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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2월 26일 오전 05:27

solpee 2013. 2. 26. 05:30

오늘은 癸巳年(桓紀9210,神紀5910,檀紀4346) 陰 甲寅月(1) 17日 火曜日 癸亥 雨水(21:01)節 中候 鴻雁北來(홍안북래;기러기가 북으로 돌아가는 후)候입니다. 小寒에서 穀雨까지 부는 妬花風(투화풍;꽃샘바람) 중에서 杏花風(행화풍;살구꽃 바람)이 부는 候이기도 합니다.

 

日月逝矣歲不我延(일월서의세불아연)

세월은 나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근당 梁澤東(한국서예박물관장)

 

세월은 흐르면서 나를 위하여 더디 가지 않는다는 말이다. 오늘 배우지 않아도 내일이 있다 하지 말라(勿謂今日不學而有來日), 올해 배우지 않아도 내년이 있다고 하지 말라(勿謂今年不學而有來年) 늙은 다음에야 누구의 잘못을 탓해 무엇 하랴.

시간이란 대단히 독특한 자본이라는 명언이 있다. 로마의 철학자 한 사람은 ‘오늘이 네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하고 살아라’라고 했다.

내일은 없고 오늘이 내 인생의 최후의 날이라고 생각해보면 삶이 진지해지고 성실해질 것이다.

석시여금(惜時如金)은 시간은 금이란 말이다. 시간을 금싸라기처럼 아끼라는 말인데 시간의 활용에 따라 자기의 운명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루하루가 모여 한 달이 되고 일년, 또는 일생이 된다. 시간은 그 무엇으로도 살 수가 없고 빌려 쓸 수가 없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인생이 좌우된다. 시간이 없다고 불평을 늘어놓고서 정작 시간의 활용을 잘못하고 있다.

공자는 한번 흐르면 다시는 올 수 없는 것이 세월이고 부모라는 말을 했다. 13억 인구를 통치해 오늘의 대국될 수 있게 한 마오쩌뚱(毛澤東)은 잔양여혈(殘陽如血)이라는 네 글자를 인민들 앞에 써보였다.

조금 남아있는 볕을 한 방울의 귀한 피처럼 생각하자는 말이다. 마오쩌뚱이 존경 받는 데는 내면에 문묵(文墨)이 꽉 차 있기 때문이다.

 

朱文公勸學文(주문공권학문)

                                -朱憙(주희)

 

勿謂今日不學而有來日(물위금일불학이유내일) 오늘 배우지 않고 내일 있다 하지 말고

勿謂今年不學而有來年(물위금년불학이유내년) 금년에 배우지 않고 내년 있다 하지 마라

日月逝矣不我延(일월서의불아연) 세월 흘러가는구나, 시간은 나를 연장해주지 아니하나니

嗚呼老矣是誰之愆(오호노의시수지건) 아 늙었구나, 이것이 누구의 잘못인가

 

民爲貴 君爲輕

‘백성이 가장 귀하고, 군주는 그다음’.


공자가 “군자는 신의를 얻은 후 백성에게 수고를 끼쳐야 한다. 믿음을 얻지 못하고 수고롭게 하면 백성을 괴롭히는 것이 된다(君子信而後勞其民 未信則以爲厲己也)”고 했다.

 

“군자에게는 큰 도가 있으니 반드시 충과 신으로써 얻고, 교만과 방자함으로써 잃는다(君子有大道 必忠信以得之 驕泰以失之)”고 대학이 가르친다.

그럼 충과 신은 무엇인가. 충은 자신의 정성을 다하는 것이요, 신은 세상이치에 어긋나지 않음을 뜻한다. 

 맹자에 이르길 “백성이 가장 귀하고, 국가의 사직이 그다음이며, 군주가 가장 가볍다(民爲貴 社稷次之 君爲輕)”고 했다.

한비자가 지혜로운 군주에 관해 “명분에 합당하고 사실이 일치하면 은혜를 베풀고, 사리에 어긋나고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벌을 내려야 한다(當名合實惠慈恩 逆事違言該命卒)”.

박근혜 제18대 대통령 취임식이 어제 국회에서 있었다. 

 남북평화통일과 선진한국 건설에 기반한 21세기 한민족의 시대가 도래하는 초석을 놓는 박 대통령이어야겠다. 성공을 빈다.


 

☞.出處;군자신이후노기민(君子信而後勞其民), 미신 즉이위려기야(未信 則以爲厲己也), 신이후간(信而後諫), 미신 즉이위방기야(未信 則以爲謗己也).

"군자(君子)는 신의(信義)를 얻은 후 백성에게 수고를 끼쳐야 한다. 신의(信義)를 얻지 못하고 수고롭게 하면 백성을 괴롭히는 것이 된다.

군자(君子)는 신의(信義)를 얻은 후에 허물을 간언(諫言)해야 한다. 신의(信義)를 얻지 못하고 간언(諫言)하면 비방하는 것이 된다." 이는 중국의 춘추 시대(B.C.770-403) 때 공자(孔子, B.C.552-479)의 언행을 기록한 논어(論語)의 자장 10(子張 十)에 나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