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晉王 李克用 사망 / 白露節末候群鳥養羞2日(陰8/13)庚午

solpee 2021. 9. 18. 16:08

《後梁紀1 太祖 開平 2年》〈戊辰, 908年〉

 

 ④. 진왕 이극용은 머리에 종기가 났으며 병세가 위독하였다. 주덕위 등이 후퇴하여 난류에 주둔하였다. 진왕이 그의 동생인 내외번한도지병마사· 진무절도사인 이극녕, 감군 장승업, 대장 이존장, 오기, 장서기인 노질에게 명령하여 그의 아들인 이존욱을 세워서 후사로 삼게 하고 말하였다.

 "이 아들의 뜻과 기상이 원대하여 반드시 나의 일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니, 그대들이 아들을 잘 가르쳐서 인도해 주시오."

 ④. 晉王疽發於首,病篤。周德威等退屯亂柳。〈亂柳在潞州屯留縣界。〉晉王命其弟內外蕃漢都知兵馬使,振武節度使克寧、監軍張承業、大將李存璋、吳琪、〈琪,居勇翻。〉掌書記盧質立其子晉州刺史存勗為嗣,〈考異曰:五代史闕文:「世傳武皇臨甍,以三矢付莊宗曰:『一矢討劉仁恭,汝不先下幽州,河南未可圖也。一矢擊栔丹,且曰阿保機與吾把臂而盟,結為兄弟,誓復唐家社稷,今背約附梁,汝必伐之。一矢滅朱溫。汝能成善志,死無恨矣!』莊宗藏三矢于武皇廟庭。及討劉仁恭,命幕吏以少牢告廟,請一矢,盛以錦囊,使親將負之以為前驅。凱族之日,隨俘馘納矢于太廟。伐契丹,滅朱氏,亦如之。」按薜史契丹傳:「莊宗初嗣位亦遣使告哀,賂以金繒,求騎軍以救潞州。契丹答其使曰:『我與先王為兄弟,兒即吾兒也,寧有父不助子邪!』許出師,會潞平而止。」廣本:「劉守光為守文所攻,屢求救於晉,晉王遣將部兵五千救之。」然則於時莊宗未與契丹及守光為仇也。此蓋後人因莊宗成功,撰此事以誇其英武耳。余按晉王實怨燕與契目,垂沒以屬莊宗,容有此理。莊宗之告哀於阿保機與遣兵救劉守光,此兵法所謂「將欲取之、必固與之」也,其心忘父之治命哉!觀後來之事可見已。〉曰:「此子志氣遠大,必能成吾事,爾曹善教導之!」

 

 정월 19일에 진왕이 이존욱에게 말하였다.

 "이사소가 두 겹으로 포위되어 위험해도 내가 미처 가보지 못하겠다. 장례가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너는 주덕위의 무리와 더불어 신속히 힘을 다하여 그를 구원하도록 하라."

 또 이극녕 등에게 말하였다.

 "아자를 너희에게 부탁한다."

 아자는 이존욱의 어릴 때 이름이다. 말하기를 마치고 죽었다. 이극녕이 군부에서 기강을 세우니 안팎에서 감히 떠들어대는 사람이 없었다.

 辛卯,晉王謂存勗曰:「嗣昭厄於重圍,〈謂李嗣昭為梁兵圍於潞州也。重,直龍翻。〉吾不及見矣。俟葬畢,汝與德威輩速竭力救之!」又謂克寧等曰:「以亞子累汝!」〈累,良瑞翻。〉亞子,存勗小名也。言終而卒。〈年五十三。〉克寧綱紀軍府,中外無敢諠譁。

 

 이극녕은 오랫동안 병권을 통솔하고 있었고 다음으로 옹립될 형세도 있었으며, 당시 상당(산서 장치)에서의 포위가 아직 풀리지 않은데다가 군대 안에서는 이존욱의 나이가 어려서 몰래 논의하는 사람들이 많았으므로 인심이 흉흉하였다. 이존욱이 두려워하여서 자리를 이극녕에게 양보하였다. 이극녕이 말하였다.

 "너는 총사인데다가 또 먼저 선왕의 명령이 있었는데, 누가 감히 그것을 어기겠는가?"

 克寧久總兵柄,有次立之勢,〈兄死弟及,以長幼之次,有自立之勢。〉時上黨圍未解,軍中以存勗年少,多竊議者,人情忷忷。〈少,詩昭翻。忷,許勇翻。〉存勗懼,以位讓克寧。克寧曰:「汝豖嗣也,且有先王之命,誰敢違之!」

 

 장리들이 이존욱을 알현하려고 하여도 이존욱이 바야흐로 애곡하며 나오지 않았다. 장승업이 들어와서 이존욱에게 말하였다.

 "최대의 효도는 기업을 실추시키지 않는데 있으니, 통곡을 많이 한들 무엇 하겠습니까?"

 이어서 이존욱을 부축하고 나와서 지위를 세습하여 하동(태원)절도사· 진왕이 되었다. 이극녕이 첫 번째로 제장들을 인솔하고 배하하니, 왕이 모든 군부의 일을 그에게 맡겼다.

 將吏欲謁見存勗,〈見,賢遍翻。〉存勗方哀哭未出。張承業入謂存勗曰:「大孝在不墜基業,多哭何為!」因扶存勗出,襲位為河東節度使晉王。〈張承業之扶李存勗出嗣位,猶張昭之孫權也。〉李克寧首帥諸將拜賀,〈帥,讀曰率。〉王悉以軍府事委之。

 

 이존장을 하동군성사· 마보도우후로 삼았다. 선왕 시절에 총애를 입은 대다수의 호인과 군사들이 시장에 침투하여 소란을 피우자, 이존장이 이미 직책을 관장하였으므로 그들 가운데 아주 횡포한 사람을 붙잡아서 이를 죽이니, 순월 사이에 성안이 숙연해졌다.

 以李存璋為河東軍城使、馬步都虞候。先王之時,多寵借胡人及軍士,侵擾市肆,〈先王,謂李克用。〉存璋既領職,執其尤暴橫者戮之,〈橫,戶孟翻。〉旬月間城中肅然。

 

 ⑧. 애초에, 진왕 이극용이 군대 안에 잇는 장사들을 많이 길러서 아들로 삼고 총애하고 대우 하는 것이 마치 친아들처럼(義子軍) 하였다. 진왕 이존욱이 세워지자 여러 假子들이 모두 연장자 순으로 군사를 장악하고 마음속으로 원망하며 굴복하지 않았는데, 혹은 질병을 핑계로 나오지 않고 혹은 새로운 왕을 보고도 절하지 않았다. 이극녕의 권력과 지위가 이미 강해지자 인심이 대부분 그에게로 향하였다.

 ⑧. 初,晉王克用多養軍中壯士為子,寵遇如真子。及晉王存勗立,諸假子皆年長握兵,心怏怏不伏,〈長,知兩翻。怏,於兩翻。〉或託疾不出,或見新王不拜。李克寧權位既重,人情多向之。

 

 가자인 이존호가 은밀히 이극녕에게 유세하였다.

 "형이 죽으면 동생이 이어받는 것이 옛날부터 있어왔습니다. 숙부로서 조카에게 절하는데 그런 이치가 어디 있습니까? 하늘이 주는데도가지지 아니하면 후회해도 되돌리지 못합니다."

 이극녕이 말하였다.

 "우리 집안은 대대로 자비와 효성으로써 천하에 알려져 왔으며,  선왕의 대업이 진실로 돌아갈 곳이 있는데 내가 다시 무엇을 추구하겠느냐? 너는 망령되이 말하지 말 것이니, 내가 또한 너의 목을 벨 것이다."

 假子李存顥陰說克寧曰:〈說,式芮翻;下同。〉「兄終弟及,自古有之。〈殷人之制,兄終弟及。自周以來,父子相繼,未有能易之者也。李存顥以殷制動克寧耳。〉以叔拜姪,於理安乎!天與不取,後悔無及!」克寧曰:「吾家世以慈孝聞天下,〈聞,音問。〉先王之業苟有所歸,吾復何求!〈復,扶又翻。〉汝勿妄言,我且斬汝!」

 

 이극녕의 처인 맹씨는 평소에 굳세고 사나웠는데, 여러 가자들이 각기 그의 처를 보내어 들어가서 맹씨에게 유세하게 하니 맹씨가 그럴 것이라 생각ㅎ고 또 말이 새어나가 재앙이 미칠까 생각하여 자주 이극녕을 압박하였다. 이극녕의 성격은 겁이 많고 아침저녁으로 여러 사람들의 말에 현혹되어 마음에 동요함이 없을 수사 없엇고, 또 장승업· 이존장과 더불어 서로 맞지 않았고 자주 그들을 꾸짖었는데, 또 어떤 일로 인하여 도우후 이존질을 멋대로 죽였으며, 또 대동절도사를 관장하고서 울· 삭· 응을 순속으로 삼아줄 것을 요구하였다. 진왕이 이를 모두 들어주었다.

 克寧妻孟氏,素剛悍,〈悍,下罕翻,又侯旰翻。〉諸假子各遣其事入說孟氏,〈李克用義兒百餘人必不盡然,獨存顥等為此耳。史概言之曰諸假子。〉孟氏以為然,且慮語泄及禍,數以迫克寧。克寧性怯,朝夕惑於眾言,心不能無動;又與張承業、李存璋相失,數誚讓之;〈數,所角翻。誚,才笑翻。〉又因事擅殺都虞候李存質;又求領大同節度使,以蔚、朔、應州為巡屬。〈唐末置應州,領金堿、混(渾)源二縣。蔚,紆勿翻。〉晉王皆聽之。

 

 이존호 등이 이극녕을 위하여 모의하여 진왕이 그의 집을 자니는 것을 이용하여 장승업과 이존장을 죽이고 이극녕을 받들어 절도사로 삼고 하동의 아홉 주를 들고서 양에 귀부하고 진왕과 태부 조씨를 붙잡아서 대량에 압송하려고 하였다.

 李存顥等為克寧謀,因晉王過其第,〈為,于偽翻。過,音戈。〉殺承業、存璋,奉克寧為節度使,舉河東九州附于梁,〈河東領并、遼、沁、汾、石、忻、代、嵐、憲九州。〉執晉王及太夫人曹氏送大梁。

 

 태원 사람 사경용이 젊어서 진왕 이극용을 섬기면서 장막 속에 머물면서 신임을 받았는데, 이극녕이 부중의 은밀한 일을 알고자 하여 사경용을 소환하여 은밀히 모의한 것을 그에게 보고하게 하였다.

 사경용이 겉으로는 그것을 허하였으나 들어가서 태부인에게 밀고하니 크게 놀라서 장승업을 소환하고 진왕을 가리키며 그에게 말하였다.

 太原人史敬鎔,少事晉王克用,居帳下,見親信,〈少,詩照翻。〉克寧欲知府中陰事,召敬鎔,密以,謀告之。敬鎔陽許之,入告太夫人,太夫人大駭,召張承業,指晉王謂之曰:

 

 "선왕께서는 이 아이의 팔을 공 등에게 주었는데, 만약 밖에서 이간질을 모의하는 것을 듣고 그를 저버리려고 하여 다만 내 모자가 살 땅만을 남겨두고, 대량으로 보내지 않는다면 다른 것으로 공에게 누를 끼치지 아니할 것이오."

 장승업이 두려워하며 말하였다.

 "늙은 노복이 죽음으로써 선왕의 명령을 받들어야지 이 무슨 말입니까?" 

 「先王把此兒臂授公等,如聞外間謀欲負之,但置吾母子有地,勿送大梁,自他不以累公。」〈累,力瑞翻。〉承業惶死曰:「老奴以死奉先王之命,此何言也!」

 

 진왕은 이극녕이 모의한 사실을 알리고 또 말하였다.

 "지친은 스스로 서로 어육이 되어서는 아니 되니, 내가 진실로 자리를 피하기만 하면 난리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오."

 장승업이 말하였다.

 "이극녕이 대왕의 모자를 호랑이 입 속으로 던져 넣으려고 하는데, 그를 제거하지 못하면 어찌 온전할 일이 있겠습니까?"

 晉王以克寧之謀告,且曰:「至親不可自相魚肉,吾苟避位,;則亂不作矣。」承業曰:「克寧欲投大王母子於虎口,不除之豈有全理!」

 

 마침내 이존장· 오기 그리고 가자인 이존경· 장직군사 주수은을 소환하여 몰래 그에 대한 대비를 하게 하였다.

 21일에 제장들을 모아서 부사에서 술자리를 마련하고 갑사들을 매복시켰다가 그 자리에서 이극녕과 이존호를 붙잡았다.

 乃召李存璋、吳琪及假子李存敬、長直軍使朱守殷,使陰為之備。壬戌,置酒會諸將於府舍,伏甲執克寧、存顥於座。

 

 진왕이 눈물을 흘리며 그것을 헤아리며 말하였다.

 "이 아이가 이전에 군부를 숙부에게 양위하였을 때에 숙부는 갖지 않았습니다. 지금 사태가 이미 정해졌거늘 어찌하여 다시 이를 도모하여 차마 우리 모자를 원수관계로 남기려고 합니까?"

 이극녕이 말하였다.

 "이 모두가 참소하는 사람들과 서로 꾸민 일이니 무릇 다시 무슨 말을 하겠는가?"

 이날에 이극녕과 이존호를 죽였다.

 晉王流涕數之曰:「數,所具翻。}}「兒曏以軍府讓叔父,叔父不取。今事已定,柰何復為此謀,〈復,扶又翻;下同。〉忍以吾母子遺仇讎乎!」〈遺,唯季翻。仇讎,謂梁也。〉克寧曰:「此皆讒人交構,夫復何言!」是日,殺克寧及存顥。〈李克寧之奉存勗,初焉非不忠順,其後外搖於讒口,內溺於悍妻,以至變節而殺其身。地親而屬尊者,居主少國疑之時,可不弁哉!

 

 ⑯. 애초에, 진왕 이극용이 죽었는데, 주덕위가 밖에서 重兵을 장악하고 있어서 사람들이 모두 그를 의심하였다. 진왕 이존욱이 주덕위를 소환하여 군사를 이끌고 귀환하게 하였다.

 ⑯. 初,晉王克用卒,周德威握重兵在外,國人皆疑之。晉王存勗召德威使引兵還。〈還,從宣翻,又如字。〉

 

 여름, 4월 초하루에 주덕위가 진양에 도착하자, 군사를 성 밖에 머무르게 하고 홀로 걸어서 들어와 돌아가신 왕의 영구에 엎드려 통곡함이 극도로 슬퍼하였고, 물러나 사왕을 알현하였는데 예의가 심히 공손하였다.

 무리들의 마음이 이 일로 말미암아 풀어지게 되었다.

 夏,四月,辛丑朔,德威至晉陽,留兵城外,獨徒步而入,伏先王柩,哭極哀;退,謁嗣王,禮甚恭。眾心由是釋然。〈史言周德威臨敵勇而事上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