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裴休立漕法十條: 배휴가 조법 10조를 세우다./小暑節初候溫風始至(뜨거운 바람 불기 시작)1日(陰5/28)丙辰

solpee 2021. 7. 6. 16:42

《唐紀65 宣宗 大中 5年》〈辛未, 851年)

 

 ②. 병부시랑 배휴를 염철전운사로 삼았다. 배휴는 배숙의 아들이다. 태화 이래 해마다 장강과 회하로 운송하는 쌀이 40만 곳에 지나지 않았으나 이졸들이 침입하여 훔치고 침몰시켜서 배 가운데 위창에 도착하는 것은 열에 서넛이 되지 않아 유안의 법을 크게 떨어뜨렸다.

 ②. 以兵部侍郎裴休爲鹽鐵轉運使。休,肅之子也。〈裴肅見二百三十五卷德宗貞元十二年。〉自太和以來,歲運江、淮米不過四十萬斛,吏卒侵盜、沈沒,舟達渭倉者什不三四,大墮劉晏之法,〈沈,持林翻。墮,讀曰隳。劉晏法見二百二十六卷德宗建中元年。〉

 

 배휴가 그 폐단을 다 살펴서 '漕法(조법)' 10조를 확립하니 해마다 쌀을 운반하여 위창에 도착하는 것이 120만 곡이었다.

 休窮究其弊,立漕法十條,歲運米至渭倉者百二十萬斛。

 

*왜 인사가 만사인지 극명하게 보여준다. 배휴가 담당하자 300%의 세금이 더 걷힌 것이다. 국민을 착취한 것이 아니라 단순 호송관리로만 말이다!

 

 ⑦. 진사 손초가 말씀을 올렸다.

 "백성들은 남자는 밭을 갈고 여자는 베를 짜는데도 스스로 따뜻하고 배부르지 아니하나 여러 승려들은 편안하게 화려한 집에 앉아서 아름다운 옷을 입고 좋은 반찬을 먹으니, 대략 열 가호로 승려 한 명을 부양하지 못합니다. 무종은 그러한 것에 화를 내고 17만의 승려에게 머리를 기르도록 하였으니, 이것은 천하의 170만 호가 비로소 소생하여 숨 쉴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⑦. 進士孫樵上言︰「百姓男耕女織,不自溫飽,而羣僧安坐華屋,美女精饌,〈饌,雛晥翻,又雛戀翻。〉率以十戶不能養一僧。武宗憤其然,〈憤其然,猶言憤其如此也。〉髮十七萬僧,〈言使僧長髮復爲齊民也。〉是天下一百七十萬戶始得蘇息也。

 

 폐하께서 즉위한 이래로 다시 폐사를 수리하여 천하에는 큰 도끼와 작은 도끼의 소리가 끊이지 않고 승려가 된 것이 거의 그 옛날을 회복하였습니다. 폐하께서 설령 무종과 같이 쌓인 폐해를 업쇼애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어찌하여 이미 폐치된 것을 일으키십니까!

 陛下卽位以來,修復廢寺,天下斧斤之聲至今不絕,度僧幾復其舊矣。〈幾,居依翻。〉陛下縱不能如武宗除積弊,柰何興之於已廢乎!

 

 이 며칠 사이에 폐하께서 나라의 동문을 수리하려고 하다가 간관이 말씀을 올리니 황급히 공사를 그만드게 하였습니다. 지금 복구하는 사찰은 어찌 동문처럼 긴급하겠습니까? 공사를 하는데 들어가는 힘이 어찌 동문의 수고로움과 같겠습니까? 바라건대, 속히 밝으신 조서를 내리여 승려 가운데 아직 회복되지 않은 사람은 회복하지 말도록 하고 사찰 가운데 아직 수리되지 않은 것은 수리하지 말도록 하면 백성은 오히려 어깨를 쉴 수 있을 것입니다!"

 日者陛下欲脩國東門,諫官上言,遽爲罷役。〈爲,于僞翻。〉今所復之寺,豈若東門之急乎?所役之功,豈若東門之勞乎?願早降明詔,僧未復者勿復,寺未脩者勿脩,庶幾百姓猶得以息肩也。」

 

 가을 7월에 중사문하에서 주문을 올렸다.

 秋七月,中書門下奏︰

 

 "폐하께 석씨를 숭상하여 받들면 여러 아랫사람들은 분주하게 달려가지 않는 사람이 없을 것이며, 재력이 미치지 못하는 바가 있을까 두려워하니 이로 인하여 일을 만들어 사람을 어지럽힐 것인데, 바라건데 장리가 있는 곳에 맡겨 자신을 억제하여 절제하는 것을 더하도록 하십시오.

 「陛下崇奉釋氏,羣下莫不奔走,恐財力有所不逮,因之生事擾人,望委所在長吏量加撙節。〈撙,慈損翻。〉

 

 제도된 승려 역시 직업을 가졌던 사람을 맡겨서 선택하게 하고, 만약 흉악하고 거친 사람을 용납한다면 역시 도를 공경하는 것이 아닙니다. 향촌에 있는 불사는 청컨대 군사 활동이 철폐되는 날에 수리하게 하십시오."

 그 말을 좇았다.

 所度僧亦委選擇有行業者,〈行,下孟翻。〉若容凶粗之人,則更非敬道也。鄕村佛舍,請罷兵日脩。」〈時用兵以復河、湟。〉從之。

 

 ⑩.10월, 30일에 호부시랑 위모를 동평장사로 삼고, 여전히 판호부로 하였다. 이 당시에 황상의 춘추가 이미 많았으나(42), 아직 태자를 세우지 않았는데 신하들은 감히 말을 하지 못하였다. 위모가 들어가 감사하고 이어서 이야기 하였다.

 "지금 해내가 무사하나, 오직 아직 태자를 세우고 올바른 사람으로 하여금 돕고 인도하도록 하지 않았으니, 신은 가만히 걱정으로 여깁니다."

 또 눈물을 흘렸다. 당시의 사람들은 이것을 중히 여겼다.

 ⑩. 戊辰,以戶部侍郎魏謩同平章事,仍判戶部。時上春秋已高,未立太子,羣臣莫敢言。謩入謝,因言︰「今海內無事,惟未建儲副,使正人輔導,臣竊以爲憂。」且泣。時人重之。〈重之者,以其能言人所不敢言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