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黃巢의 장안 퇴출/小暑節末候鷹乃學習5日(陰6/12)庚午

solpee 2021. 7. 20. 20:17

《唐紀71 僖 中和 3年》〈癸卯, 883年

 

 ⑪. 황소의 군사들은 자주 패배하고 먹을 것도 다시 다하니 속으로 도망갈 계책을 세우고 군사 3만을 발동하여 남전으로 가는 길을 꽉 잡고 3월 6일에 상양을 파견하여 군사를 거느리고 화주를 구원하게 하였는데, 이극용과 왕중영이 군사를 이끌고 영구에서 맞아 싸워서 이를 격파하였다.

 ⑪. 黃巢兵數敗,食復盡,數,所角翻。復,扶又翻。陰爲遁計,發兵三萬搤藍田道,搤藍田道,所以通自武關南走之路。搤,於革翻。三月,壬申,遣尚讓將兵救華州;李克用、王重榮引兵逆戰於零口,破之。

 

 이극용은 나아가서 위교에 진을 치고 기병을 위수의 북쪽에 두고서 이극용은 매일 밤에 그의 장수인 설지훈과 강군립으로 하여금 몰래 장안으로 숨어 들어가서 쌓아 놓은 것들을 불사르고 오랑캐들을 목 베고서 돌아오게 하니, 도적들 가운데서는 크게 놀랐다.

 克用進軍渭橋,騎軍在渭北,克用每夜令其將薛志勤、康君立潛入長安,燔積聚,斬虜而還,零口在京兆昭應縣。積,子智翻。聚,從遇翻,又慈庾翻。還,從宣翻。賊中大驚。

 

 ⑱. 황소가 그의 날랜 장수인 맹해로 하여금 1만 명을 거느리고 선봉에 서게 하고 채주를 공격하니 절도사 진종권이 맞아 싸웠으나 패배하였고, 도적들이 나아가서 그 성을 공격하이 진종권은 드디어 황소에게 칭신하고 그와 군사를 연합하였다.

 ⑱. 黃巢使其驍將孟楷將萬人爲前鋒,擊蔡州,節度使秦宗權逆戰而敗;賊進攻其城,宗權遂稱臣於巢,與之連兵。

 

 애초에, 황소가 장안에 있었는데 진주 자사인 완구 사람 조주가 보좌하는 장수들에게 말하였다.

 "황소는 장안에서 죽지 않고 반드시 동쪽으로 도망갈 것이니 진주는 그가 부딪치는 곳이다. 또 황소는 본디 충무와는 원수이니, 이를 위하여 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

 初,巢在長安,陳州刺史宛丘趙犨謂將佐曰︰〈宛丘,後魏項縣也,隋改曰宛丘,唐屬陳州;管下項城縣,乃東魏僑置秣陵縣地,隋改曰項城。犨,昌牛翻。〉「巢不死長安,必東走,陳其衝也。且巢素與忠武爲仇,〈巢自初起,與宋威、張自勉等累戰,皆忠武兵也。〉不可不爲之備。」

 

 마침내 성과 참호를 완성하고 갑옷과 무기를 수선하며 꼴과 곡식을 쌓았으며, 60리 안에서 백성들 가운데 물자와 식량을 가지고 있는 것은 모두 이를 옮겨서 성에 들여놓게 하였다. 용사를 많이 모집하여 그의 동생인 조창후와 아들인 조록림으로 하여금 나누어 이를 거느리게 하였다.

 乃完城塹,繕甲兵,積芻粟;六十里之內,民有資糧者,悉徙之入城。多募勇士,使其弟昶珝、子麓林分將之。〈將,卽亮翻。〉

 

 맹해가 이미 채주를 점령하고 군사를 옮겨서 진주를 치고 항성에 진을 쳤는데, 조주는 먼저 약한 것을 보여주고 그들이 방비가 없다는 것을 엿보게 하였다가 그들을 습격하여 죽이고 붙잡고 하여 거의 다 없앴으며, 맹해를 사로잡아 그를 참수하였다.

 황소는 맹해가 죽엇다는 소식을 듣고 놀라고 두려워서 모든 무리를 은수(하남 항성 서북쪽을 경유)에 주둔시켰고, 6월에 진종권과 군사를 합쳐서 진주를 포위하고 참호를 다섯 겹으로 파서 백방으로 그곳을 공격하였다. 진주 사람들이 크게 두려워하니 조주가 그들을 타일러 말하였다.

 孟楷旣下蔡州,移兵擊陳,軍于項城;犨先示之弱,伺其無備,襲擊之,殺獲殆盡,生擒楷,斬之。巢聞楷死,驚恐,悉衆屯溵水,〈珝,況羽翻。項城在陳州東南,溵水在西南。〉六月,與秦宗權合兵圍陳州,掘塹五重,〈重,直龍翻。〉百道攻之。陳人大恐,犨諭之曰︰

 

 "충무군은 평소에 의롭고 용감하여 진주를 센 군사라고 부른는데, 하물며 우리 집은 오래 진주의 녹을 먹고 있는데, 맹세코 이 주와 함께 살든지 죽든지 할 것이다. 남자는 마땅히 죽음 가운데서 살길을 찾는 것이고, 역시 나라를 위하여 죽는 것이 도적에게 신하가 되어서 사는 것보다 낫지 않겠는가? 다른 뜻이 있는 사람은 참수 할 것이다."

 자주 정예의 병사를 이끌고 문을 열고 나와서 도적들을 쳐서 그들을 격파하였다.

 「忠武素著義勇,陳州號爲勁兵,況吾家久食陳祿,誓與此州存亡。男子當求生於死中,且徇國而死,不愈於臣賊而生乎!有異議者斬!」數引銳兵開門出擊賊,破之。〈數,所角翻。〉

 

 황소는 더욱 화가 나서 주의 북쪽에 군영을 만들고 궁실과 백사를 세우고 오래 끌 계책을 만들었다. 이때에 백성들 사이에서 쌓아 놓은 것이 없어졌는데, 도적들이 사람을 약탈하여 양식으로 삼으니, 산 채로 맷돌 속에 넣어서 뼈까지 이를 먹었는데, 양식을 공급하는 곳을 불러서 '舂磨寨(용마채: 사람을 가루로 만드는 군대)라고 하였다. 군사를 풀어서 사방으로 약탈하였는데, 하남· 허· 여· 당· 등· 맹· 鄭· 변· 조· 복· 사· 연 등 수십 주로부터 모두 그 해독을 입었다.

 巢益怒,營於州北,立宮室百司,爲持久之計。時民間無積聚,賊掠人爲糧,生投於碓磑,〈碓,都內翻。磑,五對翻。〉倂骨食之,號給糧之處曰「舂磨寨」。〈舂磨寨,卽設碓磑處。碓以舂,磑以磨。磨,莫臥翻。〉縱兵四掠,自河南、許、汝、唐、鄧、孟、鄭、汴、曹、濮、徐、兗等數十州,咸被其毒。〈此河南,謂洛州河南府。被,皮義翻。

 

 ㊴. 조주가 사람을 샛길로 파견하여 이웃 도에게 구원해 달라고 요구하였는데, 이에 주급· 시부· 주전충이 모두 군사를 이끌어서 그를 구원하였다. 주전충은 황소의 무리들과 녹읍에서 싸워서 그들을 패배시키고 2천여 급을 참수하고 드디어 군사를 이끌고 박주로 들어가서 그곳을 점거하였다.

 ㊴. 趙犨遣人間道求救於鄰道,〈間,古莧翻。〉於是周岌、時溥、朱全忠皆引兵救之。全忠與黃巢之黨戰於鹿邑,敗之,斬首二千餘級,遂引兵入亳州而據之。〈鹿邑,後魏陳留武平縣也,隋開皇十八年,更名鹿邑,唐屬亳州。《九域志》︰在州西一百三十里。敗,補邁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