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黃巢의 장안 점령 1./小暑節末候鷹乃學習2日(陰6/9)丁卯

solpee 2021. 7. 18. 15:10

《唐紀69 僖 光明 元年》〈庚子, 880年

 

 ④. 애초에, 황소가 장차 회하를 건너려고 하자, 두로진이 천평의 절월을 황소에게 주고, 그가 진에 도착하기를 기다려서 그를 토벌하자고 요청하였다. 노휴가 말하였다.

 "도적은 만족할 줄 모르니 비록 그에게 절월을 주어도 그가 사납게 약탈하는 것을 중지시킬 수 없을 것이며, 급히 여러 도의 군사를 발동하여 사주에서 눌러주고 변주 절도사를 도통으로 삼으면 도적이 이미 앞으로 간다 해도 관중으로 들어올 수가 없을 것이니 반드시 돌아가서 회에서 노략질하다가 바닷가에서 구차하게 살 뿐이오."

 이를 좇았다.

 ④. 初,黃巢將渡淮,豆盧瑑請以天平節鉞授巢,黃巢初求天平節,豆盧瑑欲以是中其欲。俟其到鎭討之。盧攜曰︰「盜賊無厭,厭,於鹽翻。雖與之節,不能止其剽掠,剽,匹妙翻。不若急發諸道兵扼泗州,汴州節度使爲都統,賊旣前不能入關,必還掠淮、浙,偷生海渚耳!」從之。

 

 이미 그렇게 하였는데 회북에서 이어가면서 급한 상황을 알리니 노휴가 아프다고 말하면서 나오지 않자 경사는 크게 두려워하였다. 11월 10일에 동도에서 주문을 오려서 황소가 여주의 경계에 들어왔다고 하였다.

 旣而淮北相繼告急,攜稱疾不出,《考異》曰︰《驚聽錄》曰︰「宰臣豆盧琢奏︰『緣淮南九驛便至泗州,恐高駢固守城壘,不遮截大寇;黃巢必若過淮,落寇之計。又徵兵不及,須且誘之,請降節旄,授鄆州節度使,候其至止,討亦不難。』宰臣盧攜言之不可,奏以『黃巢爲國之患久矣,昨與江西節制,擁節而行,攻劫荊南。卻奪其節,但徵諸道驍勇,把截泗州,』因此不發內使,罷建雙旌,乃發使臣諸道而去。尋汴州、徐州兩道告急到京,報黃巢過淮,盧攜託疾不出。」按朝廷未嘗以江西節與巢,借使與之,安可復奪!此《驚聽錄》不足信也。京師大恐。庚申,東都奏黃巢入汝州境。

 

 ⑥. 여정파절제치도지휘사 제극양이 주문을 올려서 '황소가 스스로 천보대장군이라고 부르면서 여러 군대에 첩서를 돌리고 말하기를 각기 의당 보루를 지키고 나의 예봉을 범접하지 말라. 내가 장차 동도로 들어가고 곧 경읍에 이르러서 스스로 죄지은 사람을 문초할 것이고, 여러사람들에게는 간여하지 않겠다고 하였습니다.' 고 하였다.

 ⑥. 汝鄭把截制置都指揮使齊克讓奏黃巢自稱天補大將軍,轉牒諸軍云,「各宜守壘,勿犯吾鋒!吾將入東都,卽至京邑,自欲問罪,無預衆人。」〈言自欲問罪於朝廷,於衆人無預也。〉上召宰相議之。豆盧瑑、崔沆請發關內諸鎭及兩神策軍守潼關。

 

 11월 12일에 재상들을 불러서 이를 논의하게 하였다. 두로전과 최항은 관내에 있는 여러 진과 두 신책군을 발동하여 동관을 지키게 하라고 청하였다.

 황상이 영연전을 열어놓고 재상들을 마주하고 눈물을 흘렸다. 관군용사 전령자가 주문을 올렸다.

 "청컨대 좌우신책군에서 궁노수를 선발하여 동관을 지키게 하는데, 신이 스스로 도지휘네치파절사가 되도록 해 주기를 청합니다."

 壬戌,日南至。上開延英,對宰相泣下。〈大盜將至,無以禦之,君相相對灑泣,果何益哉!〉觀軍容使田令孜奏︰「請選左右神策軍弓弩手守潼關,臣自爲都指揮制置把截使。」

 

 황상이 말하였다.

 "시위하는 장사들은 정벌전쟁을 익히지 않았으니 아직은 사용하기에 부족할까 걱정이오."

 전령자가 말하였다.

 "옛날에 안록산이 반역하자 현종은 촉으로 행차하여 이를 피하였습니다."

 최항이 말하였다.

 "안록산의 무리는 겨우 5만 명이었으니 이를 황소에 비하는 것은 말할 거리가 안 됩니다.'

 두로전이 말하였다.

 "가서한은 15만의 무리를 가지고도 동관을 지킬 수가 없었는데, 지금 황소의 무리는 60만이고 동관에는 역시 가서한만큼의 군사도 없습니다. 만약에 전령자가 사직을 위한 게책을 세운다면 삼천의 우두머리 되는 신하들은 모두 전령자의 심복이니, 현종에 비한다면 대비가 되어 있습니다."

 上曰︰「侍衞將士,不習征戰,恐未足用。」令孜曰︰「昔安祿山搆逆,玄宗幸蜀以避之。」崔沆曰︰「祿山衆纔五萬,比之黃巢,不足言矣。」豆盧瑑曰︰「哥舒翰以十五萬衆不能守潼關,〈事見《玄宗》、《肅宗紀》。〉今黃巢衆六十萬,而潼關又無哥舒之兵。若令孜爲社稷計,三川帥臣皆令孜腹心,〈謂陳敬瑄、楊師立、牛勗也。帥,所類翻。〉比於玄宗則有備矣。」

 

 황상이 기뻐하지 않고 전령자에게 말하였다.

 "경은 역시 짐을 위하여 군사를 내어 동관을 지키시오."

 이날로 황상은 조신책군에 행차하여 장사들을 사열하였다.

 上不懌,〈僖宗雖曰童昏,此時此意,豈不知高枕京邑之爲樂,越在草莽之爲可憂也哉!禍至而後憂之,則無及矣。古之明主居安而思危,所以能常有其安也。〉謂令孜曰︰「卿且爲朕發兵守潼關。」〈爲,于僞翻。〉是日,上幸左神策軍,親閱將士。

 

 전령자는 좌군마군장군 장승범· 우군보군장군 왕사회· 좌군병마사 조가를 추천하였다. 황상이 세 사람을 불러서 보고 장승범을 병마선봉사 겸 파절동관제치사로 삼고, 왕사회를 제치관새양료사로 삼고, 조가를 구당채책사로 삼고, 전령자를 좌우신책군내외팔진급제도병마도지휘제치초토등사로 삼고, 비룡사 양복공을 부사로 삼았다.

 令孜薦左軍馬軍將軍張承範、右軍步軍將軍王師會、左軍兵馬使趙珂。〈珂,丘何翻。〉上召見三人,〈見,賢遍翻。〉以承範爲兵馬先鋒使兼把截潼關制置使,師會爲制置關塞糧料使,珂爲句當寨栅使,〈句,古候翻。當,丁浪翻。〉令孜爲左右神策軍內外八鎭及諸道兵馬都指揮制置招討等使,飛龍使楊復恭爲副使。

 

 13일에 제극양이 주문을 올렸다.

 "황소는 이미 동도의 경계에 들어갔으며 신은 군사를 거두어 물러나서 동관을 지키면서 관문 밖에 영채를 설치하였습니다. 장사들은 누차 전투를 껶엇고 오래도록 물자와 저축한 것이 부족하고 주현은 무너지고 깨졌으며, 사람과 연기는 거의 끊어졌고, 동서남북에 왕의 사람은 보이지 않고, 얼고 주린 사람만이 엇갈려 압박하고, 무기는 무디고 낡았고, 각기 고향에 있는 반려를 생각하니, 어느날 아침에 무너져 가버릴까 두려워서 빌건대 일찍 물자와 양식 그리고 원군을 파견해 주십시오."

 황상은 두 신책군에 있는 노수를 선발하여 2천800명을 얻어가지고 장승범 등으로 하여금 거느리고 그곳으로 가게 하였다.

 癸亥,齊克讓奏︰「黃巢已入東都境,臣收軍退保潼關,於關外置寨。將士屢經戰鬬,久乏資儲,州縣殘破,人煙殆絕,東西南北不見王人,凍餒交逼,兵械刓弊,〈刓,吾官翻,鈍也。〉各思鄕閭,恐一旦潰去,乞早遣資糧及援軍。」上命選兩神策弩手得二千八百人,令張承範等將以赴之。〈將,卽亮翻。〉

 

 17일에 황소가 동도를 함락시키니 유수 유윤장이 백관을 인솔하고 맞아서 알현하였는데, 황소가 입성하여 위로하는 말만 물을 뿐이었으니, 마을은 편안함 그대로였다. 유윤장은 유내의 증손이다.

 전령자가 주문을 올려서 거리와 시장에 있는 사람 수천 명을 모집하여 양군에 보충하였다.

 丁卯,黃巢陷東都,留守劉允章帥百官迎謁;巢入城,勞問而已,〈帥,讀曰率。勞,力到翻。〉閭里晏然。允章,迺之曾孫也。〈劉迺見二百三十卷德宗興元元年。允章可謂忝厥祖矣。〉田令孜奏募坊市人數千以補兩軍。

 

 21일에 섬주에서 주문을 올려서 동도가 이미 함락되었다고 하였다.

 22일에 전령자를 여· 낙· 진· 강· 동· 화의 도통으로 삼고, 좌· 우군을 거느리고 동쪽으로 가서 토벌하게 하였다. 이날 도적들은 괵주를 함락시켰다.

 辛未,陝州奏東都已陷。壬申,以田令孜爲汝、洛、晉、絳、同、華都統,將左、右軍東討。〈左、右神策軍。陝,失冉翻。華,戶化翻。〉是日,賊陷虢州。〈《九域志》︰虢州東北至陝州八十五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