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黃巢의 장안 점령 2./小暑節末候鷹乃學習3日(陰6/10)戊辰

solpee 2021. 7. 18. 15:20

《唐紀69 僖 光明 2年》〈庚子, 880年

 

 ⑨. 11월 25일에 장스범 등이 신채군의 노수를 거느리고 경사를 출발하였다. 신책군의 군사들은 모두 장안에 사는 부자들의 자식인데, 환관에게 뇌물을 주어 이름을 군적에 올려 놓고 품급과 하사품을 넉넉하게 받으며, 다만 화려한 의복을 입고 말을 성나게 하여 세력에 빙자하여 성질을 부렸지 아직 일찍이 전투하는 진지를 만들어 보지 않았다. 마땅히 출정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아버지와 아들이 모여서 눈물을 흘리고, 대부분 금과 비단을 가지고 病坊(병방: 가난하고 병든 사람을 모아놓은 마을)에 있는 가난한 사람을 고용하여 대신 가게 하니 왕왕 무기를 들 수 없었다.

 ⑨. 乙亥,張承範等將神策弩手發京師。〈將,卽亮翻。〉神策軍士皆長安富家子,賂宦官竄名軍籍,厚得稟賜,〈稟,給也。稟賜,猶言給賜也。〉但華衣怒馬,〈怒馬者,鞭之以發其怒而疾馳也。〉憑勢使氣,未嘗更戰陳;〈更,工衡翻。陳,讀曰陣。〉聞當出征,父子聚泣,多以金帛雇病坊貧人代行,〈唐置病坊於京城以養病人。《會要》︰開元五年,宋璟等奏︰「悲田病坊,從長安已來置使專知,乞罷之。」至二十二年,京城乞兒有疾病,分置諸寺病坊。至德二年,兩京市各置普救病坊。病坊之置,其來久矣。〉往往不能操兵。〈操,七刀翻。〉

 

 이날 황상은 장신문루에 나아가 친히 그들을 보냈다. 장승범이 말씀을 올렸다.

 "듣건대 황소는 수십만의 무리를 가지고 북을 치면서 서쪽으로 온다 하는데, 제극양은 주린 병졸 1만 명으로 관문 밖에 의지하고 있고, 다시 신을 보내어 2천 명으로 관문에 주둔하게 하였지만 아직 양향을 보낼 계책을 들어보지 못하였는데, 이것으로 적을 막으라 하니 신은 가만히 마음이 서늘합니다. 바라건대, 폐하께서 여러 동에 정예의 병사를 재촉하여 일찍이 계속하여 원조하여 주십시오."

 是日,上御章信門樓臨遣之。〈《考異》曰︰《新傳》曰︰「帝餞令孜章信門,賚遺豐優。」按令孜雖爲招討都統,賜節賚物,其實不離禁闥,是日所遣者承範等耳。《新傳》云餞令孜,誤也。〉承範進言︰「聞黃巢擁數十萬之衆,鼓行而西,齊克讓以飢卒萬人依託關外,復遣臣以二千餘人屯於關上,又未聞爲饋餉之計,以此拒賊,臣竊寒心。願陛下趣諸道精兵早爲繼援。」〈趣,讀曰促。〉

 

 황상이 말하였다.

 "경들은 차례대로 가시오. 군사들은 곧 도착할 것이오."

 27일에 장승범이 화주에 도착하였다. 마침 자사 배건여는 선흡관찰사로 옮겨졋는데, 군민이 모두 도망하여 화산으로 들어가서 성안은 텅 비었고, 주의 창고에는 오직 먼지와 쓰레기 그리고 쥐들의 흔적만 있었지만, 창고 안에는 오히려 쌀 1천여 곡이 있어서 군사들은 사흘치의 양식을 싸가지고 떠났다.

 上曰︰「卿輩第行,兵尋至矣!」丁丑,承範等至華州。會刺史裴虔餘徙宣歙觀察使,軍民皆逃入華山,城中索然,〈華,戶化翻。索,昔各翻。〉州庫唯塵埃鼠迹,賴倉中猶有米千餘斛,軍士裹三日糧而行。

 

 12월 1일에 장승범 등이 동관에 도착하여 숲속을 뒤져서 촌에 사는 백성 100명 정도를 찾아내서 돌을 나르고 물을 긷게 하며 막을 준비를 하였는데, 제극양의 군대와 더불어 모두 양식이 떨어지니 사졸들은 싸울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이날 황소의 선봉군이 관문 아래에 도착하였는데 흰 깃발이 들을 덮어서 그 끝을 보지 못하였고, 제극양이 더불어 싸웠는데 도적들은 조금 물러나다가 잠깐 사이에 황소가 도착하여 군사를 들어 크게 소리 지르는데, 그 소리는 河華를 뒤흔들었다.

 十二月,庚辰朔,承範等至潼關,搜菁中,〈菁中,草茂密處也。史炤曰︰林菁。〉得村民百許,使運石汲水,爲守禦之備;與齊克讓軍皆絕糧,士卒莫有鬬志。是日,黃巢前鋒軍抵關下,白旗滿野,不見其際,克讓與戰,賊小卻,俄而巢至,舉軍大呼,聲振河、華。〈呼,火故翻。華,戶化翻。華山臨河。言黃巢軍聲之盛,撼振河山也。〉

 

 제극양이 힘껏 싸워서 오시부터 시작하여 유시에 이르러 비로소 풀어졌고, 사졸들은 주림이 심하여 드디어 시끄럽게 떠들다가 영채를 불사르고 무너졌으며, 제극양은 달아나서 관문 안으로 들어왔다. 관문의 왼쪽에는 골짜기가 있는데, 보통 때에는 사람이 왕래하는 것을 금지하여서 세금 징수를 독점하게 하였는데, 이를 '금갱'이라고 불렀다. 도적이 갑자기 도착하니 관군은 이들을 막을 것을 잊었고,무너진 병사들은 골짜기에서 들어갔으며, 골짜기 안에 있던 수풀과 등나무 넝쿨이 뺵빽하기가 마치 옷감과 같았는데, 하룻저녁에 밟아서 탄탄대로가 되었다.

 克讓力戰,自午至酉始解,士卒飢甚,遂諠譟,燒營而潰,克讓走入關。關左有谷,平日禁人往來,以榷征稅,〈榷,訖岳翻。〉謂之「禁阬」。賊至倉猝,官軍忘守之,〈忘,巫放翻。〉潰兵自谷而入,谷中灌木壽藤茂密如織,〈灌木,叢生之木。壽藤,卽今之萬歲藤。〉一夕踐爲坦塗。

 

 장승범은 그들의 치중과 낭탁을 다 흩어서 사졸들에게 주고 사자를 파견하여 표문을 올려서 급한 상황을 알려 말하였다.

 "신이 경사를 떠나서 엿새가 되었는데, 갑졸은 아직 한 명도 늘지 않았고, 餽餉(궤향: 군량)은 그림자나 소리조차 아직 듣지 못하였습니다. 관문에 도착하는 날 거대한 도적들이 이미 오니, 2천여 명으로 60만 무리를 막게 되어 밖으로는 군사들이 주리고 무너져서 금갱을 밟아 열어 놓았습니다.

 承範盡散其輜囊以給士卒,〈輜囊,謂輜重、囊橐也。輜重,隨軍之物。囊橐,私裝也。〉遣使上表告急,稱︰「臣離京六日,〈離,力智翻。〉甲卒未增一人,餽餉未聞影響。到關之日,巨寇已來,以二千餘人拒六十萬衆,外軍飢潰,蹋開禁阬。〈蹋,與踏同。〉

 

 신이 지키지 못한 것은 鼎鑊(정확: 烹刑을 집행하는 솥 즉 팽형)이 되어도 달게 받겠지만 조정의 꾀를 냈던 신하들은 부끄러운 얼굴을 어디에 기댈 것입니까? 혹은 듣건대 폐하께서 이미 서쪽으로 순행하는 것은 논의하였다고 하는데 진실로 난여가 한 번 움직이면 위아래가 흙덩이처럼 무너집니다.

 臣之失守,鼎鑊甘心;朝廷謀臣,愧顏何寄!或聞陛下已議西巡,〈謂議幸蜀。〉苟鑾輿一動,則上下土崩。

 

 신이 감히 아직도 살아 있는 몸뚱이를 가지고 분발하여 죽기를 무릅쓰고 말씀 드리건대, 가까이 하고 친밀한 사람과 재신들과 더불어 깊이 논의하시어서 급히 군사를 징집하여 관문의 방어를 도와주심다면 고조와 태종의 업적은 거의 오히려 부지할 수 있을 것이며, 황소는 안록산이 망한 것을 잇게 하고, 보잘것없는 신은 가서한의 죽음을 넘어서이겠습니다."

 臣敢以猶生之軀奮冒死之語,願與近密及宰臣熟議,〈【章︰十二行本「議」下有「未可輕動」四字;乙十一行本同;孔本同;張校同。】〉〈近密,謂兩中尉、兩樞密。〉急徵兵以救關防,則高祖、太宗之業庶幾猶可扶持,〈幾,居依翻。〉使黃巢繼安祿山之亡,微臣勝哥舒翰之死!」

 

 2일에 도적이 급히 동관을 공격하니 장승범이 모든 힘을 다하여 이를 막았고, 인시부터 신시에 이르니 관문 안에는 화살이 다해서 돌을 던져서 이들을 쳤다. 관문 밖에는 하늘이 내려준 참호가 있었는데, 도적들은 백성들 1천여 명을 몰아서 그 안에 집어넣고 흙을 파서 그곳을 채우니 잠깐 사이에 곧바로 평평해졌고, 군사를 이끌고 건넜다. 밤중에 불을 놓아 관문의 누각을 태워 모두 없앴다. 장승범은 군사 800명을 나누어 왕사회로 하여금 금갱을 지키게 하였는데, 도착할 즈음에는 도적들이 이미 들어왔다.

 辛巳,賊急攻潼關,承範悉力拒之,自寅及申,關上矢盡,投石以擊之。關外有天塹,賊驅民千餘人入其中,掘土塡之,〈塹,七豔翻。掘,其月翻。塡,亭年翻。〉須臾,卽平,引兵而度。夜,縱火焚關樓俱盡。承範分兵八百人,使王師會守禁阬,比至,〈比,必利翻。〉賊已入矣。

 

 3일 아침에 도적들이 동관을 협공하니 관에 있던 병사들은 모두 무너졌고, 왕사회는 자살하였으며, 장승범은 변복을 하고 남은 무리를 인솔하고 벗어나서 도망하였다.

 야호천에 도착하여 봉천의 원병 2천이 이어 이른 것을 만났는데, 장승범이 말하였다.

 "너희들이 온 것이 늦엇다."

 박야와 봉상의 군대는 돌아서 위교로 갔는데, 모집한 새로운 군사들의 옷이 따뜻하고 깨끗한 것을 보고 화가 나서 말하였다.

 "이러한 무리들이 무슨 공로로 그러하며, 우리들은 도리어 얼고 주렸는가!"

 드디어 그것을 약탈하고 다시 도적들을 위하여 향도가 되어 장안으로 향하였다.

 壬午旦,賊夾攻潼關,關上兵皆潰,師會自殺,承範變服帥餘衆脫走。至野狐泉,遇奉天援兵二千繼至,承範曰︰「汝來晚矣!」博野、鳳翔軍還至渭橋,〈博野軍,卽穆宗長慶二年李寰帥以歸京師之兵也,見二百四十二卷。帥,讀曰率。〉見所募新軍衣裘溫鮮,〈新軍,卽田令孜所募坊市人以補兩軍者也。〉怒曰:「此輩何功而然,我曹反凍餒!」遂掠之,更爲賊鄕導〈鄕,讀曰嚮。〉以趣長安。〈趣,七喻翻。〉

 

 도적들이 동관을 공격하면서 조정에서는 전에 경조윤이었던 소름을 동도전운향사로 삼앗는데, 소름이 병들었다고 말하고 관직을 쉬게 해달라고 청하니 깎아내려서 하주사호로 삼았다.

 황소가 화주에 들어가서 그 장수인 교검을 남겨 두어 그곳을 지키게 하였다. 하중유후 왕중영이 도적들에게 항복을 받아 달라고 청하였다.

 4일에 제서를 내려서 황소를 천평절도사로 삼았다.

 賊之攻潼關也,朝廷以前京兆尹蕭廩爲東道轉運糧料使;廩稱疾,請休官,貶賀州司戶。〈賀州,漢蒼梧郡之臨賀縣,吳置臨賀郡,唐置賀州,京師東南四千一百三十里。〉

黃巢入華州,留其將喬鈐守之。〈鈐,其廉翻。〉河中留後王重榮請降於賊。〈降,戶江翻。〉癸未,制以巢爲天平節度使。

 

 5일에 한림학사승지· 상서좌승인 왕휘를 호부시랑으로 삼고 한림학사· 호부시랑인 배철을 공부시랑으로 삼아 나란히 동평장사로 하였다.

 노휴를 태자빈객· 분사로 하였다. 전령자는 황소가 이미 관중으로 들어갔다는 소식을 듣고 천자가 자기에게 책임지울까 두려워하여 마침내 노휴에게 죄를 돌리고 그를 깎아내리고, 왕휘와 배철을 천거하여 재상을 삼은 것이다. 이날 저녁에 노휴가 약을 먹고 죽었다. 배철은 배휴의 조카이다.

 甲申,以翰林學士承旨、尚書左丞王徽爲戶部侍郎,翰林學士、戶部侍郎裴淯爲工部侍郎,並同平章事。以盧攜爲太子賓客、分司。田令孜聞黃巢已入關,恐天子責己,乃歸罪於攜而貶之,薦徽、澈爲相。是夕,攜飲藥死。澈,休之從子也。〈裴休見二百四十九卷宣宗大中六年。〉

 

 백관들이 조정에서 물러나서 반란을 일으킨 병사들이 성으로 들어 왔다는 소식을 듣고 길을 나누어 숨었다. 전령자는 신책뱡 500명을 인솔하고 황제를 받들고 금관문으로 나왔는데, 오직 복· 목· 택· 수 네 왕과 비빈 몇 명이 좇아갔으며 백관들은 모두 이를 알지 못하였다. 황상은 바삐 말을 달리는데 밤낮을 쉬지 않으니 좇는 관리들이 대부분 따라잡을 수가 없었으며, 거가가 이미 가버리고 나자 군사들과 마을과 저자에 있던 백성들이 다투어 부고로 들어가서 금과 비단을 훔쳤다.

 百官退朝,聞亂兵入城,布路竄匿。〈布路,分路也。朝,直遙翻。〉令孜帥神策兵五百奉帝自金光門出,〈帥,讀曰率;下同。長安城西面三門,北來第一門曰開遠門,第二門曰金光門,第三門曰延平門。〉惟福、穆、澤、壽四王及妃嬪數人從行,〈從,才用翻;下皆同。〉百官皆莫知之。上奔馳晝夜不息,從官多不能及。車駕旣去,軍士及坊市民競入府庫盜金帛。

 

 포시에 황소의 선보장인 시존이 장안에 들어왔는데, 금오대장군 장직방이 문무관원 수십 명을 인솔하고 패상에서 황소를 영접하였다. 황소는 금으로 장식한 견여를 타고 그 무리들은 모두 머리를 풀어헤쳤는데 붉은 비다능로 묶고 수놓은 비단 옷을 입었으며, 무기를 들고서 따르고 갑옷을 입은 기병은 물 흐르는 것과 같았고, 치중은 길을 메웠는데 천리를 연락하는 것이 그치지 않았다.

 晡時,黃巢前鋒將柴存入長安,金吾大將軍張直方帥文武數十人迎巢於霸上。巢乘金裝肩輿,其徒皆被髮,約以紅繒,衣錦繡,執兵以從,甲騎如流,輜重塞塗,〈被,皮義翻。衣,於旣翻。騎,奇寄翻。重,直龍翻。塞,悉則翻。〉千里絡繹不絕。

 

 백성들이 길을 끼고서 모여서 관람하니 상양이 지나가면서 타일렀다.

 "황왕께서 군사를 일으킨 것은 본래 백성을 위한 것이어서 이씨가 너희들을 사랑하지 않는 것과 같지 않으니, 너희들은 다만 편안히 살면서 두려워하지 말라."

 民夾道聚觀,尚讓歷諭之曰︰「黃王起兵,本爲百姓,〈爲,于僞翻。〉非如李氏不愛汝曹,汝曹但安居無恐。」

 

 황소는 전령자의 집에 묶었고 그 무리들은 도적질을 오래하여 부유함을 이기지 못하였는데 가난한 사람을 보면 왕왕 그것을 주었다. 며칠을 살고 나서 각기 나가서 크게 노략질하고 저자를 불지르며 사람을 죽인 것이 거리에 가득한데, 황소도 금할 수가 없었으며, 더욱 관리들을 미워하여 붙잡으면 모두 그를 죽였다.

 巢館于田令孜第,其徒爲盜久,不勝富,〈館,古玩翻。勝,音升。〉見貧者,往往施與之。〈施,式豉翻。〉居數日,各出大掠,焚市肆,殺人滿街,巢不能禁;尤憎官吏,得者皆殺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