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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5월 27일 오전 06:10

solpee 2016. 5. 27. 06:11

芝蘭之交

 

孔子曰 吾死之後則商也日益 賜也日損
曾子曰 何謂也
子曰 商也好與賢己者處 賜也好說不若己者
不知其子 視其父 不知其人 視其友 不知其君 視其所使 不知其地 視其草木
故曰 與善人居 如入芝蘭之室 久而不聞其香 即與之化矣 與不善人居 如入鮑魚之肆 久而不聞其臭 亦與之化矣
丹之所藏者赤 漆之所藏者黑 是以君子必慎其所與處者焉


공자가 말하였다. "내가 죽고 난 뒤 商(복상卜商 즉 子夏)은 날마다 나아질 것이지만 賜(단목사端木賜 즉 子貢)는 날마다 못해질 것이다."
증자가 물었다. "어째서 그렇습니까?"
공자가 대답하였다. "商은 자기보다 나은 사람과 함께 하기를 좋아하고 賜는 자기보다 못한 사람과 이야기하기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아들을 알지 못하면 그 아버지를 보면 되고, 그 사람을 알지 못하면 그 친우를 보면 보면 되고, 임금을 알지 못하면 그 신하를 보면 되고 그 땅을 알지 못하면 거기의 나무를 보면 된다.
그러므로 善人과 함께 하는 것은 芝蘭之室에 들어가는 것과 같다.
시간이 지나면 그 향기를 맡지 못하게 되는데 이는 그 향기와 동화되기 때문이다. 不善人과 함께 거하는 것은 鮑魚之肆(포어지사, 어물전)에 들어가는 것과 같다. 시간이 지나면 그 냄새를 맡지 못하게 되는 것은 또한 그 냄새와 동화되기 때문이다.
丹(丹砂, 도장밥)을 지니면 붉은 것이 묻게 되고 옻(검은 것)을 지니면 검은 것이 묻게 된다. 그러므로 군자는 자기가 있는 장소와 거처에 대하여 조심해야 한다.

 

梟逢鳩。  鳩曰: 「子將安之?」 梟曰: 「我將東徙。」

鳩曰: 「何故?」 梟曰:  「鄕人皆惡我鳴,   以故東徙。」 

鳩曰: 「子能更鳴,  可矣.  不能更鳴,  東徙,  猶惡子之聲。」  (說叢)

 

올빼미가 비둘기를 만났는데, 비둘기가 묻기를 “그대는 어디를 가느냐?”고 했다.

올빼미는 “나는 동쪽으로 이사가려 한다”고 대답하였다.

비둘기가 “무슨 까닭이냐?”고 물으니, 올빼미는 “마을 사람들이 모두 나의 우는 소리를 싫어하기 때문에 동쪽으로 이사한다”고 대답하였다.

비둘기가 말하기를 “그대는 울음소리를 고치는 것이 옳은 일이다.

울음소리를 고칠 수 없다면 동쪽으로 이사를 가더라도 그대의 소리를 싫어하는 것은 마찬가지일 것이다.”라고 했다.

 

楚可伐陳

 

楚莊王欲伐陳,    使人視之。  使者曰:  「陳不可伐也。」

莊王曰:  「何故?」 對曰: 「其城郭高,  溝壑深, 蓄積多, 其國寧也。」

王曰:  「陳可伐也. 夫陳小國也,  而蓄積多。 蓄積多, 則賦斂重;

賦斂重,  則民怨上矣;  城郭高,  溝壑深,  則民力罷矣。」

興兵伐之,  遂取陳。 (說苑 權謀)

楚 莊王이 陳을 칠 생각으로 사람을 보내 진을 정탐하도록 하였다. 그가 다녀와 보고하여 말했다.

“진나라는 공격할 수 없겠습니다. ”

장왕이 물었다.

“어찌해서 그런가?”

“예. 제가 가서 보니, 진나라는 성곽을 높으며 방비용 구덩이나 참호는 깊고, 식량도 충분히 축적해 놓은 상태이며, 나라 안이 평안하기 때문입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이 말을 들은 장왕이 말했다.

“그렇다면 진나라를 공격할 수 있겠다(陳可伐也). 진나라는 작은 나라인데 식량을 많이 축적해 놓았다고 하니 이는 백성들로부터 세금을 많이 거두어들였다는 뜻이고, 세금을 많이 거두어들였다면 백성들이 그 임금을 원망하는 마음이 자자할 것이다. 성곽을 높이 쌓고 구덩이를 깊이 팠다면 거기에 동원되어 백성들의 힘이 고갈되었을 것이 자명하지 않은가?” 그리고는 군대를 이끌고 공격하여 진나라를 손쉽게 정벌했다.

 

朝蠅暮蚊〔zhāoyíngmùwén〕: 아침에는 파리가 저녁에는 모기가 기승을 부림.

颜值[yánzhí]: 얼굴

眇視跛履〔miǎoshìbǒlǚ〕: 애꾸가 멀리보려 하고 절름발이가 멀리 걸으려함.

 

哽哽咽咽〔gěnggěngyèyè〕: 목메여 울다.

 

風月- 盧公弼

薔薇花發紡殘春/장미꽃 피어 남은 봄 이어가고

風月樓高絶點塵/풍월루 높아도 티끌 한 점 없네.

爛醉欲歸歸不得/대취하여 집에도 못가는데

滿池明月更留人/밝은 달은 연못에서 또 나를 부르네.

☞.盧公弼  1445 (세종 27) ~ 1516 (중종 11)

조선의 정치가. 자는 希亮, 호는 菊逸齋. 본관은 交河. 영의정 思愼의 아들. 1466년에 문과에 급제, 병조ㆍ이조ㆍ예조의 參議를 역임한 후 都承旨ㆍ대사헌에 승진했다. 1489년(성종 20)에 공조 판서가 되고, 이어 6曹의 판서를 역임, 경기도 관찰사로 나갔다. 1498년(연산군 4)에 參賛, 뒤에 贊成에 올랐고, 1498년(연산군10) 甲子士禍에 茂長으로 杖配되었다. 1506년 中宗反正으로 右贊成에 領經筵事로 특진, 이듬해 중종의 承襲을 청하러 명나라에 간 사절이 승인을 못 받고 있을 때 재차 사절로 가서 明帝의 승인을 얻고 귀국, 領中樞府事가 되었다.

 

 

 

Lady Godiva( 990년경 - 1067년 9월 10일)잉글랜드 코번트리의 귀족부인이다. 전설에 의하면 레오프릭 영주의 무리한 세금징수로 인해 백성들이 고통받자, 그의 부인인 고다이바는 세금을 감면해 줄 것을 간청하였다.

이에 영주는 부인에게 "벗은 몸으로 마을을 한 바퀴 돌면 생각해 보겠다"고 조롱하였다. 고심하던 고다이바는 영주의 제의를 받아들이기로 하였고, 이 소식을 듣게 된 마을 사람들은 부인이 마을을 돌 때 아무도 내다보지 않기로 하였다고 한다.


John Collier(1850- 1934) 크 기 : 캠퍼스, 유채 : 142.2 X 183cm 소재지 : 영국 런던 허버트 미술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