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同昌公主의 사망/小暑節中候蟋蟀居壁4日(陰6/6)甲子

solpee 2021. 7. 15. 09:04

《唐紀68 懿宗 咸通 11年》〈庚寅, 870年

 

 ⑫. 가을, 8월 15일에 동창공주가 죽었다. 황상은 아파하고 애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여 한림의관 한종소 등 20여 명을 죽이고, 그의 친족 300여 명을 모두 잡아넣어 경조옥에 가두게 하였다. 중서시랑· 동평장사인 유첨이 간관들을 불러서 이것을 말하게 하였지만 간관 가운데 감히 일글 말할 사람이 없어서 마침내 스스로 말씀을 올렸다.

 ⑫. 秋,八月,乙未,同昌公主薨。上痛悼不已,殺翰林醫官韓宗劭等二十餘人,悉收捕其親族三百餘人繫京兆獄。中書侍郎、同平章事劉瞻召諫官使言之,諫官莫敢言者,乃自上言,〈上,時掌翻。〉以爲︰

 

 "삶이 길고 짧은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몫입니다. 어제 공주에게 병이 생겨 성스러운 분의 자비한 마음을 깊이 쓰이게 하였습니다. 한종소 등이 진료할 때에 오직 병이 치료되기만을 바라면서 바야흐로 의술을 준비하고 시술하는데 마음을 다하지 않은 일이 없었는데, 화복은 옮길 수가 없어서 끝내는 차질을 빚었으니, 원래에 그들이 마음쓴 상황은 역시 슬프고 불쌍히 여길 만합니다.

 「脩短之期,人之定分。昨公主有疾,深軫聖慈。宗劭等診療之時,〈診,止忍翻,候脈也。療,力照翻,治疾也。〉惟求疾愈,備施方術,非不盡心,而禍福難移,竟成差跌,〈跌,徒結翻。〉原其情狀,亦可哀矜。

 

 그러나 늙거나 어린 사람 300여 명을 형구를 채워서 가두니 물의가 비등하여 도로에서는 탄식하는 소리가 있습니다. 어찌하여 이치에 통달하고 천명을 아시는 군주께서 포학하고 밝지 못하다는 비방을 받으시겠습니까! 대개 편안하면서 위험한 일이 있을 것을 생각하지 않고 분노하면서 어려움을 생각하지 않았던 연고로 말미암았습니다. 엎드려서 바라건대, 성스러운 염려를 조금 돌이키시어서 갇혀 있는 사람들을 관대하게 하여 주십시오."

 황상이 소문을 보고 기뻐하지 않았다. 소첨은 또 경조윤 온장과 더불어 황상 앞에서 힘써 간언을 하였다. 황상이 화가 나서 그들을 질책하여 나가게 하였다.

 而械繫老幼三百餘人,物議沸騰,道路蹉歎。梧何以達理知命之君,涉肆暴不明之謗!蓋由安不慮危,忿不思難之故也。伏願少回聖慮,寬釋繫者。」上覽疏,不悅。瞻又與京兆尹溫璋力諫於上前;上大怒,叱出之。

 

《唐紀68 懿宗 咸通 12年》〈辛卯, 871年

 

 ①. 봄, 정월 14일에동창공주를 장사 지냈다. 위씨 집안사람들이 다투어 뜰에서 제사를 지내고 난 재를 빼앗아서, 그 속에 있는 금은을 가려냈다. 무릇 복장과 노리게는 물건마다 모두 120대 수레씩이었다. 비단에 수놓거나 주옥으로 의위와 명기를 만들었는데, 환하게 빛나는 것이 30여 리나 되었으며, 술 100곡과 먹일 떡을 낙타 40마리에 실어서 내려 주어 분부(体夫: 상여꾼)를 먹였다.

 ①. 春,正月,辛酉,葬文懿公主。〈同昌公主諡文懿。〉韋氏之人爭取庭祭之灰,汰其金銀。〈敕祭之於韋氏之庭,故曰庭祭。汰,淘也。〉凡服玩,每物皆百二十輿,以錦繡、珠玉爲儀衞、明器,輝煥三十餘里;〈《記‧檀弓》︰孔子謂爲明器者,知喪道矣,備物而不可用也。其曰明器,神明之也,何取於輝煥乎!〉賜酒百斛,餅餤四十橐駝,以飼体夫。〈餤,于廉翻,又徒甘翻。飼,祥吏翻。体,蒲本翻。体夫,轝柩之夫也。〉

 

 황상이 곽숙비와 더불어 공주 생각하기를 그치지 아니하니, 악공 이가급이 《歎百年曲(탄백년곡)》을 지엇는데, 그 소리는 처량하게 탄식하였고, 춤을 추는 사람은 수백 명이었으며, 내고에서 갖가지 보물을 꺼내어서 그들의 머리 장식으로 삼게 하였고, 거친 비단 800필을 가지고 땅에 깔았고, 춤이 파하고 나자, 주기가 땅을 덮었다.

 上與郭淑妃思公主不已,樂工李可及作《歎百年曲》,其聲悽惋,〈《歎百年曲》,歷敍人自少而壯,自壯而老,少時娟好,壯時追歡極樂,老時衰颯之狀;其聲悽切,感動人心。惋,烏貫翻。〉舞者數百人,發內庫雜寶爲其首飾,以絁八百匹爲地衣,舞罷,珠璣覆地。〈絁,式支翻。覆,敷救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