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石敬瑭의 쿠데타1/霜降節(13:51)初候豺乃祭獸1日(陰9/18)甲辰

solpee 2021. 10. 22. 05:30

《後晉紀1 高祖 天福 元年》〈丙申, 936年〉

 

 ⑩. 애초에, 석경당이 당주의 생각을  시험하려고 누차 표문을 올려서 스스로 파리하고 병들었다고 하면서 병권을 해제하고 다른 진으로 옮겨 달라고 빌었는데, 황제가 집정자드과 논의하고 그의 요청을 좇아서 운주로 옮겨서 진수하게 하였다.

 방고· 이숭· 여기 등이 모두 극력으로 간하며 안 된다고 생각하니 황제는 미적미적하여 오래 끌었다.

 ⑩. 初,石敬瑭欲嘗唐主之意,累表自陳羸疾,〈羸,倫為翻。〉乞解兵柄,移他鎮;〈兵柄,謂北面馬步軍都總管之任。〉帝與報政議從其請,移鎮鄆州。房暠、李崧、呂琦等皆力諫,以為不可,帝猶豫久之。

 

 5월 2일 밤에 이숭이 청급하여 밖에 있어서 설문우만이 홀로 숙직을 서니 황제가 그와 더불어 하동의 일을논의하게 되자, 설문우가 말하였다.

 "속담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길에서 집을 지으면 3년이 되어도 완성하지 못한다.' 이 일은 스스로 황상의 의지로 결단할 것이며, 여러 신하들이 각기 몸을 위하여 꾀를 내는데 어찌 모두 말하려 하겠습니까? 신이 보건대 하동은 옮겨도 역시 반란을 일으킬 것이고 옮기지 않아도 역시 반란을 일으킬 것이며, 아침이냐 저녁이냐에 달려 있을 뿐이니 먼저 일을 벌려 그를 도모하는 것만 같지 못합니다."

 五月,庚寅夜,李崧請急在外,〈請急,請告也。〉薛文遇獨直,帝與之議河東事,文遇曰:「諺有之:『當道築室,三年不成。』茲事斷自聖志;〈諺,魚變翻。斷,丁亂翻。〉群臣各為身謀,安肯盡言!以臣觀之,河東移亦反,不移亦反,在旦暮耳,不若先事圖之。」〈先,悉薦翻。河東事情,凡在清泰朝野之人,誰不知者!其所以重於言,重於發,懼言之則發大難之端在己而無以善其後耳。清泰主鬱鬱於此久矣,薛文遇一言當心,逐決然而不顧。〉

 

 이보다 먼저 술자가 국가는 올해에 응당 현명한 보좌관을 얻어서 기이한 꾀를 내어 천하를 안정시킬 것이라고 말하였는데, 황상은 설문우가 그에 해당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그의 말을 듣고 대단히 기뻐하며 말하였다.

 "경의 말은 특별히 내 뜻과 통하였고 성패는 내가 결정하여 이를 시행하겠소."

 즉시 제목을 써서 학사원에 붙여서 제서를 기초하게 하였다.

 先是,術者言國家今應得賢佐,出奇謀,定天下,〈先,悉薦翻。〉帝意文遇當之,聞其言,大喜,曰:「卿言殊豁吾意,成敗吾決行之」即為除目,付學士院使草制。〈御筆親除付外行者謂之除目,其經宰相奏擬而行者亦謂之除目。〉

 

 3일에 석경당을 천평절도사로 삼고서, 마보도지휘사· 하양절도사인 송심건을 하동절도사로 삼았다. 제서가 나가자 양반에서는 석경당의 이름이 호칭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서로 돌아보면서 얼굴색을 잃었다.

 6일에 건웅절도사 장경달을 서북번한마보도부서로 삼고 석경당을 재촉하여 운주로 가게 하였다. 석경당이 이심스럽고 두려워서 장좌들과 모의하며 말하였다.

 辛卯,以敬瑭為天平節度使,以馬軍都指揇使、河陽節度使宋審虔為河東節度使。〈宋審虔從唐主起於鳳翔,故欲以之代敬瑭。〉制出,兩班聞呼敬瑭名,相顧失色。〈兩班,謂文武官班。〉

甲午,以建雄節度使張敬達為西北蕃漢馬步都部署,趣敬瑭之鄆州。〈趣,讀曰促。天平節度治鄆州。鄆,音運。〉敬瑭疑懼,謀於將佐曰:

 

 내가 다시 하동에 오면서 주상은 면전에서 종신토록 교체하여 임명하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허락하였는데, 지금 홀연히 이러한 명령을 내리니 올해 천춘절에 공주에게 말해 준 것과 같지 않을 수 있겠소? 내가 반란을 일으키지 않았는데도 조정에서는 이를 들추어내고 있으니 어찌 손이 묶인 채 도로에서 죽을 수 있겠소? 지금 또 표문을 올려서 드러내 놓고 병을 핑계 삼아 그의 뜻을 살피고 있는데, 만약 그나 나를 관대하게 대한다면 나도 마땅히 그를 섬길 것이지만 만약 나에게 군사력을 가한다면 나도 고쳐서 도모할 뿐이오."

 「吾之再來河東也,主上面許終身不除代;〈唐主此言當在即位之初,敬瑭入朝遣還鎮時也。〉今忽有是命,得非如今年千春節與公主所言乎﹖我不興亂,朝廷發之,安能束手死於道路乎!今且發表稱疾以觀其意,若其寬我,我當事之;若加兵於我,我則改圖耳。」〈觀敬瑭此言,則求援於契丹者本心先定之計也,桑維翰之言正會其意耳。〉

 

 막료인 단희요가 극력으로 굳게 저항할 것을 말하자, 석경당은 그가 순박하고 정직하다고 하여 책망하지 않았다. 절도판관인 화음 사람 조영이 석경당에게 운주로 갈 것을 권고하였더니, 관찰판관인 평요 사람 설융이 말하였다.

 "저 설융은 서생으로 군려에 익숙하지 않습니다."

 도압아 유지원이 말하였다.

 "명공께서는 오랫동안 군사를 거느리셔서 사졸들의 마음을 얻엇는데, 지금 형승의 땅을 점거하고 군사와 군마가 정예이고 강하니 만약 군사를 들어 격문을 전달하면 제업을 이룰 수 있는데 어찌하여 종이 한 장의 제서 때문에 스스로를 호랑이 입에 던져 넣으려는 것입니까?"

 幕僚段希堯極言拒之,敬瑭以其朴直,不責也。節度判官華陰趙瑩勸敬瑭赴鄆州;觀察判官平遙薛融曰:「融書生,不習軍旅。」都押牙劉知遠曰:「明公久將兵,得士卒心;今據形勝之地,士馬精強,若稱兵傳檄,〈稱,舉也。〉帝業可成,奈何以一紙制書自投虎口乎!」

 

 장서기인 낙양 사람 상유한이 말하였다.

 "주상께서 애초에 즉위하시고 명공께서 들어가서 조현하였는데, 주상께서는 어찌 교룡이 깊은 연못에서 마음대로 다닐 수 없다는 것을 알지 못하였을까요?

 그러나 갑자기 하동을 다시 공에게 주었으니 이는 마침내 하늘의 뜻이 공에게 유리한 무기를 빌려준 것입니다. 명종께서는 사랑을 다른 사람에게 넘기셨는데 주상께서는 서얼로서 이를 대신하였으니 여러 사람들이 마음으로 붙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掌書記洛陽桑維翰曰:「主上初即位,明公入朝,主上豈不知蛟龍不可縱之深淵邪﹖〈古語有之:魚不可脫於淵,神龍失勢,與蚯蚓同。〉然卒以河東復授公,〈卒,子恤翻。復,扶又翻。〉此乃天意假公以利器。明宗遺愛在人,主上以庶孽代之,群情不附。

 

 공께서는 명종이 총애하시던 사위이신데, 지금의 주상께서는 반역자로 보고 대우하고 있으니, 이는 머리 숙여 사죄하여 면죄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다만 힘으로 자신이 온전할 계책을 만들어야 합니다. 거란은 본래 명종과 더불어 맹약을 맺어 형제가 되었고, 지금은 부락이 가까이 운· 응에 있으니, 공께서 진실로 마음을 미루고 절개를 굽혀 그들을 섬긴다면 만의 하나라도 위급한 일이 있게 되면 아침에 부르면 저녁에 도착할 것인데 어찌 이루지 못할 것을 걱정하십니까?"

 석경당은 속으로 드디어 결정하였다.

 公明宗之愛伲,今主上以反逆見待,此非首謝可免,〈首,式又翻。〉但力為自全之計。契丹〈【章:十二行本「丹」下有「主」字;乙十一行本同。】〉素與明宗約為兄弟,今部落近在雲、應,〈契丹牙帳自明宗長興三年屯捺刺泊。〉公誠能推心屈節事之,萬一有急,朝呼夕至,何患無成。」敬瑭意逐決。

 

 이보다 먼저 조정에서는 석경당을 의심하여서 우림장군인 보정 사람 양언순을 북경부유수로 삼았는데 석경당이 장차 거사를 하려고 하여 역시 정황을 그에게 보고하였다.

 양언순이 말하였다.

 "하동의 군사와 식량이 거의 얼마인지 알 수 없으나 조정을 대적할 수 있겠습니까?"

 주위의 사람들이 양언순을 죽이게 해 달라고 요청하자 석경당이 말하였다.

 "오직 부사인 한 사람만은 내 스스로 그를 보장할 것이니 너희들은 아무 말을 하지 말라."

 先是,朝廷疑敬瑭,〈先,悉薦翻。〉以羽林將軍寶鼎楊彥詢為北京副留守,〈寶鼎縣屬河中府,漢之汾陰縣也。唐玄宗開元二十一年祀汾陰,獲寶鼎,由是更名。九域志:宋大中祥符四年改寶鼎為榮河縣,在河中府北一百里。〉敬瑭將舉事,亦以情告之。彥詢曰:「不知河東兵糧幾何,能敵朝廷乎﹖」左右請殺彥詢,敬瑭曰:「惟副使一人我自保之,汝輩勿言也。」〈按薛史稱楊彥詢為人沈厚,當以此得全。〉

 

 10일에 소의절도사 황보립이 주문을 올려 석경당이 반란을 일으켰다고 하였다.

 석경당이 표문을 올렸다.

 "황제께서는 양자이셔서 응당 제사를 계승할 수 없으니, 청컨대 허왕에게 전위하십시오."

 황제가 손수 그의 표문을 찢어서 땅에다 버리고 조서를 가지고 그에게 대답하였다.

 "겨이 악왕과는 진실로 소원하지 않았고, 위주의 일은 천하가 모두 알고 있는데, 허왕에 관한 말을 어떤 사람이 믿으려 하겠소?"

 14일에 제서를 내려서 석경당의 관작을 삭탈하였다.

 戊戌,昭義節度使皇甫立奏敬瑭反。〈并、潞二鎮接境,故知其事而先奏之。〉敬瑭表:「帝養子,不應承祀,請傳位許王。」〈許王從益,明宗之子也。〉帝手裂其表抵地,以詔答之曰:「卿於鄂王固非疏遠,衛州之事,天下皆知;〈謂敬瑭盡殺閔帝從騎,獨置帝於衛州也。事見上卷清泰元年。鄂王即謂閔帝。潞王入立,以太后令降閔帝為鄂王。〉許王之言,何人肯信!」制削奪敬瑭官爵。

 

 17일에 장경달에게 태원사원배진사를 겸하게 하고, 하양절도사 장언기를 마보군도지히사로 삼으며, 안국절도사 안심기를 마군도지휘사로 삼았고, 보의절도사인 상리금을 보군도지휘사로 삼았고, 우감문상장군 무정한을 호채사로 삼았다.

 乙巳,以張敬達兼太原四面排陳使,〈陳,讀曰陣;下同。〉河陽節度使張彥琪為馬步軍都指揮使,以安國節度使安審琦為馬軍都指揮使,以保義節度使相里金為步軍都指揮使,以右監門上將軍武翰為壕寨使。〈相,息亮翻。監,古銜翻。〉

 

 17일에 장경달을 태원사면병마도부서로 삼고 의무절도사 양광원을 부부서로 삼았다. 

 18일에 또 장경달을 지태원행부사로 삼고,  전에 창무절도사였던 고행주를 태원사면초무· 배진등사로 하였다. 양광원이 이미 떠나고 나서 정주에서 군사들이 반란을 일으켰는데, 아장인 천승 사람 방태가 그들을 토벓여 평정하였다.

 丙午,以張敬達為太原四面兵馬都部署,以義武節度使楊光遠為副部署。〈為楊光遠殺張敬達降晉張本。〉丁未,又以張敬達知太原行府事,以前彰武節度使高行周為太原四面招撫、排陳等使。光遠既行,定州軍亂,牙將千乘方太討平之。〈漢置千乘國,後改樂安郡,隋廢樂安郡置千乘縣,唐屬青州。九域志:千乘縣在青州北八十里。乘,繩證翻。〉

 

 장경달이 군사 3만을 거느리고 진안향에 주둔하였는데, 20일에 장경달이 주문을 올려서 서북선봉마군도지휘사인 안심신이 배반하여 진양으로 도망갔다고 하였다.

 안심신은 안금전의 조카였는데, 석경당이 그와 더불어 친분이 있었다.

 張敬達將兵三萬營於晉安鄉,〈晉安鄉在晉陽城南。薛史,晉安寨在晉祠南。〉戊申,敬達奏西北先鋒馬軍都指揮使安審信叛奔晉陽。審信,金全之弟子也,敬瑭與之有舊。〈安氏群從與石敬瑭本皆代北人。〉

 

 이보다 먼저 웅의도지휘사인 마읍 사람 안원신은 부하 600여 명을 거느리고 대주를 지켰는데, 대주 자사 장랑이 그를 잘 대우하였다. 안원신이 은밀히 장랑에게 유세하였다.

 "내가 보니 석령공은 어른다운 사람으로 거사를 하면 반드시 성공할 것인데, 공은 어찌하여 몰래 사람을 파견하여 뜻을 연락해두어서 스스로를 온전할 수 있게 하지 않으시오?"

 장랑이 좇지 않았으며 이로 말미암아 서로 시기하였다.

 先是,雄義都指揮使馬邑安元信〈先,悉薦翻。馬邑縣屬朔州。〉將所部六百餘人戍代州,代州刺史張朗善遇之。元信密說朗曰:「吾觀石令公長者,〈說,式芮翻。石敬瑭加中書令,故稱為令公。長,知兩翻。〉舉事必成;公何不潛遣人通意,可以自全。」朗不從,由是互相猜忌。

 

 안원신은 장랑을 죽일 것을 꾀하였으나 이기지 못하자 그의 무리를 인솔하고 안심신에게 도망하였으며 안심신은 드디어 휘하의 수백 기병을 인솔하고 안원신과 더불어 백정에서 노략질하고 진양으로 도망갔다. 석경당이 안원신에게 말하였다.

 "너는 어떤 이해를 보았기에 강한 것을 버리고 약한 데로 귀부하였느냐?"

 대답하였다.

 元信謀殺朗,不克,帥其眾奔審信,審信遂帥麾下數百騎與元信掠百井奔晉陽。〈帥,讀曰率。〉敬瑭謂元信曰:「汝見何利害,捨強而歸弱﹖」對曰:

 

 "저 안원신은 별자리를 알거나 천기를 읽는 것은 아니고, 사람의 일을 가지고 돌아보며 이를 결정하였을 뿐입니다. 무릇 제왕이 천하를 통어하는 데는 믿음보다 중요한 것이 없습니다. 지금 주상께서는 영공에게 큰 믿음을 잃었으며 가까이하거나 귀한 사람들도 또 스스로 보전할 수 없는데 하물며 소외되고 비천한 사람이겠습니까? 그가 멸망하는 것은 발돋음하고 서서 기다릴 정도이니, 어찌 강함이 있겠습니까?"

 석경당이 기뻐하며, 군사에  관한 일을 맡겼다

 「元信非知星識氣,顧以人事決之耳。夫帝王所以御天下,莫重於信。今主上失大信於令公,親而貴者且不自保,〈石敬瑭身為帝伲,可謂親矣;官為中書令,建節總兵,專制北面,可謂貴矣。〉況疏賤乎!甚亡可翹足而待,何強之有!」敬瑭悅,委以軍事。

 

 진무서북순검사 안종영이 대북(산서 대현)을 지키는데 보병과 기병 500을 인솔하고 진양으로 도망하였다. 안종영은 삭주 사람이다. 송심건을 녕국절도사로 삼아 시위마군도지휘사에 충임하였다.

 振武西北巡檢使安重榮戍代北,〈歐史,安重榮為振武巡邊指揮使。〉帥步騎五百奔晉陽。〈帥,讀曰率;下同。〉重榮,朔州人也。以宋審虔為寧國節度使、充侍衛馬軍都指揮使。〈石敬瑭既不受代,故使宋審虔領節掌宿衛。審虔,唐主鎮鳳翔時牙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