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說苑 卷9正諫22》泰山之溜穿石
孝景皇帝時,吳王濞反,梁孝王中郎枚乘字叔聞之,為書諫王,其辭曰:「君王之外臣乘,竊聞得全者全昌,失全者全亡。舜無立錐之地,以有天下;禹無十戶之聚,以王諸侯。湯武之地,方不過百里;上不絕三光之明,下不傷百姓之心者,有王術也!故父子之道,天性也,忠臣不敢避誅以直諫,故事無廢棄而功流於萬世也,臣誠願披腹心而效愚忠,恐大王不能用之;臣誠願大王少加意念惻怛之心於臣乘之言。夫以一縷之任,係千鈞之重,上懸之無極之高,下垂不測之淵,雖甚愚之人,且猶知哀其將絕也。
漢 孝景皇帝 때 吳王 濞가 반란을 일으키자 梁孝王의 中郞인 枚乘은 字를 叔이라 하였는데, 글을 지어 오왕에게 소를 올렸다. 그 글은 다음과 같다.
"군왕의 外臣 매승은 조용히 듣건대 ‘임금의 예가 완전한 자는 완전히 昌盛하고, 임금에 대한 예가 완전하지 못한 자는 완전히 패망한다’고 들었습니다.
옛날 舜임금은 송곳 하나 세울 땅도 없었으나 천하를 소유하셨고, 禹王은 열집의 무리도 없었으나 제후들에게 왕 노릇 하였습니다. 湯王과 武王의 땅은 사방 백 리도 안 되었지만 위로 三光[해,달,별]의 밝음을 끊지 않았고, 아래로는 백성들의 마음을 상하게 하지 않았던 것은 王道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父子간의 道는 天性으로 이루어진 것이로되 충신은 감히 죽음을 피하지 아니하고 직간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왕업이 폐기됨이 없이 그 공이 만세에 유전되는 것입니다. 신은 진실로 뱃속의 마음을 모두 꺼내어 愚忠을 바치고 싶지만, 대왕께서 능히 용심하지 못할까 염려 됩니다. 신이 진실로 바라옵건대 대왕께서 신 승이 올린 말씀에 조금이나마 의념하시되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더해주시기를 바랍니다.
한 올의 실이 감당하는 힘으로 千鈞의 무거운 물건을 메어 위로는 끝없이 높은 곳에 매달아놓고, 아래로는 측량할 수 없는 깊은 못에 드리워 놓는다면, 비록 심히 어리석은 사람일지라도 오히려 그것이 끊어질까 봐 안타까워할 줄 압니다.
馬方駭而重驚之,係方絕而重鎮之, 係絕於天,不可復結, 墜入深淵,難以復出, 其出不出,間不容髮. 誠能用臣乘言,一舉必脫, 必若所欲為,危如重卵,難於上天, 變所欲為,易於反掌,安於太山。今欲極天命之壽,弊無窮之樂,保萬乘之勢,不出反掌之易,以居太山之安;乃欲乘重卵之危,走上天之難,此愚臣之所大惑也!人性有畏其影而惡其跡者,卻背而走無益也,不知就陰而止,影滅跡絕。欲人勿聞,莫若勿言;欲人勿知,莫若勿為。欲湯之冷,令一人炊之,百人揚之,無益也;不如絕薪止火而已。不絕之於彼,而救之於此,譬猶抱薪救火也。養由基,楚之善射者也,去楊葉百步,百發百中,楊葉之小,而加百中焉,可謂善射矣,所止乃百步之中耳,比於臣未知操弓持矢也。
말이 지금 막 놀라는데 거듭 놀라게 하고, 매어놓은 실이 곧 끊어지려 하는데 거듭 더 무거운 것을 매달고 있습니다. 공중에서 끊어지면 다시 잇기가 어렵고 깊은 못에 빠지면 다시 건져내기가 어려운 것은 꺼내든 못꺼내든 머리카락 한 올 용인되지 않는 작은 차이입니다. 진실로 저의 말씀을 들으시면, 단 번에 어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으나 기어이 하고 싶은 대로만 하신다면 위태로움은 계란을 거듭 쌓아올리눈 것과 같고, 하늘에 오르는 것보다 더 어려울 것이지만 하고 싶은 바를 고치기만 하면 손바닥 뒤집기보다 쉬울 것이요 태산보다도 안전할 것입니다. 지금 天命의 壽를 다하려 하시고, 무궁한 즐거움을 닳도록 누리려 하시며 萬乘의 형세를 보전하는 것이 손바닥 뒤집는 쉬운데서 벗어나지 않으며 태산의 안전한 곳에 거하면서도 도리어 달걀을 쌓아올리는 것과 같은 위험을 타고서 하늘을 오르려는 어려운 일을 하려고 하시니, 이것이 우매한 신이 크게 당혹히 여기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의 성품이 자기 그림자가 자기를 따라 다니는 것을 두려워 하고 몹시 싫어하였습니다. 뒤로 걸어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는데 그늘속에 들어가면 그림자가 사라지고 따라다니는 자취가 그친다는 것을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사람들이 듣지 못하게 하려면, 말 않는 것만 못하고, 사람들이 알지 못하게 하려면, 영위하지 않는 것만 못합니다. 뜨거운 물을 차게 하려고 하면서, 사람을 시켜 그 솥에 불을 때게 하고, 백 사람에게 물을 젓게 하는 것은 부질 없는 짓입니다. 섶을 치우고 불을 끄는 것만 못합니다. 불을 끄지 않고, 물이 차가워 지기를 구하는 것은, 비유하면 마른 섶을 짊어지고 불을 끄려 달려드는 것과 같습니다.
養由基는, 楚나라 활쏘기의 명인이었습니다. 버드나무 잎을 백보 이쪽에서 쏘아도 백발백중했습니다. 버들잎은 작은데 백발백중은 가히 명인이라 할 수 있지만, 이것은 거리가 백보일 때의 일인 것입니다. 화살을 가지고 활을 다룰 줄 모르는 신과 견주어 보십시오.
福生有基,禍生有胎, 納其基,絕其胎, 禍何從來哉?泰山之溜穿石,引繩久之,乃以挈木, 水非石之鑽,繩非木之鋸也,而漸靡使之然。夫銖銖而稱之,至石必差;寸寸而度之,至丈必過;石稱丈量,徑而寡失。夫十圍之木,始生於 ,可引而絕,可擢而拔,據其未生,先其未形;磨礱砥礪,不見其損,有時而盡;種樹畜長,不見其益,有時而大;積德修行,不知其善,有時而用;行惡為非,棄義背理,不知其惡,有時而亡。臣誠願大王孰計而身行之,此百王不易之道也。」吳王不聽,卒死丹徒
복은 그 생기는 바탕이 있고, 화도 그 근원이 있습니다. 그 바탕인 근본을 받아 들이고 그 화의 근원을 끊으면 화가 어디로부터 오겠습니까? 泰山의 물방울도 돌을 뚫으며, 끈 줄을 끌고 당기기를 오래 하년 나무가 잘립니다. 물은 금강석이 아니요, 그 끈줄은 톱날이 아닙니다. 점차적으로 천천히 갈리는 현상이 쌓여서 그리 되는 것입니다. 무릇 아주 적은 양을 저울에 달아 이를 한 섬 정도 모아보면, 바로 한 섬을 달아 본 것과 차이가 나게 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한 촌 한 촌씩 재어서 한 길을 이루어 놓고 보면, 반드시 본래의 한 길길이와 차이가 나게 될 것입니다. 한 섬의 저울질과 한 길의 측량씩으로 하여야 그 차이가 적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무릇 둘레가 열 길이나 되는 큰 나무는 처음에는 약한 싹이었기에 당기면 끊기고, 뽑으면 뽑힙니다. 아직 자라지 않았기에, 그 형태를 아직 갖추기 전이기 때문입니다. 숫돌에 연마하면, 그 닳는 것이 눈에 보이지 않아도, 언젠가는 다 닳아서 없어질 것입니다. 나무를 심으면 자라지만 그 더해지는것을 볼 수는 없으나 어느 땐가 큰 나무가 될 것입니다. 덕을 쌓는 수행도 그 선한 덕이 어떠한지 지금은 모르지만, 어느 때인가는 활용 될 것입니다. 악을 행하면 비난을 당하고 의를 버리면 도리에 위배 되는데도 그 악행이 무엇인지 모른다면, 어느 때인가 망하게 됩니다. 신이 바라건대 대왕께서는 깊이 헤아려 몸소 시행하는 것은, 이것은 백 사람의 왕이라도 바꿀 수 없는 도리입니다."
오왕은 듣지 않았고. 마침내 丹徒에서 죽음을 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