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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부론’의 교훈

solpee 2013. 1. 16. 06:55

一犬吠月 百犬吠聲
蜀犬吠月 桀犬吠堯 盜跖狗吠孔

 

한 마리 개가 짖자, 두 마리 개가 짖고,
한꺼번에 천백 마리 개가 짖네.
개들은 무엇 때문에 짖나?
한갓 소리만 듣고 눈으로는 보지 않았거늘.
一犬吠, 二犬吠, 一時吠千百.
群吠爲何物. 徒耳不以目. - 여대로, ‘개 짖음을 듣노라’(聞犬吠)

‘潛夫論’의 교훈


한 마리 개가 어떤 모양(形)에 짖자,
백 마리 개가 그 소리(聲)에 짖는다.
一犬吠形, 百犬吠聲 - 왕부, ‘잠부론’

세상이 시끄러운 이유는 백 마리 개처럼 떠드는 사람들 때문이다. 중국 한나라의 왕부(王符)가 위 문구를 속담으로 기록하고 해설을 더했다. “세상에 이런 병이 오래되었다. 사람들이 옳고 그른 사정을 살피지 않는 것을, 나는 걱정하노라.” “형(形)이란 그림자”라고 해석하는 학자들이 적지 않다. 세상을 시끄럽게 한 것은 한갓 그림자일 수 있다.

위 속담이 실린 왕부의 책은 ‘잠부론’이다. ‘잠부(潛夫)’란 잠적한 사람이다.

# ‘잠부론’을 아낀 조선의 선비들

‘잠부론’은 중국과 한국의 학자들이 고전의 대열에 올려놓고 아껴 읽은 책이다. 성균관박사에 오른 문신이자 임진왜란 때 의병으로 공이 높았던 여대로(1552~1619)가 ‘잠부론’의 속담을 다시 옮겼다.


한 마리 개가 짖자, 두 마리 개가 짖고,
한꺼번에 천백 마리 개가 짖네.
개들은 무엇 때문에 짖나?
한갓 소리만 듣고 눈으로는 보지 않았거늘.
一犬吠, 二犬吠, 一時吠千百.
群吠爲何物. 徒耳不以目. - 여대로, ‘개 짖음을 듣노라’(聞犬吠)


여대로는 덧붙였다. “시끄러운 것이 싫어서 얼러주고 싶지만, 이놈들이 측간까지 쫓아올까 걱정이로다!” 시끄러워도 어찌 할 도리가 없다. 속된 인간들은 가르치기도 다스리기도 어렵다.


# 개 같은 사람들 
중국 당나라의 유종원(柳宗元)은 개에게 비루한 시기심(猜)이 있어 해를 보고 눈을 보고 짖는다고 하고, 시기심이란 모든 악(惡)의 근원이라 경계하였다. 조선후기 학자 위백규(1727~1798)는 개가 비천한 이유와 개 같은 사람의 속성을 말했다.


개는 도둑을 잡고자 짖어야 하거늘,
개 중에는 제대로 짖지 못하는 녀석이 있다.
관복을 차려 입은 손님이 오셨는데 짖고,
달이 밝게 떴는데 짖고,
눈이 하얗게 왔는데 짖는다.
이런 개는 지극히 천한 녀석이다.
사람 중에 떠들고 화내기를 좋아하고 변덕이 심하면
이 또한 천박한 사람이다. - 위백규, ‘격물설’



# 패러디의 마력

조선후기 풍속화가로 유명한 김득신(1754~1822)의 ‘출문간월도(出門看月圖, 문을 열고 달을 보다)’를 보면, 한나라 속담의 교훈적 언어가 장난스럽게 변화되어 있다. 그림 왼편에 앉은 개를 보라. 입을 크게 벌리고 컹컹 짖는다. 그 위에 적힌 글은 ‘잠부론’의 교훈어투 그대로인데 개 짖는 사연이 사뭇 다르다.


한 마리 개가 짖자,
두 마리 개가 짖고,
만 마리 개가 이 한 마리 개를 따라 짖네.
동자를 불러 문 밖으로 나가 보라 하니,
“달님이 오동나무 제일 높은 가지에 걸려 있어요!”
一犬吠, 二犬吠, 萬犬從此一犬吠.
呼童出門看, 月梧桐第一枝.



이경전(1567~1664)의 문집을 보면, 그가 13세에 지었다는 한시 한 편이 위 그림의 제발과 매우 흡사하다. “한 마리 개가 짖자, 두 마리 개가 짖고, 세 마리 개도 따라 짖네. 사람일까? 호랑이일까? 바람소릴까? 동자가 말하네. 달이 산 위에 올라 등불 같고요, 뜰의 반에는 추운 오동만 버석거려요!”(一犬吠, 二犬吠, 三犬亦隨吠. 人乎虎乎風聲乎. 童言山外月如燭, 半庭唯有鳴寒梧.) 어린 소년 이경전이 그 당시의 노래를 한자로 옮겨 적은 것이다. 그 노래는 오래도록 전해졌다. 조선후기 김득신의 그림 위에 다시 적힌 사연이다.

# 반갑고 복스러운 개

5세기에 도연명이 ‘무릉도원’을 꿈꿀 때 그곳에 개와 닭의 울음이 들린다고 했다. 도원의 넉넉한 경제사정을 효과적으로 표시하기 위해서다. 개 짖고 닭 우는 소리는 이미 ‘노자’로부터 농경 유토피아의 절대조건으로 통하고 있었다. 없어서는 안 될 가축이요 먹거리였기 때문이다.

고려와 조선의 선비들이 좋아했던 송나라의 소동파는 달 보고 짖는 개를 일러 ‘영방(靈尨)’이라 불렀다. ‘영방’이란 신령스러운 삽살개다. 우리 선비들도 달 보고 짖는 개를 신선의 개라 하여 영방, 천방(天尨) 혹은 선방(仙尨)이라 불렀다. 하늘 보고 짖는 모습이 신선세계로 돌아가고 싶은 모습으로 보였던 것이리라. 촌방(村尨), 즉 촌마을의 삽살이도 달을 보며 짖으면 그 모습이 신선개로 보였으리라. 개가 할 일 없어 하늘 보고 짖는 마을, 사람도 덩달아 신선되는 기분이다.

황색 누런 개가 황금빛 달을 바라보고 짖는 것은 더욱 좋게 보았다. 옛 점성가는 ‘금구폐월(金狗吠月)’의 별자리를 말했다. 금빛 개가 달을 보고 짖는다는 뜻이다. 옛 풍수가는 땅의 생김새를 보아 온갖 이름을 붙였는데, ‘황방폐월’(黃尨吠月)의 땅모양도 중시하였다. ‘황방폐월형’이라 하면, 머리를 치켜들고 짖는 개의 형상을 가진 땅이며, 복된 길지였다.


# 오동 추!

‘장자’에 이르기를, 오동나무 아니면 봉황새가 내려앉지 않는다고 했다. 봉황은 태평한 시절에만 세상에 나타나는 환상의 새다. 상서로운 봉황이 가려 앉는 나무라 하여, 오동은 나무 중에 으뜸으로 우대되었다. 줄기 푸른 벽오동이면 더욱 좋다. 오동은 또한 거문고를 만드는 목재였다. 가을에 바람 불어 오동잎이 서걱대면, 그것이 봉황의 곡조 혹은 거문고의 연주라 읊어졌던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