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2016년 10월 14일 오전 04:09

solpee 2016. 10. 14. 04:09

《說苑 卷4 立節 15》

齊莊公且伐莒,為車五乘之賓,而杞梁華舟獨不與焉,故歸而不食,其母曰:「汝生而無義,死而無名,則雖非五乘,孰不汝笑也?汝生而有義,死而有名,則五乘之賓盡汝下也。」

.................中 略....................

莒人曰:「子毋死,與子同莒國。」杞梁華舟曰:「去國歸敵,非忠臣也;去長受賜,非正行也;且雞鳴而期,日中而忘之,非信也。深入多殺者,臣之事也,莒國之利非吾所知也。」遂進鬥,殺二十七人而死。其妻聞之而哭,城為之阤,而隅為之崩。此非所以起也。


齊나라 莊公이 장차 莒를 치려고, 五乘의 자제들만 징집을 하였다.  이때 杞梁과 華舟라는 두 사람은 여기에 끼이지 못하게 되자  집에 돌아와 밥도 먹지 않는 것이었다.  그 어머니가 말하기를,.  "너는 태어나서 의로운 일도 못해 보고, 죽어서는 이름도 남기지 못한다면 이는 비록 오승의 집안이 아니더라도, 그 누가 너를 비웃지 않겠으며,
반대로 태어나 옳은 일을 하고,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면,오승의 집안이라도 모두가 네 앞에 꿇을 것이다"

.......................................중 략..............................................

"당신들 죽지 마시오! 우리와 함께 거나라의 백성이 됩시다!" 하는 것이었다  기량과 화주가 말하기를.  "나라를 버리고 적국에 귀의하는 것은, 충신이 할 짓이 아니다.  지도자를 버리고 물건을 하사받는 것은, 올바른 행동이 아니다.  더구나 닭이 우는 새벽에 약속을 해놓고서, 한낮에 이것을 잊어 버린다면,이것은 믿음이 아니다.   깊이 들어가 많이 죽이는 것만이, 우리들의 맡은 일이다.귀국 거나라의 이익은 우리가 알 바가 아니다"  그리고는 다시 내질러, 스물 일곱 사람을 죽이고 끝내 자신들도 죽었다.   그의 아내가 이 소식을 듣고 소리를 내어 울자, 城이 기울어 지고, 그 귀퉁이가 무너져 내렸다.

 

《說苑 卷4 立節 19》

肹用中牟之縣畔, 設祿邑炊鼎, 曰:與我者受邑,不與我者其烹。中牟之士皆與之。城北餘子田基獨後至,袪衣將入鼎曰:基聞之,義者軒冕在前,非義弗受;斧鉞於後,義死不避。遂袪衣將入鼎,佛肸播而之趙,簡子屠中牟,得而取之,論有功者,用田基爲始,田基曰:吾聞廉士不恥人,如此而受中牟之功,則中牟之士終身慚矣。繈負其母,南徙于楚,楚王高其義待以司馬。

佛肸(필힐)이 中牟 현을 근거지로 반란을 일으켰다.그는 먼저 祿邑을 설치하고, 큰 솥을 걸어 놓고 나서, 그곳 사인들을 모아놓고  선포하기를.  "나에게 동조하는 자는 여기에 적힌 녹읍을 나누어 줄 것이요,  나에게 반대하는 자는 이 솥에 넣어 삶으리라!" 하였다.중모 땅의 많은 사인들이 모두 그에게 동조하고 나섰다. 그때 城北에 사는 나머지 한 사람 중에  田基란 자가 가장 늦게 도착해서는, 소매를 걷어 부치고 그 솥에 뛰어 들려고 하면서 말하기를.   "내가 듣건대, 올곧은 사인은 그 앞에 온갖 관직의 유혹이 있어도,   옳지 않으면 받지 않으며, 그 뒤에 도끼를 들이대고 위협을 하여도,  옳지 않으면 죽음도 불사하고, 뜻대로 행한다고 하더이다" 하고는 드디어 소매를 걷어 붙이고 솥에 뛰어들 자세를 취하였다.  기가 죽은 佛肸은 모든 것을 내던지고 趙나라로 도망갔다.  趙簡子는 중모의 사인들을 모두 죽이고, 그 땅을 다시 수복하였다 . 그리고 나서 논공행상을 베풀면서, 田基를 첫째로 꼽았다. 전기가 말하기를.  "제가 들으니, 廉直한 사인은 남을 부끄럽게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제가 이처럼 중모의 공을 받는다면,  중모의 사인들이 종신토록 부끄러움 속에 고통을 받아야 합니다!"  하고, 그 어머니를 싸서 업고, 남쪽 초나라로 갔다.  초왕은 그 義를 높이 사서 司馬의 지위로 대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