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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4월 17일 오전 04:15

solpee 2013. 4. 17. 04:16

오늘은 癸巳年(桓紀9210,神紀5910,檀紀4346) 陰 丙辰(三月) 8일 水曜日 癸丑 淸明(4.5.00:02)節 末候 虹始見(홍시견:무지개가 보이기 시작한다)候입니다. 小寒에서 穀雨까지 부는 妬花風(투화풍;꽃샘바람) 중에서 柳花風(유화풍: 버들꽃 바람)이 부는 候이기도 합니다.

 

是我非我내가?아이가?

                                               정민의 세설신어

 

李晩榮(1604~1672)이 사신으로 갔다가 중국 화가 胡炳이 그린 초상화를 갖고 왔다. 똑 닮은 모습에 사람들이 감탄했고, 자신도 흡족했다. 18년 뒤 예전 초상화를 꺼내 거울 속 모습과 견줘 보니 조금도 같은 구석이 없었다. 거울 속의 나도 분명히 나이고, 그림 속 나도 틀림없는 나인데, 두 나는 전혀 달랐다. 그는 느낌이 있어 초상화 속 나를 위해 '畵像贊幷序'를 썼다.

"그대가 지금의 나란 말인가? 내가 그래도 젊었네그려. 내가 예전 그대였던가? 나 홀로 늙고 말았군 그래. 18년간 그대가 내 참모습인 줄 몰랐으니, 수십 년 뒤에야 누가 내 모습이 그대인 줄 알겠나? 다만 마땅히 각자 身體髮膚를 잘 지켜 남에게 더럽힘이나 당하지 마세나. 명산에 간직할 테니 그대는 그대의 장소를 얻으시게. 나는 몸을 삼가 세상을 살아가겠네. 내 어찌 그대를 부러워하리?" 이렇게 그림 속 나와 거울 속 나는 겨우 화해했다.

추사 김정희도 '自題小照', 즉 자기 초상화에 쓴 글에서 이렇게 적었다. '여기 있는 나도 나요, 그림 속 나도 나다. 여기 있는 나도 좋고, 그림 속 나도 좋다. 이 나와 저 나 사이 진정한 나는 없네. 조화 구슬 겹겹인데, 그 뉘라 큰 마니 속에서 실상을 잡아낼까? 하하하(是我亦我, 非我亦我. 是我亦可, 非我亦可. 是非之間, 無以爲我. 帝珠重重, 誰能執相於大摩尼中. 呵呵).' 둘 다 분명 나는 나인데, 어느 나도 진짜 나는 아니니, 그렇다면 나는 어디 있느냐는 얘기다.

노산 이은상의 시조 '자화상' 세 수가 또 있다. '너를 나라 하니 내가 그래 너란 말가/ 네가 나라면 나는 그럼 어디 있나/ 나 아닌 너를 데리고 나인 줄만 여겼다.// 내가 참이라면 너는 분명 거짓 것이/ 네가 참이라면 내가 도로 거짓 것이/ 어느 게 참이요 거짓인지 분간하지 못할네// 내가 없었더면 너는 본시 없으련만/ 나는 없어져도 너는 혹시 남을런가/ 저 뒷날 너를 나로만 속아볼 게 우습다.'

나는 나인가? 내가 맞는가? 그림 속 나는 그대로인데, 현실의 나는 매일 변한다. 변치 않는 나와 늘 변하는 나 중에 어느 나가 진정한 나인가? '너'나 '그'가 아닌 '나'가 늘 문제다. 내게서 내가 달아나지 않도록 나를 잘 간수하는 것이 급선무다. 



文能换骨无余法  学到寻源自不疑

文能换骨无余法 <wbr> <wbr>学到寻源自不疑

 

 

 白雪紅梅增畵意 靑山綠水動詩情

 

冬夜讀書示子聿/동야독서시자율

                                                          (宋) 陸游/육유

古人學問無遺(餘)力/고인들은 학문을 남는 힘이 없을

만큼 진력했지만
少壮工夫老始成/젊어서 시작한 공부 노년에야 비로소

이룰 수 있었다네
紙上得來終覺淺/종이 위에서 얻은 지식은 종국에는

얕음을 깨닫게 되니
絶知此事要躬行/학문이란 실천궁행이 중요함을

절대적으로 알아야 한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