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희종 死亡 昭宗卽位/大暑節末候大雨時行(때때로 큰비)5일(陰6/28)丙戌

solpee 2021. 8. 5. 11:43

《唐紀71 僖 文德 元年》〈戊申, 888年

 

 ⑧. 위박절도사 낙언정이 교만하고 멋대로 불법을 저지르며 6개 주의 백성을 징발하여 나성을 쌓앗는데, 사방 80리가 되어 사람들이 그 부역을 괴로워하였고, 그의 아들인 낙종훈이 더욱 흉측하고 험악하여 이미 왕탁을 죽이자, 위인들은 모두 그를 미워하였다. 낙종훈이 망명자 500여 명을 모아서 친위병으로 만들어 그들을 '자장'이라고 하였다.

 ⑧. 魏博節度使樂彥禎,驕泰不法,發六州民〈六州,魏、博、貝、相、澶、衞。〉築羅城,方八十里,〈羅城,魏州羅城也。〉人苦其役;其子從訓,尤凶險;旣殺王鐸,〈事見上卷中和四年。〉魏人皆惡之。〈惡,烏路翻。〉從訓聚亡命五百餘人爲親兵,謂之子將,

 

 아병들은 그것을 의심하고 왁자지껄하며 불안해하자, 낙종훈이 두려워하여 더욱 옷을 갈아입고 도망쳐 나가 가까운 현에 머물렀는데, 낙언정이 그 때문에 상주 자사로 삼았다. 낙종훈이 사람을 보내 위에 이르러 갑옷과 무기· 금과 비단을 나르도록 하였는데, 길에서 이리저리 뒤섞이자 아병들은 더욱 의심하엿다. 낙언정도 두려워 그 자리에서 피하게 해달라고 청하고 용흥사에 머물면서 승려가 되었는데, 무리들이 도장 조문변을 추천하여 지유후사로 삼았다.

 牙兵疑之,籍籍不安;〈魏博牙兵始於田承嗣,廢置主帥率由之。今樂從訓復置親兵,牙兵疑其見圖,故不安。將,卽亮翻。〉從訓懼,易服逃出,止於近縣,彥禎因以爲相州刺史。從訓遣人至魏運甲兵、金帛,交錯於路,牙兵益疑。彥禎懼,請避位,居龍興寺爲僧,〈中和三年,樂彥禎得魏博,至是而敗。《考異》曰︰《舊傳》︰「彥禎危懼而卒。」《實錄》︰「彥禎懼,自求避位,退居龍興寺,軍衆迫令爲憎。」《舊紀》︰「魏博軍亂,逐彥禎。」若卒,不應云逐。今從《實錄》。〉衆推都將趙文㺹知留後事。〈㺹,皮變翻。〉

 

 낙종훈이 군사 3만을 이끌고 성 아래에 이르렀는데 조문편이 나가 싸우지 않으니 무리들이 다시 그를 죽이고 아장인 귀향 사람 나홍신을 지유후사로 추천하였다. 이에 앞서 사람들에게 '흰 수염 있는 노인을 만났는데 나홍신이 땅의 주인이 될 만하다고 말하였다.' 라는 말이 돌았다. 조문편이 이미 죽자, 무리들이 모여서 부르짖어 말하였다.

 從訓引兵三萬至城下;文㺹不出戰,衆復殺之,〈復,扶又翻。〉推牙將貴鄕羅弘信知留後事。先是,人有言「見白須翁,言弘信當爲地主者」,〈先,悉薦翻。〉文㺹旣死,衆羣聚呼曰︰〈呼,火故翻。〉

 

 "누가 절도사라는 것을 되려고 하는 사람입니까?"

 나홍신이 소리에 맞추어 나와 대답하였다.

 "흰 수염 달린 노인이 이미 나에게 명하였도다!"

 무리들이 둘러 보았다.

 "좋습니다."

 드디어 그를 세웠다. 나홍신이 병사를 이끌고 나가 낙종훈과 싸워 그를 패배시켰다. 낙종훈이 나머지 무리들을 거두어 내황을 지켰는데, 위인들이 그곳을 포위하였다.,

 「誰欲爲節度使者?」弘信出應曰︰「白須翁已命我矣。」衆環視曰︰「可也。」遂立之。弘信引兵出與從訓戰,敗之。〈《舊書‧帝紀》書是年魏博軍亂,逐其帥樂彥禎。彥禎子相州刺史從訓帥衆攻魏州,牙軍立其小校羅宗弁爲留後,出兵拒之。蓋幷趙文㺹、羅弘信姓名爲一人。敗,補邁翻。〉從訓收餘衆保內黃,〈內黃,漢縣,時屬魏州。《九域志》︰縣在州西南一百二十四里。宋白曰︰魏以河北爲內,河南爲外,以陳留有外黃,此爲內黃。故縣城在今縣西北十九里。〉魏人圍之。

 

 이에 앞서 주전충은 곧 채주를 토벌하려고 압아 뇌업을 파견하여 은 1만 냥으로 뮈주에서 쌀을 사들일 것을 청하였으며, 아병들이 이미 낙언정을 쫓아내고 관에서 뇌업을 죽이고, 낙종훈이 이미 패배하자 마침내 주전충에게 구원해주기를 구하였다.

 先是,朱全忠將討蔡州,遣押牙雷鄴以銀萬兩請糴於魏;〈先,悉薦翻。〉牙兵旣逐彥禎,殺鄴於館。從訓旣敗,乃求救於全忠。

 

 

 ⑨. 애초에, 하양절도사 이한지가 장전의와 팔뚝에 새겨서 맹세를 하고 서로가 매우 기뻐하였다. 이한지는 용맹하지만 꾀는 없고 성품은 또한 탐욕스럽고 포학해서 속으로 장전의를 가볍게 보고, 그가 근검하고 농사에 힘쓴다는 것을 듣고 웃으면서 말하였다.

 "이는 농가의 한 필부일 뿐이로다!"

 ⑨. 初,河陽節度使李罕之與〈【章︰十二行本「與」下有「河南尹」三字;乙十一行本同;孔本同;張校同。】〉張全義刻臂爲盟,相得歡甚。罕之勇而無謀,性復貪暴,〈復,扶又翻。〉意輕全義,聞其勤儉力穡,笑曰︰「此田舍一夫耳!」

 

 장전의는 그것을 듣고서도 거스른 것으로 여기지 않았다. 이한지가 누차 곡식과 비단을 요구하자 장전의는 그것을 모두 주었는데, 이한지는 요구하는 것이 만족할 줄 몰라 하남으로는 공급할 수 없게 되어 조금도 바라는 대로 되지 않으면 번번이 하남에서 일을 주관하는 관리를 형틀에 채워 하양에 가서 곤장을 치니, 하남의 장좌가 모두 분노하였다.

 全義聞之,不以爲忤。〈忤,五故翻。〉罕之屢求穀帛,全義皆與之;而罕之徵求無厭,〈厭,於鹽翻。〉河南不能給,小不如所欲,輒械河南主吏至河陽杖之,〈《九域志》︰河南東北至河陽八十五里。〉河南將佐皆憤怒。

 

 장전의가 말하였다.

 "이 태위가 요구하는 것인데, 어떻게 주지 않겠는가!"

 힘을 다해 그것을 받들었고, 모습이 마치 그를 두려워하는 사람 같으니, 이한지는 더욱 교만해졌다. 이한지의 부속들은 농사를 짓지 않고 오로지 사납게 노략질한 것을 밑천으로 삼으니, 사람 잡아먹는 것을 양식으로 삼았는데, 이에 이르자 무리들을 모아서 강주를 공격하게 되었고, 강주 자사 왕우우는 그를 항복시켰고, 나아가 진주를 공격하자 호국절도사 왕중영이 몰래 장전의와 연결하여 그글 도모하였다.

 全義曰︰「李太尉〈【章︰十二行本「尉」作「傅」;乙十一行本同。】〉所求,柰何不與!」竭力奉之,狀若畏之者,罕之益驕。罕之所部不耕稼,專以剽掠爲資,啗人爲糧,〈剽,妙翻。啗,徒濫翻。〉至是悉其衆攻絳州,絳州刺史王友遇降之;進攻晉州,護國節度使王重盈密結全義以圖之。

 

 장전의는 몰래 둔병을 발동하여 밤에 텅 빈 틈을 타고 하양을 습격하였는데, 날이 밝아올 때 삼성에 들어갔으며, 이한지는 담을 넘어 걸어서 도망치고 장전의는 그의 가족을 모두 포로로 잡았고 드디어 하양절도사를 겸하여 관장하게 하였다. 이한지는 택주로 달아나서 이극용에게 구원해 달라고 요청하였다.

 全義潛發屯兵,〈張全義尹河南,十八縣各置屯將以領屯兵,屯兵卽民兵也。〉夜,乘虛襲河陽,黎明,入三城,〈河陽有南城、北城、中潬城。〉罕之踰垣步走,全義悉俘其家,遂兼領河陽節度使。罕之奔澤州,〈《九域志》︰河陽北至澤州九十里。〉求救於李克用。

 

 

 ⑪. 3월 2일에 황상의 병이 다시 생겨 5일에 아주 위독해졌다. 황제의 동생인 길왕 이보가 어른스럽고 현명하여 여러 신하들의 촉망을 받앗다. 십군관군용사 양공복이 다른 동생인 수왕 이걸을 세울 것을 청하였는데, 이날 조서를 내려 이걸을 세워 황태제로 삼고 감군국사로 삼았다.

 ⑪. 己亥,上疾復作,〈復,扶又翻。〉壬寅,大漸。皇弟吉王保,長而賢,羣臣屬望。〈屬,之欲翻。〉十軍觀軍容使楊復恭請立其弟壽王傑;是日,下詔,立傑爲皇太弟,監軍國事。〈《考異》曰︰《唐年補錄》︰「僖宗御樓後,疾復作,暴崩。楊復恭等祕喪不發,時十六宅諸王從行,乃於六宅中推帝爲監國。帝之上有盛王、儀王,皆懿宗之子,帝居六宅之第三人。」《舊紀》︰「羣臣以吉王最賢,又在壽王之上,將立之,唯楊復恭請以壽王監國。」按昭宗,懿宗第七子。吉王保,第六。《新》、《舊傳》懿宗八子,無盛王、儀王。今從《舊紀》。〉

 

 우군중위 유계술이 병사를 보내 6왕택에서 이걸을 맞이하여 소양원에 들어가 살게 하고, 재상 이하 모두가 나아가 그를 알현하였다. 6일에 황상이 영부전에서 사망(사마광 스스로가 통일된 황제만 붕어를 썼으므로 희종의 10분 20열된 나라였다 하여 사망으로 바꾼다)하였다. 유제로 태제 이걸의 이름을 이민으로 바꾸고 위소도를 섭총재로 하였다.

 右軍中尉劉季述遣兵迎傑於六王宅,〈帝兄弟八人,侹早薨,見王六人,居六王宅。〉入居少陽院,〈少,詩照翻。〉宰相以下就見之。癸卯,上崩於靈符殿。〈年二十七。〉遺制,太弟傑更名敏,〈更,工衡翻。〉以韋昭度攝冢宰。

 

 소종이 즉위하였는데 신체와 용모가 아름다워 영웅의 기개가 있고 문학을 좋아하였으며, 희종의 권위와 명령이 떨치지 않아 조정은 날로 낮아졌지만, 전조 때의 충열한 것을 회복시키려는 뜻을 가지고 있어서 대신들을 높여 예의를 차리고, 꿈에서도 현명한 사람과 호걸을 생각하였으므로 천조한 처음에는 안팎에서 기뻐하였다.

 昭宗卽位,體貌明粹,有英氣,喜文學,〈喜,許記翻。〉以僖宗威令不振,朝廷日卑,有恢復前烈之志,尊禮大臣,夢想賢豪,踐阼之始,中外忻忻焉。〈人心厭亂思治,承僖宗之後,見昭宗之初政,意其足以有爲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