 값을 다 치르고 그들을 위로하였다.
日向中,上猶未食,楊國忠自市胡餅以獻。於是民爭獻糲飯,雜以麥豆;皇孫輩爭以手掬食之,須臾而盡,猶未能飽。上皆酬其直,慰勞之。
무리는 모두 통곡하였고 현종 또한 얼굴을 가리고 울었다. 부로 곽종근이 말씀을 올렸다.
眾皆哭,上亦掩泣。有老父郭從謹進言曰:
"안록산이 화란을 일으키려는 마음을 품은 것은 진실로 하루가 아니었습니다. 역시 대궐에 가서 그가 모의한 것을 알린 사람이 있었으나 폐하께서는 그때마다 그를 죽여서 그의 간사하게 반역하는 것을 만족시키고 페하께서 파천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리하여서 돌아가신 대왕께서는 충성스럽고 훌륭한 사람을 끌어 들여서 총명함을 넓히는데 힘썼는데 대개 이를 위한 것입니다.
「祿山包藏禍心,固非一日;亦有詣闕告其謀者,陛下往往誅之,使得逞其奸逆,致陛下播越。是以先王務延訪忠良以廣聰明,蓋為此也。
신은 송경이 재상이었을 때에 자주 직언을 올렸고 천하 사람들은 그 사람에 힘입어서 평안하였던 것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근래로부터 조정에 있는 신하들은 말하는 것을 꺼렸고 오직 아부하며 받아들여지기만을 취하였는데, 이리하여서 대궐문 밖의 일은 폐하께서 모두 알 수 없었습니다.
臣猶記宋璟為相,數進直言,天下賴以安平。自頃以來,在廷之臣以言為諱,惟阿諛取容,是以闕門之外,陛下皆不得而知。
초야에 있는 신은 반드시 오늘날과 같은 일이 있을 것을 안 지 오래이나 다만 아홉 겹에 삼엄하고 깊숙하여 작은 마음들이 위로 전달할 길이 없었습니다. 일이 여기에 이르지 않았다면 신이 어찌 페하의 얼굴을 보고 그것을 하소연할 수 있었겠습니까."
草野之臣,必知有今日久矣,但九重嚴邃,區區之心,無路上達。事不至此,臣何由得睹陛下之面而訴之乎!」
현종이 말하였다.
"이것은 짐의 불찰이며 후회해도 되돌릴 수가 없소."
그를 위로하고 타일러서 보냈다.
上曰:「此朕之不明,悔無所及!」慰諭而遣之。
잠시 후 상식이 어선을 들고 오자 현종은 먼저 시종하는 관리에게 하사하도록 명령하였으며 그렇게 한 후에 그것을 먹었다. 군사들로 하여금 흩어져서 촌락에서 먹을 것을 찾도록 하고 미시로 약속하고 모두 모여서 떠났다.
俄而尚食舉御膳以至,上命先賜從官,然後食之。命軍士散詣村落求食,期未時皆集而行。
밤이 반쯤 지나서야 마침내 금성에 도착하였다. 현령 역시 도망하였고 현에 사는 백성들은 모두 몸만 달아나서 마시고 먹는 그릇은 남아 있어서 병사들은 그것을 가지고 자급할 수 있었다.
夜將半,乃至金城。縣令亦逃,縣民皆脫身走,飲食器皿具在,士卒得以自給。
이때 따르는 사람들은 대부분 달아났고 내시감 원사예 역시 도주하였다. 역 안에는 등불이 없어서 사람들이 서로 베게를 삼아 잠을 잤으며 귀천은 다시 분별할 방법이 없었다.
時從者多逃,內侍監袁思藝亦亡去,驛中無燈,人相枕藉而寢,貴賤無以復分辨。................................................
마침 토번의 사자 20여 명이 양국충의 말을 막고 먹을 것을 달라고 하소연하였고, 양국충은 머뭇거리고 있었는데 군사들이 소리쳐 말하였다.
"양국충이 호족과 더불어 반란을 일으켰다."
會吐蕃使者二十餘人遮國忠馬,訴以無食,國忠未及對,軍士呼曰:「國忠與胡虜謀反!」
어떤 사람이 그에게 활을 쏘아 안장을 맞추었다. 양국충은 달아나 서문 안에 도착하였으나 병사가 뒤를 쫓아 그를 죽여 사지를 자르고, 그 창으로 그의 머리를 메달아 역문 밖에 걸었으며, 아울러 그의 아들인 호부시랑 양훤과 한국부인·진국부인을 죽였다.
或射之,中鞍。國忠走至西門內,軍士追殺之,屠割支體,以槍揭其首於驛門外,並殺其子戶部侍郎暄及韓國、秦國夫人。
어사대부 위방진이 말하였다.
"너희들이 어찌 감히 재상을 해쳤는가?"
무리는 또 그를 죽였다. 좌상 위견소는 난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밖으로 나왔다가 난병들에게 채찍을 맞았는데, 뇌에서 나온 피가 땅에 흘렀다. 무리가 말하였다.
"위상공을 해치지 마라."
그를 구원하여 죽음을 모면할 수 있었다.
御史大夫魏方進曰:「汝曹何敢害宰相!」眾又殺之。韋見素聞亂而出,為亂兵所撾,腦血流地。眾曰:「勿傷韋相公。」救之,得免。
병사들이 역을 포위하자 현종은 떠들썩한 소리를 듣고 밖에 무슨 일인가를 물으니, 좌우에 있는 사람들은 양국충이 반란을 일으켰다고 대답하였다. 현종은 지팡이를 짚고 신발을 신고 역의 문으로 나와 병사들을 위로하고 대오를 거두도록 하였으나 병사들은 호응하지 않았다.
軍士圍驛,上聞喧嘩,問外何事,左右以國忠反對。上杖屨出驛門,慰勞軍士,令收隊,軍士不應。
현종이 고력사를 시켜서 이들에게 묻게 하자, 진현례가 대답하였다.
"양국충은 반란을 일으키려고 꾀하였고 귀비는 폐하를 정당하게 모시지 못하였으니, 바라건데, 폐하께서는 은정을 베어내시고 법을 바르게 하십시오."
현종이 말하였다.
"짐이 마땅히 스스로 이를 처리하겠다."
上使高力士問之,玄禮對曰:「國忠謀反,貴妃不宜供奉,願陛下割恩正法。」上曰:「朕當自處之。」
문 안으로 들어가 지팡이에 의지하여 머리를 수그리고 섰다. 오래 지난 후 경조사록 위약이 앞으로 나아가 말하였다.
"지금 무리들이 화를 내고 범접하기 어려워서 안위가 경각에 달려있으니, 바라건데, 폐하께서는 속히 결정하십시오."
이어서 머리를 바닥에 찧어서 피를 흘렸다. 현종이 말하였다.
"귀비는 항상 깊은 궁궐에 있었는데, 어찌 양국충의 모반을 알았겠는가!"
入門,倚杖傾首而立。久之,京兆司錄韋諤前言曰:「今眾怒難犯,安危在晷刻,願陛下速決!」因叩頭流血。上曰:「貴妃常居深宮,安知國忠反謀!」
고력사가 말하였다.
"귀비는 진실로 죄가 없지만 그러나 장수와 병사들이 이미 양국충을 죽였는데 귀비가 폐하의 곁에 있었으니 어찌 감히 스스로 편안할 수 있겠습니까? 바라건데, 폐하께서는 깊이 그것을 생각하십시오. 장사들이 편안해지면 폐하께서도 편안해지십니다."
현종은 마침내 고력사에게 명하여 귀비를 불당으로 끌어내게 하여 목매어 죽게 하였다.
高力士曰:「貴妃誠無罪,然將士已殺國忠,而貴妃在陛下左右,豈敢自安!願陛下審思之,將士安,則陛下安矣。」上乃命力士引貴妃於佛堂,縊殺之。
시체를 수레에 실어 역의 뜰에 도착하여 진현례 등을 불러 들어와 살피게 하였다. 진현례 등이 마침내 투구를 벗고 갑옷을 벗고서 머리를 조아리며 죄를 내려달라고 청하니, 현종은 그들을 위로하고 병사들을 타이르도록 시켰다. 진현례 등은 모두 만세를 불렀으며 두 번 절하고 나갔고 이에 비로소 대오를 정돈하여 가는 계책을 만들었다.
輿屍置驛庭,召玄禮等入視之。玄禮等乃免冑釋甲,頓首請罪,上慰勞之,令曉諭軍士。玄禮等呼萬歲,再拜而出,於是始整部伍為行計。
위약은 위견소의 아들이다. 양국충의 처인 배유와 그의 어린 아들인 배휘는 모두 달아나 진창에 도착하였는데, 현령 설경선이 이사를 인솔하고 뒤를 쫒아가 잡아서 그들을 죽였다.
諤,見素之子也。國忠妻裴柔與其幼子晞及虢國夫人、夫人子裴徽皆走,至陳倉,縣令薛景仙帥吏士追捕,誅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