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龐涓死此樹下!/辛丑年大寒節末候水澤服堅山礬花風1日(陰12/28)癸未

solpee 2022. 1. 29. 10:21

《周紀1 王 28年》 (庚辰, 前341年)

 

 ①. 魏의 방연이 韓을 쳤다. 한이 제에 구원하여주기를 요청하였다. 제의 위왕이 대신들을 소집하여 모의하며 말하였다.

 "일찍 구원하는 것과 늦게 구원하는 것 어느 것이 좋소?"

 성후가 말하였다.

 "구해주지 않는 것만 못합니다."

 전기가 말하였다.

 "구원해주지 않으면 한은 위로 편입되니, 일찍 구원해 줌만 못합니다."

 ①. 魏龐涓伐韓。韓請救於齊。齊威王召大臣而謀曰:「蚤救孰與晚救?」成侯曰:「不如勿救。」〈鄒忌爲齊相,封成侯。〉田忌曰:「弗救則韓且折而入於魏,〈折,而設翻。〉不如蚤救之。」

 

 손빈이 말하였다.

 "대저 한과 위의 군사가 아직은 피폐하지 않은데 이를 구원하면 이는 우리 제나라가 한을 대신하여 위의 군대를 대적하는 것이니 도리어 한에게 명령을 듣는 것입니다. 또 위는 나라를 점령할 생각을 갖고 있을 것이니, 한에서는 망조가 보이면 반드시 동쪽을 돌아보면서 우리 제에게 호소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어서 한과 친화를 깊게 맺고, 위가 피로한 것을 뒤늦게 이어받는다면 무거운 이익과 높은 명성을 얻을 수 있습니다."

 孫臏曰:「夫韓、魏之兵未弊而救之。〈臏,頻忍翻,又毗賓翻。夫,音扶。〉是吾代韓受魏之兵,顧反聽命於韓也。且魏有破國之志,韓見亡,必東面而愬於齊矣。〈見亡,言見有亡國之勢也。愬,告愬也。〉吾因深結韓之親而晚承魏之弊,則可受重利而得尊名也。」

 

 왕이 말하였다.

 "좋은 말씀이오."

 마침내 몰래 한의 사자에게 이를 보내겠다고 허락하였다. 한에서는 이어서 제를 믿고 다섯 번 싸웠으나 이기지 못하자 동쪽으로 제나라에 위탁하였다.

 제는 이어서 전기·전영·전반으로 하여금 이들을 거느리게 하고, 손자를 군사로 삼아서 한을 구원하는데, 곧바로 위의 도읍으로 내달았다.

 王曰:「善。」乃陰許韓使而遣之。〈陰,闇也。使,疏吏翻。〉韓因恃齊,五戰不勝,而東委國於齊。

齊因起兵,使田忌、田嬰、田盼將之。〈盼,與盻同,音匹莧翻。將,卽亮翻;下同。又音如字,領也。〉孫子爲師,以救韓,直走魏都。〈走,音奏。〉

 

 방연이 이 소식을 듣고 한 침공을 멈추고 급히 돌아갔다. 위나라에서는 군을 크게 발동하였는데, 태자 위신을 장수로 삼고서 제를 막게 했다. 손자가 전기에게 말하였다.

 "저들 삼진의 병사들은 평소 사납고 용감하여 우리 제를 가볍게 보고 있으며 제를 겁장이라고 호칭합니다. 전쟁을 잘하는 사람은 그 형세를 이용하여 이를 이롭게 이끕니다. 《兵法》에서는 '100리의 속도로 이익을 쫓아가는 자는 上將을 잃을 것이고, 50리의 속도로 이익을 쫓는 자는 군사의 반만 이를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龐涓聞之,去韓而歸。〈龐,薄江翻。涓,工玄翻。〉魏人大發兵,以太子申爲將,以禦齊師。孫子謂田忌曰:「彼三晉之兵素悍勇而輕齊,〈將,卽亮翻。悍,下罕翻,又音汗。〉齊號爲怯。善戰者因其勢而利導之。《兵法》:『百里而趣利者蹶上將,五十里而趣利者軍半至。』」〈此孫武子《兵法》也。趣,七喻翻。魏武帝曰:蹶,其月翻。蹶,猶挫也。劉氏曰:蹶,猶斃也。半至,謂軍趣利前後不相屬,半至半不至也。屬,陟玉翻。〉

 

 마침내 제의 군사들로 하여금 위의 따으로 들어가서 10만 개의 아궁이를 만들어 놓게 하고, 다음날에는 5만개의 아궁이를 만들어놓게 하며, 또 그 다음날에는 2만개의 아궁이를 만들어놓게 하였다. 방연은 3일을 행군하고서 크게 기뻐하면서 말하였다.

 "나는 원래 제의 군사들이 겁쟁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우리 땅에 들어온 지 3일 만에 도망병들이 반을 넘었구나!"

 乃使齊軍入魏地爲十萬竈,明日爲五萬竈,又明日爲二萬竈。龐涓行三日,大喜曰:「我固知齊軍怯,入吾地三日,士卒亡者過半矣!」〈過,工禾翻。〉

 

 마침내 위의 보군을 내버려두고, 그이 날쌘 정예의 군사와 더불어 배의 속도로 나란히 행군하여 그들을 쫓았다. 손자가 그들의 행군상황을 헤아리고 저녁이면 마땅히 마릉에 이를 것으로 보았는데, 마릉은 길이 좁고 주변에는 장애물이 많아서 군사를 숨길 만하여 매복을 시킨 다음에 마침내 큰 나무를 찍어 껍질을 벗기고 그 위에 글씨를 썼다.

 乃棄其步軍,〈句斷。龐,薄江翻。涓,圭淵翻。〉與其輕銳倍日幷行逐之。〈幷行,兼程而行也。倍日,一日行兩日之程,亦兼程也。〉孫子度其行,暮當至馬陵,〈司馬彪《志》:魏郡元城縣。《註》云:《左傳》成七年,會馬陵;杜預《註》,在縣東南,龐涓死處。虞喜《志林》:馬陵在濮州鄄城東北六十里,澗谷深,可以置伏。度,徒洛翻。鄄,吉掾翻。〉馬陵道陿而旁多阻隘,可伏兵,〈陿,與狹同。隘,烏懈翻。〉乃斫大樹,白而書之曰:

 

 "방연은 이 나무 아래에서 죽는다."

 이에 제의 군사 가운데 활 잘 쏘는 병사들로 1만 개의 노를 길을 끼고 매복하게 하고, 해가 지고 불빛이 보이거든 함께 발사하기로 약속해두었다. 방연이 과연 밤에 도착하여 나무 아래에 이르렀고, 흰 곳에 쓴 글씨를 보고 횃불로 이를 비추고 읽기를 다 마치기도 전에 만개의 노가 함께 발사되니, 위의 군사는 크게 혼란하여 서로서로 짓밟고 서로 죽였다. 바연은 스스로 자기의 지혜는 끝이 나고 군사는 패배하였다는 것을 알고서 마침내 스스로 목을 베면서 말하였다.

 「龐涓死此樹下!」於是令齊師善射者萬弩夾道而伏,期日暮見火舉而俱發。龐涓果夜到斫木下,見白書,以火燭之,讀未畢,萬弩俱發,魏師大亂相失。龐涓自知智窮兵敗,乃自剄,曰:

 

 "드디어 어린녀석의 이름을 날리게 되었구나!"

 제는 이어서 이긴 기세를 타고 위의 군사를 대패시키고 그 태자 위신을 포로로 잡았다.

 「遂成豎子之名!」〈龐,薄江翻。涓,工玄翻。剄,古頂翻,斷首也;康古定切,非。豎,殊遇翻。《說文》:豎使布短衣。〉齊因乘勝大破魏師,虜太子申。

 

*1972년 산동성 임기의 은작산에서 출토된 《孫臏兵法》〈擒龐涓〉편에 보면 방연은 기원전 353년에 계릉전에서 포로가 되었다고 되어있다.

 

 ②. 성후 추기(제의 재상)가 전기를 미워하여 사람을 시켜서 10금을 부리며 저자에 가서 점을 치게 하며 말하였다.

 "나는 전기의 사람이다. 내가 장차 세 번 싸워서 세 번 승리하고서 큰일을 실행하려고 하는데, 가능하겠소?"

  점쟁이가 나가고 이어서 사람을 시켜서 그를 잡았다. 전기는 스스로 해명할 길이 없어서 그 무리를 거느리고 임치를 공격하여 성후를 달라고 요구하였으나 이기지 못하고 초로 도망하였다.

 ②. 成侯鄒忌惡田忌,〈鄒,以國爲氏。惡,烏路翻。〉使人操十金,卜於市,〈操,七刀翻。〉曰:「我,田忌之人也。我爲將三戰三勝,欲行大事,可乎?」卜者出,因使人執之。田忌不能自明,率其徒攻臨淄,〈臨淄,齊國都也;城臨淄水,因以爲名。班《志》,臨淄屬齊國。臣瓚曰:臨淄,卽營丘,太公營之。淄,莊持翻。〉求成侯;不克,出奔楚。〈爲下齊復田忌張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