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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란의 발호와 발해의 멸망/秋分節末候水始涸5日(陰9/2)戊子

solpee 2021. 10. 6. 13:32

《後唐紀3 莊宗 天成 元年》〈丙戌, 926年〉

 

 ㊳. 거란황제가 발해를 공격하여 그들의 부여성(농안)을 점령하고 이름을 동단국이라 하였다.

 그의 맏아들인 야율돌욕에게 명령하여 동단에서 점령하게 하고 인황왕이라 불렀다. 둘째아들인 야율덕광에게 서루에서 점령하게 하고 원수태자라 불렀다. 황제가  공봉관인 요곤을 파견하여 거란에 고애(告哀: 장종의 상사를 알림)하게 하였다.

 ㊳. 契丹主攻勃海,拔其夫餘城,〈即唐高麗之夫餘城也。時高麗王王建有國,限混同江而守之,混同江之西不能有也,故夫餘城屬勃海國。混同江即鴨淥水。夫,音扶。〉更命曰東丹國。〈更,工衡翻。〉命其長子突欲鎮東丹,號人皇王,以次子德光守西樓,號元帥太子。〈為突欲來奔張本。宋白曰:耶律德光本名耀屈之,慕中國文字,改焉。〉

帝遣供奉官姚坤告哀於契丹。〈考異曰:漢高祖實錄作「苗紳」,今從莊宗列傳。〉

 

 거란황제는 반란군에게 시해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통곡하며 말하였다.

 "내 조정의 아이다. 내가 바야흐로 그를 구원하려고 하였으나 발해를 아직 함락시키지 못하였으니 결과적으로 가지 못하였는데 우리 아이가 이 지경이 되었다."

 통곡하기를 그치지 않았다. 오랑캐가 '조정(朝定) '이라고 말하는 것은 화하에서 '붕우'라고 하는 것과 같다.

 또 요곤에게 말하였다.

 "지금의 천자가 낙양에서 위급한 일을 만났다는 소식을 듣고도 어찌 구원하지 않았는가?"

 대답하였다.

 "땅이 멀어서 따라잡을 수가 없습니다."

 契丹主聞莊宗為亂兵所害,慟哭曰:「我朝定兒也。吾方欲救之,以勃海未下,不果往,致吾兒及此。」哭不已。虜言「朝定」,猶華言朋友也。又謂坤曰:「今天子聞洛陽有急,何不救﹖」對曰:「地遠不能及。」

 

 말하였다.

 "무슨 까닭으로 스스로 등극하였는가?"

 요곤이 황제가 즉위한 연유를 말하자 거란의 주군이 말하였다.

 "한족아이들은 말 꾸미기를 좋아하니 말을 많이 하지 말라!"

 야율돌목이 옆에서 모시고 있다가 말하였다.

 "소를 끌고 다른 사람의 밭을 질러갔다고 하여 그 소를 빼앗는다면 옳습니까?"

 요곤이 말하였다.

 "중원은 주인이 없어서 당의 천자는 부득이하게 등극하였으며 역시 천황왕께서 애초에 나라를 가지시게 된 것과 같은데 어찌 억지로 그것을 가진 것입니까?"

 曰:「何故自立﹖」坤為言帝所以即位之由,契丹主曰:「漢兒喜飾說,毋多談!」〈為,于偽翻。喜,許計翻。〉突欲侍側,曰:「牽牛以蹊人之田而奪之牛,可乎﹖」〈引左傳申叔之言。史言契丹慕中國,效中國人道書語。〉坤曰:「中國無主,唐天子不得已而立;亦猶天皇王初有國,豈強取之乎!」〈指言阿保機不肯受代、擊滅七部事也。強如字。〉

 

 거란황제가 말하였다.

 "이치로는 마땅히 그러하다."

 또 말하였다.

 "우리 아이(장종)가 오로지 음악과 미색 그리고 수렵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들었는데, 의당 그가 이 지경에까지 이르러야하였다. 내가 이 소식을 듣고부터 온 가족이 술을 마시지 않았고 영인들을 흩어 보냇으며, 매와 개를 풀어 놓아주었다.

 만약 역시 우리 아이가 행한 것을 본받는다면 가다가 스스로 망하게 될 것이다."

 契丹主曰:「理當然。」〈聞姚坤言,不得不服。〉又曰:「聞吾兒專好聲色遊畋,〈【章:十二行本「畋」下有「不恤軍民」四字;乙十一行本同;退齋校同;張校同,云無註本亦無。】好,呼報翻。〉宜其及此。我自聞之,舉家不飲酒,散遣伶人,解縱鷹犬。若亦效吾兒所為,行自亡矣。」〈契丹主智識如疵,固宜其能立國傳世也。〉

 

 또 말하였다.

 "우리 아이는 나와 더불어 비록 대대로 친구였지만 그러나 누차 나와 더불어 전쟁을 하였는데, 지금의 천자에게는 원한이 없으니 충분히 우호 관계를 맺기에 훙분하다.

 만약 나에게 대하 북쪽을 준다면 나는 다시는 남쪽을 침략하지 않을 것이다."

 요곤이 말하였다.

 "이는 사신이 오로지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又曰:「吾兒與我雖世舊,然屢與我戰爭;於今天子則無怨,足以脩好。若與我大河之北,吾不復南侵矣。」坤曰:「此非使臣之所得專也。」〈復,扶又翻;下復召、乃復同。〉

 

 거란황제가 화가 나서 그를 가두고 열흘 남짓 지나서 다시 그를 불러 말하였다.

 "하북은 아마도 얻기 어렵다고 생각하니 진· 정· 유를 얻는 것도 역시 좋겠다."

 종이와 붓을 주며 명령하여 계장을 쓰라고 재촉하니, 상요곤이 불가능하다고 하자 그글 죽이려고 하였는데, 한연휘가 간하여 마침내 다시 그를 가두었다.

 契丹主怒,囚之,旬餘,復召之,曰:「河北恐難得,得鎮、定、幽州亦可也。」給紙筆趣令為狀,〈趣,讀曰促。〉坤不可,欲殺之,韓延徽諫,乃復囚之。〈囚而復囚,欲姚坤之為狀。縱使姚坤為狀,中國肯割地而與之﹖乎此欲用抵冒度湟之故智耳。

 

 ㊸. 가을, 7월 27일에 거란황제 야율아보기가 부여성에서 죽자(55세), 술률후가 제장과 추장 가운데 제압하기 어려운 사람의 처들을 불러 말하였다.

 "나는 지금 과부가 되었는데 너는 나를 본받지 아니할 수 없을 것이다."

 또 그 지아비들을 모아놓고 울면서 말하였다.

 ㊸. 辛巳,契丹主阿保機卒於夫餘城,〈卒,子恤翻。〉述律后召諸將及酋長難制者之妻,〈酋,慈秋翻。長,知兩翻。〉謂曰:「我今寡居,汝不可不效我。」又集其夫泣問曰:

 

 "너희는 선황을 생각하느냐?"

 대답하였다.

 "선황의 은혜를 입었는데 어찌 생각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말하였다.

 "과연 그를 생각한다면 의당 가서 그를 알현하시오."

 드디어 그들을 죽였다.

 「汝思先帝乎﹖」對曰:「受先帝恩,豈得不思!」曰:「果思之,宜往見之。」遂殺之。〈為述律后囚於阿保機墓張本。

 

 ㊼. 8월 3일에 거란의 술률후는 어린 아들인 안단소군으로 하여금 동단을 지키게 하고 맏아들인 야율돌육과 더불어 황제의 영구를 받들고 그의 무리를 거느리고 부여성을 출발하였다.

 ㊼. 丁亥,契丹述律后使少子安端少君戭東丹,〈少,詩照翻。〉與長子突欲奉契丹主之喪,將其眾發枎餘城。

 

 54. 거란의 술률후는 가운뎃아들인 야율덕광을 아껴서 그를 세우려고 하여 서루에 도착하자 돌욕과 더불어 말을 타고 장막 앞에 서도록 명령하고 어린 추장들에게 말하였다

 "두 아들은 내가 그들을 모두 아끼므로 세울 사람은 알지 못하겠으니 너희들이 세울 만한 사람을 선택하여 그의 말고삐를 잡으라."

 54. 契丹述律后愛人子德光,欲立之,〈中,讀曰仲。〉至西樓,〈西樓,契丹下都也。先是,契丹主使德光留守。〉命與突欲俱乘馬立帳前,謂諸酋長曰:「二子吾皆愛之,莫知所立,汝曹擇可立者執其轡。」

 

 추장들이 그의 생각을 알아차리고 야율광덕의 말고삐를 다퉁 잡고서 함성을 지르며 펄쩍펄쩍 뛰면서 말하였다.

 "바라건대, 원수 태자를 섬기겠습니다."

 슬률후가 말하였다.

 "무리들이 바라는 바니 내 어찌 감히 어기겠소?"

 드디어 그를 옹립하여 천황왕으로 하였다.

 酋長知其意,爭執德光轡讙躍曰:「願事元帥太子。」后曰:「眾之所欲,吾安敢違。」遂立之為天皇王。

 

 야율돌욕은 화가 나서 수백의 기병을 인솔하고 당으로 도망가려고 하다가 순찰하는 사람에게 젖를 당하였는데, 술률후가 죄를 주지 않고 동단으로 돌아가게 하였다. 천황왕이 술률후를 높혀 태후라 하고 나라의 일을 모두 결정하게 하였다. 태후는 그의 조카를 다시 받아 들여 천황황후로 삼았다.

 突欲慍,帥數百騎欲奔唐,為邏者所遏;〈讙,許元翻。慍,於問翻。朱子曰:慍,不是大段怒,但心裏略有不平意便是慍。邏,音郎佐翻。〉述律后不罪,遣歸東丹。天皇王尊述律后為太后,國事皆決焉。太后復納其姪為天皇王后。〈復,扶又翻。〉

 

 천황왕의 성품은 효성스럽고 근엄하여 어머니가 병이 나서 먹지 않자 역시 먹지도 않으면서 어머니 앞에서 시중들며 응대하다가 떼로 뜻에 맞지 않아서 어머니가 눈썹을 찡그리며 그를 보면, 번번이 두려워 하다가 총총걸음으로 피하고 다시 부르지 않으면 감히 알현하지 아니하였다.

 天皇王性孝謹,母病不食亦不食,侍於母前應對或不稱旨,〈稱,尺證翻。〉母揚眉視之,輒懼而趨避,非復召不敢見也。〈復,扶又翻。〉

 

 한연휘를 정사령(相)으로 삼았다. 요곤이 돌아가서 명령한 것을 회보하는 것을 들어주고 그의 신하인 아사몰골을 파견하여 와서 애사가 있음을 알렸다.

 以韓延徽為政事令。〈歐史,契丹以韓延徽為相,號政事令。〉聽姚坤歸復命,〈阿保機囚姚坤事見上。〉遣其臣阿思沒骨餒來告哀。〈考異曰:漢高祖實錄作「沒姑餒」,今從明宗實錄及會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