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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남절도사 楊渥의 夜間擊毬와 兵諫/白露節仲候玄鳥歸3日(陰8/9)丙寅

solpee 2021. 9. 14. 06:02

後梁紀1 太祖 開平 元年》〈丁卯, 907年

 

 ②. 회남절도사· 겸시중· 동면제도행영도통인홍농군왕 양악이 이미 강서(남창)를 획득하고 나자 교만과 사치가 더욱 심하였는데, 절도판관 주은에게 말하였다.

 "그대는 다른 사람의 국가를 팔아먹었으니, 무슨 면목으로 다시 서로 보겠는가?"

 드디어 그를 죽였다. 이일로 말미암아 장좌들이 모두 스스로 편안해하지 못하였다.

 ②. 淮南節度使兼侍中、東面諸道行營都統弘農邵王楊渥既得江西,〈謂并鍾匡時也。事見上卷天祐三年。〉驕侈益甚,謂節度判官周隱曰:「君賣人國家,何面復相見!」遂殺之。〈以隱言其不克負荷,欲屬國於劉威也。事見上卷天祐二年。復,扶又翻。〉由是將佐皆不自安。〈既逐王茂章,又殺周隱,宜餘人之不自安也。〉

 

 흑운도지휘사 여사주는 부지히사인 기장과 더불어 군사를 거느리고 상고에 주둔하였는데, 여사주가 호남과 더불어 싸워서 여러 차례 공로를 세우자, 양악이 그를 시기하였다. 여사주가 두려워하여 기장에게 모의하여서 말하였다.

 "마공은 관대하고 후덕하니 내가 죽음에서 도망하려고 하는데 가능하겠소?"

 黑雲都指揮使呂師周與副指揮使綦章將兵屯上高,〈上高在洪州高安縣界,宋置上高縣,屬筠州,在州西南九十五里。宋白曰:上高縣本高安縣之上鎮,以地形高上,故曰上高。南唐昇元中立上高場,保大十年升為縣。〉師周與湖南戰,屢有功,渥忌之。師周懼,謀於綦章曰:「馬公寬厚,〈謂馬殷也。〉吾欲逃死焉,可乎﹖」

 

 기장이 말하였다.

 "이 일은 그대가 스스로 이를 도모할 일이지만 내 혀가 잘릴지언정 감히 누설하지는 않을 것이오."

 여사주는 드디어 호남으로 도망하였으며 기장은 그의 처와 자식들을 풀어 편안하게 가도록 하였다. 여사주는 양주 사람이다.

 章曰:「茲事君自圖之,吾舌可斷,不敢泄!」〈斷,都管翻。〉師周遂奔湖南,章縱其孥使逸去。〈路振九國志:呂師周父珂以勇敢事楊行密,累有功,拜黑雲都指揮使。珂卒,師周代之,自言「三代將家不可保富貴」,每恣為盃的,醉必起舞,或擊節狂歌,慷慨泣下。行密聞而疑之,密使人偵其動靜。師周不自安,乃謀於綦章而奔湖南。據此則為渥所疑,非行密也。孥,音奴,子也。〉師周,揚州人也。

 

 양악이 부친상을 치르면서도 밤낮으로 술을 마시며 음악을 연주하게 하고 열 아름이나 되는 촛불을 밝혀놓고 격구를 하였는데, 촛불 하나의 경비가 수만이었다. 혹은 단기로 나가서 유람하였는데 좇는 사람들이 분주하게 도로를 질주하였지만 간 곳을 알지 못하였다.

 渥居喪,〈居其父行密之喪也。〉晝夜酣飲〈酣,戶甘翻,樂飲也,湛嗜也,應劭曰:洽也,張晏曰:中酒也。〉作樂〈句斷。〉然十圍之燭以擊毬,一燭費錢數萬。或單騎出遊,從者奔走道路,不知所之。〈從,才用翻。之,往也。〉

 

 좌· 우아지휘사인 장호와 서온이 울면서 간하자, 양악이 화가 나서 말하였다.

 "너희는 나를 인재가 아니라고 말하면서 어찌 나를 죽이고 스스로 이일을 하지 않는가?"

 두 사람이 두려워하였다.

 左、右牙指揮使張顥、徐溫泣諫,〈蜀註曰:牙者,旗名,執牙者因以名之。分左、右隊,故稱左、右牙。余謂牙兵以衛府牙。〉潯怒曰:「汝謂我不才,何殺我自為之!」二人懼。

 

 양악이 장사들을 선발하여 '동원마군'이라 호칭하고 가깝고 신임하던 사람들을 폭넓게 임명하여 장리로 삼았는데, 임명된 사람들이 권세를 믿고 교만하고 멋대로 하면서 공훈을 세운 옛 사람들을 능멸하였다. 장호와 서온이 은밀히 반란을 일으킬 것을 모의하였다. 양악의 아버지인 양행밀의 시기에는 친군 수천 명이 아성 안에 군영을 두고 있었는데, 양악이 밖으로 옮겨 나가면서 그 땅을 사장(射場: 활터)으로 삼았으니, 장호와 서온은 이로 말미암아 두려운 것이 없었다.

 渥選壯士,號「東院馬軍」,廣署親信為將吏;所署者恃勢驕橫,〈橫,戶孟翻。〉陵蔑勳舊。顥、溫潛謀作亂。渥父行密之世,有親軍數千營於牙城之內,〈蜀註曰:古者軍行有牙,尊者所在。後人因以所治為衙,曰牙城,即衙城也。〉渥遷出於外,以其地為射場,顥、溫由是無所憚。〈史言楊渥自去其爪牙。〉

 

 양악이 선주에 진주하면서 지휘사인 주사경· 범사종· 진번에게 명령하여 친병 3천을 거느리게 하였고, 자리를 승계하게 되자 소환하여 광릉(양주)으로 돌아오게 하였다. 장호와 서온이 세 장수로 하여금 진배를 좇아서 강서를 공격하게 하고 이어서 홍주(남창)를 지키면서 반란을 모의하였다고 무고하니 별장 진우에게 명령하여 가서 그를 죽이게 하였다.

 渥之鎮宣州也,〈天祐元年,楊渥鎮宜州,二年召為嗣。〉命指揮使朱思勍、范思從陳璠將親兵三千;〈勍,渠京翻。璠,音番。〉及嗣位,召歸廣陵。顥、溫使三將從秦裴擊江西,因戍洪州,誣以謀叛,命別將陳祐往誅之。〈史言張顥、徐溫又翦去渥之爪牙。〉

 

 진우가 샛길로 배의 속도로 달려가서 엿새 만에 홍주에 도착하여 미복을 하고 짧은 병기를 품고서 지름길로 진배의 장막 속으로 들어가니 진배가 크게 놀라자 진우가 그에게 연고를 설명하고, 마침내 주사경 등을 불러 술을 마시면서 진우는 주사경 등의 죄를 헤아리고 그들을 붙잡아서 목을 베었다. 양악이 세 장수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장호와 서온을 더욱 시기하여 그들을 죽이려고 하였다.

 祐間道兼行,〈間,古莧翻。〉六日至洪州,微服懷短兵徑入秦裴帳中,裴大驚,祐告之故,〈告之以所以徑入之故。〉乃召思勍等飲酒,祐數思勍等罪,〈數,所具翻;下因數同;俗從所主翻。〉執而斬之。渥聞三將死,益忌顥、溫,欲誅之。

 

 정월 9일에 양악이 새벽에 일을 보고 있을 때에 장호와 서온이 아병 200을 인솔하고 칼날을 드러내어서 뜰 안으로 곧장 들어갔는데, 양악이 말하였다.

 "네가 과연 나를 죽이려고 하느냐?"

 대답하였다.

 "감히 그러는 것이 아니지만 왕의 좌우에 있는 사람들 가운데 정사를 어지럽히는 사람들을 죽이려고 할 뿐이오."

 丙戌,渥晨視事,顥、溫帥牙兵二百,露刃直入庭中,〈帥,讀曰率。〉渥曰:「爾困欲殺我邪﹖」對曰:「非敢然也,欲誅王左右亂政者耳!」

 

 이어서 양악이 신임하는 10여 명의 죄상을 헤아린 다음에 끌고 내려가서 철채찍으로 쳐서 죽였는데, 이를 '병간(兵諫)'이라고 불렀다. 제장들 가운데 그들과 더불어 하지 않는 사람은 장호와 서온이 점차 법령을 가지고 그들을 죽였으니, 이에 군정이 모두 두 사람에게 돌아갔고, 양악은 통제할 수 없었다.

 因數渥親信十餘人之罪,曳下,以鐵檛擊殺之〈檛,側瓜翻。考異曰:歐陽史:「四年正月,渥視事,陳璠等侍側。溫、顥攡牙兵入,拽璠等下,斬之。渥不能止,由是失政。」按璠等已死於宣州。今從十國紀年。按通鑑本文,「宣州」當作「洪州」。〉謂之「兵諫」。〈左傳:鬻拳強諫楚子,不從;臨之以兵,懼而從之,遂自刖也。張顥、徐溫以兵諫自文,鬻拳之罪人也。〉諸將不與之同者,顥、溫稍以法誅之,於是軍政悉歸二人,渥不能制。〈為顥、溫弒渥張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