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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광의 평론1/白露節初候鴻雁萊(18:53)2日(陰8/2)己未

solpee 2021. 9. 8. 16:11

《唐紀79 宗 天福 3年》〈癸亥, 903年

 

 ③. 사마광이 평하였다.

 ③. 臣光曰︰

 

 "환관이 권력을 사용하여 국가의 근심이 되었던 것은 그 유래가 오래되었습니다. 대개 궁금을 출입하기 때문에 군주는 어려서부터 어른이 되기까지 그들과 친근하고 익숙해져서 삼공육경처럼 들어가 알현하는 것이 때를 맞추거나 삼엄하여 떨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宦官用權,爲國家患,其來久矣。蓋以出入宮禁,人主自幼及長,〈長,知兩翻。〉與之親狎,非如三公六卿,進見有時,可嚴憚也。〈見,賢遍翻。〉

 

 그들 거운데 또 타고난 성품은 잘 알고 지혜는 날카로우며, 말을 하는 것에서는 말 재주가 좋고 유창하며, 안색을 관찰하고 기다리다가 속뜻과 취미를 받들고 영합하여서, 명령을 받으면 위반하고 거스를 걱정이 없고, 시중들게 하면 마음에 들고 만족할 만한 효과를 내는 사람이 있습니다.

 其間復有性識儇利,〈儇,許緣翻,智也,疾也,利也。〉語言辯給,〈【章︰十二行本「給」下有「善」字;乙十一行本同;孔本同;張校同。】〉伺候顏色,承迎志趣,〈伺,相吏翻。〉受命則無違迕之患,使令則有稱㥦之效。〈迕,五故翻。稱,尺證翻。㥦,與愜同,詰叶翻。〉

 

 스스로가 상지의 주군이어서 세상물정을 훤히 꿰뚫어 알고 근심을 염려하는 것도 깊고 멀며, 모시고 반드는 일 외에는 일을 맡기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면, 가까이 있는 사람은 날로 친햊고 멀리 있는 사람은 날로 소원해지며, 달콤한 말이나 공손한 말로 요청하여 때로는 따라주고, 물이 차차 젖어서 스며드는 것과 같아 살을 찌르는 하소연이 있을 때에 들어줍니다.

 自非上智之主,燭知物情,慮患深遠,侍奉之外,不任以事,則近者日親,遠者日疏甘言卑辭之請有時而從,浸潤膚受之愬有時而聽。〈《論語》︰孔子曰︰「浸潤之譖,膚受之愬,不行焉,可謂明也已矣。」朱熹《註》云︰浸潤,如水之浸灌,滋潤漸漬而不驟也。膚受,謂肌膚所受利害切身者也。

 

 이에 출척하거나 형벌이나 상을 내리는 정령들이 슬그머니 근습들에게 옮겨가더라도 스스로 알지 못하게 되니, 마치 향기로운 술을 맛다가 그 맛을 즐겨서 그가 취하였음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출척과 형상의 칼자루가 옮겨 갔는데도 국가가 위태롭고 어지럽지 않은 경우는 아직 없었습니다.

 於是黜陟刑賞之政,潛移於近習而不自知,如飲醇酒,嗜其味而忘其醉也。黜陟刑賞之柄移而國家不危亂者,未之有也。

 

 동한이 쇠약하면서 환관들이 교만하고 전횡을 한 것으로 가장 유명하지만 그러나 모두 군주의 권력을 빌렸고, 의지한 것은 성사(城社: 城狐社鼠의 준말로 성안에 사는 여우와 신단의 쥐 즉 권세를 이용해 먹는 여우와 쥐)였으니 천하를 혼탁하고 어지럽게 하엿지만 아직은 천자를 협박하여 마치 어린아이를 통제하는 것과 같이 하면서 폐위시키거나 남아 있게 하는 것을 손 안에 두고 동쪽에 두던 서쪽에 두던 그들의 속마음에서 나오게 한 것은 아니엇으며, 천자로 하여금 그들을 두려워하는 것이 마치 호랑이와 이리를 타가나 뱀과 살모사를 잡고 있는 것 같던 당 시대와 같은 것입니다. 그렇게 된 까닭은 다른 것이 아니라 한대에는 병권을 장악하지 않앗으나, 당대에는 병권을 장악하였었던 연고입니다.

 東漢之衰,宦官最名驕橫,〈橫,戶孟翻。〉然皆假人主之權,依憑城社,〈言宦官在人主左右有所依憑,如城狐、社鼠,不畏熏燒。〉以濁亂天下,未有能劫脅天子如制嬰兒,廢置在手,東西出其意,使天子畏之若乘虎狼而挾蛇虺〈虺,許鬼翻。〉如唐世者也。所以然者非他,漢不握兵,唐握兵故也。

 

 태종은 앞선 시대의 폐단을 거울삼아서 환관들을 매우 억제하여 4품직을 넘을 수 없게 하였습니다. 명황(현종)이 옛날의 장정을 무너뜨리기 시작하였는데 높이기도 하고 조장하기도 하였고, 만년의 시절에는 고력사로 하여금 장주를 살펴서 결재하게 하였고, 마침내는 장상의 진퇴에 이르는 것도 수시로 그와 논의하게 되고, 태자와 왕공이 모두 무서워하여 그를 섬겼으니, 환관들은 이때부터 대단하게 되었습니다.

 太宗鑒前世之弊,深抑宦官無得過四品。明皇始隳舊章,是崇是長,〈宋祁曰︰太宗詔內侍省不立三品官,以內侍爲之長,階第四,不任以事,惟門閤守禦、廷內掃除、稟食而已。武后時,稍增其人。至中宗,黃衣乃二千員,七品以上員外置千員,然衣朱紫者尚少。玄宗承平日久,財用富足,志大事奢,不愛惜賞賜爵位,開元、天寶中,宦官黃衣以上三千員,衣朱紫者千餘人,其稱旨者輒拜三品將軍,列戟于門,其在殿頭供奉,委任華重。長,知兩翻。〉晚節令高力士省決章奏,〈省,悉景翻。〉乃至進退將相,時與之議,自太子王公皆畏事之,宦官自此熾矣。

 

 중원의 기반이 흔들리게 됨에 이르러 숙종은 영무에서 군사를 거두어들이고, 이보국이 동궁에서 이전에 예속되었던 것을 이유로 군사모의에 참여하게 하니, 총애가 지나쳐서 교만해져 다시는 통제할 수 없었고, 드디어 사랑하는 아들과 자비로운 부친마저도 모두 감싸줄 수 없게 되었고, 근심과 두려움을 가지고 죽고 말았습니다.

 及中原板蕩,肅宗收兵靈武,李輔國以東宮舊隸參豫軍謀,寵過而驕,不能復制,〈復,扶又翻。〉遂至愛子慈父皆不能庇,以憂悸終。〈悸,其季翻。〉

 

 대종은 천조하고서 이어서 전철을 준수하니 정원진과 어조은이 잇달아서 용사하였고, 몰래 형상을 가지고 장난하면서 귀의 밝음을 막고 눈의 맑음을 가려서, 천자 보기를 마치 버려진 가죽옷과 같이 하였고, 재상을 능멸하기를 마치 노복이나 포로와 같이 하였습니다.

 代宗踐阼,仍遵覆轍,程元振、魚朝恩相繼用事,竊弄刑賞,壅蔽聰明,視天子如委裘,〈賈誼曰︰臥赤子天下之上而安,植遺腹,朝委裘,而天下不亂。孟康《註》云︰委裘若容衣,天子未坐朝,事天子裘衣也。朝,直遙翻;下同。〉陵宰相如奴虜。

 

 이리하여서 내진은 들어와서 조현하였다가 참소를 받아 사약이 내려졌고, 토번이 교외와 경기에 깊숙이 침략하였으나 숨기고 보고하지 않아서 낭패하여 섬으로 몽진하였으며, 이광필은 위기와 의심으로 분개하여 억울하다가 그의 생명을 잃게 되었고, 곽자의는 물리쳐지고 폐출되어 집에서 살다가 묘지도 보전하지도 못하였으며, 복고회은은 원통하고  억울하였으나 호소하지도 못하고 결국은 공훈과 공로를 포기하고 다시 반란하게 되었습니다.

 是以來瑱入朝,遇讒賜死;吐蕃深侵郊甸,匿不以聞,致狼狽幸陝;〈陝,失冉翻。〉李光弼危疑憤鬱,以隕其生;郭子儀擯廢家居,不保丘壟;僕固懷恩冤抑無訴,遂棄勳庸,更爲叛亂。〈更,工衡翻,改也。〉

 

 덕종이 처음에 옹립되어서는 자못 강상과 기율을 떨쳐 환관들이 약간 내쫓겼습니다. 하지만 흥원에서 돌아오고서 제장들을 시기하여 이성과 혼감을 믿을 수 없다 하며 그들의 군사를 모두 빼앗고, 도리어 두문장과 곽선명을 중위로 삼고 숙위를 담당하게 하였으니, 이로부터 태아의 칼자루는 그들의 손아귀에 떨어졌습니다.

 德宗初立,頗振綱紀,宦官稍絀。〈絀,讀曰黜。〉而返自興元,猜忌諸將,以李晟、渾瑊爲不可信,悉奪其兵,而以竇文場、霍仙鳴爲中尉,使典宿衞,自是太阿之柄,落其掌握矣。

 

 헌종 말년에 토돌승최가 적자를 폐위하고 서자를 옹립하여 진홍지의 변란을 만들게 하였습니다. 보력(경종)에는 여러 소인들을 허물없이 가까이하여 유극명과 소좌명이 반역을 일으켰고, 그 후에 강왕과 문· 무· 선· 의· 희· 소 여섯 황제는 모두 환관이 세운 바 되었으니, 형세는 더욱 교만하고 전횡하게 되었습니다.

 憲宗末年,吐突承璀欲廢嫡立庶,以陳洪志之變。寶曆狎暱羣小,〈璀,七罪翻。暱,尼質翻。〉劉克明與蘇佐明爲逆,其後絳王及文、武、宣、懿、僖、昭六帝,皆爲宦官所立,勢益驕橫。

 

 왕수징· 구사량· 전령자· 양복공· 유계술· 한전회는 그들 가운데서도 우두머리이자 걸출한 사람들이어서, 스스로 '정책을 수립하엿던 국가의 원로'라 칭하기에 이르렀고, 천자를 지목하여 문생이라 하고, 뿌리가 깊고 줄기가 견고하여서 병이 고황에 이르렀으니, 약으로 구할 수 없었습니다.

 王守澄、仇士良、田令孜、楊復恭、劉季述、韓全誨爲之魁傑,至自稱「定策國老」,目天子爲門生,根深蔕固,疾成膏肓,不可救藥矣!〈《左傳》︰晉侯疾病,求醫於秦,秦伯使醫緩爲之,未至。公夢疾爲二孺子曰︰「彼良醫也,懼傷我,焉逃之?」其一曰︰「居肓之上,膏之下,若我何!」醫至,曰︰「疾不可爲也,在肓之上,膏之下,攻之不可,達之不及,藥不至焉,不可爲也。」肓,音荒,鬲也。心下爲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