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五曰《辨邪》,以諷信任羣小: 소인을 믿고 맡기는 짓을 풍자/芒種節末候反舌無聲4日 (陰5/10)戊戌

solpee 2021. 6. 18. 20:11

《唐紀58 穆宗 長慶 4》〈甲辰, 824年〉

 

 ㉑. 장소의 난에서 마존량의 공로가 많았으나, 마존량은 스스로 자랑하지 않았으며, 권력을 내놓고 밖으로 나가게 해달라고 요구하니, 가을, 7월에 마존량을 회남감군사로 삼았다.

 ㉑. 張韶之亂,馬存亮功爲多,存亮不自矜,委權求出;秋,七月,以存亮爲淮南監軍使。

 

 

 ㉒. 하수절도사 이우가 들어와서 좌금오대장군이 되었는데, 25일에 말 150필을 바치자 황상이 이를 물리쳤다. 27일에 시어사 온조가 합문 안에서 아뢰며 이우가 칙령을 어기고 말을 올려 바쳤다고 탄핵하고, 법에 따라 처리할 것을 청하였는데, 황상이 조서를 내려서 그를 풀어주었다.

 ㉒. 夏綏節度使李祐入爲左金吾大將軍,〈夏,戶雅翻。〉壬申,進馬百五十匹;上卻之。甲戌,侍御史溫造於閤內奏彈祐違敕進奉,〈因入閤而奏彈之也。違敕者,謂違三月壬子敕也。〉請論如法,詔釋之。

 

 이우가 사람들에게 말하였다.

 "내가 밤중에 채주성에 들어가 오원재를 잡았어도, 아직 일찍이 마음을 움직인 적이 없었지만 오늘은 온어사에게서 간장이 떨어졌다."

 祐謂人曰︰「吾夜半入蔡州城取吳元濟,〈事見二百四十卷憲宗元和十二年。〉未嘗心動,今日膽落於溫御史矣!」

 

 

 ㉔. 용주 자사 울지에가 말씀을 올렸다.

 "우심산은 원래 신비롭고 기이한 곳으로 일컬어 왔는데, 패이고 잘린 곳이 있으니 청컨대 이를 고쳐서 틀어막게 하여 주십시오."(《道敎靈驗記》에 '이호를 용주 우심산에 장사지냈다.' 고 하였다. 무후가 천명을 바꾼 뒤에 이씨의 기를 죽이기 위하여 산맥을 뚫고 잘라내었다. 현종이 촉으로 파천시 소탄이라는 노인이 우심산 기를 잘라서 생긴 흉사라 했다.)

 ㉔. 龍州刺史尉遲銳上言︰「牛心山素稱神異,〈尉,紆勿翻。牛心山在龍州江油縣西一里。《道敎靈驗記》︰「李虎葬龍州之牛心山。」又《牛心山靈異記》︰「梁武陵王紀理益州,使李龍遷築城於牛心山。龍遷旣沒,卽葬於山側,鄕里爲立祠。武德中,改爲觀。武氏革命,鑿斷山脈。明皇幸蜀,有老人蘇坦奏曰︰『牛心山,國之祖墓,今日蒙塵之禍,乃則天掘鑿所致。』明皇卽命修塡如舊。明年,誅祿山,復宮闕。」以二《記》考之,則李虎與龍遷,卽一人也。然虎仕西魏,未嘗仕梁。〉有掘斷處,請加補塞。」〈塞,悉則翻。〉

 

 이를 따랐다. 절벽인 위험한 땅에서 수만 명을 부렸는데 동천은 이 때문에 피로하여 쇠약해졌다.

 從之。役數萬人於絕險之地,東川爲之疲弊。〈爲,于僞翻。〉

 

 

 ㉕. 9월 2일에 波斯의 이소사가 침향을 정자 짓는 재목으로 바쳤다. 좌습유 이한이 말씀을 올렸다.

 "이것이 瑤臺· 瓊室(요대· 경실: 夏 桀王이 玉으로 꾸민 누대와 방)과 무엇이 다릅니까?"

 황상이 비록 화가 났지만 역시 그를 우대하여 받아주었다. 이한은 이도명의 자손이다.

 ㉕. 九月,丁未,波斯李蘇沙獻沈香亭子材。左拾遺李漢上言︰「此何異瑤臺、瓊室!」上雖怒,亦優容之。〈杜佑曰︰林邑出沈香,土人破斷其木,積以歲年,朽爛而心節獨在,置水中則沈,故名沈香。《諸蕃志》︰沈香所出非一,形多異而名亦不一︰有如犀角者,謂之犀角沈;如燕口沈,謂之燕口沈;如附子者,謂之附子沈;如梭者,謂之梭沈;紋堅而理緻者,謂之橫陽沈。今其材可爲亭子,則條段又非諸沈比矣。〉漢,道明之六世孫也。〈道明,淮陽王道玄之弟。〉

 

 

 ㉖. 겨울, 10월 23일에 한림학사 위처후가 황상이 연회를 베풀며 노는 것을 간하였다.

 ㉖. 冬,十月,戊戌,翰林學士韋處厚諫上宴遊曰︰

 

 "선황께서는 술과 여색으로 병이 들고 수명을 단축시켰는데, 신은 그때에 죽음으로 간언을 하지 않았던 것은 폐하의 나이가 이미 열다섯 살에 이르렀던 까닭이었습니다. 지금 황제의 아드님은 겨우 한 살이니, 신이 어찌 감히 죽는 것을 두려워하여 간하지 않겠습니까?"

 「先帝以酒色致疾損壽,臣是時不死諫者,以陛下年已十五故也。今皇子纔一歲,臣安敢畏死而不諫乎!」

 

 황상이 그의 말에 감동하여 금채(채색 비단) 100필과 은기 4개를 내렸다.

 上感其言,賜錦綵百匹、銀器四。

 

《唐紀59 敬宗 寶曆 元》〈乙巳, 825年〉

 

 ③. 황상이 놀러 나가는 것이 정해진 때도 없고, 여러 소인배들과 친하고 가깝게 지내며, 조정을 살피는 것이 한 달에 두세 번이 되지 않아, 대신들도 나아가 알현할 수 있는 일이 드물었다.

 ③. 上遊幸無常,昵比羣小,〈昵,尼質翻,狎也,近也。比,毗至翻,黨也。〉視朝月不再三,〈朝,直遙翻;下同。〉大臣罕得進見。〈見,賢遍翻。〉

 

 2월 8일에 절서관찰사 이덕유가 《丹扆六箴(단의6잠》을 바쳤다.

 첫 번째는 宵衣(소의)라고 하였는데, 조정을 살피는 것이 드물고 늦는 것을 넌지시 이른 것이었다. 두 번째는 正服이라 하였는데, 황상의 복장과 거마가 도리에 어긋나고 다른 것을 넌지시 이른 것이었다.

 二月,壬午,浙西觀察使李德裕獻《丹扆六箴》︰〈扆,於豈翻。〉一曰《宵衣》,以諷視朝希晚;〈朝,直遙翻。〉二曰《正服》,以諷服御乖異;

 

 세 번째는 파헌이라 하였는데, 진귀한 노리개를 거두어들이고 요구하는 것을 넌지시 이른 것이었다. 네 번째는 납회라 하였는데, 바른 말을 업신여기고 돌아보지 않는다는 것을 넌지시 이른 것이었다.

 三曰《罷獻》,以諷徵求玩好;〈好,呼到翻。〉四曰《納誨》,以諷侮棄讜言;〈讜,音黨。〉

 

 다섯 번째는 변사라 하였는데, 여러 소인들을 믿고 맡긴 것을 넌지시 이른 것이었다. 여섯 번째는 방미라 하였는데, 황제가 가볍게 밖으로 나가 노는 것을 넌지시 이른 것이었다.

 五曰《辨邪》,以諷信任羣小;六曰《防微》,以諷輕出遊幸。

 

 그 가운데 《納誨箴(납회잠)》의 대략이다.

 其《納誨箴》略曰︰

 

 "한 유오(12대 성제)는 술에 빠져 가볍게 술잔을 비웠고, 위의 조예(2대 명제)는 사치하고 교만하여 능소궁을 지었다. 충성스러운 말을 하면 비록 거역하지는 않았으나, 훌륭한 말을 하여도 역시 따르지는 않았다. 모범을 보여도 귀를 막았으니, 이를 塞聰(색총: 총명을 틀어막음)이라고 하는 것이다."

 「漢驁流湎,舉白浮鍾;〈事見三十一卷漢成帝永始二年。成帝諱驁,音五到翻。〉魏叡侈汰,陵霄作宮。〈事見七十三卷魏明帝青龍三年。明帝諱叡。〉忠雖不忤,善亦不從。〈忤,五故翻。〉以規爲瑱,是謂塞聰。」〈《左氏外傳》︰楚靈王虐,白公子張驟諫。王曰︰「不穀雖不能用,吾憖置之於耳。」對曰︰「賴君之用也,故言;不然,犀犛兕象,其可盡乎!其又以規爲瑱也。」韋昭《註》曰︰「瑱,所以塞耳也。言四獸之牙角可以爲瑱難盡也,而又以規諫爲之乎!瑱,他甸翻。塞,悉則翻;下同。〉

 

 《防微箴(방미잠)》에서 말하였다.

 《防微箴》曰︰

 

 "반란을 일으키는 신하가 창궐하여 갑자기 헤아릴 수 없었다. 거은옷을 입고 있어 구별되지 않는데, 보슬에 닿아서야 비로소 넘어졌다. 백곡에 미행하는데 승냥이와 돼ㅑ지가 길을 막았다. 모습을 훔쳐보고 음식을 올리니 모두 경계하고 두려워 하였다."

 「亂臣猖獗,非可遽數。玄服莫辨,〈漢宣帝時,霍氏外孫任宣坐謀反誅。宣子章亡在渭城界,夜,玄服入廟,居廊間,執戟立廟門待。上至,欲爲逆,發覺,伏誅。〉觸瑟始仆。〈馬何羅事,見二十二卷漢武帝征和四年。〉柏谷微行,豺豕塞路。覩貌獻餐,斯可戒懼!」〈事見十七卷漢武帝建元三年。〉

 

 황상이 칭찬하는 조서를 내려 이에 답하였다.

 上優詔答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