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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3월 27일 오전 06:25

solpee 2013. 3. 27. 06:26

오늘은 癸巳年(桓紀9210,神紀5910,檀紀4346) 陰 乙卯(2) 十六日(旣望기망, 哉生魄재생백) 水曜日 壬辰 春分(20:02)節 中候 雷乃發聲(뇌내발성; 우뢰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候입니다. 小寒에서 穀雨까지 부는 妬花風(투화풍;꽃샘바람) 중에서 木蘭(목련을 이른다. 일본에서는 함박꽃이라고도 한다)風(목란풍;목련화 바람)이 부는 候이기도 합니다.

 

지유조심(只有操心)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이덕무가 '이목구심서(耳目口心書)'에서 말했다. "사람이 한번 세상에 나면 부귀빈천을 떠나 뜻 같지 않은 일이 열에 여덟아홉이다. 한번 움직이고 멈출 때마다 제지함이 고슴도치 가시처럼 일어나, 조그만 몸뚱이 전후좌우에 얽히지 않음이 없다. 얽힌 것을 잘 운용하는 사람은 천 번 만 번 제지를 당해도 얽힌 것을 마음에 두지 않는다. 얽힌 것에 끌려 다니지도 않는다. 때에 따라 굽히고 펴서 각각 꼭 알맞게 처리한다. 그리하면 얽힌 것에 다치지 않게 될 뿐 아니라, 내 화기(和氣)를 손상시키지도 않아 저절로 순경(順境) 속에서 노닐게 된다. 저 머리 깎고 산에 드는 자 중에도 괴롭게 그 제지함을 견디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피를 뽑아 불경을 베끼고, 행각하며 쌀을 탁발함을 도리어 괴로워하며 못 견딘다. 온몸이 온통 얽매여 부딪치는 곳마다 모두 제지하는 것뿐이다. 이는 조급하고 어지러운 것이 빌미가 된 것일 따름이다. 마치 원숭이가 전갈 떼에게 쏘일 경우 전갈을 잘 처리해 피하거나 없앨 꾀를 낼 줄은 모르고, 괴로워하며 온통 긁기만 하는 것과 같다. 이리 긁고 저리 물어뜯으며 잠시도 참지를 못한다. 그럴수록 전갈은 더욱 독하게 쏘아댄다. 죽고 나서야 끝이 난다."

세상살이에 문제가 떠날 날이 없다. 정작 문제는 문제 그 자체에 있지 않다. 정작 문제가 무엇인지 모르는 게 늘 문제다. 고슴도치 가시처럼 들고 일어나는 문제 속에 허우적대다가 몸과 마음을 상하고, 인생을 망치는 것을 수없이 본다.

원나라 때 학자 허형(許衡·1209~ 1281)이 말했다. "오만 가지 보양이 모두 다 거짓이니, 다만 마음 붙드는 것 이것이 중요하다(萬般補養皆虛僞, 只有操心是要規)." 그렇다! 온갖 보약과 귀한 보양식은 결코 내 삶을 든든히 붙들어 주는 지지대가 못 된다. 마음이 달아난 사람은 그날로 비천해진다. '지유조심(只有操心)!' 다만 네 마음을 붙들어라. 조심은 두리번거리며 살피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내 마음의 주인이 된다는 말이다. 마음을 놓아버려 외물이 그 자리를 차지해 버리면 나는 그로부터 얼빠진 허깨비 인생이 된다. 문제에 질질 끌려 다니며 문제만 일으키는 문제아가 된다. 조심(操心)하라!

 

말(言)은 사람을 이롭게도 하고 해롭게도 하는 중요한 도구이다.

 

                          KISTI 전문연구위원/국방대학교 명예교수 김 충 영

 

고대 중국 장자는 제물론(齊物論)에서「대체로 말이란 단순히 소리를 내는 것만은 아니다. 말에는 뜻이 있다. 그 말의 뜻이 애매하여 뚜렷하지 않다면 과연 말을 했다고 할 수 있겠는가?(夫言非吹也. 言者有言. 其所言者. 特未定也. 果有言邪)」라고 했다. 사회생활에서 말이란 사람과 사람 사이 중요한 의사소통 수단이다. 그러나 사람이 하는 말이 정황에 따라 다양하고 이해관계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인간사회는 말로 인해 시끄럽기 그지없다. 더구나 말의 뜻이 애매모호할 때는 의사소통에 혼란이 일어나 더욱 시끄러울 때가 많다. 그래서 예로부터 전해오는 말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1. 말을 함부로 하지 말라.

「백규(白圭)의 흠은 갈아서 없앨 수 있지만, 말의 실수는 어쩔 수 없도다(白圭之玷 尙可磨也 斯言之玷 不可爲也)」시경(詩經)에 있는 말이다. 시경(詩經) 소아편(小雅篇)에 「말해서 안될 말을 하지 말라. 그리고 이유 없는 말은 하지 말라(匪言勿言 匪由勿語)」라고 했고, 또한 시경(詩經) 대아편(大雅篇)에서는 「문제가 될성싶은 말은 함부로 하지 말라(無易由言)」라고 했다. 뱉어 낸 말은 돌이킬 수 없으므로 함부로 말해서는 안되며, 해야 할 말과 해서는 안될 말을 잘 판단하여 말해야 된다는 것이다.

노자(老子) 5장에 「말이 많으면 궁지에 빠지는 일이 많다(多言數窮). 묵묵히 중심을 지키는 것 보다 못하다(不如守中)」라고 했고 또한 공자가어(孔子家語)에서는 「말을 많이 하지 말라. 말이 많으면 실수가 많다(無多言 多言多敗)」라고 했다. 논어의 위영공편(衛靈公)에는 「말을 해서는 안될 때 말을 하면 실언을 한다(不可與言, 而與之言, 失言).」고 했으며, 우리나라 속담에 「말이 씨가 된다.」고 하여 자기가 한 말이 자기에게 현실로 나타난다고 했다. 또한 「말이 많으면 쓸 말이 적다」고 했다. 그래서 말은 신중히 해야 한다.

맹자(孟子)의 이루상편(離婁上篇)에 「사람이 말을 쉽게 하는 것은 그 말에 대한 책임이 없기 때문이다.(人之易其言也, 無責耳矣)」라고 말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무책임한 사람일수록 말을 함부로 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사람들은 통상 일구이언(一口二言)하는 사람들이다.

장자(壯子)는 내편(內篇)에서 「말은 평지풍파이고 행위는 그로 인해 생기는 결과이며 돌이킬 수 없는 실수이다(言者風也 行者實喪也)」라고 했다. 말을 하여 사회를 시끄럽게 하고 말로 인하여 행위가 이루어지고 잘못된 행위는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국어(國語 鄭語篇)와 십팔사략(十八史略)에 자산(子産)이 말하기를 「백성들의 말을 막는다는 것은 하천을 막는 것보다 어렵다(子産曰 防民之口 甚於防川)」라고 했다. 국어(國語 周語下篇) 에 「대중의 입은 쇠를 녹일 수 있다(衆口鑠金)」고 했다. 우리나라 속담에 「말은 보태고 떡은 뗀다.」 「말은 할수록 늘고 되질은 할수록 준다.」 라는 것은 말이란 사람의 입을 통해 전해지면서 겉잡을 수 없이 보태어져 퍼지고 물건은 옮길수록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처럼 옛 사람들은 말이 실수를 자초하고 심하면 평지풍파를 일으키며, 백성들의 생각이 하나로 일치되어 여론화된다면, 이를 막기도 어렵거니와 쇠도 녹일 수 있을 정도로 그 위력이 크다고 생각했다.

2. 한번 뱉은 말은 돌이킬 수 없다.

논어(論語) 안연편(顔淵篇)에 「사두마차가 끄는 빠른 수레도 혀에는 미치지 못한다(駟不及舌)」라고 하여 말로 전파되는 속도가 사두마차 보다 빠르다고 했다. 설원(說苑 談叢篇)에서도 또한 이르기를, 「입은 관문(關門)이며, 혀는 기계이다. 부당한 말을 내뱉고 나면 네 필의 말이 끄는 속도로도 뒤를 쫓을 수 없다. 입은 관문이며, 혀는 무기이다. 부당한 말을 내뱉고 나면 도리어 자기 자신을 해친다. 말이 이미 자기 입에서 나간 뒤라면, 다른 사람에게서 그치게 할 수 없고, 가까운 입에서 나왔지만 그 먼 곳에서도 그치게 할 수 없다. 그러니 어찌 조심하지 않을 수 있으랴. 그래서 괴자우(蒯子羽)는 “말은 활 쏘는 것과 같아서 시위를 떠난 화살은 비록 잘못 쏘아 후회해도 따라 잡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고 했다.

우리나라 속담에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고 했다. 말을 일단 하고 나면 빠른 속도로 전파되기 때문에 통제할 수가 없게 된다. 그러므로 서양 외교관들이나 정치하는 사람들은 입장 난처한 질문을 받으면,「no comment」라는 말을 잘 사용한다. 그들은 말을 하고 나서의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미리 알고 있기 때문이다. 들은 귀는 천년이요, 말한 입은 사흘이다"라는 속담은 ⌜들은 귀는 들은 것을 천년동안 기억하지만 말한 입은 사흘도 못가 말한 것을 잊어버리고 만다.⌟는 뜻이다.

3. 말은 상대방 수준에 맞게 해야 한다.

논어 안연편(安淵篇)에 이런 말이 있다. 자공(子貢)이 친구에 대한 도를 묻자, 공자가 답하기를 「충고하여 좋게 인도하지만, 말을 듣지 않으면 그만두어라. 지나치게 충고하여 도리어 욕을 당하는 일이 없게 하라(忠告而善道之, 不可則止, 無自辱焉).」고 하였다. 또한 논어 위영공편(衛靈公篇)에는「더불어 말할 수 있는 사람과 말을 하지 않으면 사람을 잃고(可與人而不與之言, 失人) 더불어 말을 할 수 없는 사람과 말을 하면 말을 잃는다(不可與言而與之言, 失言)」「지혜로운 사람은 사람도 잃지 않고 또 말도 잃지 않는다(智者不失人 亦不失言)」라고 했다. 그래서 노자(老子 56章)는 「참으로 아는 자는 말을 하지 않고 안다고 말하는 자는 모르고 있는 사람이다(知者不言 言者不知)」라고 했다.

4. 덕 있는 사람만이 옳은 말을 한다.

논어 헌문편(憲問篇)에 덕 있는 사람은 반드시 올바른 말을 하지만, 올바른 말을 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반드시 덕이 있는 것은 아니다(有德者必有言 有言者不必有德)라고 기록되어 있다. 논어 위영공편(衛靈公篇)에는 「행동이 뒤따르지 않는 교묘한 말은 덕을 어지럽힌다(巧言亂德)」고 했다. 인(仁)이 몸에 베어 있는 사람은 옳은 말을 할 수 있으나, 내적으로는 수양이 되어 있지 않으나 지혜가 있는 사람은 그때그때는 옳은 이야기를 하나 그의 행동은 자기가 한 말을 따르지 못하여 덕을 어지럽히고 만다. 그래서 예기(禮記)에서 공자는 「말로서 사람을 평가할 수 없다(不以辭盡人)」고 했다.

5. 말은 사람의 중요한 도구이다.

사회가 복잡해질수록 '말'이란 필수불가결한 의사소통 수단이다. 서경(書經) 대우모편(大禹謨篇)에 이런 말이 있다.「말을 하기에 따라 친선을 도모하기도 하고 무서운 전쟁을 일으키기도 한다( 口出好 興戎)」. 여기서 융(戎)은 무기를 의미한다. 설원(說苑) 담총편(談叢篇)에 「무릇 언어와 행동은 군자의 중요한 도구(추기:樞機)이다. 이 도구(樞機)를 어떻게 발휘하느냐 하는 것이 영욕의 근본이다.」라고 하여 말을 잘만 활용하면 부귀영화를 누릴 수 도 있지만 욕을 볼 수도 있다고 했다. 설원(說苑) 선설편(善說篇)에 자공(子貢)이 말하기를「말을 내어놓고 의견을 제시하는 일은 자기에게는 득실을 주고 나라에는 국가 안위를 좌우하는 문제이다(出言陳辭, 身之得失國之安危也)」라고 했다.

자공은 공자의 지시를 받고 오(吳)나라와 제(齊)나라를 전쟁하게 만들고 뒤에 오(吳)나라와 월(越)나라를 싸우게 했다. 그 내용은 이러하다.

오(吳)나라와 월(越)나라가 대결하고 있던 춘추시대에 제(齊)나라에는 진씨(陳氏)가 대대로 민심을 얻어서 임금 자리를 넘보게 되었다. 그래서 진항(陳恒)이 정승에 오르자 역모하여 왕위에 오를 결심을 했으나, 국서(國書)와 고무평(高無平) 일당의 세력이 커서 역모할 분위기가 아니었다. 그래서 진항은 이들 일당을 제거하기 위해 제간공(齊簡公)에게 건의하여 지난날 노(魯)나라가 오(吳)나라와 손을 잡고 제(齊)를 쳐서 괴롭혔으니 이제 노(魯)나라를 쳐서 원수를 갚자고 했다. 제간공이 이를 허락하자 이번에는 국서를 대장으로, 고무평(高無平)과 종루(宗褸)를 부장으로 삼고 대부 공손하, 공손휘, 여구명 등을 장수로 출전시키도록 했다. 제간공은 진항의 의견을 쫓아 유력인사를 장수로 삼아 출전 준비를 했다.

제(齊)나라가 노(魯)나라를 친다는 소문을 들은 공자(孔子)는 ‘부모국(노나라)이 위태하니 누가 제나라에 가서 이 난제를 해결하겠는가?’ 하고 제자에게 물었다. 자로(子路)와 자장(子張)이 가기를 청했으나 거절하고, 자공(子貢)을 제(齊)나라로 보냈다. 자공은 진항을 만나자 둘이서 가만히 다음과 같은 의견을 제시했다.

“국외일로 걱정이 있으면 약소국을 쳐야 하고, 국내걱정이 있으면 강대국을 쳐야 합니다(憂在內者攻彊, 憂在外者攻弱). 지금 승상(진항을 지칭)이 대부분의 대신으로부터 지지를 받고 있지 않은 터에 약한 노를 쳐 이기면 다른 대신의 세력은 커지고 승상은 저절로 약화될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대신의 세력이 날로 커지는 것을 구경만 해야 하니 지위가 위태롭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만약 강한 오(吳)나라를 치게 된다면 승상은 제(齊)나라를 완전히 장악할 수 있습니다.”

그러자 진항이 자공의 가르침을 다급하게 구했다. 이에 자공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승상께선 집결한 군대를 그냥 훈련만 시키고 대기해 두면 저는 오(吳)로 달려가서 오(吳)나라에게 노(魯)나라를 돕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면 저절로 제(齊)나라가 오(吳)나라와 싸우게 되니 승상의 의도를 누가 알겠습니까?”

진지항(陳恒)은 자공을 따르기로 하고 자공은 밤낮으로 달려 오왕(吳王) 부차(夫差)를 만났다. 자공이 부차에게 말했다.

“지난날 노(魯)나라와 오(吳)나라가 제(齊)나라를 쳐서 깨뜨렸기 때문에 그 후 제나라는 원한에 차 있어 노나라를 치려하고 있습니다. 제나라는 노나라를 점령한 다음에 반드시 오나라를 칠 것입니다. 왕께서 만승(萬乘)의 나라인 제나라를 치고 천승(千乘)의 나라인 노나라를 거느린다면 진(晋)나라보다 커져서 패자(覇者)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부차는 오자서의 강력한 건의가 마음에 걸려 제나라를 치고 싶었지만 월이 옆에 있어서 걱정이 된다고 했다. 그러자 자공이,

“월나라가 두려워 제를 칠 수 없다면 대왕으로서 용기가 없는 것입니다. 조그만 이익을 위해 장차 큰 불행을 대비하지 못한다면 지혜가 없기 때문입니다. 용기와 지혜가 없다면 어찌 패자를 노릴 수 있겠습니까? 월나라가 걱정스럽다면 제가 월나라에 가서 제나라를 치는 것을 돕도록 하겠습니다.” 라고 말하니 오왕 부차가 쾌히 승낙했다.

자공은 급히 월왕 구천을 만났다. 월왕 구천은 궁벽한 처지라 자공에게 자문을 청했다. 자공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제가 오왕을 만나보니 그는 노나라를 도와 제나라를 치려고 하나 대왕이 오나라를 치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습니다. 원수를 갚으려 할 때 먼저 적이 의심을 품게 해서는 안되며 자기의 뜻을 적에게 알리는 것은 아주 위험합니다.”

월왕 구천이 다급하게 고견을 청하자, 자공이 말했다.

“오왕 부차는 교만하고 태재 백비는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모든 아첨과 수단을 다 쓰고 있습니다. 대왕은 친히 1군을 보내 오나라가 제나라를 치고자 하는 것을 도와주십시오. 오왕이 지면 힘이 약화될 것이고 이기면 더욱 교만해져서 다음에는 강한 진(晋)나라와 패권을 다툴 것입니다. 그때가 대왕께서 오나라를 쳐서 복수할 수 있는 둘도 없는 좋은 기회입니다.”

월왕 구천은 감복하여 자공의 말을 따랐다. 월왕은 군사 3천을 보내어 오나라가 제나라를 치는 것을 돕도록 했다. 오왕은 9군(郡)의 군사를 동원하여 제나라를 치러나갔다.

자공은 서둘러 진(晋)나라로 갔다. 그리고 진왕에게 말했다. “계략을 깊이 생각해 두지 않으면, 우발사태에 대비 할 수 없으며, 군비를 갖추지 않으면 적에게 이길 수 없다고 들었습니다. 지금 오나라와 제나라가 서로 싸우려 합니다. 이 싸움에서 오나라가 패하면 반드시 월나라가 오나라를 칠 것이고 오나라가 이기면 그 여세를 몰아 진나라를 칠 것입니다.”

이에 진왕이 두려움에 가득 차서 “어찌하면 좋소.”하고 물었다.

자공이 말하기를 “병기을 정비하고 병사를 충분히 휴식시키며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하여, 진왕이 만반의 준비를 갖추도록 하고 노나라로 돌아 왔다.

그래서 오나라와 제나라 군사가 애능(艾陵:山東省 泰安縣 남동쪽)에서 크게 전투를 했다. 애능전투(艾陵戰鬪)는 너무나 치열하여 제나라의 중신(重臣)과 제장(諸將)들이 모두 전사했다. 비록 오군(吳軍)은 비록 이겼으나 피해도 컸다. 이때부터 오나라는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그 후 자공은 위(衛)나라와 노(盧)나라에서 재상을 역임했지만, 애능전투의 영향으로 제나라는 강씨(姜氏)가 망하고 전씨(田氏:陳氏가 후에 田氏로 성을 바꾸고 齊의 왕이 되었다)가 등장했고 월나라는 오나라를 멸하게 만들었다. 오나라가 망한 이후, 곧 이어 월나라도 초(楚)나라에 의해서 망하였고, 진(晋)나라는 권신들이 득세하여 한(韓), 위(魏), 조(趙)로 나뉘었고, 기타 작은 나라들은 각각 큰 나라에 복속되어 전국시대(戰國時代)가 시작되었는데 이것이 모두 자공이 세치도 안되는 혀로 국가간의 싸움을 붙인 결과였다.

전국시대에는 소진(蘇秦)과 장의(張儀)가 세 치 혀로 전국 칠웅(秦,楚,燕,齊,韓,魏,趙)을 움직였다. 사마천의 사기 장의전(史記 張儀傳)을 보면 장의는 고대 중국 전국시대 유명한 유세가(遊說家)였는데 유명하기 전에 초(楚)나라에서 도둑으로 몰려 죽도록 맞아, 몸을 가누지 못하는데도 오직 자기의 혀를 중하게 여겨 “내 혀를 보라 있느냐 업느냐(視吾舌尙在不).” 이에 아내가 웃으며 “혀가 있기는 있군요.”하니 장의가 말하기를 ”그러면 족하다.“라고 했다. 장의는 자신의 혀가 자기에게 가장 중요한 도구임을 알고 그만큼 혀를 중요시했다. 그는 세 치 혀로 전국시대 진(秦)나라 재상이 되어 전국칠웅(戰國七雄)을 좌지우지했다.

6. 사람은 충고를 잘 듣지 않는다.

한비자(韓非子)는 「지극히 타당한 말은 귀에 거슬리고, 마음은 탐탁하지 않다.(至言忤於耳而倒於心)」고 했다. 공자가어(孔子家語 六本篇), 설원(說苑 正諫篇) 및 사마천(司馬遷)의 사기 회남, 형산전(史記 淮南,衡山傳)에 「좋은 약을 먹으면 입에는 쓰나 병을 낳게 하고, 충성스런 말은 귀에 거슬리나 행하면 이득이 된다( 良藥苦口利於病 忠言逆耳利於行)」고 했다. 이는 충고를 듣는 사람의 주의를 환기시키는 말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조선시대는 사간원(司諫院)이라는 간언을 전문으로 하는 부서를 매우 중요시하고 또 간언하는 사람의 신분을 보장하려고 애를 썼다.

조선조 태종은 하륜(河倫)의 말을 듣고 왕자난(王子難: 1398년)을 성공시켰고, 세조는 한명회(韓明澮)의 말을 듣고 계유정난(癸酉靖難:1452년))을 성공시킬 수 있었다. 연산군과 광해군은 신하의 충성스런 간언을 듣지 않아 폐출(廢黜)되었다.

7. 말로 사람을 설득하기는 어렵다.

설원 선설편(善說篇)에 귀곡자(鬼谷子)가 말하기를 「행위가 선량하지 못한 사람은 고쳐주기 어렵다. 그러나 설득해도 실천하지 않고 말을 해도 따라주지 않는 것은 그 언변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논리가 명확한데도 그가 따라주지 않는 것은 설득력이 없기 때문이다. 설득력이 있는데도 효과가 없으면 상대방의 마음을 격동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한비자(韓非子)는 설득이란 「설득하고자 하는 사람이 지식이 부족하다거나 의사 표시를 충분히 하지 못하거나 말을 자유자재로 하지 못하는 문제가 아니고 설득하고자 하는 상대방이 어떤 마음을 갖고 있는가 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이다. 그래서 설득의 어려움은 설득하고자 하는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려서 그 사람이 좋아하는 방향으로 말을 맞추는데 있다 (凡說之難在知所說之心 可以吾說當之). 설득 상대가 명분을 좋아하는데 큰 이익을 가지고 설득한다면 절조가 낮고 비천한 자로 반드시 버림을 받고 멀리하게 된다. 설득할 상대가 큰 이익을 좋아하는데 명분을 높이는 것을 가지고 설득한다면 생각이 없고 세상 물정에 어두운 사람이라고 하여 반드시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설득할 상대가 속으로 이득을 좇으면서 겉으로는 명분을 높이는 체하는데 명분을 높이는 것으로 설득한다면 겉으로는 받아들이는 체 하면서 속으로 소원해 할 것이며, 큰 이익이 생기는 일을 가지고 설득을 하면 속으로는 받아드리면서 겉으로는 그를 버리는 체 할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것을 잘 살피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 했다.

설득하고자 할 때 그 일로 해를 입는 사람들은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일을 방해하기 때문에 설득과정에서 일이 낭패할 경우가 있다. 그래서 한비자는 「대체로 일은 비밀은 지킴으로 이루어지고 설득하고자 하는 말은 누설됨으로 실패한다(夫事以密成 語以泄敗).」라고 했다.

또한 한비자는 말하기를 「말을 생략하여 간단히 하면 지식이 없어서 졸렬하다고 하고 세상일을 두루 망라하여 이야기하면 말이 많고 꾸밈이 지나치다고 생각한다(徑省其說 則以爲不智而拙之 米鹽博辯 則以爲多而交之). 따라서 간언하거나 설득하고자 하는 자는 상대가 좋아하는지 미워하는지를 살핀 후에 말을 하지 해야 한다(故諫說談論之士 不可不察愛憎之主 而後說焉). 대저 용이란 동물은 유순하여 길들이면 타고 다닐 수 있다. 그러나 그의 목덜미 아래에는 한자 정도 되는 거꾸로 달린 비늘(逆鱗)이 있는데 만약 사람이 그 것을 건드리면 용은 그 사람을 반드시 죽여 버린다. 제왕에게 역시 역린(逆鱗)이 있다. 설득하는 자는 제왕의 역린만 건드리지만 않는다면 거의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다(夫龍之爲虫也 柔可狎而騎也 然其喉下有逆鱗徑尺 若人有嬰之者 則必殺人 人主亦有逆鱗 說者能無嬰人主之逆鱗 則幾矣).」하여 힘 있는 사람을 설득한다는 것은 위험함을 지적했다.

성경에 말하기를 당신은 다른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것을 명심하여, 하나님께서 당신이 변하기를 원하는 사람을 되도록 도와달라고 간구(懇求)하라(갈라디아서 6장 4-5절)고 말하고 있다. 갈라디아서는 오직 하나님만이 간구하는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고 말하고 있다.

8. 풍간(諷諫)으로 상대방을 깨우쳐라

위 사람을 깨우치도록 설득하는 말을 간언(諫言)이라고 친구나 동료들을 깨우치도록 설득하는 말은 충고(忠告)라고 한다고 했다. 논어 이인편(里仁篇)에 자유(子游)가 말하기를 「임금에게 지나치게 자주 간언하면, 욕을 보고, 친구에게도 지나치게 자주 충고하면 소원해진다.(事君數, 斯辱矣, 朋友數, 斯疏矣)」라고 했다. 아무리 좋은 간언이나 충고라도 자주할 것이 못된다.

설원(說苑) 정간편(正諫篇)에 보면, 간언에는 정간(正諫), 항간(降諫), 충간(忠諫), 당간(戇諫),풍간(諷諫) 다섯 가지가 있다. 정간은 충고할 말은 꾸밈없이 직설적으로 하는 것이다. 항간은 자기 자신을 최대로 낮추고 상대방을 최대로 높이여 간(諫)하는 것이다. 그래서 상대방의 자존심을 그대로 높여 기분 좋은 상태를 만들어 놓고 설득하는 것이다. 충간은 자기가 불이익 당하는 것을 무릅쓰고 하는 것이며, 당간은 고지식하여 우직하게 하는 것이다. 풍간은 쉬운 비유를 들어 상대방이 스스로 깨우치게 하는 것이다. 공자는 「나는 풍간을 따르리라(吾其從諷諫矣.」하였다.

한비자는 풍간(諷諫)의 예로「세 사람이 증언하면 없는 호랑이도 있는 것이 된다(三人言而成虎).」고 했다. 그 예로 한비자의 내저설상(內儲說上)의 기록을 보면 다음과 같다.

위(魏)나라 방공(龐恭)이 위태자와 같이 인질(人質)로 조(趙)나라의 서울 한단(邯鄲)으로 가게 되었다. 방공은 멀리 외국에 가 있으면 본국에서 자기를 헐뜯는 사람이 있다면, 변명할 길이 없어서 불리해 질 것이므로 미리 위왕에게 이를 방비하기 위해 다음과 같이 비유하여 위왕을 깨우쳤다.

방공 : “지금 저자에 범이 나왔다고 하면, 임금께서 그 말을 믿으시겠습니까?”

임금 : “믿지 않지.”

방공 : “두 사람이 잇따라 저자에 범이 나왔다고 하면 믿으시겠습니까?”

임금 : “그래도 믿지 않지.”

방공 : “세 사람이 연거푸 저자에 범이 나왔다고 하면 믿으시겠습니까?”

임금 : “과인은 그러하다면 믿을 것이다.”

이에 방공이 말하기를 “ 대체로 저자에 범이 없다는 것은 명백한 일입니다. 그러나 세 사람이 연거푸 이야기하면 없는 범도 있는 것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지금 저가 가는 한단은 저자 보다 멀고 저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하는 신하는 세 사람 보다 많습니다. 저가 멀리 한단으로 떠나 있는 동안 저에 대한 논평이 일어날 터인 즉 임금께서는 잘 살펴 주시기 바랍니다.” 하였다.

이와 비슷한 풍간의 예가 한(漢)나라 유향(劉向)이 편찬한 전국책(戰國策)에 있으니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진(秦)나라 무왕(武王) 때 대부 감무(甘茂)가 한(韓)나라 의양성(宜陽城)을 공략하기 전에 무왕에게 단독 출병으로 인한 비난과 의양성 점령전에 철수명령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비유로 다음 내용을 진언했다.

「옛날 증자(曾子)가 비(費) 땅에 있을 때 일입니다. 동명이인(同名異人)인 사람이 살인을 했는데 한 사람이 그 소문을 듣자 곧 바로 증자의 어머니에게 알려드렸습니다. “증삼(曾參 또는 曾子)이 살인을 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내 아들은 사람을 죽일 위인이 아니오.” 하고 태연히 길쌈을 하고 있었습니다. 또 다른 사람이 와서 고하기를 “증삼(曾參 또는 曾子)이 살인을 했습니다.”라고 말했으나 증삼의 어머니는 베를 짤 뿐 태연하게 들은 척도 아니했습니다. 잠시 후 세 번째 사람이 와서 “증삼(曾參 또는 曾子)이 살인했습니다.”하고 고했습니다. 증삼의 어머니는 그제야 깜짝 놀라며 베 짜던 북실을 내팽개치고 도망했다. 증자의 인격, 모자간의 신뢰가 돈독했지만 한 가지 이야기를 세 번씩이나 고하니 어머니는 그만 불안했던 것입니다. 신 감무는 증자 보다 인격이 부족하고 임금님이 신 감무를 신뢰하는 것도 증자 어머니보다 못합니다. 그런데 저를 모함하는 사람이 세 사람 뿐이겠습니까? 신 감무는 의양성을 공격하는데 임금께서 신을 모함하는 이야기들을 듣고 의양성 공격을 중지시키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

이 이야기를 듣고 무왕은 다른 사람 이야기를 듣지 않기로 하고 식양(息陽) 땅에서 왕과 신하 사이에 맹세가 이루어졌다. 그 후 감무가 의양성을 공략할 때 무왕 주위 신하들이 의양성의 철수를 주장했지만 무왕은 듣지 않았고, 감무는 의양성을 점령할 수 있었다.

9. 말은 화를 자초하기도 한다.

확림옥로(鶴林玉路)에는「촌철에 지나지 않지만 사람을 죽일 수 있다(我則只有寸鐵 便可殺人)」고 했다. 석시요람(釋氏要覽)은「모든 세상 사람들(一切衆生)의 화는 입에서 생긴다(禍從口生)」고 했고, 태평어람(太平御覽 人事篇)에서는「병은 입으로 들어오고 화는 입에서 나온다(病從口入 禍從口出).」고 했다. 사림광기(事林廣記)에서는「시비는 오직 말이 많은데서 생긴다(是非只爲多開口)」라고 했다.

풍도(馮道 822-954: 後唐, 後晋,遼,後漢,後周에 걸쳐서 11명의 황제를 모시고 재상을 20년간 역임했다)의 설시(舌詩)는 유명하여 후세 사람들이 많이 인용하고 있는데 다음과 같다.

입은 곧 화의 문이요(口是禍之門), 혀는 곧 목을 베는 칼이다( 舌是斬身刀). 입을 닫고 혀를 깊이 간직하면(閉口深藏舌), 몸은 가는 곳마다 탄탄하여 안전하다(安身處處窂). 조신(曺伸)이 지은 소문세록(謏聞瑣錄)의 기록에 의하면 연산군은 아래 사람들이 자기 행동을 비난하거나 조정이 되가는 세태를 조롱할까 염려하여 대소신료(大小臣僚)에게 모두 풍도의 설시를 써서 차고 다니게 했다.

근사록(近思錄 存養類篇)에는「언어를 조심하면 그 덕을 기를 수 있고 음식을 조심하면 몸을 보존할 수 있다(愼言語以養其德 節飮食以養其體).」고 했고, 체근담(菜根談)에는「입은 마음의 문이다. 입을 엄중히 다스리지 않으면 중요한 기밀이 새나간다(口乃心之門 守口不密 洩盡眞機).」다 하였다.

10. 나쁜 말은 나라를 기울일 수 있다.

나쁜 말에는 거짓말(邪言), 헛된말(妄言), 두 가지 말(二言), 이간질하는 말(兩舌), 남의 험담(惡口), 교묘하게 꾸며 되는 말(綺語) 등 여섯 가지가 있다. 이러한 말은 국가 인재를 멀리하고 능력 있는 인사를 초야에 묻어버린다.

당나라 현종 때 이임보(李林甫: ?-752)는 장구령(張九齡)에 발탁되어 재상에 올랐다. 재상 이임보(李林甫) 교묘하게 두 가지 말(二言)과 교묘하게 꾸며되는 말(綺語)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이었다. 당현종이 명재상 장구령(張九齡) 밑에 동삼품(同三品)으로 있을 때 언제나 고분고분하고 말을 잘했다. 그리고 그는 당현종의 측근인 비빈(妃嬪)과 환관들을 물심양면으로 구어 삶아 깊은 친분관계를 맺고 황제의 의도와 동정을 살피고 황제 주위에 일어나는 일을 모르는 일이 없을 정도로 정보에 밝았다. 그래서 현종이 물으면 서슴치 않고 정확하게 대답하여 황제를 만족하게 했다. 그래서 현종은 장구령을 폐하고 이임보를 재상으로 임명했다. 이임보는 재상이 되자 음험하고 교활한 본성을 드러냈다. 먼저 혹리(酷吏)를 부려 세금징수를 잘하여 궁중 생활을 풍부하게 하여 황제의 총애를 받았다. 그는 주위 여러 사람들에게 말했다. “경들은 궁문을 호위하는 말들을 보오. 잠자코 온순하게 있으면 괜찮지만 건방지게 한번이라도 울음소리를 내면 행렬에서 물러나오(不見立仗馬, 乎一鳴輒斥去).” 이렇게 하여 반대세력을 황제 주위에서 제거했다.

천보 원년에 현종은 문득 이임보에게 말했다. “엄정지는 어디에 있지? 그 사람을 다시 썼으면 하는데”. 엄정지는 장구령에게 발탁되어 요직에 있었으나 이임보의 시기를 받아 지방 태수로 있었다. 그러나 이 사실을 엄정지는 모르고 있었다. 이임보는 엄정지가 중앙부서에 보직될까 겁이 났다. 그래서 엄정지 동생 손지(損之)를 불러 이렇게 이야기했다. “폐하께서 당신 형님을 대단히 좋게 생각하고 계십니다. 그러니 폐하를 한번 만날 기회를 만드는 것이 어떻겠소. 페하께서는 반드시 높은 벼슬을 내리실 것이요. 그러니 먼저 신병치료 차 서울로 올라오고 싶다고 상소를 올리면 좋지 안을까 싶은데 …”

손지는 즉시 이 사실을 형에게 알리고 형 엄정지는 이임보 말대로 상소를 올렸다. 이 상소문을 받아 가지고 황제에게 말했다. “폐하께서 물으셨는데 엄정지로부터 이 같은 상소문이 왔습니다. 늙고 몸이 약해 직책을 수행하기 힘든 모양이니 서울로 불러들여 한가한 직책을 맡기는 것이 좋을 줄로 압니다.” 현종은 실제 내용도 모르고 “그 것 안됐구먼 할 수 없지.”하고 잊어버렸다. 엄정지는 이임보 술책에 넘어가 태수직을 잃고 서울로 올라 와서야 이 사실을 알고 통분해 하다가 죽고 말았다.

십팔사략(十八史略)은 이임보를 이렇게 평했다. 「어진 사람을 미워하고 재주 있는 사람을 시기하며 자기 보다 나은 사람을 밀어내고 내리 눌렀다. 성질이 음험해서 입에는 사람들이 그를 평하기를 입에는 꿀이 있고 배에는 칼이 있다((嫉賢妬能 排抑勝己 性陰險 人以爲口有蜜 腹有劍)고 했다.」 그래서 후세 사람들은 겉과 속이 다른 음험한 사람을 구밀복검(口蜜腹劍)이라 했다. 이임보가 19년간 재상자리에 있는 동안 당(唐)나라는 부패할 때로 부패했다. 그가 죽자 안록산 난리가 나서 당나라는 기울기 시작했다.

11. 남의 단점 보다 장점을 보고 칭찬하라.

논어의 위영공편(衛靈公)에 「말이란 의사 전달일 따름이다(辭達而已矣)」라고 했다. 그러나 「말로 자기 심정을 다 나타낼 수는 없다(言不盡意)」라고도 하였다. 말로 자신의 심정을 모두 나타낼 수 없기 때문에 대화하는 중에 오해가 생기고 불화가 발생한다.

옛날 한 무명인이 다음 시조를 지었다. 서민들은 이 시조를 즐겨 자주 읊었다.

「말하기 좋다하고 남의 말을 말 것이

남의 말 내가 하면 남도 내 말하는 것이

말로써 말이 많으니 말 많을까 하노라.」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가 거의 모두 인간과 인간의 관계이고, 인간과 일과의 관계이며, 일과 일과의 관계에는 반드시 인간이 들어가야 완성이 된다. 그러니 남의 말 아니하고 살아 갈 수 없다. 그래서 세상사는 말도 많고 탈도 많다고 사람들은 생각하고 있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말 한마디에 천 냥 빚을 갚는다.」는 우리나라의 속담에서 말이란 상대방을 기분 좋게 할 수도, 기분 나쁘게 할 수도 있는 도구임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정초(正初)에 어른들께 세배를 하고, 어른은 세배하는 사람에게 덕담(德談)을 해주어 새해를 기분 좋게 시작할 수 있게 했다.

요사이 시중에 나도는 말에 대한 경구는 다음과 같다.

「부주의(不注意)한 말 한마디가 싸움의 불씨가 되고, 즐거운 말 한마디가 마음의 기쁨을 찾아준다. 때에 맞는 격려의 말 한마디가 긴장을 풀어주며, 따뜻한 위로의 말 한마디가 고통을 덜어주고, 사랑의 말 한마디가 인생을 풍요롭게 하여 준다.」 일반 서민들 생활에서 남의 고통을 위로 해주면 고통은 감소되고 남의 기쁨을 칭찬해주면 기쁨은 배가한다. 남의 결함을 들어 말하기보다는 남의 장점을 들어 칭찬해준다면, 더불어 사는 세상살이가 더욱 재미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