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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종 사망, 목종 등극/芒種節末候反舌無聲2日 (陰5/8)丙申

solpee 2021. 6. 16. 16:16

《唐紀57 憲宗 元和 15》〈庚子, 820年〉

 

 ③. 애초에 좌군중위 토돌승최가 예왕 이운을 세워서 태자로 하려고 모의하였지만, 황상이 허락하지 않았다. 황상이 병이 나서 눕게 되자 토돌승최는 오히려 쉬지 않았는데, 태자가 이 소식을 듣고 걱정하다가 비밀리에 사람을 파견하여 사농경인 곽쇠에게 계책을 물었다. 곽쇠가 말하였다.

 ③. 初,左軍中尉吐突承璀謀立澧王惲爲太子,〈惲,於粉翻。〉上不許。及上寢疾,承璀謀尚未息,太子聞而憂之,密遣人問計於司農卿郭釗,釗曰︰

 

 "전하께서는 다만 효성을 다하여 신중히 하면서 이를 기다리시고 그 외의 일은 걱정하지 마십시오."

 곽쇠는 태자의 외삼촌이다.

 「殿下但盡孝謹以俟之,勿恤其他。」釗,太子之舅也。〈釗,音昭。〉

 

 황상은 금단을 복용하자 조급하여 화를 내는 일이 많았고, 좌우에 있던 환관들이 왕왕 죄를 얻고 죽은 사람도 있게 되자 사람들마다 스스로 위태롭게 느꼈는데 , 27일에 갑자기 붕어하였다.

 당시에 사람들은 모두 내상시 진홍지가 시역한 것이라고 말하였는데, 그 무리들은 이를 꺼려서 감히 해친 사람을 찾으려 하지 아니하고 다만 약에 중독되었다고 말하니, 밖에 있는 사람들은 밝힐 수가 없었다.

 上服金丹,多躁怒,左右宦官往往獲罪,有死者,人人自危;庚子,暴崩於中和殿。〈年四十三。〉時人皆言內常侍陳弘志弒逆,〈《考異》曰︰《實錄》但云「上崩於大明宮之中和殿」。《舊紀》曰︰「時帝暴崩,皆言內官陳弘志弒逆,史氏諱而不書。」《王守澄傳》曰︰「憲宗疾大漸,內官陳弘慶等弒逆。憲宗英武,威德在人,內官祕之,不敢除討,但云藥發暴崩。」《新傳》曰︰「守澄與內常侍陳弘志弒帝於中和殿。」裴廷裕《東觀奏記》云︰「宣宗追恨光陵商臣之酷,郭太后亦以此暴崩。」然茲事曖昧,終不能測其虛實,故但云暴崩。〉其黨類諱之,不敢討賊,但云藥發,外人莫能明也。

 

 중위 양수겸이 여러 환관인 마진담· 유승해· 위원소· 왕수징 등이 함께 태자를 세우고 토돌승최와 예왕 이운을 죽이고 좌·우신책군의 병사들에게 1인당 전 50민씩을 주었고, 좌·우오군에는 1인당 15민을 하사하였다.

 中尉梁守謙與諸宦官馬進潭、劉承偕、韋元素、王守澄等共立太子,殺吐突承璀及澧王惲,賜左、右神策軍士錢人五十緡,六軍、威遠人三十緡,〈按《新志》︰左、右龍武,左、右神武,左、右神策,號六軍。今神策軍賜錢旣厚而復有六軍,則明唐中世以後以左‧右羽林、龍武、神武爲六軍也。威遠別是一軍。〉左、右金吾人十五緡。

 

 윤정월 3일에 목종이 태극전의 동서에서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이날 한림학사  단문장 등과 병주낭중 설방과 가부원외랑 정공저를 불러서 사정전에서 마주하였다. 설방은 설융의 동생이고, 정공저는 소주 사람인데, 모두 태자의 시독이었다. 황상은 아직 정치적인 보고를 받지 아니하였는데, 설방과 정공저가 금중에서 상시하면서 기밀에 관한 일에 참여하였으며, 황상은 재상으로 삼으려 하였으나 두 사람은 굳게 사양하였다.

 閏月,丙午,穆宗卽位于太極殿東序。是日,召翰林學士段文昌等及兵部郎中薛放、駕部員外郎丁公著對于思政殿。〈以嗣君卽位于太極殿東序及下文輟西宮朝臨徵之,中和殿、思政殿疑皆在西內。《實錄》言憲宗崩于大明宮之中和殿,則在東內。〉放,戎之弟;〈薛戎見二百三十五卷德宗貞元十六年。〉公著,蘇州人;皆太子侍讀也。上未聽政,放、公著常侍禁中,參預機密,上欲以爲相,二人固辭。

 

 ⑨. 2월5일에 황상이 단봉문의 문루에 나아가서 천하를 사면하였다. 일을 마치고 문 안에서 성대하게 배우들을 벌려 놓고 여러 가지 유희를 하게하고 이를 관람하였다. 15일에 황상은 좌신책군에 행차하여 수박잡희를 관람하였다.

 ⑨. 二月,丁丑,上御丹鳳門樓,赦天下。事畢,盛陳倡優雜戲於門內而觀之。〈倡,音昌。〉丁亥,上幸左神策軍觀手搏雜戲。

 

 18일에 감찰어사 양우경이 소문을 올렸다.

 "폐하께서는 의당 이어가며 여러 신하들과 마주하시고 두루 살펴보고 물으시는데, 기운과 모습을 가지고 은혜를 베푸시면서 충성을 올리게 하는 것을 마치 이익을 좇는 것 같게 하고, 정치를 토론하는 것이 억울한 것을 호소하는 것 처럼 하는데, 이와 같이 하고도 승평의 시대에 이르지 못하였다는 사람은 아직 없습니다."

 庚寅,監察御史楊虞卿上疏,以爲︰「陛下宜延對羣臣,周徧顧問,惠以氣色,使進忠若趨利,〈趨,七喻翻。〉論政若訴冤,如此而不致升平者,未之有也。」

 

 형산 사람 조지미가 역시 소문을 올려서 황상이 놀며 사냥하는 것이 절제가 없다고 간언하였다. 황상은 채용할 수 없었으나 또한 죄를 주지도 않았다.

 衡山人趙知微亦上疏諫上遊畋無節。上雖不能用,亦不罪也。〈吳分湘南縣置衡山縣,唐初屬潭州,神龍三年度屬衡州。《九域志》︰在州東北二百三十里。

 

 ⑮.  황상은 하주관찰판관 유공권의 글씨를 보고 이를 아꼈다. 19일에 유공권을 우습유·한림시서학사로 삼았다. 황상이 유공권에게 물었다.

 "경은 글씨를 어찌하여서 이처럼 잘 쓸 수 있었소?"

 ⑮. 上見夏州觀察判官柳公權書跡,愛之。辛酉,以公權爲右拾遺、翰林侍書學士。〈使之侍書而已,不使任代言之職。〉上問公權︰「卿書何能如是之善?」

 

 대답하였다.

 "붓을 사용하는 것은 마음에 있으니 마음이 바르면 붓은 똑바로 됩니다."

 황상은 아무 말 없이 있다가 얼굴을 고쳤고 그가 글씨 쓰는 것을 가지고 간한다는 것을 알았다. 유공권은 유공작의 동생이다.

 對曰︰「用筆在心,心正則筆正。」上默然改容,知其以筆諫也。公權,公綽之弟也。

 

 ⑱. 애총에, 선부원외랑 원진을 강릉사조로 삼았는데 감군인 최담준과 잘 지냈다. 황상이 동궁에 있으면서 궁인들이 원진의 시가를 외우고 있는 것을 듣고 이를 훌륭하다고 여겼는데, 즉위하게 되자 최담준이 조정으로 들어왔고, 원진의 시가 100여 편을 바쳤다.

 ⑱. 初,膳部員外郎元稹爲江陵士曹,〈憲宗元和五年,元稹貶江陵士曹,事見二百三十卷。〉與監軍崔潭峻善。上在東宮,聞宮人誦稹歌詩而善之;及卽位,潭峻歸朝,獻稹歌詩百餘篇。

 

 황상이 물었다.

 "원진은 어디있는가?"

 대답하였다.

 "지금은 산랑(정원 외 관리)입니다."

 여름, 5월 9일에 원진을 사부낭중· 지제고로 삼았는데, 조정에서는 그를 낮게 평론하였다.

 上問︰「稹安在?」對曰︰「今爲散郎。」〈郎中謂之正郎,員外郎謂之散郎。散,悉亶翻。〉夏,五月,庚戌,以稹爲祠部郎中、知制誥;〈唐制,中書舍人六人,一人知制誥。開元初,以他官掌詔敕,未命,謂之兼知制誥。〉朝論鄙之。〈朝,直遙翻。〉

 

 마침 동료들과 전각 아래에서 외를 먹었는데, 푸른 파리들이 그 위에 모이자, 중서사인 무유형이 거기에다 부채를 휘두르며 말하였다.

 "적시에 어디에서 와서 갑자기 여기에 모였는고?"(青蠅의 蠅을 원진의 稹에 비유함)

 동료들이 모두 안색을 잃었지만 무유형의 의기는 태연자약하였다.

 會同僚食瓜於閣下,〈中書省曰鳳閣,又有紫微閣。〉有青蠅集其上,中書舍人武儒衡以扇揮之曰︰「適從何來,遽集於此!」〈以蠅喻稹。〉同僚皆失色,儒衡意氣自若

 

 ㉗.  황상이 막 公除(탈상 27일)를 막 지나고 나서 바로 사냥하고 음악을 진설하고 여색을 가까이 하며 하사하여 주는 것에 절도가 없었다. 9월 중양절에 크게 연회를 열고자 하니 습유 이각이 그 동료들을 인솔하고 소문을 올렸다.

 ㉗. 上甫過公除,〈遵漢制三十七日釋服,謂之公除。按此時二十七日公除,下所謂易月也。〉卽事遊畋聲色,賜與無節。九月,欲以重陽大宴,〈九月九日,謂之重陽。九,陽數也,故云。貞元五年,詔以二月一日、三月三日、九月九日爲三令節,任文武百寮選勝地追賞爲樂。〉拾遺李珏帥其同僚上疏曰︰

 

 "엎드려 보건대 원삭(새해와 연호)은 아직 고쳐지지 아니하였고, 원릉은 오히려 새로 조성되었으니, 비록 폐하께서 달로 바꾼 기간을 채택하셨으나 사람들의 바라는 것을 엎드려 좇는데, 《禮經》에는 3년의 제도가 드러나 있으니 오히려 心喪을 입으셔야 합니다.

 「伏以元朔未改,〈珏,古岳翻。元朔未改,謂未踰年也。《春秋》書元年春王正月卽位。〉園陵尚新,雖陛下就易月之期,俯從人欲;而《禮經》著三年之制,猶服心喪。〈謂公除易服,爲天下也。而三年之慕,內切於心,不可變也。〉

 

 동궤(같은 나라)를 준수하는 모임은 비로소 경사를 떠났고, 먼 곳에 있는 이적들에게 알리러 간 사자가 아직 복명하지 않았습니다. 遏密弛禁(알밀이금: 遏은 끊는 것, 密은 조용하게 하는 것. 弛禁은 금한 것을 푸는 것)은 대개 齊人(일반 백성)을 위한 것인데, 後庭에 모여서 즐긴다면 이 일은 옳지 않습니다."

 황상은 듣지 않았다.

 遵同軌之會始離京,〈《左傳》︰天子七月而葬,同軌畢至。離,力智翻。〉告遠夷之使未復命。〈唐制,國有大喪,遣使宣遺詔於四夷,謂之告哀使。〉遏密弛禁,蓋爲齊人;〈《書‧舜典》曰︰三載,四海遏密八音。孔安國《註》︰遏,絕也。密,靜也。齊人,猶言齊民。爲,于僞翻。〉合樂後庭,事將未可。」上不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