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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의 걸명 시문

solpee 2015. 2. 8. 19:43

추사의 걸명 시문

 

추사 김정희는 초의 스님에게 보내는 걸명 편지를 여러 통 남겼다. 이밖에도 그는 하동 쌍계사의 貫華와 晩虛 스님에게도 차를 청하는 시문을 지었다. 초의에게 보낸 편지는 乞茗 또는 謝茶와 관련된 내용이 너무 많아 전문을 싣지 않고 해당 부분만 보이기로 한다. 초의에게 보낸 추사의 편지는 대개 1838년부터 1850년 전후까지 십여 년 간 부친 내용이다. 이 가운데 직접 차와 관련된 내용만 모두 11통에 달한다. 이하 살피는 편지는 문집에 수록된 차례대로이다. 대개 연대순일 것으로 판단한다.

    

[1] 茶品을 이렇게 특별히 남겨 주니 마음이 몹시 상쾌하구려. 매번 볶는 방법이 조금 지나쳐서 정기가 삭는듯한 느낌이 있소. 만약 다시 만든다면 불기운을 조심해서 조절하는 것이 어떻겠소. 무술년(1838) 초파일

(茶品荷此另存, 甚覺醒肺. 每炒法稍過, 精氣有鎖沈之意. 若更再製, 輒戒火候, 如何如何. 戊戌 佛辰)


[2] 茶包는 과연 훌륭한 제품이오. 능히 차의 삼매경을 투득하여 이르렀구려.

(茶包果是佳製, 有能透到茶三昧耶.)


처음 두 통은 추사가 초의와 만난 지 23년 째 되던 해인 1838년에 써 보낸 것이다. 추사가 초의와 처음 만난 것은 1815년이었다. 현재 남은 편지가 없을 뿐, 그 사이에도 차와 관련된 수많은 글들이 오갔을 것이 분명하다.

[1]에는 초의가 부쳐온 차를 받고서, 차맛이 너무 세서 精氣가 삭는 느낌이 있으니 다음에는 火候를 더 세심하게 살피는 것이 좋겠다고 주문한 내용이다. [2]는 [1]과 달리 아주 흡족하게 잘 만들어진 차를 보고, 차의 삼매를 투득한듯하다고 추켜세웠다.  

[3] 지난 번 보내준 차떡은 벌써 다 먹었소. 물리지도 않고 요구만 하니 많이 베풀어 주기야 어찌 바라겠소. 다 미루고 이만 줄이오. 정미년(1847) 유두날.

(前惠茶餠, 已喫盡. 無厭之求, 其望大檀越. 都留不宣. 丁未流頭)


[4] 원래 편지에 또한 차를 부탁하였더랬소. 이곳에서는 차를 얻기가 몹시 어려운 줄을 대사도 잘 아실게요. 대사가 손수 법제한 차는 당연히 해마다 보내주었으니 굳이 다시 말할 필요가 없겠고, 절에서 만든 小團茶 30, 40덩이를 조금 좋은 것으로 가려서 보내 주시기를 간절히 바라오. 소동파가 말한 麤芽茶 또한 부처님 전에 올리기는 충분하실 게요. 만약 박생이 다시 올 때를 기다린다면 너무 늦을 염려가 있으니 먼저 편지 보내는 편에 김용성의 처소로 속히 부쳐주시는 것이 어떻겠소. 

(原書亦以茶懇矣. 此中茶事甚艱, 師所知耳. 師之自製法茶, 當有年例, 不必更言. 寺中所造小團三四十片, 稍揀其佳, 惠及切企. 坡公所云麤芽茶, 亦足充淨供耳. 若待朴生再來時, 恐有太婉晩之慮. 先圖信便. 於金瑢性處速付, 如何如何.)


[5] 차에 관한 일은 앞서 편지에서도 여러 차례 언급하였소. 小團 수십 덩이로는 몇 차례 먹을거리도 지탱하지 못할 것이오. 100원을 한정해서 살 수 있다면 좋겠소. 거듭 깊이 생각해 보시는 것이 어떻겠소. 

(茶事前書亦有縷及. 而小團數十片, 恐不支幾時供. 限百圓可以買取則似好. 再深商之, 如何如何.)


[3]~[5]는 초의가 만든 떡차[茶餠] 또는 小團茶에 관한 언급이 보인다. 보내준 떡차를 다 먹고 다시 더 보내달라고 부탁한 것이 [3]이다. 스스로도 차에 대한 욕심이 끝이 없다고 술회했다. [4]의 내용이 재미있다. 해마다 초의가 만들어 보내주던 법제차는 당연한 것이니 그대로 보내주고, 여기에 더 보태서 절에서 만든 소단차 30, 40개를 더 보내 줄 수 있겠느냐고 했다. 부처님 전에 바칠 차는 좀 못해도 괜찮을 테니, 자신에게는 그 중 좋은 것을 골라서 보내달라는 얌체 같은 주문도 마다하지 않았다. [5]는 [4]에서 소단차 몇 십 덩이 보내달라고 한 것을 번복하며, 아예 1백원 어치를 살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몇 십 덩이라야 몇 번 먹지도 않아서 다 떨어지고 말 것을 염려한 것이다. [4]와 [5]는 문집에는 빠져있다.    


[6] 병중에 연거푸 스님의 편지를 보니, 한결 같이 慧命을 이어주는 神符라 하겠소. 정수리를 적셔주는 甘露라 한들 어찌 이보다 더하기야 하겠소. 보내주신 차는 병든 위장을 시원스레 낫게 해주니 고마운 마음이 뼈에 사무치오. 하물며 이렇듯 沈頓한 중임에랴! 자흔과 향훈 스님이 각각 먼데까지 보내주니, 그 뜻이 진실로 두텁구려. 날 대신해서 고맙다는 뜻을 전해 주시구려. 향훈 스님이 따라 박생에게 준 잎차는 소동파의 추아차 못지 않게 향기와 맛이 아주 훌륭합디다. 다시금 날 위해 한 포를 청해주는 것이 어떻겠소? 마땅히 앓는 중에라도 따라 졸서로 雀環의 보답을 할 터이니, 아울러 향훈 스님에게 이러한 뜻을 알려 즉시 도모해 주시구려.

(病枕連見禪椷, 是一續慧命之神符. 灌頂甘露, 何以多乎? 茶惠夬醒病胃, 感切入髓. 況際此沈頓之中耶? 自欣向熏之各有遠貽, 其意良厚. 爲我代致款謝也. 熏衲之另贈朴生之葉茶, 恐不下於坡公麤茶芽. 香味絶佳, 幸更爲我, 再乞一包如何. 當於病間, 另以拙書爲雀環之報. 並及此意於熏衲, 而卽圖之.)


[7] 六茶가 이 갈급한 폐를 적셔 줄 수 있으나, 너무 적구려. 또 향훈 스님과 더불어 진작에 차를 주기로 한 약속을 정녕하게 하였는데, 一槍一旗를 보내주지 않으니 안타깝구려. 모름지기 이러한 뜻을 전달하여 그 차 바구니를 뒤져서라도 봄 안으로 보내주면 좋겠소. 글씨 쓰기 어렵고 인편이 바빠 예를 갖추지 못하오. 새차는 어찌하여 돌샘과 솔바람 사이에서 혼자만 마시면서 애당초 먼 데 있는 사람은 생각조차 하지 않는 게요? 아프게 몽둥이 삼십 방을 맞아야겠구료.  

(六茶可以霑此渴肺, 但太略. 又與熏衲曾有茶約丁寧, 不以一槍一旗相及, 可歎. 須轉致此意, 搜其茶篋, 以送於春禠, 爲好爲好. 艱草便忙, 不式. 新茶何以獨喫於石泉松風之間, 了不作遠想耶? 可以痛棒三十矣.)


[6]은 초의가 보내준 차를 받고 병중에 감사의 뜻을 표한 내용이다. 초의의 제자인 자흔과 향훈 두 스님도 따로 추사에게 자신들이 만든 차를 보내왔다. 향훈 스님은 특별히 잎차를 만들어 보냈다. 이로 보아 당시 이들이 만든 차가 잎차와 떡차 두 종류 모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른 차는 잎차로 만들고, 이후로는 보관을 위해 떡차로 만들었던 듯 하다. 보편적으로 마셨던 차는 떡차였다. 추사는 초의와 자흔과 향훈의 차를 받자마자, 다시 자신의 글씨와 맞바꾸자며 향훈의 잎차 한 포를 더 구해달라고 떼를 쓰고 있다.

[7]에서는 초의의 六茶를 받고 양이 너무 적다고 투덜댔다. 六茶는 어떤 차인지 알 수 없다. 또 향훈이 차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을 말하며, 그의 차 바구니를 뒤져서라도 빼앗아 보내달라고 했다. 또 혼자 새 차를 마시면서 자신에게는 묵은 차만 보내니 저 옛날 덕산 스님의 몽둥이 삼십 방을 맞아야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8] 편지를 보냈건만 한 번의 답장도 받지를 못했구려. 생각건대 산 속에 바쁜 일이 필시 없을 터인데 세상 인연과 어울리지 않으려 하여, 내가 이처럼 간절한데도 먼저 金剛으로 내려주시는 겐가? 다만 생각해보니 늙어 머리가 다 흰 나이에 갑작스레 이와 같이 하니 참 우습구료. 기꺼이 사람을 양단간에 딱 끊기라도 하겠다는 겐가? 이것이 과연 禪에 맞는 일이요? 나는 대사는 보고 싶지도 않고, 대사의 편지 또한 보고 싶지 않소. 다만 차에 얽힌 인연만은 차마 끊어 없애지 못하고, 능히 깨뜨릴 수가 없구려. 이번에 또 차를 재촉하니 보낼 때 편지도 필요 없고, 단지 두 해 동안 쌓인 빚을 함께 보내되 다시 지체하거나 어긋남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오. 그렇지 않으면 마조의 할과 덕산의 몽둥이를 받게 될 터이니, 이 한 번의 할과 한 방의 몽둥이는 수백 천겁이 지나도 피해 달아날 구멍이 없을게요. 다 미루고 이만 줄이오.

(有書而一不見答, 想山中必無忙事, 抑不欲交涉世諦. 如我之甚切, 而先以金剛下之耶. 第思之, 老白首之年, 忽作如是, 可笑. 甘做兩截人耶? 是果中於禪者耶? 吾則不欲見師, 亦不欲見師書. 唯於茶緣, 不忍斷除, 不能破壞. 又此促茶, 進不必書, 只以兩年積逋並輸. 無更遲悞可也. 不然馬祖喝德山棒, 尙可承當. 此一喝此一棒, 數百千劫, 無以避躱耳. 都留不式.)


[9] 햇차는 몇 근이나 따시었소. 남겨두었다가 장차 내게 주시겠소? 自欣과 向熏 등 여러 스님의 처소에서도 일일이 뒤져내어 빠른 인편에 함께 보내주시오. 혹 한 스님 것만 보내주어도 괜찮겠소. 김세신도 편안하겠지요? 궁금합니다. 계절 부채를 부쳐 보내오. 나누어 보관하시구려.

(新茗摘來幾斤. 留取將與我來耶. 欣熏諸衲處, 一一討出, 並寄速便. 或專送一衲, 未爲不可耳. 金世臣亦安, 念念. 節箑寄去, 分之留之.)


[8]은 두 해 째 초의 스님과 소식이 끊겨 차를 얻지 못하게 되자, 이제 나와는 영영 관계를 끊을 셈이냐고 말하며, 보고 싶지도 않고 편지도 필요 없으니 딱 잘라 2년치 밀린 차나 지체 없이 보내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마조 스님의 할과 덕산 스님의 몽둥이로 협박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읽으면 슬며시 웃음이 나오는 정겨운 편지다. [9]에서도 햇차를 좀 보내달라는 부탁과 함께 자흔 향훈 두 스님의 차도 수소문해서 많을수록 좋으니 있는대로 부쳐달라고 적었다. 추사의 차 욕심은 끝도 없다. 초의도 추사의 끝없는 토색에 자못 질린 눈치다.


[10] 중이 와서 초의의 편지를 받았고, 또 茶包도 받았소. 이곳의 샘물 맛은 관악산의 한 지맥에서 흘러나온 것이어서 두륜산 샘물과는 어느 것이 더 나을 지 모르겠으나, 또한 열에 서넛 쯤은 된다오. 서둘러 부쳐온 차를 시험해보니, 샘물도 좋고 차도 좋아 얼마간 기쁜 인연이라 하겠네. 이것은 차가 그렇게 만든 것이지 편지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닐세. 그렇다면 차가 편지보다 더 낫단 말인가? 게다가 근자에는 계속해서 一爐香室에 머물고 있다고 하니 어떤 좋은 인연이라고 있는 게요? 어찌 이런저런 갈등을 부숴버리고 지팡이 하나 짚고 먼 곳으로 날아와 이 차의 인연을 함께 하지 않는 게요? 게다가 근래에는 자못 참선의 즐거움에 대해 점입가경의 묘가 있으나 더불어 이 묘체를 함께 할 이가 없구려. 대사와 더불어 함께 눈썹을 치켜 세우고 싶은 생각이 간절한데, 이 소원을 이룰 수 있을런 지 모르겠소. 대략 拙書가 있길래 부쳐 보내니 거두어 주시구려. 우전차의 잎은 몇 근이나 따시었소? 언제나 이어 보내주어 이 차에 대한 욕심을 진정시켜 주시려는가? 날마다 간절히 바라고 바란다오. 이만 줄이오. 향훈에게도 한 장을 허락하니 전해주시면 고맙겠소.

(僧來得草緘, 又得茶包. 此中泉味, 是冠岳一脉之流出者, 未知於頭輪, 甲乙何如, 亦有功德之三四. 亟試來茶, 泉佳茶佳, 是一段喜懽緣. 是茶之使, 而非書之使. 茶甚於書耶. 且審近日連住一爐香, 有甚勝緣. 何不破諸藤葛, 一笻遠飛, 共此茶緣也. 且於近日頗於禪悅, 有蔗境之妙, 無與共此妙諦, 甚思師之一與掀眉. 未知以遂此願耶? 略有拙書寄副, 收入也. 雨前葉, 揀取幾斤耶? 何時續寄, 鎭此茶饞也. 日以企懸. 不宣. 向熏許一紙, 幸轉付.)

 

[11] 병든 천한 몸은 그 사이 설사병을 앓아 진기를 다 빼앗기고 말았소. 세상 길의 괴로움이 이러하단 말이오! 다행이 차의 힘을 빌어 목숨을 연장할 수 있었소. 이는 한결같이 사방에 없는 무량한 복덕이라 하겠소. 가을 뒤에 계속 부치는 것은 싫증 없는 바람이오. 향훈이 만든 차 또한 인편에 따라 보내주면 좋겠소. 마침 가는 인편이 있길래 대략 적을뿐 자세히 적지는 못하오. 이만 줄이오.   

(賤痒間經糗寫, 眞元敓下, 世趣之苦, 乃如是耶. 幸因茗力, 得延煖觸. 是一四方空之無量福德. 秋後繼寄, 是無厭之望. 熏製亦使隨及爲可. 適因轉禠, 略及不能悵皇, 姑不宣.)


[10]은 초의가 부쳐온 차를 과천의 샘물로 끓이면서, 두륜산 일지암 乳泉의 물맛과 견주었다. 한번 올라와서 禪談이나 나누자며, 끝에 가서는 우천차를 몇 근 땄느냐며 계속 보내주어 차에 기갈 든 마음을 진정시켜 달라는 부탁을 잊지 않았다. [11]에서도 설사병을 차 덕에 간신히 가라앉혔다며 고마움을 표한 뒤, 가을 이후에도 초의와 향훈의 차를 계속해서 더 보내달라고 주문했다.

이런 추사의 끊임없는 차 요구가 초의도 괴로웠을 것이다. 때로 편지를 연거푸 받고도 짐짓 모른 체 답장을 하지 않다가 몽둥이를 맞아야겠다는 으름장을 받기도 하고, 보내주자 마자 염체 없이 더 보내달라는 요구에 시달리기도 했다. 나중에는 초의의 차만으로 부족해 자흔과 향훈 같은 초의 스님의 제자에게까지 글씨를 미끼로 차를 요구했다. 추사의 차에 대한 벽과 애호가 어떠했는지를 이들 편지는 너무도 잘 보여준다.

아래 시 또한 초의에게 보낸 걸명시다. 다소 긴 제목은 이렇다. 〈아침에 한 사람에게 곤욕을 치르고, 저녁에도 한 사람에게 곤욕을 치렀다. 마치 학질을 앓고 난 것 같다. 장난 삼아 초의 상인에게 주다(朝爲一人所困嬲, 暮爲一人所困嬲. 如經瘧然, 戱贈草衣上人).〉


하루 걸러 앓으니 학질로 괴로운데

아침엔 더웠다가 저녁 땐 오한 드네.

산 스님 아무래도 醫王 솜씨 아끼는 듯

관음보살 救苦丹을 빌려주니 않누나.

鬼瘧猶爲隔日難  朝經暮又熱交寒

山僧似惜醫王手  不借觀音救苦丹 


학질을 앓아 오한이 들고 나고 하는데, 아침저녁으로 사람들은 찾아와 끊임없이 글씨를 써달라고 조른다. 견딜 수가 없다. 이럴 때 더운 차 한 잔을 마시면 오한이 말끔히 가실 것만 같다. 하지만 초의는 좀체 醫王의 손길을 건네 관음보살의 救苦丹 즉 차를 보내 줄 줄 모른다고 푸념했다. 어서 좋은 차를 아끼지 말고 보내달라고 요구한 내용이다.

또한 차에 대한 답례로 추사는 계절 부채나 글씨를 보내곤 했다. 현재 간송미술관에 소장된 추사의 걸작 〈茗禪〉도 바로 차를 받고 보낸 답서이다. 글씨 옆에는 이런 글이 적혀 있다.

초의가 자신이 만든 차를 부쳐왔는데 蒙頂茶나 露芽茶에 못지 않았다. 이를 써서 보답한다. 白石神君碑의 필의를 써서 病居士가 예서로 쓰다.

(艸衣寄來自製茗, 不減蒙頂露芽, 書此爲報. 用白石神君碑意, 病居士隸.)


이 또한 걸명에 이은 謝茶의 아름다운 광경이 아닐 수 없다. 이런 글씨를 받고 초의로서도 감격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추사는 초의와 자흔, 향훈 스님의 차만으로는 부족해서 쌍계사의 여러 스님들에게도 끊임없이 차를 구해 마셨다. 彛齋 權敦仁에게 보낸 편지의 한 대목을 보자.

 

다품이 과연 勝雪茶의 남은 향기라 하겠습니다. 일찍이 雙碑館에서 이 같은 차를 보았는데, 우리나라로 와서는 40년 동안 다시는 보지 못했습니다. 영남사람이 지리산의 스님에게서 이를 얻었답니다. 산승 또한 개미가 금탑을 모으는 것 같이 하여 실로 많이 얻기가 어렵습니다. 또 내년 봄에 다시 구해보라 하겠으나, 승려들이 모두 깊이 비밀로 하며 官을 두려워하여 쉬 내놓지를 않는다는군요. 하지만 그 사람은 스님들과 좋게 지내니, 그래도 도모할만 합니다. 그 사람이 제 글씨를 아주 아끼니, 돌고 돌아 교환하는 방법도 있을 겝니다. 

(茶品果是勝雪之餘馥賸香. 曾於雙碑館中, 見如此者, 東來四十年, 再未見之. 嶺南人得之於智異山僧, 山僧亦如蟻聚金塔, 實難多得. 又要明春再乞, 僧皆深秘, 畏官不易出. 然其人與僧好, 尙可圖之. 其人甚愛拙書, 有轉轉兌換之道耳.)


중국 옹방강의 쌍비관에서 마신 차맛을 40년 만에 만나보았다며 감격한 내용이다. 지리산 쌍계사의 스님이 만든 차를 영남 사람에게서 얻어 마시고, 이를 다시 권돈인에게 조금 나눠주었던 모양이다.

이 지리산 승려의 이름은 貫華와 晩虛였다. 관화에게 준 시가 2수, 만허에게 준 시가 1수씩 《완당전집》에 실려 있다. 차례로 읽어 본다.


한 스님 일천 산서 구해온 것 얻으니

사나운 용 턱 밑에서 우레 칠 때 딴 것일세.

솔 소리 바람 힘이 큰 허공에 서렸으니

화엄이라 법계로 고이 돌려 보내노라.  

一衲千山得得來  獰龍頷下摘颷雷

松聲風力盤空大  好遣華嚴法界廻

 

관화 스님에게 준 이 시는 지리산 여러 골짜기를 다니며 딴 차를 받고 나서 감사의 뜻을 담아 보낸 謝茶의 내용을 담았다. 우레 소리를 들으며 딴 차를 가장 으뜸으로 치는 것은 육우의 《다경》이래로 늘 하는 말이다. 관화 스님이 보내준 차를 끓이니 차를 딸 때 함께 깃든 솔바람 소리가 허공에 가득 서리는 것만 같다고 했다. 그래서 화엄법계로 고마움의 인사를 돌려보낸다고 했다. 얼마나 멋진 인사인가.   

아래 시 또한 관화 스님에게 준 시인데, 제목이 좀 길다. “차에 관한 일을 이미 쌍계사에 부탁하고, 또 광양에서 나는 冬至 전에 일찍 채취한 김도 관화와 약속하여, 먹거리로 부치도록 하였다. 모두 口腹 간의 일이라 붓을 놓고 한번 웃는다(茶事已訂雙溪, 又以光陽至前早採海衣, 約與貫華. 使之趁辛盤寄到. 皆口腹間事, 放筆一笑.).”


쌍계사의 봄빛에 차 인연은 길고 길어

六祖 고탑 광휘 아래 으뜸 가는 頭綱茶라

욕심 많은 늙은이 곳곳마다 욕심 부려

밥상에다 향기로운 김을 또 약속했네.  

雙溪春色茗緣長  第一頭綱古塔光

處處老饕饕不禁  辛盤又約海苔香

 

2구의 ‘古塔’은 관화 스님이 쌍계사 六祖塔 아래서 살고 있었으므로 한 말이다. 해마다 쌍계사에서 봄차를 얻어 마셨는데, 최상품의 頭綱茶라고 했다. 거기다 더하여 동지 전에 일찍 딴 최상품의 김까지 함께 보내달라고 부탁해놓고, 스스로 계면쩍어 지은 시다.

만허 스님 또한 관화와 같이 거처하던 승려로, 추사는 그에게서도 차를 구해 먹었다. 만허에 대해 추사는 이렇게 적었다.

 

만허는 쌍계사 육조탑 아래서 살고 있다. 차 만드는 솜씨가 뛰어나, 차를 가져와서 주는데, 용정차나 두강차라 해도 이보다 더 낫지는 않을 것이다. 香積廚 가운데 이러한 무상의 묘미는 없을 듯하다. 인하여 찻종지 한 벌을 주어 육조탑 앞에 차를 공양케 했다.  

(晩虛住雙溪寺之六祖塔下. 工於製茶, 携茶來餉, 雖龍井頭綱, 無以加也. 香積廚中, 恐無此無上妙味. 仍以茶鍾一具贈之, 使之茗供於六祖塔前.) 

 

만허 스님이 직접 법제한 차를 맛본 뒤 최상의 찬사로 기린 내용이다. 추사는 만허를 위해 시를 써주고 글씨를 주는 한편으로 중국에서 가져온 찻 종지 한 벌까지 선물로 주어 육조탑에 올리는 獻茶에 쓰게 하는 배려도 아끼지 않았다.

이상 살펴본 대로 추사는 초의와 그의 제자 자흔과 향훈, 그리고 쌍계사의 관화와 만허 스님 등에게서 차를 구해 마셨다. 추사가 이들에게 보낸 시문은 대부분 걸명과 사다의 내용이다. 끊임없이 요구하고 한정 없이 빼앗아 가면서도, 글씨를 써서 보내고 茶俱를 답례로 보내는 등 차맛에 걸맞는 예를 갖추는 것도 잊지 않았다. 추사가 초의에게 보낸 여러 편지는 우리 차 문화사에서 잊지 못할 아름다운 장면의 하나다.         

뿐만 아니라 중국을 드나들던 제자 오경석 등도 중국에서 귀한 용정차 등을 구해다가 추사에게 가져다주었다. 추사가 마신 차의 양은 실로 적지 않은 것이었다. 거의 매일 차와 더불어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제주도에 귀양 가 있을 적에는 차를 구할 수 없게 되자, 아예 그곳에서 檳榔 잎을 가공해 黃茶를 만들어 마시기까지 할 정도였다.추사의 차 사랑은 이렇듯 유난스럽고 특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