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以聽得心

solpee 2014. 11. 24. 10:30

以聽()得心(tīngdexīn)

상대방의 말을 들어주는 것이 덕을 쎃고 그 마음을 얻는 길이다.

 

나라 임금이 바닷새를 종묘 안으로 데려와 술을 권하고 음악을 연주해 주고 소 돼지 양을 잡아 대접했다. 그러나 새는 어리둥절해 하고 슬퍼할 뿐 아무것도 먹지 않은 채 사흘 만에 죽고 말았다.

莊子는 노의 임금을 통해 아무리 좋은 대우라도 상대방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는 고려하지 않는 소통은 실패할 수 박에 없음을 비유적으로 표현했다. 노 임금은 자신이 좋아하는 술과 음식을 바닷새 역시 좋아할 것이라 착각했다.

宋人들이 모자를 팔러 越에 갔지만越人들은 머리를 밀고 문신을 하고 있어서 모자가 필요없었다. 莊子는 宋의 상인 이야기를 통해 기존에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을 버리고 타인 내지 타국과의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해야 함을 강조했다.

어느 누구도 편견과 고정관념을 버리지 않으면 보다 많은 대중의 지지를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새길 때이다.

 

獲得人心的祕訣,以聽得心,豎耳傾聽,傾聽是獲得人心的最高智慧,我的傾聽之道,發現,收起判斷之心,傾聽內在之音,就能發現新自我,你我的傾聽之道,共鳴,只要互相接受對方,彼此體諒對方,就能聽見真實,全體的傾聽之道,相生,傾聽彼此的聲音,才是全體的生存之道

 

牛山之木  (niúshānzhīmù)

 

牛山이란 산은 풀 한포기 나지 않는 민둥산의 이름이다. 그러나 이 산이 원래부터 민둥산은 아니었다. 나무가 울창했던 이 산은 대도시 주변에 있었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드나들면서 나무를 베어갔다. 나무를 잃은 牛山은 사람들이 안 오는 밤에 이슬을 머금고 부지런히 싹을 틔어내고 풀을 키웠다. 그러나 이번엔 낮에 목동이 소와 양을 끌고 나타나 조금 자란 그 풀마저 모두 뜯어먹고 말았다. 나무도 풀도 더 이상 자라지 못하게 된 우산. 그러나 그 산이 원래부터 민둥산은 아니었다’

맹자는 잃어버린 우리의 선한 마음을 되찾아야 한다며 이렇게 말한다. “당신들은 집에서 기르던 개나 닭을 잃어버리면 그것을 찾아야 한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人有鷄犬放則知求之) 그런데 마음을 잃어버리면 도대체 다시 찾아야 한다는 것은 모르고 있다.(放心而不知求)” 돈이나 명예를 찾아다니기 보다는 잃어버린 마음. 放心을 거두어 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맹자는 또 ‘당신에게 구부러져서 펴지지 않는 무명지라는 손가락이 있다고 하자. 그것이 당신의 신체에 결정적인 장애가 아니더라도 만약에 그 구부러진 무명지를 펴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천리가 멀다 않고 찾아가 무명지를 펴 달라 할 것이다. 왜 그런가? 바로 당신의 손가락이 남들과 다르기 때문이다. 당신의 손가락 하나가 남들과 다른 것은 부끄러워 펴야 된다는 것을 알면서 왜 구부러진 당신 마음에 대해서는 아무런 노력도 안하느냐?’ 맹자의 이런 날카로운 외침 뒤에는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인간에 대한 믿음과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인간에 대한 믿음과 신뢰. 절대로 포기하면 안된다. 인간은 착하게 살아서는 생존할 수 없다고 자신에게 포악하게 대하는 것을 맹자는 自暴라고 한다. 나는 불가능하다고 자신을 버린 사람을 自棄라고 한다. 일명 맹자가 말하는 自暴自棄는 인간이 선하다는 신념을 버리고 포기하는 것이다. 자포자기의 상태로 사람들을 대한다면 그 조직은 포기할 수밖에 없는 조직이 된다. ‘우산은 원래 민둥산이 아니었다. 낮과 밤으로 도끼와 소들이 들어와 나무를 베고 풀을 뜯어먹어 상처를 입고 민둥산이 되었다.’ 인간을 바라보는 맹자의 아름다운 시선이다.

孟子曰:“牛山之木尝美矣,以其郊于大国也,斧斤伐之,

可以为美乎?是其日夜之所息,雨露之所润,非无萌櫱之生焉,

牛羊又从而牧之,是以若彼濯濯也。人见其濯濯也,以为未尝

有材焉,此岂山之性也哉?

산속에서[山中]
                                                李栗谷

採藥忽迷路 / 약초 캐다 홀연히 길을 잃었는데
千峰秋葉裏 / 일천 봉우리가 가을 낙엽 속에 있네.
山僧汲水歸 / 산중 스님이 물 길어 돌아가더니
林末茶烟起 / 숲 끝에서 차 달이는 연기 피어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