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주전충이 소종을 시해하고 소선제를 앉혔다/白露節初候鴻雁萊5日(陰8/5)壬戌

solpee 2021. 9. 11. 11:16

《唐紀81 宗 天祐 元年》〈甲子, 904年

 

 ⑥. 애초에, 주전충이 봉상에서 거가를 영접하여 돌아와서, 덕왕 이유의 용모가 트이고 수려한 것을 보았는데, 또 나이가 이미 장성하여서 그를 싫어하고 사사로이 최윤에게 말하였다.

 "덕왕은 일찍이 황제의 자리를 침범한 적이 있는데, 어찌 다시 남겨 둘 수 있겠소! 공은 어째서 그것을 말하지 않는 거요?"

 ⑥. 初,朱全忠自鳳翔迎車駕還,〈見二百六十三卷天復三年。還,從宣翻,又如字。〉見德王裕眉目疏秀,且年齒已壯,惡之,〈惡,烏路翻。全忠欲篡,利立庸幼;德王裕貌秀而齒長,立之非己之利也,故惡之。〉私謂崔胤曰:「德王嘗奸帝位,〈謂爲劉季述所立也。事見二百六十二卷光化三年、天復元年。〉豈可復留!〈奸,音干。復,扶又翻。〉公何不言之!」

 

 최윤이 황제에게 말하였다. 황제가 주전충에게 물어보았는데, 주전충이 말하였다.

 "페하 부자 사이의 일을 신이 어찌 감히 몰래 의논하겠습니까? 이는 최윤이 신을 팔아먹은 것입니다."

 황제는 장안을 떠나면서부터 매일 예측할 수 없는 일이 있을 것을 근심하면서 황후오 함께 종일 술에 빠져 있었고, 혹은 서로 마주보고 눈물을 흘리기도 하였다.

 胤言於帝。帝問全忠,全忠曰:「陛下父子之間,臣安敢竊議,此崔胤賣臣耳。」〈史言朱全忠之狡猾。〉帝自離長安,日憂不測,與皇后終日沈飲,或相對涕泣。〈離,力智翻。是年正月壬戌,帝離長安而東。沈,持林翻。〉

 

 주전충은 추밀사 장현위로 하여금 황제를 엿보아 살피게 하니 움직이든 가만히 있든 모두 이를 알았다. 황제가 침착하게 장현위에게 말하였다.

 "덕왕은 짐이 사랑하는 아들인데 주전충이 무슨 연고로 굳이 죽이고자 하는가?"

 이어서 눈물을 흘러내리자, 가운데 손가락을 물어 뜯으니, 피가 흘러 내렸다. 장현위가 모두를 갖추어 주전충에게 말하니 주전충은 더욱 스스로 불안해 하였다.

 全忠使樞密使蔣玄暉伺察帝,動靜皆知之。〈伺,相吏翻。〉帝從容謂玄暉曰︰「德王朕之愛子,全忠何故堅欲殺之?」因泣下,齧中指血流。玄暉具以語全忠,〈史言昭宗之輕脫以速禍。從,千容翻。齧,五結翻。語,牛倨翻。〉全忠愈不自安。

 

 당시에 이무정· 양승본· 이극용· 유인공· 왕건· 양행밀·조광은은 격문을 보내고 왕래하였는데 모두 ㅇㄹ어나서 회복시키는 것을 이야기 거리로 삼았다.

 주전충이 바야흐로 군사를 이끌고 서쪽을 토벌하려 하였는데, 황제는 뛰어난 기재를 가지고 있어서 구웅에서 변고가 발생하게 될 것을 두려워하여, 어린 군주를 옹립하여서 손쉽게 선양하고 대신하려고 꾀하였다.

 마침내 판관 이진을 파견하여 낙양에 가게 하여 장현위와 좌룡무통군 주우공· 우룡무통군 씨숙종 등과 함께 이를 도모하게 하였다.

 時李茂貞、楊崇本、李克用、劉仁恭、王建、楊行密、趙匡凝移檄往來,皆以興復爲辭。全忠方引兵西討,〈西討岐、邠。〉以帝有英氣,恐變生於中,欲立幼君,易謀禪代。〈易,以豉翻。〉乃遣判官李振至洛陽,與玄暉及左龍武統軍朱友恭、右龍武統軍氏叔琮等圖之。

 

 8월 11일에 황제는 초전에 있었는데, 장현위가 용무아관 사태 등 100명을 가려 뽑아 밤에 궁궐문을 두드리면서 군전에 급히 올릴 것이 있다고 말하고 황제를 면전에서 알현하고자 하였다. 부인 배정일이 문을 열어 군사를 보고서 말하였다.

 "급한 주문을 올리는데 어찌하여서 병사들이 하는가?"

 사태가 그녀를 살해하였다. 장현위가 물었다.

 "지존은 어디 있느냐?"

 소의 이점영이 처마에 나와서 소리쳐 말하였다.

 "차라리 우리들을 죽일지언정 대가는 다치게 하지 마시오!"

 八月,壬寅,帝在椒殿,〈椒殿,皇后殿也。史炤曰︰椒殿亦猶椒房之稱。〉玄暉選龍武牙官史太等百人夜叩宮門,言軍前有急奏,〈軍前,謂西討行營軍前也。〉欲面見帝。夫人裴貞一開門見兵,曰︰「急奏何以兵爲?」史太殺之。玄暉問︰「至尊安在?」昭儀李漸榮臨軒呼曰︰〈呼,火故翻。〉「寧殺我曹,勿傷大家!」

 

 황제는 바야흐로 술에 취해 있다가 급히 일어나 홑옷 차림으로 기둥을 돌아서 도망갔지만, 사태가 뒤를 쫓아서 그를 시해(38세)하였다. 이점영이 몸으로 황제를 덮어서 가로 막자 사태는 역시 그녀를 살해하였다. 또 하후를 살해하려 하였으나 황후가 장현위에게 불쌍히 여겨 주기를 요구하여 마침내 그녀를 풀어주었다.

 帝方醉,遽起,單衣繞柱走,史太追而弒之。〈年三十八。〉漸榮以身蔽帝,太亦殺之。又欲殺何后,后求哀於玄暉,乃釋之。〈何后祈生於蔣玄暉而卒以玄暉死,屈節以苟歲月之生,豈若以身殉昭宗之不失節也!〉

 

 12일에 장현위가 조서를 고쳐서 이점영과 배정일이 군주를 시해하고 반역하였다고 하고, 의당 휘왕 이조를 세어 황태자로 삼아야 한다고 하였으며, 이름을 이축으로 바꾸고 감군국사로 삼았다.

 癸卯,蔣玄暉矯詔稱李漸榮、裴貞一弒逆,宜立輝王祚爲皇太子,更名柷,〈更,工衡翻。柷,昌六翻。〉監軍國事。〈監,古銜翻。〉

 

 또 황태후의 명령을 고쳐서 태자가 영구 앞에서 즉위하게 하였다. 궁중에서는 공포와 두려움으로 감히 소리 내어 곡을 하지 아니하였다.

 15일에 소선제가 즉위하였는데, 당시의 나이가 열세살이었다.

 又矯皇后令,太子於柩前卽位。宮中恐懼,不敢出聲哭。丙午,昭宣帝卽位,時年十三

 

 ⑫. 주전충은 주우공 등이 소종을 시해하였다는 소식을 듣고서 겉으로 놀란 체하고 소리 내어 곡을 하며 스스로를 땅에 내던지며 말하였다.

 "노복 녀석들이 나를 져버려서, 나로 하여금 악명을 만대까지 받게 하였구나!"

 10월 3일에 동도에 도착하여 재궁에 엎드려 큰소리로 곡을 하면서 눈물을 흘리고, 또 황제를 알현해서 자기의 뜻이 아니엇다고 스스로 진술하였고, 역적을 토벌하게 해달라고 요청하였다.

 ⑫. 朱全忠聞朱友恭等弒昭宗,陽驚,號哭〈號,戶刀翻。〉自投於地,曰︰「奴輩負我,令我受惡名於萬代!」癸巳,至東都,〈自軍前東還至東都。〉伏梓宮慟哭流涕,又見帝自陳非己志,請討賊。〈帝,昭宣帝也。賊,弒君之賊。〉

 

 이보다 앞서 거가를 호위하던 군사들 가운데 시장에서 쌀을 약탈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4일에 주전충이 주문을 올려 주우공과 씨숙종이 사졸들을 거두어들이지 못하여 시장을 침범하고 소란하게 하였으니, 주우공은 애주사호로 깎아내리고 성명을 회복시켜 이언위라 하고, 씨숙종은 백주사호로 깎아내리고 얼마 안 있다가 모두에게 자진하라는 명을 내렸다.

 先是,護駕軍士有掠米於市者,〈先,悉薦翻。〉甲午,全忠奏朱友恭、氏叔琮不戢士卒,侵擾市肆,〈以此爲二人罪,猶不敢昌然以弒逆之罪罪之。〉友恭貶崖州司戶,復姓名李彥威,〈李彥威,壽州人,客汴州,殖財任俠,朱全忠愛而子之。《考異》見二百五十九卷景福二年。〉叔琮貶白州司戶,尋皆賜自盡。

 

 이언위는 처형하기에 이르러서 크게 소리치며 말하였다.

 "나를 팔아서 천하의 비방을 막고 있지만 귀신을 어떻게 하려 하는가! 일을 처리하는데 이처럼 하고도 후손이 있기를 희망하느냐?"

  彥威臨刑大呼曰︰「賣我以塞天下之謗,〈呼,火故翻。塞,悉則翻。〉如鬼神何!行事如此,望有後乎!

 

 6일에 천평절도사 장전의가 와서 조현하였다.

 7일에 다시 주전충을 선무· 호국· 선의· 천평절도사로 삼고, 장전의를 하남윤 겸 충무절도사· 판육군제위사로 삼았다.

 15일에 주전충은 작별하고 진으로 가서 20일에 대량에 도착하였다.

 丙申,天平節度使張全義來朝。丁酉,復以全忠爲宣武、護國、宣義、天平節度使;以全義爲河南尹兼忠武節度使、判六軍諸衞事。〈朱兵忠兼忠武,張全義帥天平,見上卷上年。朱友恭、氏叔琮旣誅,以全義領宿衞。〉乙巳,全忠辭赴鎭,庚戌,至大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