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唐紀29 玄宗 開元 19年》 (辛末,731)
신 사마광이 말씀드립니다.
"하늘과 땅에 있는 만물을 경위하는 것은 '문'이라 하고, 화란을 감정하는 것은 '무'라 하는데, 옛날부터 이 두가지를 함께 갖추지 않고서 '성인'이라 불렸던 사람은 아직까지는 없습니다.
臣光曰:經緯天地之謂文,戡定禍亂之謂武。自古不兼斯二者而稱聖人,未之有也。
그러므로 황제·요·순·우·탕·문·무·이윤·주공은 모두 정벌한 전공을 세우지 않은 바가 없었고, 공자는 비록 정벌은 시도하지 못하였지만, 오히려 래이를 막고 비를 격퇴한 후, '나는 싸우면 반드시 이긴다.'라고 말하였으니,
故黃帝、堯、舜、禹、湯、文、武、伊尹、周公莫不有征伐之功,孔子雖不試,猶能兵萊夷,卻費人,曰:「吾戰則克」,
어찌 공자는 '문'만을 오로지 다루었고, 태공은 '무'만을 오로지 다루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공자가 학자들에 의해 제사 지내지는 까닭은 예에서 성인과 스승을 우선한다는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豈孔子專文而太公專武乎?孔子所以祀於學者,禮有先聖先師故也。
사람이 태어난 이래 공자와 같은 이가 아직까지 없었는데, 어찌 태공이 공자와 대립되어지거나 비교될 수 있겠습니까?
自生民以來,未有如孔子者,豈太公得與之抗衡哉!
옛날에 전쟁할 일이 생기면, 대사도에게 명령하여 병사들에게 전차와 갑옷을 입는 법을 가르치고, 옷을 걷어서 넓적다리와 팔뚝을 드러내고 활쏘기와 말 타기로 승부를 결정짓고, 받아들여 완성하고, 수급을 베어 바치는 것을 가르치게 하였으니, 배우는데 있지 않은 것이 없었습니다.
古者有發,則命大司徒教士以車甲,臝股肱,決射御,受成獻馘,莫不在學。
그렇게 된 까닭은 교육에서는 예절과 의리를 우선하고 용기와 역량은 뒤에 하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所以然者,欲其先禮義而後勇力也。
군자가 용기만 있고 의리가 없다면 어지러워지고, 소인이 용기만 있고 의리가 없으면 도적이 되는데, 만약 오로지 용기와 역량만으로써 이들을 가르치고 이들에게 예절과 의리를 알도록 하지 못한다면, 무엇인들 하지 못하는 것이 있겠습니까?
君子有勇而無義為亂,小人有勇而無義為盜;若專訓之以勇力而不使之知禮義,奚所不為矣!
손무와 백기 이후, 모두 용기와 역량으로 서로 승리하여, 간교함과 거짓말이 서로 높았으니, 어찌 성현의 반열에 헤아려져서 그것을 '무'라고 충분히 일컬을 수 있겠습니까?
自孫、吳以降,皆為勇力相勝,狙詐相高,豈足以數於聖賢之門而謂之武哉!
마침내 거짓으로 '십철'의 명단에 집어넣고서 후세 학자들의 스승이 되게 하였으니 태공의 귀신이 있다면, 반드시 그들과 함께 식사하는 것을 수치스럽게 여길 것입니다."
乃復誣引以偶十哲之目,為後世學者之師;使太公有神,必羞與之同食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