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自今債帥鮮矣: 지금부터 빚 진 장군이 줄어들겠다./芒種節末候反舌無聲5日 (陰5/11)己亥

solpee 2021. 6. 20. 05:54

《唐紀59 敬宗 寶曆 元年》〈丙午, 826年〉

 

 ⑲. 황상이 친왕이 되면서부터 깊이 두 조정의 폐단을 알았으므로 즉위하자 힘써 잘 다스려기를 찾았고, 사치스러운 것을 버리고 검소한 것을 따랐다. 조서를 내려서 궁녀가 직책을 맡고 있는 사람이 아니면 모두 궁에서 내보내도록 하였는데, 3천여 명을 내보냈다. 5방의 개와 매는 원화의 옛일을 기준으로 하여, 헤아려서 교렵하는데 필요한 것을 남겨두는  외에는 모두 이를 풀어주었다.,

 ⑲. 上自爲諸王,深知兩朝之弊,謂穆、敬兩朝也。朝,直遙翻;下同。及卽位,勵精求治,去奢從儉。治,直吏翻。去,羌呂翻。詔宮女非有職掌者皆出之,出三千餘人。五坊鷹犬,準元和故事,量留校獵外,悉放之。量,音良。

 

 유사가 궁궐에 공급하는 해마다 지급되던 물품은 나란히 정원의 옛일을 기준으로 하게하였다. 교방· 한림· 총감에서 하는 일 없이 밥을 먹고 있는 인원 1천 200여 명을 줄이고,  여러 관사에 새롭게 의복과 식량을 덧붙여 주던 것을 중지하게 하였다.

 有司供宮禁年支物,並準貞元故事。省敎坊、翰林、總監宂食千二百餘員,總監,苑總監也。停諸司新加衣糧。諸司,內諸司也。衣糧,敬宗濫恩所加也。

 

 어마방장과 근년에 따로 쌓아 놓은 전곡과 점유하고 있던 논은 모두 유사에게 돌려주도록 하였다. 먼저 組繡(조수: 옷감에 수 놓는것)와 彫鏤(조류:  물건에 조각하는 것) 같은 물건을 찾아 가져왔던 일은 모두 철폐하라고 선포하였다. 경종의 치세에는 매년조정을 돌보는 것이 한두 번데 지나지 않았는데, 황상이 비로소 옛날의 제도로 회복시켜서 매번 홀수일이면 조정을 돌보지 않는 일이 없었고,  대신과 여러 신하들을 마주하며 나라 다스리는 일을 물었는데, 오래 지나서야 그만 두었다.

 御馬坊場及近歲別貯錢穀所占陂田,占,之贍翻。悉歸之有司。先宣索組繡、彫鏤之物,悉罷之。鏤,郎豆翻。敬宗之世,每月視朝不過一二,上始復舊制,每奇日未嘗不視朝,奇,紀宜翻,隻也。唐制,天子以隻日視朝。對宰相羣臣延訪政事,久之方罷。

 

 대제관은 예전에 비록 이를 설치하였으나 불러서 마주 대한 적이 없었는데, 이에 이를 자주 불러들여 묻는 기회를 입게 되었다. 그리고 輟朝(철조: 천자, 대신이 병등으로 조회를 쉼)와 放朝(방조: 황제가 조회에 불참함)는 모두 짝수일로 하였는데, 안팎에서는 하나같이 서로 축하하며, 태평세월을 바랄 수 있을 것으로 보았다.

 待制官舊雖設之,未嘗召對,至是屢蒙延問。其輟朝、放朝皆用偶日,中外翕然相賀,以爲太平可冀。欲治之主不世出,人君初政,儻有一二足以新民視聽,天下之所望重矣。然卒無以副天下之望者,魏高貴鄕公、晉懷帝、唐德宗、文宗是也。

 

《唐紀59 文宗 太和 元年》〈丁未, 827年〉

 

 ④. 충무절도사 왕패가 사망하였다.  29일에 태복경 고우를 충무절도사로 삼았다.

 대력 이래로 절도사는 대부분 금군에서 나왔으니, 그래서 금군의 대장으로 자질이 높은 사람은 모두 두 배의 이자를 주갯다고 하며 부유한 집에서 전을 빌려서 중위에게 뇌물로 주었는데 움직엿다 하면 억만을 뛰어 넘었고, 그런 뒤에 자리를 얻었지만 일찍이 정치담당자에게서 비롯된 적이 없었는데, 진에 이르면 무겁게 거둬서 빚진 것을 갚았다.

 ④. 忠武節度使王沛薨。庚申,以太僕卿高瑀爲忠武節度使。〈瑀,音禹。〉

自大曆以來,節度使多出禁軍,其禁軍大將資高者,皆以倍稱之息貸錢於富室,〈倍者,子錢倍於本錢。稱者,子本相侔也。稱,尺證翻。〉以賂中尉,動踰億萬,然後得之,未嘗由執政;至鎭,則重斂以償所負。〈斂,力贍翻。〉

 

 왕패가 사망하자 배도와 위처후가 비로소 주문을 올려서 고우로 대신하도록 한 것이다. 조정의 안팎에서 서로 축하하였다.

 "지금부터 빚을 진 장수가 적어 지겠다."

 及沛薨,裴度、韋處厚始奏以瑀代之。中外相賀曰︰「自今債帥鮮矣!」〈帥,所類翻。鮮,息淺翻,少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