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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2월 24일 오전 05:00

solpee 2013. 2. 24. 05:14

오늘은 癸巳年(桓紀9210,神紀5910,檀紀4346) 陰 甲寅月(1) 15日(望망 또는 旣生魄기생백) 日曜日 辛酉 雨水(21:01)節 中候 鴻雁北來(홍안북래;기러기가 북으로 돌아가는 후)候입니다. 小寒에서 穀雨까지 부는 妬花風(투화풍;꽃샘바람) 중에서 杏花風(행화풍;살구꽃 바람)이 부는 候이기도 합니다.
오늘이 대보름입니다. 正月 대보름을 上元, 元宵節원소절, 元夜, 燈節등절, 湯圓탕원, 踏橋節답교절, 元夕, 烏忌風오기풍 등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부여시대에는 매월 보름축제가 있었고 이 날 축제 때는 마음 맞는 남녀가 자유로이 사랑을 즐겼다고 하며 불교가 들어온 후로는 등절로 탑돌이를 통하여 전승되었고 조선 이후에는 답교절이라는 이름으로 그 풍습이 전해지다가 인조 이후에 서인들에 의한 가혹한 주자학의 시행으로 오랫동안 내려오던 구습들이 말살 되었다고 하네요.
실제 만월은 2월 26일 05:23시에 완성됩니다.

 

正己以格物

‘자신을 바르게 함으로써 남을 바르게 한다’는 뜻.

악의 씨를 뿌렸으면 그 이상의 과보가 돌아오게 마련이다. 악인악과(惡因惡果)다. 명심보감에 “하루만 악을 행하더라도 악은 스스로 남음이 있다(一日行惡 惡自有餘)”고 한다. 논어는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아 마음속에 조금도 부끄러울 게 없다면 군자라 할 수 있습니까? 안으로 반성하여 가책이 없으니 무엇을 근심하고 두려워하겠는가(內省不 斯謂之君子矣乎 子曰  內省不疚 夫何憂何懼)”.

"사마우가 다시 물은 것은 앞 章의 뜻과 같다. 그러므로 다시 말씀하시기를 이와 같이 하신 것이다. 疚는 가책이다. 평소에 행하는 바가 마음에 부끄러움이 없기 때문에 능히 안으로 반성하여 아무런 가책이 없어서 스스로 근심과 두려움이 없는 것이니, 대번에 쉽게 여겨 이것을 경홀히 여겨서는 안된다.(牛之再問은 猶前章之意라 故로 復告之以此하시니라 疚는 病也라 言由其平日所爲無愧於心이라 故로 能內省不疚하여 而自無憂懼니 未可遽以爲易而忽之也라)"

 

조씨가 말하였다."근심하지 않으며 두려워하지 않음은 덕이 온전하고 하자가 없음으로 말미암는다. 그러므로 들어가는 곳마다 자득하지 않음이 없는 것이니, 실제로 마음속에 근심과 두려움이 있으면서 억지로 이것을 배척하여 보내는 것은 아니다."( 晁氏曰 不憂不懼는 由乎德全而無疵라 故로 無入而不自得이요 非實有憂懼而强排遣之也니라)


 중국 송나라 때 학자 유안례가 “자신을 바르게 함으로써 남을 바르게 하라(正己以格物)”고 했다.

“악행이 백성의 삶에까지 나쁜 영향을 미치면 하늘은 그의 자리를 박탈한다(其惡族以賊害民者 天奪之).” 중국 한나라 때의 정치·도덕 논문집인 춘추번로(春秋繁露)에 나온다.


蛇行虎視

청나라 황균재(黃鈞宰)가 남긴 '술애정(述哀情)'31칙은 인생을 살아가며 스쳐간 슬픈 광경을 해학을 섞어 나열한 글이다.

"게를 삶는데 솥 안에서 게가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낼 때 어찌 슬프지 않겠는가!(煮蟹聽釜中郭索聲, 豈不哀哉!)" 안타깝다. "처마 밑에 거미줄이 분명하게 있건만 파리와 모기는 어리석게도 여기로 뛰어들어, 벗어나려 해도 벗어날 수가 없으니 어찌 슬프지 않겠는가!(前蛛網, 自在分明, 蠅蚊昧昧投之, 欲脫不得, 豈不哀哉!)" 민망하다. "뱃속에 든 아기나 강보에 싸인 아이나 백년도 못 되어 같이 흙으로 돌아갈 터이니 어찌 슬프지 않겠는가!(胞胎中物, 襁褓中人, 不及百年, 同歸塵土, 豈不哀哉!)" 허망하다. "어찌해 볼 수 없으면서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말할 때 어찌 슬프지 않겠는가!(無可如何時, 作解脫語, 豈不哀哉!)" 안쓰럽다.

 "권세 높은 이의 집으로 달려가, 방에 들어갈 때는 뱀처럼 기어 들어가서, 문을 나설 때는 범처럼 사납게 째려보며 나오니 어찌 슬프지 않겠는가!(奔走權貴之家, 入室蛇行, 出門虎視, 豈不哀哉!)" 들어갈 때는 뱀처럼 땅바닥을 설설 기며 온갖 비굴한 자태를 짓다가(蛇行), 문을 나설 때는 범처럼 사나운 기세로 제가 그 사람이라도 된 양 으스대고 거들먹거리며 나온다(虎視).

 

명나라 육소형(陸紹珩)은 '취고당검소(醉古堂劍掃)'에서 이렇게 말한다. "권세 있는 사람의 문간을 바삐 드나들면 저는 영광스럽게 여겨도 남들은 몰래 욕을 한다. 명리(名利)의 각축장에서 마음을 졸일 때, 조심조심 그 괴로움을 못 견딜 것 같은데도 자신은 도리어 즐거운 듯이 한다(奔走于權幸之門, 自視不勝其榮, 人竊以爲辱. 經營于利名之場, 操心不勝其苦, 己反似爲樂)."

 

사벌등안(捨筏登岸)

 

시골 아전의 자식이었던 다산의 제자 황상은 만년에 서울로 올라와 시로 추사 형제와 권돈인, 정학연 형제 등 당대 쟁쟁한 문사들의 높은 인정을 받았다. 그들이 차례로 세상을 뜨자 그는 막막해진 심경을 벗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적었다. "종유했던 여러 분이 차례로 세상을 뜨매, 비유컨대 다락에 올라갔는데 사다리가 치워지고(登樓而梯去), 산에 들어가자 다리가 끊어진 격(入山而橋斷)이라 하겠습니다. 저 많은 물과 산에 지팡이와 신발을 어디로 향해야 하리까."

불가에서는 '사벌등안(捨筏登岸)'을 말한다. 언덕을 오르려면 뗏목을 버려라. 장자는 '득어망전(得魚忘筌)'이라고 썼다. 고기를 얻었거든 통발은 잊어라. 사다리가 없이는 언덕에 못 오르고, 통발을 써야만 고기를 잡는다. 언덕에 오른 뒤에 사다리를 끌고 다닐 수는 없다. 통발은 고기를 잡을 때나 필요하지 먹을 때는 쓸모가 없다. 뜻을 얻었거든 말을 잊어라(得意忘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