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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미의 시 몇 수

solpee 2013. 6. 26. 17:39

한국의 정치인

대학은 그들에게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하고
기업은 그들에게 후원금을 내고
교회는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병원은 그들에게 입원실을 제공하고
비서들이 약속을 잡아주고
운전수가 문을 열어주고
보좌관들이 연설문을 써주고
말하기 곤란하면 대변인이 대신 말해주고
미용사가 머리를 만져주고
집 안 청소나 설거지 따위는 걱정할 필요도 없고

(도대체 이 인간들은 혼자 하는 일이 뭐지?)

 

 돼지의 죽음

 

돼지 3대가 지배하는 이상한 외투의 나라

꽃속에 파묻힌 아버지를 보며 꼬마 돼지가 눈물을 흘린다

 

돼지가 울자

농장의 모든 동물들이 통곡한다

땅을 치고 가슴을 치며

더 울고 싶지만 배가 고파서

혁명사상으로 불룩한 배를 우러러보며

뚱뚱한 수령의 말씀을 받드느라 삐적 마른 염소들,

 

영양실조에 걸린 사슴과 강아지들이 격한 울음을 토하고 때마침 눈이 내려

영구차가 미끄러질까 봐

위대한(그의 胃는 정말 거대했다)

장군님이 가시는 마지막 길에 외투를 벗어 바친다

 

정치인

 

5천만의 국민을 감히 사랑한다고

떠드는 자들.


사랑을 말하며

너는 숨도 쉬지 않니?


조찬과 오찬과 만찬에 참석

축하하고 격려하고 약속하

화장하지 않은 얼굴은 보여주지 않


왼손이 하는 일은 반드시 오른손이 알게 하고

보도되지 않으면, 눈길조차 주지 않는 여우들.

 

닮은꼴

북조선에서는 잘 우는 사람이 출세하고

남한에서는 적당한 웃음이 성공의 비결.


인민 모두가 배우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지도자 돼지가 사망한 뒤, 눈물공장이 24시간 가동해

야근을 하며 눈물을 생산한 노동자들은 간부로 승격하고

슬픔을 충분히 짜내지 못하면 쫓겨나고


남한의 오락프로는 억지웃음을 만드느라 돈을 쏟아 붓고

상사가 썰렁한 농담을 해도 웃어주는


한반도의 이쪽과 저쪽에서

대장의 눈치를 살피며

웃고 울며 겨울이 가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