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蜀 太子 王元膺/秋分節(04:21)初候雷始收聲1日(陰8/17)甲戌

solpee 2021. 9. 23. 05:37

《後梁紀3 均王 乾化 3年》〈癸酉, 913年〉

 

 ㉚. 촉의 태자인 왕원응은 입이 수퇘지 주둥이 같고 이빨은 뻐드렁니이며 눈은 바르게 보지 못하였으나 기민하고 민첩하여 책을 알며 말 타고 활쏘기를 잘하였으며 성격은 급하고 시기가 많고 잔인하였다.

 촉황이 두광정에게 명령하여 순수하고 고요하며 덕망이 있는 사람을 선발하여 동궁을 모시게 하니 두광정이 유자인 허적과 서간부를 천거하였으나 태자는 아직 일찍이 그들과 서로 말을 나눈 적이 없고 매일 악공들과 여러 공대들과 더불어 놀았는데 절도가 없었지만 속료들이 감히 간언하지 못하였다.

 ㉚. 蜀太子元膺,豭喙齙齒,〈豭,古牙翻,牡豕也。喙,許穢翻。齙,步交翻,露齒也。〉目視不正,而警敏知書,善騎射,性狷急猜忍。〈狷,吉掾翻。〉蜀主命杜光庭選純靜有德者使侍東宮,光庭薦儒者許寂、徐簡夫,太子未嘗與之交言,日與樂工群小嬉戲無度,僚屬莫敢諫。

 

 가을, 7월에 촉주가 장차 칠석에 나가서 놀려고 하였다.

 6일에 태자가 여러 친왕과 대신들을 불러 연회에서 술을 마셨는데, 집왕 왕종한· 내추밀사 반초· 한림학사승지인 고양 사람 모문석이 도착하지 않자, 태자가 화가 나서 말하였다.

 "집왕이 오지 않은 것은 반드시 반초가 모문석과 더불어 이간시킨 것이다."

 秋,七月,蜀主將以七夕出遊。丙午,太子召諸王大臣宴飲,集王宗翰、內樞密使潘峭、翰林學士承旨高陽毛文錫不至,太子怒曰:「集王不來,必峭與文錫離間也。」〈峭,七肖翻。間,古莧翻。〉

 

 대창군사인 서요와 상겸이 평소에 태자에게 신임을 받았는데, 술을 마시는 동안 누차 소보 당도습을 주시하니,  당도습이 두려워서 일어났다.

 7일 아침에 태자가 촉황에게 들어가 아뢰었다.

 "반초와 모문석이 형제를 이간시켰습니다."

 촉황이 화가 나서 명령하여 반초와 모문석을 떨어뜨려서 내쫓고서 옛날에 무대절도사· 겸시중을 지냈던 반항을 내추밀사로 삼게 하였다.

 大昌軍使徐瑤、常謙,素為太子所親信,酒行,屢目少保唐道襲,道襲懼而起。丁未旦,太子入白蜀主曰:「潘峭、毛文錫離間兄弟。」蜀主怒,命貶逐峭、文錫,以前武泰節度使兼侍中潘炕為內樞密使。〈炕,苦浪翻。〉

 

 태자가 나가고 당도습이 들어오자, 촉황이 그 일을 가지고서 그에게 알리니, 당도습이 대답하였다.

 "태자께서 반란을 일으킬 것을 모의하고 제장들과 여러 친왕들을 소집하고서 군사를 데리고 그들을 가두어 놓고 그런 후에 일을 일으키려고 하였을 뿐입니다."

 촉황이 의심스러워서 드디어 놀러 나가지 않았다. 당도습이 둔영병을 불러서 들어오게 하여 숙위하도록 요청하니, 이를 허락하였다. 안팎으로 경계를 엄중하게 하였다.

 太子出,道襲入,蜀主以其事告之,道襲曰:「太子謀作亂,欲召諸將、諸王,以兵錮之,〈曰錮者,以禁錮為義。〉然後舉事耳。」蜀主疑焉,遂不出;〈遂不以七夕出遊。〉道襲請召屯營兵入宿衛,許之。內外戒嚴。

 

 태자는 처음에 대비하지 않았는데 당도습이 군사를 불러들인다는 소식을 듣고 마침내 천무의 갑사를 데리고 스스로 지켰으며, 반초와 모문석을 체포해 오게 하여 그들을 체찍질하여 거의 다 죽게 되자 이들을 동궁에 가두었으며, 또 성도윤 반교를 체포하여 득현문에 가두었다.

 太子初不為備,聞道襲召兵,乃以天武甲士自衛,捕潘峭、毛文錫至,檛之幾死,〈檛,則瓜翻。〉囚諸東宮;又捕成都尹潘嶠,囚諸得賢門。

 

 8일에 서요와 상겸이 회승군사인 엄린 등과 더불어 각기 거느리는 군사들을 인솔하고 태자를 받들고 당도습을 공격하였다. 청풍루에 도착하자 당도습이 둔영병을 이끌고 나와서 저항하며 싸웠다. 당도습이 날아온 화살에 맞자 쫓아서 성 서쪽에까지 이르렀지만 그의 목을 베었다. 둔영병을 죽인 것이 심히 많아서 안팎이 놀라고 어지러웠다.

 戊申,徐瑤、常謙與懷勝軍使嚴璘等各帥所部兵奉太子攻道襲。〈帥,讀曰率。〉至清風樓,道襲引屯營兵出拒戰;道襲中流矢,〈中,竹仲翻。〉逐至城西,斬之。〈考異曰:九國志:「建將七夕出遊,先一日,元膺召諸軍使及諸王宴飲邸第中,且議七夕從行之禮,而集王宗翰等不至。」又曰:「詰朝,元膺入白建曰:『潘峭、毛文錫離間兄弟,將圖不軌。』」又曰:「及聞唐襲徵兵,乃遣伶官安悉香諭軍使全殊率天武甲士以自衛。」又曰:「明日,徐瑤、常謙與懷勝軍使嚴璘等協謀,以所部兵挾元膺以逐唐襲。元膺介馬率卒過其兄宗賀之門,召與同進。宗賀曰:『兵起無名,不敢聞命。』建急召宗侃、宗賀及諸軍使,令以兵討寇。乃逐唐襲至城西斬之, 盡殺屯營兵;又自大安門登陴以入,攻瑤、謙等。」歐陽史曰:「元膺與伶人安悉香、軍將喻全殊率天武兵自衛,召大將徐瑤、常謙率兵出拒襲,與襲戰神武門,襲 中流矢墜馬死。」十國紀年:「丁未,元膺令軍使喻全殊帥天武兵自衛。戊申,徐瑤、常謙及左大昌軍使王承燧等各帥所部兵奉元膺攻唐道襲。道襲自私第被甲乘 馬,過王宗賀門邀之,宗賀曰:『兵起無名,且不奉詔,公宜緩行。』元膺遣天武將唐據帥親兵逐道襲至城西斬之。」據九國志,云「徐瑤等挾元膺以逐唐襲」,似襲在宮中,欲逐出之也。歐陽史云「元膺召瑤等帥兵出拒襲,攻東宮而元膺拒之」,紀年云「瑤等奉元膺攻唐道襲,道襲自私第被甲乘馬」,似道襲出在外第,元膺就攻之也。按道襲止以挾君自重,既勸蜀主發兵自衛,豈肯更出在外第,必止於禁中也。蓋瑤等引兵攻宮禁以求道襲,道襲以屯營兵出拒戰,兵敗走至城西,為唐據所殺耳。九國志又云「元膺介馬帥卒過其兄宗賀之門,召與同進」,是元膺邀宗賀也。紀年云「道襲自私第被甲乘馬過宗賀門要之」,是道襲邀宗賀也。按道襲私第安得有兵!觀宗賀所答之辭,似語太子,非語道襲也。宜勸之速入宿衛,豈得云「公宜緩行」也!潘炕言「太子非有他志,陛下宜面諭大臣以安社稷」,蓋當時蜀主聞亂,既信道襲之言,又不忍討太子,無決然號令,故炕言太子無他志,當召大臣討徐瑤等為亂者耳。九國志云「令宗侃等出兵討寇,乃逐唐襲至城西斬之」,是官軍斬襲也,若然,何故明日亟加襲贈諡乎!此必誤也。〉殺屯營兵甚眾,中外驚擾。

 

 반항이 촉황에게 말하였다.

 "태자는 당도습과 더불어 권력을 다투었을 뿐이며 다른 뜻은 없었습니다. 폐하께서 의당 대신들을 면대하고 타일러서 사직을 안정시키십시오."

 潘炕言於蜀主曰:「太子與唐道襲爭權耳,無他志也。陛下宜面諭大臣以安社稷。」

 

 촉황이 마침내 겸중서령인 왕종간· 왕종하· 전 이주단련사였던 왕종로를 불러 군사를 발동하여 반란을 일으킨 사람인 서요와 상겸을 토벌하게 하였다. 왕종간 등은 서구장문에 진을 치고 겸시중인 왕종암은 대안문에서 사다리를 성에 놓고 들어가서 서요와 상겸과 더불어 회동전 앞에서 싸워서 수십 명을 죽였다.

 서요는 죽고 상겸은 태자와 더불어 용약지로 도망하여 함선 속에 숨었다.

 蜀主乃召兼中書令王宗侃、王宗賀、前利州團練使王宗魯,使發兵討為亂 者徐瑤、常謙等。宗侃等陳於西毬場門,〈陳,讀曰陣。〉兼侍中王宗黯自大安門梯城而入,與瑤、謙戰於會同殿前,殺數十人。〈【章:十二行本「人」下有「餘 眾皆潰」四字;乙十一行本同;張校同。】〉瑤死,謙與太子奔龍躍池,〈龍躍池即摩訶池。〉匿於艦中。〈【章:十二行本「中」下有「及暮稍定」四字;乙十一 行本同;孔本同;退齋校同。】艦,戶黯翻。〉

 

 9일에 태자는 나오서 뱃사람에게 가서 음식을 빌어먹엇었는데 뱃사람이 황제에게 보고하자 신속히 집왕 왕종한을 파견하여 그를 위무하게 하였고 도착할  즈음에는 태자는 이미 위사에게 죽임을 당하였다.

 己酉,〈【章:十二行本「酉」下有「旦」字;乙十一行本同;孔本同;張校同。】〉太子出就舟人伹食,〈伹,古 太翻,乞也。〉舟人以告蜀主,亟遣集王宗翰往慰撫之;比至,〈比,必利翻。〉太子已為衛士所殺。

 

 촉황은 왕종한이 그를 죽인 것으로 의심하며 크게 통곡하며 그치지 않았다. 좌우에 있는 사람들이 변란이 일어날까 두려워하였는데 마침 장격이 군사와 백성들을 위무하고 달래는 방문을 올리며 읽어가다가 '부월의 죽임을 실행하지 않으면 장차 사직의 계획은 그르치게 될 것입니다.' 라는 문구에 이르게 되자 촉황이 눈물을 거두고 말하였다.

 蜀主疑宗翰殺之,大慟不已。左右恐事變,會張格呈慰諭軍民牓,讀至「不行斧鉞之誅,將誤社稷之計」,蜀主收涕曰:

 

 "짐이 어찌 감히 사적인 일을 가지고 공적인 일을 해하겠는가?"

 이에 조서를 내려서 태자 왕원응을 폐위하여 서인으로 삼았다.

 왕종한이 주문을 올려서 태자를 손수 찌르 사람을 죽일 것을 주청하니, 왕원응의 좌우에 있는 사람들 가운데 연루되어 죽은 사람이 수십 명이었으며, 깍이고 귀양 간 사람도 심히 많았다.

 10일에 당도습을 태사로 추증하고 시호를 충장이라 하였다. 다시 반초를 추밀사로 삼았다.

 「朕何敢以私害公!」於是下詔廢太子元膺為庶人。宗翰奏誅手刃太子者,元膺左右坐誅死者數十人,貶竄者甚眾。

庚戌,贈唐道襲太師,諡忠壯;復以潘峭為樞密使。

 

 ㊵. 촉의 반항이 누차 태자를 세우기를 요청하자, 황제는 아왕 왕종로가 자기와 비슷하고, 신왕 왕종걸은 재주 있고 민첩하여서 한 사람을 선택하여 이를 세우려고 하였다. 정옹 왕종연(15)이 가장 어렸으나 그의 어머니인 서현비가 총애를 받았으므로 그의 아들을 세우려고 하여 비룡사 당문의로 하여금 장격에게 넌지시 표문을 올려 왕종연을 세우기를 요청하게 하였다.

 ㊵. 蜀潘炕屢請立太子,蜀主以雅王宗輅類己,信王宗傑才敏,欲擇一人立之。鄭王宗衍最幼,其母徐賢妃有寵,欲立其子,使飛龍使唐文扆諷張格上表請立宗衍。〈扆,隱豈翻。上,時掌翻。〉

 

 장격이 밤중에 표문을 가지고 공신 왕종간 등에게 보이고서 속여서 밀지를 받았으니 무리가 모두 서명해야 한다고 말하였다. 황제가 관상을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여러 아들들을 보게 하였는데 역시 뜻에 비위를 맞추어 정왕의 관상이 가장 존귀하다고 말하였다. 황제가 많은 사람들이 실제로 왕종연을 세우려 한다고 생각하고 마지 못해하며 이를 허락하고 말하였다.

 "왕종연은 어리고 나약한데 그 임무를 감당할 수 있겠는가?"

 格夜以表示功臣王宗侃等,詐云受密旨,眾皆署名。蜀主令相者視諸子,亦希旨言鄭王相最貴。〈相,息亮翻。〉蜀主以為眾人實欲立宗衍,不得已許之,曰:「宗衍幼懦,能堪其任乎﹖」

 

 26일에 왕종연을 세워서 태자로 삼았다. 책봉을 받고 나자 반항이 조정에서 할 일이 없어서 병을 핑계로 늙어 물러나게 해달라고 요청하니 황제가 허락하지 않았지만 눈물을 흘리며 굳게 요청하자 마침내 이를 허락 하였다. 나라에 커다란 의문이 있으면 항상 사자를 파견하여 그의 집에 가서 그것을 묻게 하였다.

 甲午,立宗衍為太子。〈為宗衍亡蜀張本。〉受冊畢,潘炕以朝廷無事,稱疾請老,蜀主不許;涕泣固請,乃許之。國有大疑,常遣使就第問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