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梁紀20 武帝承聖元年》 〈壬申,552年〉
여름 4월,...⑭...기유일, 후진이 후경을 뒤쫓아서 송가에서 따라잡았는데, 후경은 아직 배 200척과 무리가 수천 명을 가지고 있었지만 후진이 나아가서 공격하여 그를 패배시키고 팽준·전천·방세귀·채수락·왕백추를 사로잡았다.
夏,四月,...⑭...己酉,侯瑱追及景於松江,景猶有船二百艘,眾數千人,瑱進擊,敗之,擒彭雋、田遷、房世貴、蔡壽樂、王伯丑。
후진이 팽준의 산채로 가르고 그의 창자를 끄집어냈는데 팽준이 오히려 죽지 않고 손으로 직접 그것을 집어넣자 마침내 그의 목을 베었다.
瑱生剖雋腹,抽其腸。雋猶不死,手自收之,乃斬之。
후경이 심복 수십 명과 더불어 단 한 척의 배로 달아나는데, 두 아들을 물에 밀어 떨어뜨리고 곧 바다로 들어가려고 하니, 후진이 부장 초승도를 파견하여 그를 뒤쫓도록 하였다.
景與腹心數十人單舸走,推墮二子於水,將入海,瑱遣副將焦僧度追之。
후경은 양간의 딸을 받아들여 소첩으로 삼았으며, 그의 오빠인 양곤을 고직도독으로 삼고 후경이 가까이하고 아꼈던 왕원래·사위아와 더불어 몰레 그를 도모하였다. 사위아는 사답인의 동생이다.
景納羊侃之女為小妻,以其兄昆為庫直都督,待之甚厚。昆隨景東走,與景所親王元禮、謝葳蕤密圖之。葳蕤,答仁之弟也。
후경은 바다로 내려가서 몽산으로 향하려고 하고, 기묘일에 후경이 낮잠을 자는데 양곤이 뱃사람에게 말하였다.
"이 중에 어느 곳에 몽산이 있던지 간에 너는 다만 내가 처리하는 것만을 듣도록 하라."
드디어 곧바로 경구로 향하였다.
景下海,欲向蒙山,己卯,景晝寢;昆語海師:「此中何處有蒙山,汝但聽我處分。」遂直向京口。
호두주에 이르자 후경이 깨어나서 크게 놀랐는데, 기슭 위에 있는 사람에게 물으니, 말하였다.
"곽원건이 아직 광릉에 있습니다."
후경이 크게 기뻐하고 그에게 의지하려고 하였다.
至胡豆洲,景覺,大驚;問岸上人,云「郭元建猶在廣陵」,景大喜,將依之。
양곤은 칼을 빼어들고 뱃사람에게 질책하여 경구로 향하도록 하고 이어서 후경에게 말하였다.
"우리들은 왕을 위하여 힘을 많이 썼으나 이제 여기에 이르렀고 끝내는 이룬 것이 없으니, 머리를 빌어서 부귀를 얻고 싶습니다."
후경이 아직 대답하지 않았으나 번득이는 칼날을 번갈아 내리쳤다. 후경이 물로 뛰어들려고 하니 양곤이 칼로 그를 찍었다.
昆拔刀,叱海師向京口,因謂景曰:「吾等為王效力多矣,今至於此,終無所成,欲就乞頭以取富貴。」景未及答,白刃交下。景欲投水,昆以刀斫之。
후경이 달아나 배안으로 들어가서 차고 있던 칼을 가지고서 배의 바닥을 헤치자 양곤이 창으로 그를 찔러 죽였다. 상서우복야 삭초세는 다른 배에 있었는데, 사위아가 후경의 명령이라 하여 그를 불러서 붙잡았다. 남서주자사 서사휘가 삭초세의 머리를 베었고 소금을 후경의 뱃속에 넣고 그 시신을 건강으로 보냈다.
景走入船中,以佩刀抉船底,昆以槊刺殺之。尚書右僕射索超世在別船,葳蕤以景命召而執之。南徐州刺史徐嗣徽斬超世,以鹽內景腹中,送其屍於建康。
왕승변은 수급을 강릉에 보내고, 그의 손을 잘라 사위아를 시켜서 제에 보내게 하고, 시체를 저자에 드러내니, 사민들이 다투어 그것을 가져다가 먹었는데, 아울러 뼈도 모두 없어졌다. 율양공주 역시 먹는 데에 참여하였다.
僧辯傳首江陵,截其手,使謝葳蕤送於齊;暴景屍於市,士民爭取食之,並骨皆盡;溧陽公主亦預食焉。
애초에, 후경의 다섯 아들은 북제에 있었는데, 세종은 그의 맏아들의 얼굴을 벗기고서 그를 삶아버렸고 어린 사람은 모두 잠실(궁형에 처함)에 넣었다. 제의 현조가 즉위하였는데, 꿈에 원숭이가 그의 평상에 앉아있어서 마침내 그들을 다 삶아버렸다.
初,景之五子在北齊,世宗剝其長子面而烹之,幼者皆下蠶室。齊顯祖即位,夢獼猴坐其御床,乃盡烹之。
조백초·사답인이 모두 후진에게 항복하니 후진은 전천 등과 함께 건강으로 송치하였다. 왕승변이 저자에서 방세귀의 목을 베고, 왕위·여계략·주석진·엄단·조백초·복지명을 강릉으로 보냇다.
정사일에 상동왕이 명령을 내려서 계엄을 해제하였다.
趙伯超、謝答仁皆降於侯瑱,瑱並田遷等送建康。王僧辯斬房世貴於市,送王偉、呂季略、周石珍、嚴但、趙伯超、伏知命於江陵。
丁巳,湘東王下令解嚴。
⑲5월, 경오, ...무인, 후경의 수급이 강릉에 도착하자 저자에 3일간 효수하였다가 태우고 나서 칠을 하여 무기창고에 넣어두었다.
⑲五月,庚午,...戊寅,侯景首至江陵,梟之於市三日,煮而漆之,以付武庫。
...을유, 후경이 임명하였던 상서복야 왕위· 좌민상서 여개략· 소부 주석진· 사인 엄단을 저자에서 주살하였다. 조백초· 복지명이 감옥에서 굶어 죽었다. 사답인은 태종에게 예의를 잃지 않아서 특별히 용서하였다.
乙酉,誅侯景所署尚書僕射王偉、左民尚書呂季略、少府周石珍、舍人嚴但於市。趙伯超、伏知命餓死於獄。以謝答仁不失禮於太宗,特宥之。
왕위는 감옥 안에서 500자 시를 올렸는데 상동왕이 그의 재능을 아껴서 그를 용서해주고 싶었지만 그를 질시하는 어떤 사람이 왕에게 말하였다.
"예전에 왕위가 지은 격문은 아주 훌륭했습니다."
왕이 그것을 구하여 살펴보니, 격문에서 말하였다.
"항우는 겹 눈동자였으나 오히려 오강에서 패배한 일이 있었는데, 상동은 눈이 하나인데 어찌 적현(천하 즉 황토빛 중국)이 귀부하겠는가!"
왕은 크게 화가 나서 그의 혀를 기둥에 못질하고 배를 가르고 살을 저며서 죽였다.
王偉於獄中上五百言詩,湘東王愛其才,欲宥之。有嫉之者,言於王曰:「前日偉作檄文甚佳。」王求而視之,檄曰:「項羽重瞳,尚有烏江之敗;湘東一目,寧為赤縣所歸!」王大怒,釘其舌於柱,剜腹、臠肉而殺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