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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해된 장종 /秋分節末候水始涸2日(陰8/28)乙酉

solpee 2021. 10. 3. 05:32

《後唐紀3 莊宗 天成 元年》〈丙戌, 923年〉

 

 ①. 여름, 4월 1일에 엄판(황제의 여행 준비)하고 장차 출발하려고 하는데, 기병은 선인문 밖에 늘어서고 보병은 오봉문 밖에 늘어섰다.

 종마직 지휘사 곽종겸은 목왕 이존예가 이미 죽었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그를 받들고서 반란을 일으키고자 하여서 부병을 인솔하고 군영 안에서부터 칼을 드러내며 크게 소리 지르면서 황갑양군과 더불어 흥교문을 공격하였다.

 ①. 夏,四月,丁亥朔,嚴辦將發,〈凡天子將出,侍中奏中嚴外辦。此時未必能爾,沿襲舊來嚴辦之言而言之耳。〉騎兵陳於宣仁門外,〈唐昭宗天祐二年,敕改東都延喜門為宣仁門。又唐六典:東都東城在皇城之東,東曰宣仁門,南曰承福門。陳,讀曰陣;下同。〉步兵陳於五鳳門外。從馬直指揮使郭從謙不知睦王存乂已死,〈存乂養郭從謙為假子及其被誅事,並見上卷本年二月。請諸王不出閤者皆在禁中,故存乂死而從謙不知。從,才用翻。〉欲奉之以作亂,帥所部兵〈帥,讀曰率;下同。〉自營中露刃大呼,〈呼,火故翻。〉與黃甲兩軍攻興教門。〈唐昭宗之遷洛也,改延喜門為宣政門,重明門為興教門。五鳳門蓋宮城南門也。唐六典曰:洛陽皇城南面三門,中曰應天,左曰興教,右曰光政。〉

 

 황제가 막 식사를 하는데 변란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여러 친왕과 근위하는 기병을 인솔하고 그들을 공격하면서 반란군을 쫓아서 문으로 내보냈다.

 당시 번한마보사인 주수은은 기병을 거느리고 밖에 있었는데 황제는 중사를 파견하여 급히 그를 불러 더불어 적을 함께 치고자 하였지만 주수은이 이르지 않고 군사를 이끌고 북망산의 우거진 숲 아래에서 휴식을 하였다.

 帝方食,聞變,帥諸王及近衛騎兵擊之,逐亂兵出門。時蕃漢馬步使朱守殷將騎兵在外,帝遣中使急召之,欲與同擊賊;守殷不至,引兵憩於北邙茂林之下。〈憩,去例翻,息也。邙,莫郎翻。〉

 

 반란군이 흥교문을 불태우고 성을 따라 들어오자 가까이하는 신하들과 오래된 장수들이 모두 갑옷을 벗어 놓고 몰래 도망갔으나 오직 산원도지휘사 이언경과 숙위군교인 하복진· 왕정빈 등 10여 명 만이 힘써 싸웠다. 잠깐 사이에 황제가 날아온 화살에 맞았는데 응방 사람 선우가 황제를 부축하여 문루에서 내려와 강초전 행랑 아래에 이르러서 화살을 빼내자 목마르고 괴로워하며 물을 찾았고 황후는 자신이 돌아보지도 않고 환자를 파견하여 우유를 올리게 하니 잠깐 사이에 황제는 죽었다.

화살이나 칼에 맞은 상처에는 물은 약이 되나 우유는 독이 되어 바로 죽는다는 속설이 있어 왔다. 황후가 독살한 것으로 보인다!

 亂兵焚興教門,緣城而入,近臣宿將皆釋甲潛遁,〈李紹榮必已遁矣。〉獨散員都指揮使李彥卿及宿衛軍校何福進、王全斌等十餘人力戰。俄而帝為流矢所中,〈李彥卿即符彥卿,存審之子。散,悉亶翻。校,戶教翻。中,竹仲翻。斌,音彬。〉鷹坊人善友扶帝自門樓下,至絳霄殿廡下〈鷹坊,唐時五坊之一 也。姓譜,善,姓也,堯師善卷。門樓,興教門樓。廡,罔甫翻。〉抽矢,渴懣求水,皇后不自省視,遣宦者進酪,〈懣,音悶。省,悉景翻。酪,歷各翻,乳漿 也。凡中矢刃傷血悶者,得水尚可活,飲酪是速死也。〉 須臾,帝殂。〈年四十二。〉

 

 이언경 등이 통곡하며 떠나가자 좌우에 있던 사람들도 모두 흩어졌으며 선우는 행랑 아래에 있는 악기를 걷어 황제의 시신 위에 덮고 그것을 불태웠다.

 이언경은 이존심의 아들이며, 하복진과 왕전빈은 모두 태원 사람이다. 유후는 금보를 담은 주머니를 말안장에 매고 신왕 이존악과 이소영과 더불어 700의 기병을 이끌고 가경전을 불태우고 사자문으로 나가서 도주하였다.

 李彥卿等慟哭而去,左右皆散,善友斂廡下樂器覆帝尸而焚之。〈覆,敷又翻。自此以上至是年正月,書「帝」者皆指言莊宗。莊宗好優而斃於郭門高,好樂而焚以樂器,故歐陽公引「君以此始,必以此終」之言以論其事,示戒深矣。〉彥卿,存審之子;福進、全斌皆太原人也。〈李彥卿後復姓符,與何福進、王全斌皆以功名自見。〉劉后囊金寶繫馬鞍,與申王存渥及李紹榮引七百騎,焚嘉慶殿,自師子門出走。

 

 통왕 이존확과 이존기는 남산으로 도망갔다. 궁인들 대부분도 도망하여 흩어지고 주수은은 궁궐에 들어와서 궁인 30여 명을 뽑아서 각기 스스로 악기와 진귀한 완구를 가져다가 그들의 집에 들이게 하였다. 이에 여러 부대가 대대적으로 도성에서 약탈하였다.

 通王存確、雅王存紀奔南山。〈洛陽之南入伊川皆大山。〉宮人多逃散,朱守殷入宮,選宮人三十餘人,各令自取樂器珍玩,內於其家。於是諸軍大掠都城。

 

 이날에 이사원이 앵자곡에 도착하여 그 소식을 듣고 통곡하며 제장들에게 말하였다.

 "주상께서 평소 군사득의 인심을 얻었으나 바로 여러 소인들에게 가로막히고 미혹되어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지금 우리는 장차 어디로 돌아가야 하는가?"

 是日,李嗣源至甖子谷,〈考異曰:莊宗實錄云:「今上至鄭州聞變。」今從明宗實錄。余按甖子谷在鄭州境。〉聞之,慟哭,謂諸將曰:「主上素得士心,,正為群小蔽惑至此,今吾將安歸乎!」

 

 2일에 주수은에 사자를 파견하여 말을 달려 이사원에게 아뢰게 하였다.

 "경성이 크게 혼란하고 여러 부대가 불태우고 약탈하는 것이 끊이지 않으니, 바라건대 속히 와서 구원하시오!"

 3일에 이사원이 낙양에 들어와서 사제에 머무르면서 방화와 약탈을 금지시키고 장종의 유골을 잿더미 속에서 수습하여 빈소를 차렸다.

 戊子,朱守殷遣使馳白嗣源,以「京城大亂,諸軍焚掠不已,願亟來救之!」乙丑,嗣源入洛陽,止于私第,禁焚掠,拾莊宗骨於灰燼之中而殯之。

 

 이사원이 업에 들어오면서 전직지휘사인 평요 사람 후익이 몸을 빼내어 나와서 낙양으로 돌아왔는데 장종이 그를 어루만지며 눈물을 흘렸다.

 이때에 이르러 후익이 스스로 결박하여 죄 받기를 요청하니, 이사원이 말하였다.

 "너는 신하 된 절개를 다 지켰으니 역시 무슨 죄가 있겠는가?"

 그를 회복시켜 주었다.

 嗣源之入鄴也,前直指揮使平遙侯益脫身歸洛陽,〈前直指揮使領上前直衛之兵。劉昫曰:平遙即漢平陶縣,魏避國諱,改「陶」為「遙」:唐屬汾州。宋白曰:後魏以太武帝名燾,改「平陶」為「平遙」。〉莊宗撫之流涕。至是,益自縛請罪;嗣源曰:「爾為臣盡節,又何罪也!」使復其職。

 

 이사원이 주수은에게 말하였다.

 "공은 잘 순찰하면서 위왕(이계급)을 기다리시오. 숙비와 덕비는 궁궐에 있으니 공급해 주는 것을 더욱 풍부하게 갖추어 주는 것이 마땅하오. 나는 산릉의 일이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사직이 받들어지게 되면 번진으로 돌아가서 국가를 위하여 북방을 방어할 뿐이오."

 嗣源謂朱守殷曰:「公善巡徼,以待魏王。〈徼,吉弔翻。言善巡徼宮闕及皇城內外坊市,以待魏王繼岌。繼岌,莊宗嫡長子也,西征而還,未至,示若待其至而嗣位然。〉淑妃、德妃在宮,供給尤宜豐備。〈韓淑妃、伊德妃先在晉陽宮,蓋莊宗都洛之後迎至洛宮,及其遭變,不從劉后出奔,時在宮中也。按淑妃韓氏,本莊宗元妃衛國夫人也;德妃伊氏,次妃燕國夫人也。劉后之次在三,越次而正位中宮,雖莊宗之過,亦郭崇韜希指迎合之罪也。五代會要曰:同光二年十二月,冊德妃、淑妃,以宰臣豆盧革、韋說為冊使,出應天門外登輅車,鹵簿鼓吹前導,至右永福門降車,入右銀臺門,至淑妃宮,受冊於內,文武百官立班稱賀。通鑑書二年二月冊劉后,蓋冊后之後至十二月冊二妃也。〉吾俟山陵畢,社稷有奉,則歸藩為國家捍禦北方耳。」〈歸藩,言欲歸真定。為,于偽翻。〉

 

 이날에 두노혁이 백관을 인솔하고 편지를 올려 등극할 것을 권고하니, 이사원이 면전에서 그에게 타일러 말하였다.

 "내가 조서를 받들고 적을 토벌하는데 불행히도 부곡이 배반하고 흩어졌소. 들어와서 조현하고 스스로 호소하려고 하였으나 역시 이소영에게 막혀서 미쳐 날뛰다가 이에 이르렀소. 나는 원래 다른 마음이 없으며 여러분이 갑자기 이처럼 추대하려고 하는데 특별히 서로 자세히 알지도 못하고 있으니, 바라건대 말하지 마시오."

 두노혁이 굳게 요청하였지만 이사원은 허락하지 않았다.

 是日,豆盧革帥百官上牋勸進,〈下之於上,不從其令而從其意。帥,讀曰率。上時掌翻。〉嗣源面諭之曰:

「吾奉詔討賊,不幸部曲叛散;欲入朝自訴,又為紹榮所隔,披猖至此。吾本無他心,諸君遽爾見推,殊非相悉,〈悉,息七翻,諳也,究也,詳也,盡也。〉願勿言也!」革等固請,嗣源不許。

 

 이소영이 하중으로 도망가려고 영왕 이존패에게 갔으나 좇던 군사들이 점차 흩어졌으며, 4일에 평륙에 도착하였는데, 단지 남은 몇몇 기병도 사람들에게 붙잡혀서 다리가 잘린 체 낙양으로 압송되었다. 이존패도 역시 무리 1천 명을 인솔하고 진을 버리고 진양으로 도망하였다.

 李紹榮欲奔河中就永王存霸,從兵稍散;庚寅,至平陸,〈從,才用翻。唐書地理志曰:括地志:陜州河北縣本漢大陽縣,天寶元年,太守李齊物開三門以利漕運,得古刃,有篆文曰「平陸」,因更河北縣為平陸縣。九域志:縣在陜州北五里,隔大河。〉止餘數騎,為人所執,折足送洛陽。〈折,而設翻。〉存霸亦帥眾千人棄鎮奔晉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