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長毋相忘

solpee 2017. 1. 1. 13:22

長毋相忘〔chángwúxiāngwàng〕

 

 金正喜가 歲寒圖를 그리고 유인『長毋相忘』을 찍은 내용이다. 그가 제주도 서귀포에서 유배 생활을 하던 중에 애제자 藕船 李尙迪이 중국에서 어렵게 晩學, 大雲, 藕耕文編이라는 책을 구해 보내오자 자신을 대하는 한결같은 제자의 마음에 고마워하며 세한도를 그려주었다. 여백이 많아 화면은 춥고, 허름한 집 한 채와 나무 4그루가 휑하니 서 있다. 그림만 봐도 늙고 병든 그의 유배 생활이 어떠했을지 상상이 가고도 남는다. 그래서였을까? 그는 제자에게 고마움을 전하고자 했다. 그림 좌측에 쓰인 跋文이 말한다. '세상인심은 오직 권세와 이익만을 좇는데, 책을 구하는 일에 마음을 쓰고 힘들여 구하고서도 그대의 뜻을 살펴줄 만한 사람에게 주지 않고 바다 멀리 초췌하게 시들어 있는 이에게 보내주었군 그려. 孔子께선 한겨울 추운 날씨가 된 다음에야 소나무 잣나무가 더디 시듦을 알 수 있다고 하셨네. 소나무 잣나무는 본래 사계절 없이 잎이 지지 않는 것이지. 추운 계절이 오기 전에도 같은 소나무 잣나무였고, 추위가 닥친 후에도 여전히 같은 소나무 잣나무라네. 이제 자네가 나를 대하는 처신을 돌이켜보면 그 전이라고 더 잘한 것도 없지만 그 후라고 전만큼 못한 일도 없었네. 그러나 예전의 자네에 대해서는 따로 일컬을 것이 없지만 후에 자네가 보여준 태도는 성인께서도 일컬을 만한 것이지.' 라고 적었다.
이 遊印은 김정희가 애제자 이상적에게 그러준 세한도의 그림 우측하단에 朱文印인『長毋相忘』이란 유인을 찍었는데 내용은 즉 오래도록 우리 서로 잊지 말자. 이 얼마나 아름답고도 가슴에 맺히는 말인가.


한나라때 銅鏡에 보이는 「長毋相忘」「長相思 毋相忘, 오랫동안 서로 그리워하고 서로 잊지 않다」
「久不相見 長毋相忘, 오랫동안 서로 보지 않아도 길이 잊지 않다」
「見日之光 長毋相忘, 떠오르는 햇빛처럼 길이 서로 잊지 않다」 등의 글귀와 甘泉宮에서 출토된 「長毋相忘」이 새겨진 기와에서 빌어온 것으로 인장의 형태를 네모나게 하고 字法을 반듯하게 바꾼 것.

▶金正喜가 歲寒圖를 그리고 유인『長毋相忘』을 찍음
長毋相忘.  오래도록 우리 서로 잊지 말자.

情人节,要记住西汉铭文中的“长毋相忘”

 


 
陕西淳化县董家村出土 西汉 “长毋相忘”瓦当

 

情人节,要记住西汉铭文中的“长毋相忘”

 

铭文铜镜风行两汉数百年,其铭文内容非常驳杂,不同时期流行的镜铭题材也有很大差别。自从西汉早期铜镜之上开始出现铭文,一直到东汉时期镜铭逐渐简化消失,“相思”这一主题始终是铭文中最重要的题材之一。尤其是西汉初建到昭宣中兴这短短百年间,战乱甫定,百废待兴,差役、徭役难免严重;又兼文景之时诸王内乱,交相征伐;汉武用兵南越,北击匈奴,开拓疆土,大量青壮男子被迫抛妻弃子,随军从征、戍守边疆,汉乐府诗所谓“十五从军征,八十始得归”之句,正是当时惨酷兵役的真实写照。在这样的背景下,自然有一种怨别离、重相思的风气在西汉社会上流行起来,各种文物上频现的“长相思”、“长毋相忘”字样正是这种相思文化的产物。

 


 
陕西淳化县董家村出土 西汉 “长毋相忘”瓦当

 


西安博物院展品 西汉 “延寿长相思”瓦当

 


西汉 “长毋相忘”四乳铭文镜

 


 
西汉 “日入千金长毋相忘”花钱

 


大云山汉墓出土 西汉“长毋相忘”合符银带钩 此钩设计精巧,为一条带钩一剖为二,分别铸阳文及阴文“长毋相忘”字样,二钩相聚,严丝合缝。此钩出江都王妃墓中,当为江都王刘非赠给自己宠妃的定情之物。

 


战国 蟠螭纹镜

  

回过头来说铜镜。中国最早的铭文铜镜当为西汉初年的蟠螭纹镜,其镜式上承战国,铭文只是作为一种辅助纹样,处于镜钮内圈与纹饰带的夹缝之间。此类镜铭文种类较少,常见只三类,其中两类为“相思文化”镜,一类为“大乐贵富”吉语镜。可见铜镜铭文上的相思题材出现极早,是伴随着铭文镜的出现而出现的。

 


西汉 缠绕式三螭三凤镜 铭文:“修相思,慎毋相忘,常乐未央。”此铭更多地像是一种情人分别时的叮嘱与祝愿,期盼对方与自己相思相爱,祈愿对方长久安乐、永无烦恼。整体的感情基调是积极而不甚悲伤的。

 

 


西汉 缠绕式四螭四凤镜 铭文:“愁思甚,悲欲见,毋说相思愿毋绝。”这面蟠螭纹镜上的铭文显然与上一面“修相思”镜大异其趣,表达的是一种悲伤绝望的愁思之情,当属于一对长久别离的恋人,不仅无法相见,连对方的音讯都杳无踪迹。“毋说相思愿毋绝”,甚至不期盼对方与自己相思,只盼上一次的别离不成为永诀。苦哉远征人,拊心悲如何?这种悲愁绝望是和平年代的人们难以想象的。

 

早期蟠螭铭文镜出现之后,典型的汉式四乳铭文镜与草叶纹镜开始流行起来,数十年间这二类镜式就占据了西汉铜镜的半壁江山,当然也就发展出各种相思题材的铜镜铭文,尤以“长毋相忘”铭文最为普遍,几乎成为了铜镜上必备的吉语之一。

 


西汉 四乳铭文镜 铭文:“常乐未央,长毋相忘。”为西汉早期铭文镜上最普遍、数量最多的铭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