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東晉 海西公 太和 5年》 〈庚午、三七○〉
②신 사마광이 말씀드립니다.
『옛날에 주에서 미자를 얻어서 상 왕조의 운명을 개척하였고, 秦은 유여를 얻고서 서융의 패자가 되었고, 오는 오원(초 오사의 아들 오자서)을 얻고 나서 강한 초나라를 이겼으며, 한은 진평을 얻은 다음에 항적의 목을 베었고, 위는 허유를 얻은 다음에 원소를 깨뜨렸으니, 저들은 적국의 재주있는 신하지만 와서 자기를 이용하였으며, 나아가서 이것을 훌륭한 밑천으로 만들었습니다.
②臣光曰:『昔周得微子而革商命事見六十三卷漢獻帝建安五年。〉彼敵國之材臣,來爲己用,進取之良資也。,〈殷紂暴虐日甚,微子抱祭器而奔周。武王乃告諸侯曰:「殷有重罪,不可不伐。」遂伐紂,殺之,而革殷命。〉秦得由余而霸西戎,〈《史記》:戎使由余使於秦,繆公留由余而遺戎王女樂,戎王受而說之,繆公乃歸由余。由余數諫不聽,繆公使人間要由余,由余遂降秦。繆公問以伐戎之形,幷國十二,開地千里,遂霸西戎。〉吳得伍員而克強楚,〈楚殺伍奢,其子員奔吳,吳王闔閭用其謀而伐楚,破楚入郢。〉漢得陳平而誅項籍,〈事見九卷漢高帝二年至四年。〉魏得許攸而破袁紹;
왕맹은 모용수의 마음은 오래 되면 믿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다만 연이 아직 멸망되지 않았고, 모용수는 재주가 높고 공로가 왕성하며 죄를 지은 일이 없는데 의심을 받게 되어 궁색하고 어려워져서 秦으로 귀부하였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고, 아직은 다른 마음을 품지 않았는데 갑자기 시기하여 그를 죽이려 하였으니, 이는 연을 도와서 무도한 짓을 하여 오히려 사람들의 문호를 막으려는 것이었으니, 어찌 그것이 옳단 말입니까?
王猛知慕容垂之心久而難信,獨不念燕尚未滅,垂以材高功盛,無罪見疑,窮困歸秦,未有異心,遽以猜忌殺之,是助燕爲無道而塞來者之門也,〈塞,悉則翻。〉如何其可哉!
그러므로 진왕 부견이 그를 예로 대하여 燕人들의 희망을 거둬들이고, 그를 가까이하여 연인들의 마음을 얻었으며, 그를 총애하여 연의 무리들을 끌어들였으니 아직은 허물을 짓지 아니하였습니다. 왕맹이 어찌하여 왕맹이 모용수를 죽이는데 급급하여 마침내 시장에서 죽 파는 사람으로 변장하여 마치 그의 총애를 질투하여 그를 참소하는 것처럼 하엿으니, 어찌 훌륭한 덕을 지닌 군자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겠습니까?』
故秦王堅禮之以收燕望,親之以盡燕情,寵之以傾燕衆,信之以結燕心,未爲過矣。猛何汲汲於殺垂,乃爲市井鬻賣之行,〈行,下孟翻。〉有如嫉其寵而讒之者,豈雅德君子所宜爲哉!』
⑭태부 모용평은 왕맹이 현군으로 깊이 들어왔으므로 오랫동안 버텨서 이를 제압하려고 하였다. 모용평은 사람됨이 탐욕스럽고 비루하여 산과 샘을 막아버리고, 땔나무와 물을 팔아서 돈과 비단을 언덕만큼 쌓아놓으니 사졸들이 원망하고 분하게 생각하여 싸울 생각을 갖지 않았다.
⑭太傅評以猛懸軍深入,欲以持久制之。評爲人貪鄙,鄣固山泉,鬻樵及水,〈山者,樵之所仰;泉者,汲之所仰。障固山泉,使軍士不得樵汲,而鬻(팔 육)薪水以牟利。〉積錢帛如丘陵;〈賈公彥曰:高曰丘,大阜曰陵。〉士卒怨憤,莫有鬬志。
최홍이 말하였습니다.
등강이 군장을 살려달라고 하면서 법을 어지럽히고 사사로움을 좇았는데, 군사를 챙겨서 왕맹을 공격하려고 한 것도 자기 위에 아무도 없다는 뜻이며, 싸우기에 앞서 먼저 사예교위를 시켜달라고 한 것은 군주에게 요구한 것이니, 이 세 가지를 갖고 있다면 죄는 얼마나 큰가? 왕맹이 그의 단점을 용납하고 그의 장점을 거두었는데, 마치 용맹스러운 호랑이를 길들이거나 사나운 말을 다루어서 성공한 것과 같다.《시경》에서 말하기를 '葑(무 봉)이나 菲(향초 비)를 따면 되었지 밑에 있는 몸통이야 상관할 것 없다.'고 하였으니, 왕맹을 두고 말한 것.
崔鴻曰:鄧羌請郡將以撓法,徇私也;〈撓,奴敎翻,又女巧翻。〉勒兵欲攻王猛,無上也;臨戰豫求司隸,邀君也;有此三者,罪孰大焉!猛能容其所短,收其所長,若馴猛虎,馭悍馬,以成大功。《詩》曰:「采葑采菲,無以下體。」〈《詩‧谷風》之辭。毛氏曰:葑,須也;菲,芴也;下體,根莖也。鄭氏曰:此二菜者,蔓菁與葍之類也,皆上下可食,然而其根有美時,有惡時;采之者,不可以根惡時幷棄其葉。陸璣《草木疏》曰:葑,蕪菁也。菲,息菜。郭璞曰:葑,菘菜也。江南有菘,江北有蔓菁,相似而異。菲,芴,土瓜也。息菜似蕪菁,華紫赤色,可食。葍,大葉,白華,根如指,色白可食。葍,方六翻。〉猛之謂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