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潞王의 거저먹는 쿠데타2/寒露節中候雀入大水爲蛤2日(陰9/9)乙未

solpee 2021. 10. 14. 05:51

《後唐紀7 潞王 淸泰 元年》〈甲午, 934年〉

 

 ⑨. 3월 15일에 여러 도의 군사들이 봉상성 아래에 대대적으로 지별하여 그곳을 공격하여 동서관성에서 이겼는데, 성 안에 있는 사람들 가운데 죽은 사람이 심히 많았다.

 16일에 다시 나아가 성을 공격하며 반드시 빼앗을 것을 기약하였다. 봉상성은 낮고 참호는 얕았으며 수비하는 도구도 모두 부족하여 무리가 마음으로 위급해 하자, 노왕이 성에 올라 울면서 밖에 있는 군사들에게 말하였다.

 "내가 관례를 올리지 않은 나이에서부터 선황을 좇아 백번 싸워 삶과 죽음을 넘나들며 온 몸이 쇠붙이에 상처를 입으면서 오늘의 사직을 세웠는데, 너히들이 나를 좇았으니 눈으로 그 일을 보았을 것이다. 지금 조정에서는 참소하는 신하들을 신임하고 골육을 시기하는데 내가 무슨 죄를 지었다고 죽임을 당하겠는가?"

 이어서 통곡하였다. 듣던 사람들이 이를 통곡하였다.

 ⑨. 乙卯,諸道兵大集於鳳翔城下攻之克東西關城,城中死者甚眾。丙辰,復進攻城,〈復,扶又翻。〉期於必取。鳳翔城塹卑淺,守備俱之,眾心危急,潞王登城泣謂外軍曰:「吾未冠從先帝百戰,出入生死,金創滿身,〈冠,古玩翻,創,初良翻。〉以立今日之社稷;汝曹從我,目睹其事。今朝廷信任讒臣,猜忌骨肉,我何罪而受誅乎!」因慟哭。聞者哀之。

 

 장건쇠는 성격이 편협 되고 성급하여 주로 성의 서남쪽을 공격하여서 번득이는 칼을 가지고 사졸들을 몰아 성에 오르게 하자 사졸들이 화가 나서 크게 욕을 하며 도리어 그를 공격하였다.  장건쇠가 말에 뛰어 올라 도주하여 면하였는데 양사권이 이를 이용하여 크게 소리지르며 말하였다.

 "대상공(노왕 이종가)은 나의 주군이다."

 드디어 여러 군대를 인솔하고 갑옷을 벗어 무기를 던지고 노왕에게 항복을 받아달라고 요청하였으며 서문에서부터 들어와서 한 폭의 편지를 가지고 노왕에게 나아가서 말하였다.

 張虔釗性褊急,主攻城西南,以白刃驅士卒登城,士卒怒,大詬,〈褊,補典翻。詬,古候翻,又許候翻。〉反攻之,虔釗躍馬走免,楊思權因大呼曰:「大相公,吾主也。」〈楊思權本黨於秦王從榮;從榮死,思權不自安久矣,因乘劫奉潞王。王於明宗諸子為長,故稱為大相公。呼,火故翻;下同。〉遂帥諸軍解甲投兵,請降於潞王,〈帥,讀曰率。降,戶江翻;下同。〉自西門入,以幅紙進潞王曰:

 

 "바라건대, 왕께서 경성을 이기는 날에 신을 절도사로 삼으시고 방(방어사)과 단(단련사)으로 여기지 말아 주시기 바랍니다."

 노왕은 즉시 편지를 썼다.

 "양사권은 빈녕절도사이면 좋겠소!"

 그에게 주었다.

 왕사동이 오히려 이를 알지 못하고 사졸들을 재촉하여 성에 오르게 하니 윤휘가 크게 소리쳐 말하였다.

 "성 서쪽에는 군사들이 이미 성에 들어와 상을 받고 있다."

 무리가 모두 갑옷을 버리고 병장기를 팽개치고 항복하니 그 함성이 땅을 진동하였다. 해가 중천에 있을 동안 반란을 일으킨 군사들이 모두 들어오니 성박의 군대 역시 무너져서 왕사동 등 여섯 명의 절도사들이 모두 숨어서 떠났다.

 「願王克京城日,以臣為節度使,勿以為防、團。」〈防,團,謂防禦、團練使也。〉潞王即書「思權可邠寧節度使」授之。王思同猶未之知,趣士卒登城,〈趣,讀曰促。〉尹暉大呼曰:「城西軍已入城受賞矣。」眾皆棄甲投兵而降,其聲震地。日中,亂兵悉入,外軍亦潰,思同等六節度使皆遁去。〈王思同及張虔釗等五節度為六節度使。按孫漢韶時守興元,當以藥彥稠足六節度之數。〉

 

 노왕은 성안에 있는 장리와 사민들의 재산을 모두 거두어서 호군하고 솥과 도끼에 이르기까지 모두 값을 쳐서 그들에게 주었다.

 17일에 왕사동과 약언조 등이 도주하여 장안에 도착하였으나 서경부유수 유수옹이 문을 닫고 받아들이지 않자 마침내 동관을 향하였다. 유수옹은 유심의 아들이다.

 潞王悉斂城中將吏士民之財以稿軍,至於鼎釜皆估直以給之。〈犒,苦到翻。估,音古。〉丁巳,王思同、藥彥稠等走至長安,西京副留守劉遂雍閉門不內,乃趣潼關。〈趣,七喻翻。〉遂雍,鄩之子也。〈劉鄩,梁將也,明宗以王淑妃故,遂雍皆蒙引拔。〉

 

 노왕이 대장기를 세우고 북을 울리면서 무리를 정돈하여 동쪽으로 가면서 고옥관인 우성 사람 유연랑을 심복으로 삼았다. 노왕은 비로소 왕사동 등이 힘을 합하여 장안을 점거하고 막으며 지킬까를 걱정하였는데, 기산에 도착하여 유수옹이 왕사동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소식을 듣고 심히 기뻐하며 사자를 파견하여 그를 위무하였다. 유수옹이 부고의 재물을 모두 꺼내놓고 군사들 가운데 먼저 도착하는 사람들에게 즉시 상으로 지급하고 지나가게 하였는데, 노왕이 도착할 때쯤에 전군들은 상을 고루 받았으며 모두 성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潞王建大將旗幸,整眾而東,以孔目官虞城劉延朗為腹 心。〈隋分下邑縣置虞城縣,唐屬未州。丸域志:在州東北五十五里。歐史:潞王起於鳳翔,與共事者五人:節度判官韓昭胤,掌書記李專美,牙將宋審虔,客將房 暠,孔目官劉延朗。乃即位,審虔將兵,專美與薛文遇主謀議,而昭胤、暠乃延朗掌機密。〉潞王始憂王思同等併力據長安拒守,至岐山,〈九域志:鳳翔府岐山縣 東至長安二百四十三里。〉聞劉遂雍不內思同,甚喜,遣使慰撫之。遂雍悉出府庫之財於外,軍士前至者即給賞令過;北潞王至,〈比,必利翻,乃也。〉前軍賞遍,皆不入城,

 

 20일에 노왕이 장안에 도착하자 유수옹이 영접하여 알현하고 백성들의 재물을 거두어서 상으로 충당하였다.

 이날에 서면보군도감 왕경종 등은 군영 앞에서 도망하여 돌아오니, 안팎의 사람들이 크게 놀랐다. 황제는 할 바를 알지 못하여 강의성 등에게 말하였다.

 庚申,潞王至長安,遂雍迎謁,率民財以充賞。〈府庫之財僅足以給前軍,其隨潞王繼至者,率民財以給之。〉

是日,西面步軍都監王景從等自軍前奔還,中外大駭。帝不知所為,謂康義誠等曰:

 

 "선황께서 만국을 버리실 때에 짐은 밖에서 변방을 지켰는데 이러한 때를 맞아서 계승할 사람이 된 것은 여러 공들이 결정하였을 뿐이었고 짐은 실제로 다른 사람과 나라를 가지고 다툴 마음이 없었소. 이미 대업을 계승하였으나 나이가 어려서 나라의 일은 모두 여러 고을에게 맡겼소. 짐은 형제들 사이에서 틈을 두고 막혀 불통하는데 이르지 않았으나 여러 공들이 사직의 대계를 가지고 알현하고 보고하니 짐이 어찌 감히 어기겠소! 군사를 일으킨 처음에 모두가 스스로 과장하였으므로 침구하는 것을 평정할 수가 없다고 생각하였는데, 지금 일이 이에 이르렀는데 어찌 바야흐로 화를 돌릴 수 있겠소? 짐이 스스로 노왕을 영접하고 대위를 그에게 양보하려고 하며 만약 죄를 면제받지 못한다 해도 역시 마음으로 달게 받을 것이오."

 「先帝棄萬國,朕外守藩方,〈謂鎮天雄也。〉當是之時,為嗣者在諸公所取耳,朕實無心與人爭國。既承大業,年在幼沖,〈五代會要:明宗崩,帝即位,年二十。〉國事皆委諸公。朕於兄弟門不至榛梗,〈榛梗者,隔塞而不通。榛,側詵翻。梗,古杏翻。〉諸公以社稷大計見告,朕何敢違!軍興之初,皆自夸大,以為寇不足平;今事至於此,何方可以轉禍﹖〈言何術可以轉禍為福。〉朕欲自迎潞王,以大位讓之,若不免於罪,亦所甘心。」

 

 주홍소와 풍빈이 크게 두려워하여 감히 대답을 하지 못하였다.

 강의성이 모든 숙위병을 데리고 영접하고 항복하는 것을 작의 공로로 삼으려고 마침내 말하였다.

 "서쪽의 군사들이 놀라서 무너진 것은 대개 주장의 실책일 뿐입니다. 지금 시위하는 여러 군대들이 오히려 많으니 신은 청컨대 스스로 가서 그들의 요충지를 막고, 떠나가서 흩어진 사람들을 불러 모아서 이후의 효험을 도모하겠으니 다행히도 폐하께서는 지나치게 걱정하지 마십시오."

 황제가 사자를 파견하여 석경당을 부르게 하여 장병들로 하여금 이를 막게 하려고 하였다.

 朱弘昭、馮贇大懼,不敢對。〈猜間兄弟以起兵端,朱弘昭、馮贇為之也,事敗而禍集,聞帝言乃大懼。〉義誠欲悉以宿衛兵迎降為己功,乃曰:「西師驚潰,蓋主將朱策耳。〈薦王思同者康義誠也,咎王思同者亦康義誠也。將,即亮翻;下同。〉今侍衛諸軍尚多,臣請自往扼其衝要,招集離散以圖後效,幸陛下勿為過憂!」帝遣使召石敬瑭,欲令將兵拒之。

 

 강의성이 스스로 가겠다고 굳게 요청하자, 황제는 마침내 장사들을 불러 타이르면서 부고를 비워서 그들을 위로하고 봉상을 평정할 것을 허락하니 사람들은 다시 상으로 200민을 받았는데, 부고의 물건이 부족하자 궁궐 안에 있는 의복과 노리개를 가지고 충당하면서 그들에게 이어주게 하였다. 군사들이 더욱 교만하여 두려워하거나 꺼리는 바가 없었고 하사한 물건을 짊어지고 길에서 소리 높여 말하였다.

 義誠固請自行,帝乃召將士慰諭,空府庫以勞之,〈勞,力到翻。〉許以平鳳翔,人更賞二百緡,府庫不足,當以宮中服玩繼之。軍士益驕,無所畏忌,負賜物,揚言於路曰:

 

 "봉상에 도착하면 다시 몫을 요청할 것이다."(요즘 대한민국 군대와 비슷하다.)

 초광조를 파견하여 송주에서 이중길을 살해하였는데, 초광조는 이중길에게 곤장과 채찍질하여 그의 가재를 빼았았다. 또 비구니 혜명을 죽였다.

 「至鳳翔更請一分。」〈分,扶問翻。〉

遣楚匡祚殺李重吉於宋州;匡祚榜棰重吉,責其家財。〈前已囚重吉於宋州,今又使就殺之。榜,音彭,棰,此橤翻。〉又殺尼惠明。〈召惠明入禁中見上卷本年。〉

 

 애초에, 마군도지휘사 주홍실은 진왕 이종영이 후하게 하였는데 주홍소가 추밀사가 도자 주홍실을 종형으로 섬겼으며, 이종영이 천진교에서 군사를 챙기니, 주홍실이 가장 먼저 맹한경을 위하여 이종영을 공격하였고, 강의성이 이 일로 말미암아 그를 한스럽게 생각하였다.

 初,馬軍都指揮使朱洪實為秦王從榮所厚,乃朱弘昭為樞密使,洪實以宗兄事之;從榮勒兵天津橋,洪實首為孟漢瓊擊從榮,〈事見上卷上年。首為,于偽翻;下為之同。〉康義誠由是恨之。〈康義誠許迎從榮,而朱洪實擊之,故恨。〉

 

 21일에 황제는 친히 좌장에 이르러서 장사들에게 황금과 비단을 지급하였다. 강의성과 주홍실이 함께 이해를 논의하였는데 주홍실이 금군을 데리고 낙양을 굳게 지키려고 하며 말하였다.

 "이와 같이 하면 저들도 역시 감히 샛길로 앞으로 나오지 못할 것이니, 그러한 다음에 서서히 나아가서 빼앗을 것을 도모한다면 만 가지가 온전할 수 있을 것입니다."

 辛酉,帝親至左藏,〈藏,徂浪翻。〉給將士金帛。義誠、洪實共論用兵利害,洪實欲以禁軍固守洛陽,曰:「如此,彼亦未敢徑前,然後徐圖進取,可以萬全。」

 

 강의성이 화가 나서 말하였다.

 "주홍실이 이런 말을 하다니 반역하려는 것인가!"

 주홍실이 말하였다.

 "공이 스스로 반역하려는 것이지, 마침내 누가 반역을 한다고 말하시오?"

 그 소리가 점점 사나워졌다. 황제가 듣고서 그들을 불러 심문하였으나 두 사람이 황제 앞에서 송사하여도 황제는 그들의 옳고 그름을 판별할 수가 없어서 드디어 주홍실의 목을 베자 군사들이 더욱 분노하였다.

 義誠怒曰:「洪實為此言,欲反邪!」洪實曰:「公自欲反,乃謂誰反!」〈康義誠之心事,朱洪實知之矣。〉其聲漸厲。帝聞,召而訊之,〈訊,問也〉,二人訟於帝前,〈訟者,爭辯是非曲直。〉帝不能辨其是非,遂斬洪實,〈帝但以階級為曲直,而不能察事之是非。〉軍士益憤怒。〈觀上文軍士揚言所云,但欲迎降潞王,何暇憤朱洪實之枉死!蓋憤怒者洪實之從兵耳。〉

 

 22일에 노왕이 소응에 도착하니 전군이 왕사동을 붙잡았다는 소식을 듣고 노왕이 말하였다.

 "왕사동은 비록 계책에는 실패하였지만 그러나 마음을 다하여 받든 사람이니 역시 가상히 여길 만하다."

 23일에 영구에 도착하니, 전군이 왕사동을 붙잡아서 데려왔는데, 노왕이 그를 책망하며 꾸짖자, 대답하였다.

 壬戌,潞王至昭應,〈宋大中祥符八年改昭應縣為臨潼縣。九域志:在長安東五十里。〉聞前軍獲王思同,王曰:「思同雖失計,然盡心所奉,亦可嘉也。」癸亥,至靈口,〈九域志:臨潼縣之零口鎮是也。〉前軍執思同以至,王責讓之,對曰:

 

 "저 왕사동은 군중에서 일어났고 선황께서 저를 발탁하여 직위가 절장에 이르렀지만 항상 공로 없이 큰 은혜를 입은 것을 알지 못하는 거슨 아니나 조정을 도와서 스스로 화와 재앙을 받게 하였던 것은 다만 죽는 날에 저승에 계시는 선황을 뵐 면목이 없을까 두려웠을 뿐입니다. 패배하였으니 전고에 피를 바르는 것이 진실로 합당합니다. 청컨대 일찌감치 곧바로 죽여주십시오."

 왕이 그를 위하여 얼굴을 바꾸고 말하였다.

 "공도 쉬시오."

 「思同起行間,行間,〈行,戶剛翻。〉先帝握之,位至節將,〈節將,言建節而為大將。將,即亮翻。〉常愧無功以報大恩。非不佑附大王立得富貴,助朝廷自取禍殃,但恐死之日無面目見先帝於反下耳。〈潞王聞王思同之言,豈不內愧乎!〉敗而釁鼓,固其所也。請早就死!」王為之改容,曰:「公且休矣。」

 

 왕이 그를 용서하려고 하자 양사권의 무리가 그의 얼굴 보기를 부끄러워하였다. 왕이 장안을 지나는데 윤휘는 왕사동의 집안 자산과 기첩들을 모조리 빼앗고 누차 장연랑에게 말하였다.

 "만약 왕사동을 남겨 둔다면 사졸들의 마음을 잃을까 염려됩니다."

 왕에게 술에 취하기를 당부하고서 회보를 기다리지 않고 멋대로 왕사동과 그의 처자를 죽였다. 왕이 술에서 깨어나 장연랑에게 화를 냈고 탄식하고 애석해 한 것이 여러 날이었다.

 王欲宥之,而楊思權之徒恥見其面。〈楊思權等背順附逆,故恥見思同。〉王之過長安,〈過,古禾翻,又如字。〉尹暉盡取思同家資乃妓妾,屢言於劉延朗曰:「若留思同,〈留者,言活之使留於人世。妓,渠綺翻。〉慮失士心。」屬王醉,〈屬,之欲翻。〉不待報,擅殺思同乃其妻子。王醒,怒延朗,嗟惜者累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