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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사원방(省事遠謗)

solpee 2013. 9. 29. 04:21

 

오늘은 癸巳年(桓紀9210,神紀5910,檀紀4346) 陰 辛酉月(八月大)  25일 戊戌 日曜日  秋分(8.3.20:16)節 仲候 蟄蟲壞戶(칩충괴호: 경칩의 반대이다 벌레들이 동면하기 위해 구멍을 막는다.)候입니다. 日出은 06:26, 日入은 18:19, 月出은 00:40, 月入은 14:48입니다. 낮의 길이 11시간 53분 12초. 즐겁고도 활기찬 하루 되십시요.

 

第50회('13.9.29) 수원화성문화제에서 근당 양택동 한국서예박물관장께서 하신 휘호 내용

 

太公曰 " 孝順還生孝順子요   忤逆還生忤逆子(支)하나니, 不信但看詹頭水하라 點點滴的不差移(支)니라. "

 

태공이 말하기를,"효도하고 순한 사람은 또한 효도하고 순한 자식을 낳을 것이요, 부모에게 거역한 사람은 또한 거역하는 아들을 낳느니. 믿지 못하겠거든 저 처마 끝의 낙수를 보라. 방울방울 떨어짐이 어긋남이 없느니라."  

                                                -명심보감 효행편에서-

孝顺还生孝顺子忤逆还生忤逆儿”,这是《增广贤文》里的一句话。增广
贤文》为中国古代儿童启蒙书目。又名《昔时贤文》、《古今贤文》。书名最
早见之于明代万历年间的戏曲《牡丹亭》,据此可推知此书最迟写成于万历年
间。后来,经过明、清两代文人的不断增补,才改成现在这个模样,称《增广
昔时贤文》,通称《增广贤文》。作者一直未见任何书载,只知道清代同治年
儒生周希陶曾进行过重订,很可能是民间创作的结晶。“孝顺还生孝顺子
忤逆还生忤逆儿”,意思就是说:真善美也会遗传,孝顺的人他所生的孩子
也会孝顺其父母的;而不孝敬父母所谓忤逆之人他的孩子一定也会忤逆,不
孝敬其父母。说明父母是子女的第一任老师,父母的脾气、秉性,一言一行
都会影响到子女的成长。
[정민의 세설신어] 성사원방(省事遠謗)

 

 진미공(陳眉公)이 엮은 '독서경(讀書鏡)'의 한 단락이다. 송나라 때 조변(趙抃)이 물러나 한가로이 지낼 때 한 선비가 책과 폐백을 들고 찾아와 가르침을 청했다. 그는 말없이 읽던 책을 끝까지 다 마치고 나서 정색을 하고 말했다. "조정에 학교가 있고 과거 시험도 있거늘 어찌 거기서 학업을 마치지 않고 한가로이 물러나 지내는 사람에게 조정의 이해에 대해 말하라 하는가?" 선비가 황망하게 물러났다.

당나라 때 산인(山人) 범지선(范知璿)이 승상 송경(宋璟)에게 자기가 지은 글을 바쳤다. 글로 그의 마음을 얻어 한자리 얻어 볼 속셈이었다. 송경이 말했다. "당신의 '양재론(良宰論)'을 보니 아첨의 뜻이 있소. 문장에 자신이 있거든 따로 보여주지 말고 과거에 응시하시오." 범지선이 진땀을 흘리며 물러났다.

이 두 예화를 소개한 후 그는 옛사람의 말을 다시 인용했다. "관직에 있는 사람은 기색이 다른 사람과는 만나지 않아야 한다. 무당이나 여승은 말할 것도 없다. 마땅히 멀리하고 딱 끊어야 한다. 공예에 뛰어난 사람도 집에 오래 머물게 하면 안 된다. 이들과 허물없이 가까이 지내다 보면 바깥에서 들은 얘기를 멋대로 바꿔 전해 시비를 농단한다."

실제로 송나라 때 방관(房琯)은 큰 학자로 재상의 반열에 올랐는데, 거문고 악사인 황정란(黃庭蘭)을 문하에 가까이 두고 출입하게 했다가 그의 말에 혹해 일을 그르치는 바람에 명성에 큰 누가 되었다. 가까이 두고 큰일을 하려면 멀리해야 할 것을 따져 가늠하고(審察疎遠), 일을 살펴 비방을 멀리하여(省事遠謗) 몸가짐을 무겁게 하고 자리와 사람을 잘 가려야 한다.

선초의 왕자 사부 민백형(閔伯亨)이 분매를 길렀다. 그가 외직으로 나가게 되자 왕자가 임금께 바치고 싶다며 그에게 기르던 분매를 달라고 했다. 민백형이 바로 거절했다. 왕자가 이유를 묻자, 바깥 사람들이 왕자께서 바친 것인 줄 모르고 자신이 임금의 총애를 얻으려 아첨하는 것이라 비웃을 테니 드릴 수가 없다고 했다. 그는 일을 살펴 비방을 멀리하는 성사원방의 이치를 잘 알았다고 할 만하다. '효빈잡기(效顰雜記)'에 나온다.


개관사정 []

시체 넣고 뚜껑 덮은 에야 결정할 있다는 으로, 사람 죽은 에야 비로소 사람 가치 제대로 평가할 있음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 두보가 四川省 동쪽 기주(夔州)의 깊은 산골로 들어가서 가난하게 살고 있을 때, 친구 아들인 소혜(蘇徯)가 그곳에 와서 살며 실의에 찬 나날을 보내자 두보는 ‘君不見簡蘇徯’이란 시를 지어 보냈다 한다. 소혜는 이 시를 읽은 후에 그곳을 떠나 호남 땅에서 세객(說客)이 되었다 한다.

 

 

 

 

君不見 簡蘇徯

그대는 보지 못했는가, 소혜에게.

 

 

                    杜甫

君不見 道邊廢棄池    그대는 보지 못 했는가? 길가에 버려진 연못을

君不見 前者摧折桐    그대는 보지 못 했는가? 앞에 부러져 꺾인 오동나무를

百年死樹中琴瑟    백년 뒤 죽은 나무가 거문고에 알맞고

一斛舊水藏蛟龍    한 섬 오랜 물은 교룡을 품기도 한다

丈夫蓋棺事始定    장부는 관 뚜껑이 덮어야 비로소 일이 결정되거늘

君今幸未成老翁    그대는 지금 다행히 아직 늙지 않았으니

何恨憔悴在山中    어찌 한탄하는가? 초췌하게 산중에 있으면서

深山窮谷不可處    깊은 산, 곤궁한 골짜기는 거처할 곳이 못되도다

霹靂魍魎兼狂風    벼락과 도깨비와 광풍까지 있으니  


盖棺事定gài  guān  shì  dìng

 

〖解释〗犹盖棺论定。指人死后对其一生作出评价。
〖出处〗明·冯惟敏《耍孩儿·骷髅诉冤》曲:“自古道盖棺事定,入土为安。”
〖用法〗作谓语、定语;多用于比喻句。
参见“盖棺论定”、“盖棺定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