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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관 향연사에 모살된 곽숭도, 그리고 망국의 징조/秋分節中候蟄蟲塊(壞·培·啓)戶5日(陰8/26)癸未

solpee 2021. 10. 2. 04:22

 

《後唐紀3 莊宗 同光 3年》〈癸未, 923年〉

 

 ⑯. 곽숭도는 평소에 환관들을 질시하였는데, 일찍이 은밀히 위왕 이계급에게 말하였다.

 "대왕께서 훗날에 천하를 얻게 되면 거세된 말도 탈 수 없을 터인데 하물며 환관을 임용하시겠습니까? 의당 그들을 모조리 제거하고 오로지 사인을 등용하십시오."

 여지유가 몰래 듣고 이를 알렸으므로 이 일로 말미암아 환관들이 모두 이를 갈았다.

 ⑯. 郭崇韜素疾宦官,嘗密謂魏王繼岌曰:「大王他日得天下,騬馬亦不可乘,〈騬,食陵翻,犗馬也,以喻宦官。史炤曰:犗,音戒;俗呼扇馬為改馬,即犗馬也。〉況任宦官!宜盡去之,專用士人。」〈去,羌呂翻。〉呂知柔竊聽,聞之,〈呂知柔時為都統牙通謁。〉由是宦官皆切齒。

 

 당시 성도는 비록 떨어졌으나 촉 안에서는 도적떼가 일어나 산과 숲에 가득 널려 있었다. 곽숭도는 대군이 이미 떠났지만 다시 후환이 될 것을 두려워하여 임환과 장균에게 명령하여 길을 나누어 가서 초토하게 하니, 이로써 남아서 돌아오지 않았다.

 황제는 환자인 향연사를 파견하여 그들을 재촉하였으나 곽숭도는 교외에 나와서 영접하지 않았으며, 만나 보게 되었는데 예절도 거만하니 향연사가 화가 났다. 이종습이 향연사에게 말하였다.

 時成都雖下,而蜀中盜賊群起,布滿山林。崇韜恐大軍既去,更為後患,命任圜、張筠分道招討,以是淹留未還。帝遣者向延嗣促之,崇韜不出郊迎,及見禮節又倨,〈宦官固可疾,然天子使之將命,敬之者所以敬君也,烏可倨見哉!唐莊宗使刑臣將命於大臣非也,郭崇韜倨見之亦非也。嗚呼!刑臣將命,自唐開元以後皆然矣。〉延嗣怒。李從襲謂延嗣曰:

 

 "위왕은 태자이고 주상은 많은 복을 누리시지만 곽공이 권리를 오로지함이 이와 같소. 곽정회가 도당을 데리도 나아가고 들어오는데, 매일 군영 안에 있는 날랜 장수들과 촉 지역의 호걸들과 더불어 친숙하게 술을 마시면서 하늘을 가리키고 땅을 그렸으며, 최근에 듣건대 그의 아버지에게 말하여 표문을 올려 자기를 촉의 우두머리로 삼아 줄 것을 요청하였소.

 또 말하였소.

 '촉 지역은 풍부하고 넉넉하니 대인께서 의당 스스로 잘 모의하시오.' 지금 여러 부대이 장교들이 모두 곽씨의 패거리이니 왕께서 몸을 호랑이와 이리의 입에 맡기고 있는 것이니 하루아침에 변고가 있게 되면 우리들은 어느 곳에다 뼈를 버리게 될지 모르겠소."

 「魏王,太子也;主上萬福,而郭公專權如是。郭廷誨擁徒出入,日與軍中饒將、蜀土豪傑狎飲,指天畫地,近聞白其父請表己為蜀帥;〈帥,所類翻;下同。〉又言「蜀地富饒,大人宜善自為謀。」今諸軍將校皆郭氏之黨,王寄身於虎狼之口,一朝有變,吾屬不知委骨何地矣。」

 

 이어서 서로 마주보며 눈물을 흘렸다. 향연사가 돌아와서 자세히 유후에게 말하였다. 유후는 울면서 황제에게 호소하며 일찍 이계급의 죽음을 구원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因相向垂涕。延嗣歸,具以語劉后。〈語,牛倨翻;下語之同。〉后泣訴於帝,請早救繼岌之死。

 

 이보다 먼저 황제는 촉인들이 곽숭도를 우두머리로 삼아달라고 요청한 것을 듣고 이미 불평하였는데, 이에 이르러 향연사이 말을 듣고서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황제는 촉의 부고의 장부를 열람하고 말하였다.

 "사람듸 촉 안에 진귀한 보화가 헤아릴 수 없다고 말하였는데, 어찌 이같이 미미한가?

 향연사가 말하였다.

 "신이 듣기로는 촉이 깨지자 그들의 진귀한 보화는 모두 곽숭도 부자에게 돌아가서 곽숭도에게는 금 1만 냥, 은 40만 냥, 전 1백만 민, 병마 1천 필을 가졌으며, 다른 물건도 이에 상당하며 곽정회가 빼앗은 것은 다시 그 밖에 있으니, 그러므로 현관께서는 얻은 것은 많지 않을 뿐입니다."

 前此帝聞蜀人請崇韜為帥,已不平,至是聞延嗣之言,不能無疑。帝閱蜀府庫之籍,曰:「人言蜀中珍貨無算,何如是之微也﹖」延嗣曰:「臣聞蜀破,其珍貨皆入於崇韜父子,崇韜有金萬兩,銀四十萬兩,錢百萬緡,名馬千匹,他物稱是,廷誨所取,復在其外;〈稱,尺證翻。復,扶又翻。〉故縣官所得不多耳。」

 

 황제는 드디어 얼굴에 화를 나타내었다. 맹지상이 장차 가려고 하는데, 황제가 그에게 말하였다.

 "듣건대 곽숭도가 다른 뜻을 품고 있다 하니 경이 도착하자마자 짐을 위하여 그를 죽이시오."

 맹지상이 말하였다.

 "곽숭도는 나라의 훈구라서 의당 이러한 뜻을 품고 있지 않을 것입니다. 신이 촉도에 도착하여 그를 살펴보기까지 기다리고, 진실로 다른 뜻을 갖고 있지 않다면 돌려보내겠습니다."

 황제가 이를 허락하였다.

 帝遂怒形於色。及孟知祥將行,帝語之曰:「聞郭崇韜有異志,卿到,為朕誅之。」〈為,于偽翻。〉知祥曰:「崇韜,國之勳舊,不宜有此。俟臣至蜀察之,苟無他志則遣還。」〈還,從宣翻,又如字。〉帝許之。

 

 윤12월 24일에 맹지상이 낙양을 출발하였다. 황제가 얼마 안 있어 다시 의갑고사 마언규를 파견하여 말을 달려가서 성도에 도착하여 곽숭도의 거취를 관찰하게 하였는데 만약 조서를 받들어 군대를 철수하면 중지하고, 만약 미적미적 늦추면서 발호하려는 모습이 있다면 이계급과 더불어 그를 도모하게 하였다. 마언규가 황후를 알현하고 그녀에게 유세하였다.

 壬子,知祥發洛陽。帝尋復遣衣甲庫使馬彥珪〈復,扶又翻;下后復同。衣甲庫使,盛唐無之,蓋帝所置,亦內諸司使之一也。〉馳詣成都觀崇韜去就,如奉詔班師則已,若有遷延跋扈之狀,則與繼岌圖之。〈觀莊宗所以命孟知祥、馬彥珪者如此,就使李從襲等不以劉后教行之,崇韜得東還,亦必不能自全矣。〉彥珪見皇后,說之曰:〈說,式芮翻。〉

 

 "신이 향연사를 보니, 촉 안에서의 사태의 걱정스러움이 아침저녁에 달려있다고 말하는데 지금 황상께서 마땅히 잘라 버리든지 버리지 말든지 해야 하며, 무릇 성패의 관건은 중간에 머리털만큼도 용납할 수 없는데, 어찌 완급을 3천 리 박에서 명령 받기를 품신할 수 있겠습니까?"

 황후가 다시 황제에게 말하니, 황제가 말하였다.

 "전하는 소문의 말의 허실을 아직 알지 못하는데, 어찌 갑자기 너희들이 과감히 결정한단 말인가?"

 「臣見向延嗣言蜀中事勢憂在朝夕,今上當斷不斷,〈言帝詔旨持兩端,無決然使殺崇韜之命。斷,丁亂翻。〉夫成敗之機,間不容髮,安能緩急稟命於三千里外乎!」〈成都至洛陽三千二百一十六里,見舊唐書地理志。〉皇后復言於帝,帝曰:「傳聞之言,未知虛實,豈可遽爾果決!」

 

 황후는 요청할 수 없자 물러나와 스스로 교령을 만들어서 이계급에게 주고 곽숭도를 죽이게 하였다. 맹지상의 일행이 석호에 도착하자 마언규는 밤에 문을 두드려서 조서를 전달하고 맹지상에게 진으로 향할 것을 재촉하니, 맹지상이 몰래 탄식하였다.

 "반란이 장차 일어나겠구나!"

 마침내 밤낮으로 두 배나 빠른 걸음으로 갔다.

 皇后不得請,退,自為教與繼岌,令殺崇韜。知祥行至石壕,〈石壕村在陝縣東、新安縣西,杜少陵詩所謂「暮投石壕村」者也。九域志:陝州陝縣有石壕鎮。〉彥珪夜叩門宣詔,促知祥赴鎮,知祥竊歎曰:「亂將作矣!」乃晝夜兼行。〈孟知祥倍道而行,非能救郭崇韜之死也,恐崇韜死而生他變耳。

 

《後唐紀3 莊宗 天成 元年》〈丙戌, 923年〉

 

 ⑧. 마언규가 낙양에 돌아오자 마침내 조서를 내려 곽숭도의 죄를 폭로하고 그의 아들인 곽정열· 곽정양· 곽정의를 나란히 죽이니, 이에 조야에서는 놀라고 한탄스러워하였으며, 여러 사람들의 논의도 분분하였는데 황제는 환자로 하여금 은밀히 이들을 살펴보게 하였다.

 보대절도사인 목왕 이존예는 곽숭도의 사위인데, 환관들은 곽숭도의 패거리를 모조리 제거하려고 하여 말하였다.

 "이존예는 제장들을 마주하고 팔뚝을 걷어붙이고 눈물을 흘리면서 곽숭도를 위하여 억울하다 하고 말씨에는 원망이 섞여 있습니다."

 23일에 이존예를 사저에 유폐시키고 조금 잇다가 그를 죽였다.

 ⑧. 馬彥珪還洛陽,乃下詔暴郭崇韜之罪,并殺其子廷說、廷讓、廷議,〈此郭崇韜諸子之在格陽者也。說,讀曰悅。〉於是朝野駭惋,〈朝,直遙翻。惋,烏貫翻。〉群議紛然,帝使宦者潛察之。保大節度使睦王存父,崇韜之伲也;宦者欲盡去崇韜之黨,言「存父對諸將攘臂垂泣,為崇韜稱冤,〈去,羌呂翻。為,于偽翻。〉言辭怨望。」庚辰,幽存父於第,尋殺之。

 

 경진이 말하였다.

 "하중 사람들 가운데 변고를 알린 사람이 있었는데, 이계린은 곽숭도와 더불어 반란을 모의하였고, 곽숭도가 죽자 역시 이존예와 더불어 연락하여 모의하였다고 말하였다."

 환관들이 이어서 함께 황제에게 그들을 속히 제거할 것을 권고하니 황제는 마침내 이계린을 옮겨서 의성절도사로 삼았는데, 이날 밤에 번한마보사 주수은을 파견하여 군사를 거느리고 그의 집을 포위하게 하고 이계린을 몰아서 휘안문 밖으로 나가게 하여 그를 죽이고 그의 성명을 회복시켜 주우겸이라 하였다.

 景進言:「河中人有告變,言李繼麟與郭崇韜謀反;崇韜死,又與存父連謀。」宦官因共勸帝速除之,帝乃徙繼麟為義成節度使,是夜,遣蕃漢馬步使朱守殷以兵圍其第,〈歐史作「圍其館」,蓋謂朱友謙無私第在洛陽也。〉驅繼麟出徽安門外殺之,復其姓名曰朱友謙。〈唐昭宗之遷洛也,車駕佃徽安門入宮。唐六典:東都北面二門,東曰延喜,西曰徽安。朱友謙賜姓名見二百七十二卷元年。〉

 

 주우겸의 두 아들인 주령덕은 무신절도사였고, 주령석은 충무절도사였는데, 위왕 이계급에게 조서를 내려서 수주에서 주령덕을 주살하게 하고, 정주 자사 왕사동은 허주에서 주령석을 죽이게 하였으며, 하양절도사 이소기는 하중에서 그의 집사람들을 죽이게 하였다.

 友謙二子,令德為武信節度使,令錫為忠武節度使;詔魏王繼岌誅令德於遂州,鄭州刺史王思同誅令錫於許州,〈唐置忠武軍於許州、匡國軍於同州,至梁之時 兩易軍號,後唐滅梁,皆復其故。〉河陽節度使李紹奇誅其家人於河中。

 

 이소기가 그의 집에 도착하자 주우겸의 처인 장씨가 그 집사람 200명을 인솔하고 이소기를 보고 말하였다.

 "주씨 종족은 마땅히 죽어야 하지만, 바라건대 남용되어 보통사람에게까지 미치지 않기를 바랍니다."

 마침내 그의 비복 100명을 구별해내고서 그의 종족 100명을 데리고 형을 받게 하였다.

 장씨는 역시 철권을 가져다가 이소기에게 보이며 말하였다.

 "이는 황제께서 재작년에 내려주신 것으로, 나는 여자여서 글을 알지 못하니 그것이 무슨 말인지 알지 못합니다."

 이소기도 역시 이 때문에 부끄럽게 여겼다. 주우겸의 옛 장수였던 사무 등 7명은 당시에 자사였는데 모두 연루되어 전 가족이 죽임을 당하였다.

 紹奇至其家,友謙妻張氏帥家人二百餘口見紹奇〈帥,讀曰率。〉曰:「朱氏宗族當死,願 無濫及平人。」乃別其婢僕百人,〈別,彼列翻。〉以其族百口就刑。張氏又取鐵券以示紹奇曰:「此皇帝去年所賜也,我婦人,不識書,不知其何等語也。」紹奇 亦為之慚。〈為,于偽翻。慚朝廷之失信。〉友謙舊將史武等七人,時為刺史,皆坐族誅。

 *. 향연사와 환관들이 자기들이 숙청당할 것을 두려워하여 황후를 꼬드겨 곽숭도를 참소하여 죽이고 그 복수가 또한 두려워서 곽숭도와 관련자들을 모조리 처단한 사건이다! 이로 인하여 후당의 멸망을 불러왔다.

 

 당시에 낙중에 있는 여러 부대는 굶주리고 궁색하여서 망령되게 유언비어가 떠돌자, 영환(배우들과 환관)들이 이를 채집하여 황제에게 보고하였으니, 그러므로 주우겸과 곽숭도가 모두 화를 당한 것이다. 성덕절도사· 겸중서령인 이사원도 역시 유언비어에 관련되어 황제는 주수은을 파견하여 이를 살피게 하였는데, 주수은이 사사로이 이사원에게 말하였다.

 "영공의 훈업이 주상을 떨게 하니,  의당 스스로 번진으로 돌아가서 화를 멀리 하시오."

 時洛中諸軍飢窘,〈窘,渠隕翻。〉妄為謠言,令官采之以聞於帝,故朱友謙、郭崇韜皆及於禍。成德節度使兼中書令李嗣源亦為謠言所屬,〈屬,之欲翻。〉帝遣朱守殷察之;守殷私謂嗣源曰:「令公勳業振主,宜自圖歸藩以遠禍。」〈「振」,當作「震」。遠,于願翻。〉

 

 이사원이 말하였다.

 "내 마음은 천지를 저버리지 않고 화복이 와도 피할 곳이 없으니 모두 그것을 천명에 맡기겠소."

 당시 영환들이 용사하자 공훈을 세운 옛날부터 있던 사람들은 스스로 지키지 못하였는데, 이사원이 위태하였던 것이 서너 번이었으며, 선휘사 이소굉의 좌우에 있는 사람들의 보호를 힘입게 되었고 이로써 온전할 수 있었다.

 嗣源曰:「吾心不負天地,禍福之來,無所可避,皆委之於命。」〈李嗣源答朱守殷之言,安於死生禍福之際,英雄識度自有不可及者。〉時令宦用事,勳舊人不自保,嗣源危殆者數四,賴宣徽使李紹宏左右營護,以是得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