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趙良(상앙의 친구)의 忠諫//辛丑年大寒節末候水澤服堅山礬花風1日(陰12/28)癸未

solpee 2022. 1. 30. 03:53

《周紀1 王 31年》 (癸未, 前338年)

 

 ①. 진의 효공이 죽고, 아들 혜문왕이 섰다. 공자 연건의 무리들이 상군이 반란을 일으키려한다고 고하니 관리들을 풀어서 그를 잡고자 하였다. 상군은 도망하여 위로 갔으나 위인이 받아들이지 않고 다시 보내어 진으로 들어갔다.

 ①. 秦孝公薨,子惠文王立。公子虔之徒告商君欲反,發吏捕之。商君亡之魏;〈之,如也,往也。〉魏人不受,復內之秦。〈內,讀曰納。怨其挾詐以破魏師,故不受。〉

 

 상군은 마침내 그의 무리들과 함께 군사를 내어서 북쪽으로 정을 공격하였다. 진인들이 상군을 공격하여 그를 죽였는데, 거열하여 조리 돌리고, 그 일족도 모두 죽였다.

 商君乃與其徒之商於,發兵北擊鄭,〈之,往也,如也。鄭,京兆之鄭縣也,周宣王弟鄭桓公采邑,唐屬華州。宋白《續通典》曰:鄭縣古城在華州郡城北。〉秦人攻商君,殺之,車裂以徇,盡滅其家。〈車裂,古之轘刑。轘,戶串翻。〉

 

 애초에, 상군이 진에서 재상 노릇을 하면서, 법을 사용하는 것이 엄격하고 혹독하였는데, 일찍이 윙서 죄수를 재판하니, 위수가 다 붉어졌다. 재상 노릇 10년에 사람들이 대부분 그를 원망하였다.

 상군의 친구인 조량이 그를 만났더니 상군이 물었다.

 "그대는 내가 진을 다스리는 것을 보았으니, 오고대부(백리해)와는 누가 현명하오?"

 조량이 말하였다.

 "이 천 명의 사람들이 '좋다. 좋다.' 하는 것이 한 선비가 악악을 하는 것만 못합니다. 제가 청컨대 해가 질 때가지 바른 말을 하여도 죽이지 않기를 바라는데 가능하겠습니까?"

 상군이 말하였다.

 "허락하오."

 初,商君相秦,用法嚴酷,嘗臨渭論囚,渭水盡赤。〈相,息亮翻。《水經》:渭水出隴西首陽縣鳥鼠山,東流至秦都咸陽南。商君蓋臨此以論囚。決罪曰論。論,盧困翻。〉爲相十年,人多怨之。〈按顯王十七年,秦以商鞅爲大良造;十九年,商鞅徙秦都咸陽,廢井田,開阡陌,平權量。二十一年,更賦稅法,爲相當在是年,至今年十年矣。〉趙良見商君,商君問曰:「子觀我治秦〈治,直之翻。〉孰與五羖大夫賢?」〈百里奚自賣以五羖羊之皮,爲人養牛;秦穆公舉以爲相,秦人謂之五羖大夫。羖,牡羊也。羖,音古。〉趙良曰:「千人之諾諾,不如一士之諤諤。〈引趙簡子之言。諾,應聲也。諤,謇直也。〉僕請終日正言而無誅,可乎?」商君曰:「諾。」

 

 조량이 말하였다.

 "오고대부는 형의 시골 사람인데 목공은 소먹이를 주는 자리에서 들어내서 그를 백성들의 윗자리에 앉혔으니 진국에서는 그를 넘겨다볼 사람이 없었습니다. 진의 재상을 6~7년 하였는데, 동으로는 정을 치고, 晉의 주군 셋을 세웠으며, 한 번 형의 화를 구하여주었습니다.

 趙良曰:「五羖大夫,荊之鄙人也,穆公舉之牛口之下〈《孟子》:百里奚,虞人也,以食牛干秦繆公。今曰荊之鄙人,按《史記》:晉滅虞,執百里傒,爲秦繆夫人媵。百里傒亡秦走宛,楚鄙人執之;繆公以五羖羊皮贖之,以爲上大夫。傒,讀與奚同。繆,讀與穆同。媵,以證翻。宛,於元翻。〉而加之百姓之上,秦國莫敢望焉。相秦六七年而東伐鄭,〈謂《左傳》僖三十年與晉圍鄭也。相,息亮翻。〉三置晉君,一救荊禍。〈三置晉君,謂立惠公、懷公、文公也。《索隱》曰:《十二諸侯年表》,穆公二十八年,會晉伐楚朝周;此云救荊,未詳。余按《左傳》,晉旣敗楚于城濮,又敗秦於崤,穆公使鬬克歸楚求成,所謂救荊禍,蓋指此也。秦諱楚,故其國記率謂楚爲「荊」。太史公取《秦記》爲《史記》,《通鑑》又因《史記》而成書,故亦以楚爲荊。〉

 

 그는 재상이 되어서는 피로하여도 앉는 수레를 타지 않았고 더워도 덮개를 덮지 않았습니다. 나라 안을 다닐 때에도 수레가 좇지 못하게 하고, 방패와 창을 휘두르지도 않았습니다. 오고대부가 죽자 진국의 남자·여자는 눈물을 흘렸으며 아이들은 노래를 부르지 않고, 곡식을 찧는 사람도 절구질을 하지 않았습니다.

 其爲相也,勞不坐乘,〈古者車立乘,惟安車則坐乘耳。〉暑不張蓋。〈《周禮》:輪人爲蓋。蓋,所以覆冒車上也。〉行於國中,不從車乘,〈乘,繩證翻。〉不操干戈。〈操,七刀翻。〉五羖大夫死,秦國男女流涕,童子不歌謠,舂者不相杵。〈《記》:鄰有喪,舂不相。《註》云:相杵者,以音聲相勸。相,息亮翻。〉

 

 이제 그대의 경우를 보면 폐인(嬖人: 총애 받는 자) 경감을 이용하여 주군으로 하였고, 정치를 함에서는 공족들을 능멸하였으며 백성들을 죽이고 다치게 하였습니다. 공자인 영건이 문을 닫아건 지 8년이었습니다.

 그대는 축환을 죽였고, 공손가에게 경형을 내렸습니다.

 今君之見也,因嬖人景監以爲主;〈事見上八年。嬖,卑義翻,又博計翻。監,甲暫翻。〉其從政也,淩轢公族,殘傷百姓。〈轢,郎擊翻。車踐曰轢。〉公子虔杜門不出已八年矣。君又殺祝懽而黥公孫賈。〈祝,姓也。古有巫,史、祝之官,其子孫因以爲姓。或曰:武王封黃帝之後於祝,其子孫因氏焉。黥,其京翻。〉

 

 《詩經》에는 '사람을 얻은 자는 일어나고, 사람을 잃은 자는 무너진다.'고 하였는데, 이 몇 가지 일은 사람을 얻은 바가 되지 못합니다. 그대가 나오면 뒤따르는 수레에는 갑병을 실었고, 힘이 많고 위협적인 사람들이 참승하고, 창을 잡고 무기를 휘두르는 사람이 수레 옆을 좇고 있습니다. 이런 것 가운데 어느 한 가지라도 갖추지 않으면, 그대는 정말로 나오지 않습니다.

 《詩》曰:『得人者興,失人者崩。』〈逸《詩》也。〉此數者,非所以得人也。君之出也,後車載甲,多力而騈脅者爲驂乘,〈杜預曰:騈脅,合幹也。騈,步田翻。乘,繩證翻。驂,讀曰參。〉持矛而操闟戟者旁車而趨。〈薛綜曰:闟之爲言函也,取四戟函車邊。此蓋令力士旁車而趨,有急則操翕戟以禦之也。《後漢志》有闟戟車。《晉志》:闟戟車,長戟邪偃在後。《唐韻》:戟名曰闟,音所及翻。《史記正義》曰:顧野王云:矛,鋋也。《方言》云:矛,吳、楚、江、淮之間謂之鋋。《釋名》曰:戟,格也,旁有枝格。旁車之旁,音步浪翻。〉此一物不具,君固不出。

 

 《書經》에는 '덕을 믿는 사람은 번창하고 힘을 믿는 사람은 망하리라.'고 하였는데 지금 이 몇 가지는 덕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그대가 위험하기로는 마치 아침의 이슬과 같은데 오히려 상어의 부유함만을 말하고 있으며, 진의 정치로 총애를 받으려고 하지만 백성들의 원망을 쌓고 있습니다.

 《書》曰:『恃德者昌,恃力者亡。』〈逸《書》也。〉此數者,非恃德也。君之危若朝露,〈朝露易晞,言不久也。〉而尚貪商於之富,寵秦國之政,〈言以專秦國之政爲寵也。〉畜百姓之怨。〈畜,讀曰蓄。〉

 

 진왕이 어느 날 빈객의 자리에서 덜어내서 조회하는 마당에도 서지 못하게 되고, 진국에서 그대를 잡아들이려는 사람이 어찌 없겠습니까?"

 상군은 좇지 않았다. 5개월을 살다가 어려움이 일어났다.

 秦王一旦捐賓客而不立朝,〈朝,直遙翻。〉秦國之所以收君者豈其微哉!」〈微,少也。趙良言豈少,蓋謂太子與其師傅將挾怨而殺之也。〉商君弗從。居五月而難作。〈難,乃旦翻。史言商君尚刑愎諫之禍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