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柳宗元善爲文: 유종원은 글을 잘 썼다. /芒種節末候反舌無聲1日 (陰5/7)乙未

solpee 2021. 6. 16. 05:36

《唐紀55 憲宗 元和 10》〈乙未, 815年〉

 

 ④. 왕숙문의 무리들이 연좌되어 귀양 간 사람들은 무릇 10년이 되어도 헤아려서 옮기지 아니하였는데, 정권을 잡은 사람들 가운데 그들이 가진 재주를 가련하게 생각하고 점차 그들을 올리려고 하는 사람이 있어서 모두 불러서 경사에 오게 하였는데, 간관들이 그것이 옳지 않다는 것을 다투어 말하고,  황상과 무원형(무측천의 종증손으로 재상중 하나)도 역시 이를 싫어하여서 3월14일에 모두 멀리 떨어진 주의 자사로 삼으니, 관직은 비록 올려주었으나 있는 곳은 더욱 멀어졌다.

 ④. 王叔文之黨坐謫官者,凡十年不量移,〈永貞元年,貶王叔文之黨,事見二百三十六卷。量,音良。〉執政有憐其才欲漸進之者,悉召至京師;諫官爭言其不可,上與武元衡亦惡之,〈惡,烏路翻。〉三月,乙〈【嚴︰「乙」改「己」。】〉酉,皆以爲遠州刺史,官雖進而地益遠。

 

 영주사마 유종원이 유주 자가가 되었고, 낭주사마 유우석이 파주 자사가 되었다. 유종원이 말하였다.

 "파주는 사람이 살 곳이 아니고, 몽득의 부모가 집에 있는데 만에 하나라도 모자가 함께 갈 리가 없습니다."

 조정에다 요청하여 유종원을 파주 자사로 바꾸어 주기를 원한다고 하려고 하였다. 마침 중승인 배도도 역시 유우석을 위하여 말하였다.

 永州司馬柳宗元爲柳州刺史,朗州司馬劉禹錫爲播州刺史。〈永州,古零陵郡,隋置永州,以永水爲名,京師南三千二百七十四里。柳州,漢潭中縣地,隋置馬平縣,唐初置昆州,貞觀改柳州,至京師水陸相乘五千四百七十里。朗州,古武陵郡,梁置武州,隋爲朗州,京師東南二千一百五十九里。播州,卽漢夜郎、且蘭二國西南隅之地,漢置牂柯郡,唐置播州,京師南四千四百五十里。〉宗元曰︰「播非人所居,而夢得親在堂,〈劉禹錫,字夢得。〉萬無母子俱往理。」欲請於朝,願以柳易播。會中丞裴度亦爲禹錫言曰︰〈爲,于僞翻。〉

 

 "유우석은 진실로 죄를 지었습2니다. 그러나 그 모친은 늙었는데 그 아들과 사별하게 한다면 아주 상심하게 될 것입니다."

 황상이 말하였다.

 "아들이 되어서는 마땅히 더욱 근신하여 부모에게 걱정거리를 끼치지 말아야 할 것인데, 이러하니 유우석은 더욱 책망할 만하다."

 배도가 말하였다.

 "폐하께서는 바야흐로 태후를 모시고 계시는데, 유우석은 마땅히 불쌍히 여길 만한 자리에 있습니다."

 「禹錫誠有罪,然母老,與其子爲死別,良可傷!」上曰︰「爲人子尤當自謹,勿貽親憂,此則禹錫重可責也。」〈重,直用翻。〉度曰︰「陛下方侍太后,恐禹錫在所宜矜。」

 

 황상이 아주 오래 있다가 마침내 말하였다.

 "짐이 말하는 바는 아들 된 사람을 나무라는 것뿐인데 그러나 그 부모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싶지는 않다."

 물러나서 좌우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하였다.

 "배도가 나를 아끼는 것은 끝까지 절실하구나!"

 다음날 유우석은 連州(광동성) 자사로 고쳐졌다.

 上良久,乃曰︰「朕所言,以責爲人子者耳;然不欲傷其親心。」退,謂左右曰︰「裴度愛我終切。」明日,禹錫改連州刺史。〈連州,漢桂陽陽山地,唐置連州,以郡南有黃連嶺爲名,京師南三千六百六十五里。《考異》曰︰《舊‧禹錫傳》︰「元和十年,自武陵召還,宰相復欲置之郎署。時禹錫作《遊玄都觀詠》、《看花》、《君子詩》,語涉譏刺,執政不悅,復出爲播州刺史。」《禹錫集》載其詩曰︰「玄都觀裏桃千樹,盡是劉郎去後栽。」按當時叔文之黨,一切除遠州刺史,不止禹錫一人,豈緣此詩!蓋以此得播州惡處耳。《實錄》曰︰「中丞裴度奏︰『其母老,必與此子爲死別,臣恐傷陛下孝理之風。』憲宗曰︰『爲子尤須愼,恐貽親之憂。禹錫更合重於他人,卿豈可以此論之!』度無以對,良久,帝改容而言曰︰『朕所言,是責人子之事,然終不欲傷其所親之心。』明日,改授禹錫連州。」趙元拱《唐諫諍集》︰「斐度曰︰『陛下方侍太后,以孝理天下,至如禹錫,誠合哀矜。』憲宗乃從之。明日,制授禹錫連州。旣而語左右︰『斐度終愛我切。』」趙璘《因話錄》曰︰「憲宗初徵柳宗元、劉禹錫至京城,俄而柳爲柳州刺史,劉爲播州刺史。柳以劉須侍親,播州最爲惡處,請以柳州換。上不許。宰相對曰︰『禹錫有老親。』上曰︰『但要與郡,豈繫母在!』裴晉公進曰︰『陛下方侍太后,不合發此言。』上有愧色。劉遂改爲連州。」按《柳宗元墓誌》,將拜疏而未上耳,非已上而不許也。禹錫除播州時,斐度未爲相。今從《實錄》及《諫諍集》。〉

 

 유종원은 문장을 잘 지었는데, 일찍이 《梓人傳(재인전)》을 썼다.

 宗元善爲文,嘗作《梓人傳》,〈傳,直戀翻。〉以爲

 

 "재인은 도끼나 칼, 톱을 잡지 않는 기술을 가지고 있어서 오로지 긴 줄자· 굽은 자· 먹줄만을 가지고서 여러 나무의 재료를 헤아리며 집을 짓는데, 높이와 갚이, 둥근 것과 모난 것, 긴 것과 짧은 것의 적당한 것을 보고 여러 공장을 가리켜 지휘하여서 각기 그 맡은 일을 하도록 제촉하다가 그 임무를 이기지 못하는 사람은 이를 물리쳤다. 그리고 큰 건물이 이미 완성되면 홀로 그 공로자에 이름을 올리고 녹봉을 세배나 받았다.

 ︰「梓人不執斧斤刀鋸之技,專以尋引、規矩、繩墨度羣木之材,〈技,渠綺翻。引,羊晉翻。度,徒洛翻。〉視棟宇之制,相高深、圓方、短長之宜,指麾衆工,各趨其事,不勝任者退之。〈相,息亮翻。趨,七喻翻。勝,音升。〉大夏旣成,〈夏,與廈同,胡雅翻。〉〈【章︰甲十一行本正作「廈」;乙十一行本同;孔本同。】〉則獨名其功,受祿三倍。

 

 역시 마치 천하에 재상 노릇하는 것과 같으니, 기강을 세우고 법도를 정리하며 천하의 선비를 선택하여 그 직책에 알맞게 일하도록 하고, 천하 사람들을 선택하여 그 직업에서 편안하게 지내게 하며, 거주하는 천하 사람들이 그 직업으로 편안하게 하다가 능력 있는 사람은 이를 올리고 할 수 없는 사람은 이를 물리치며, 만국이 이미 잘 다스려지면 말하는 사람은 오직 伊尹· 傅說· 周公· 昭公뿐이며, 그 가운데 백 가지 일을 부지런히 한 사람은 기록할 수가 없는 것이다.

 亦猶相天下者,立綱紀、整法度,擇天下之士使稱其職,〈稱,尺證翻。〉居天下之人使安其業,能者進之,不能者退之,萬國旣理,而談者獨稱伊、傅、周、召,〈召,讀曰邵。〉其百執事之勤勞不得紀焉。

 

 어떤 사람은 그 몸통의 중요함을 알지 못하여 자기의 능력을 팔고, 이름을 자랑삼으면서 친히 조그만 수고를 하면서 여러 관리를 침해하고 府庭에서 시끄럽게 떠들지만, 그 큰 것을 아주 멀찍이 잃는 사람이니 이;는 재상의 도를 모르는 사람이다."

 或者不知體要,衒能矜名,〈衒,熒絹翻。〉親小勞,侵衆官,听听於府庭,〈听,魚隱翻,又魚巾翻。〉而遺其大者遠者,是不知相道者也。」

 

 또 《종수 곽탁타전》을 지어서 말하였다.

 又作《種樹郭橐駞傳》曰︰

 

 "곽탁타가 심은 것은 자라서 무성하게 되지 않은 것이 없었다. 어떤 사람이 그에게 물었더니, 대답하였다. '저 곽탁타는 능히 나무를 오래 살게 하거나 살 수 있게 할 수는 없습니다. 무릇 나무의 성질은 그 뿌리는 펴고 싶어 하고, 그 흙은 옛 것이고 싶어 하니, 이미 그것을 심고 나면 움직이지 말고 생각하지 말고, 떠나서는 다시 돌아보지 않습니다.

 「橐駞之所種,無不生且茂者。或問之,對曰︰『橐駞非能使木壽且孳也。〈孳,津之翻,生也。〉凡木之性,其根欲舒,其土欲故,旣植之,勿動勿慮,去不復顧

 

 그것이 심겨질 적에는 아들같이 대해야 하고, 그것이 배치될 적에는 버리는 것처럼 한다면, 그것이 하늘에서 받은 것을 온전하게 하여 본성을 얻게 됩니다.

 其蒔也若子,〈蒔,音侍,更種也。〉其置也若棄,則其天全而性得矣

 

 다른 심는 사람은 그렇지 아니하니, 뿌리에는 힘을 주고 흙은 바꾸며 그것을 아껴서 크게 은혜를 베풀고, 이를 걱정하여 대단히 부지런히 하며, 아침에 보고 저녁에 어루만지며 이미 떠났다가 다시 돌아다보는데, 심한 사람은 그 껍질을 손톱으로 긁어서 그것이 산 채로 마르게 하며, 그 뿌리를 흔들어서 그것이 성긴지 빽빽한지를 보게 되니 나무의 본성은 날로 이탈됩니다.

 他植者則不然,根拳而土易,愛之太恩,憂之太勤,旦視而暮撫,已去而復顧,甚者爪其膚以驗其生枯,〈爪,側絞翻。〉搖其本以觀其疏密,而木之性日以離矣。

 

 비록 그것을 아낀다고 말하지만 그 실제는 그것을 해치는 것이고, 비록 그것을 걱정한다고 하지만 그 실제는 그것을 원수로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와 같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雖曰愛之,其實害之;雖曰憂之,其實讎之。故不我若也!

 

 정치를 하는 것도 그러합니다. 내가 향에 살면서 어른 된 사람을 보니, 그가 명령하는 것이 아주 번거로웠으며 마치 아주 가련하게 생각하는 것 같지만 끝내는 그에게 화를 주었습니다. 아침저녁으로 관리가 와서 백성을 모아놓고 그들에게 호령하고 그들에게 경작하고 수확하라고 재촉하고 그들에게 누에치고 옷감을 짜라고 독려하지만 우리 소인배들은 밥 먹는 것도 거른 채 관리를 위로하기에 여가가 없는데, 하물며 어떻게 우리의 삶을 번성하게 하며 우리의 성품을 편안하게 하겠습니까?

 爲政亦然。吾居鄕見長人者,〈長,知兩翻。〉好煩其令,〈好,呼到翻。〉若甚憐焉而卒以視之。〈卒,子恤翻。〉旦暮吏來,聚民而令之,促其耕穫,督其蠶織,吾小人輟饔飧以勞吏之不暇,〈饔,於容翻。飧,蘇昆翻。饔飧,熟食也。勞,力到翻。〉又何以蕃吾生而安吾性邪!〈蕃,音煩。〉

 

 무릇 병들고 게을러지는 것은 주로 이것 때문입니다."

 이는 그의 글 가운데 있는 치도이다.

 凡病且怠,職此故也。』」〈杜預曰︰職,主也。〉此其文之有理者也。〈《梓人傳》以諭相,《種樹傳》以諭守令,故溫公取之,以其有資於治道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