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東晉 簡文帝 咸安 元年》 〈辛未、三七一〉
⑱...진왕 부견은 환온이 황제를 폐위시키고 또 세웟다는 소식을 듣고 여러 신하들에게 말하였다.
"환온은 전에 파상에서 패배하였고, 뒤에는 방두에서 패배하였는데, 자기의 허물을 생각하여 스스로를 깍아내려 백성들에게 사과하지 않았고, 더욱이 황제를 폐위시키고 스스로 즐거워하였으니, 육십 먹은 늙은이의 거동이 이와 같다면 장차 어떻게 스스로 사해를 용납하겠는가? 속담에 말하기를 '그 아내에게 화가 났는데, 아버지에게 얼굴을 붉힌다'고 하였는데, 그것은 환온을 두고 한 말이다."
⑱...秦王堅聞溫廢立,謂羣臣曰:「溫前敗灞上,〈見九十九卷穆帝太和十年。〉後敗枋頭,〈見上卷太和四年。〉不能思愆自貶以謝百姓,方更廢君以自說,〈「說」,《載記》作「悅」,讀當從悅。一曰:說,讀如字,謂自解說也。〉六十之叟,舉動如此,將何以自容於四海乎!諺曰:『怒其室而作色於父,』其桓溫之謂矣。」
⑳...이어서 유천의 시를 읊조렸다.
"뜻있는 선비는 조정의 위태로워짐을 아파하고, 충신은 주군의 욕됨을 슬퍼하네."
드디어 눈물을 떨어뜨리고 소매로 닦았다.
⑳...因詠庾闡詩云:「志士痛朝危,忠臣哀主辱。」遂泣下霑襟。〈此亦清談,但情溢於言外耳。朝,直遙翻;下同。〉
二年〈壬申、三七二〉
①...신 사마광이 말씀드립니다.
"옛날 사람은 다른 나라를 멸망시키면 기뻐하였는데 왜 그러합니까? 다른 사람을 위하여 해로운 것을 없앴기 때문입니다. 저 모용평이란 사람은 임금을 가리고 제멋대로 정치를 하여 현명한 사람을 시기하고 공로를 세운 사람을 미워하고 어리석고 아둔하여 포악한 일에 욕심을 내어 그 나라를 망쳐서 나라는 망했으나 사람은 죽지 않고 도망하여 숨었다가 잡혔습니다.
①...臣光曰:古之人,滅人之國而人悅,何哉?爲人除害故也。〈此惟湯、武足以當之,下此則漢高帝猶庶幾焉。爲,于僞翻。〉彼慕容評者,蔽君專政,忌賢疾功,愚闇貪虐以喪其國,〈喪,息浪翻。〉國亡不死,逃遁見禽。〈事見上卷海西公太和五年。〉
진왕 부견은 그의 머리를 베려고 하자 않고 또한 좇아서 그에게 총애하는 지위를 주었으니 이는 한 사람을 아낀 것이지 한 나라를 아낀 것이 아니므로 그가 인심을 잃는 것은 당연합니다. 이리하여 다른 사람에게 은혜를 베풀어도 다른 사람은 은혜로 생각하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정성을 다 하여도 그 사람은 정성을 쏟지 않아서 끝내는 공로와 명성을 이루지 못하고 자기 몸을 받아들일 곳조차 없게 되니, 그가 도를 얻을 수 없었던 것에서 말미암은 연고 입니다."
秦王堅不以爲誅首,又從而寵秩之,〈秩,序也,官也。寵秩,謂寵而序其官,使不失次也。〉是愛一人而不愛一國之人也,其失人心多矣。是以施恩於人而人莫之恩,盡誠於人而人莫之誠,卒於功名不遂,容身無所,〈卒,子恤翻。〉由不得其道故也。
⑧...왕맹이 재상이 되자 부견이 위에서 단정하게 손을 모으고, 백관들이 아래에서 자기를 총괄하니, 군국 안팎의 일들이 그로 말미압지 않은 것이 없었다.
⑧...猛爲相,堅端拱於上,百官總己於下,軍國內外之事,無不由之。
왕맹은 강직하고 밝고 맑고 정숙하여 선하고 악한 것이 분명하게 드러났고, 시위소찬을 좇아내고 그윽하게 묶여 있는 사람을 드러내 발탁하며, 농업과 잠업을 권장하고 부과하며, 군사를 훈련시키고, 관리는 반드시 재능만큼 일을 담당하고, 형벌은 반드시 죄만큼 받았다. 이로 말미암아서 나라는 부유해지고, 군사는 강하게 되었으며, 싸우면 이기지 못하는 일이 없으니, 진은 크게 잘 다스려졌다. 부견이 태자 부굉과 장락공 부비 등에게 칙령을 내려 말하였다.
"너희들은 왕공을 섬기는 것을 마치 나를 섬기는 것처럼 하라.!
猛剛明清肅,善惡著白,放黜尸素,〈尸素,尸位素餐者也。〉顯拔幽滯,勸課農桑,練習軍旅,官必當才,刑必當罪。由是國富兵強,戰無不克,秦國大治。〈治,直吏翻。〉堅敕太子宏及長樂公丕等曰:「汝事王公,如事我也。」〈樂,音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