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錢用盡更來,機事一失不可復追。돈 쓰고 나면 다시 돌아온다./芒種節末候反舌無聲 (陰5/6)甲午

solpee 2021. 6. 15. 14:41

《唐紀55 憲宗 元和 7》〈壬辰, 812年〉

 

 ①. 겨울, 10월 10일에 위박감군이 상황을 보고하니, 황상이 급히 재상을 불렀고, 이강에게 말하였다.

 "경이 위박에 대하여 추측한 것이 符契(부계:부절과 딱 들어 맞음)와 같소."

 이길보가 중사를 파견하여 위로의 말을 펼치고, 그 변화를 보자고 청하니, 이강이 말하였다.

 ①. 冬,十月,乙未,魏博監軍以狀聞,〈以魏兵廢懷諫立田興之狀聞。〉上亟召宰相,謂李絳曰︰「卿揣魏博若符契。〈揣,初委翻。〉李吉甫請遣中使宣慰以觀其變,李絳曰︰

 

 "안 됩니다. 지금 전흥은 그곳의 토지와 군사들을 받들고 앉아서 조명을 기다리고 있는데, 이 기회를 타서 마음을 다하여 위무하고 받아들며 큰 은전을 베풀면서 관계를 맺지 않는다면 반드시 칙사가 그곳에 이르기를 기다렸다가 장사들이 보낸 표문을 가지고 절월을 요구할 터인데, 그런 다음에 그에게 준다면 이는 은전이 아랫사람에게서 나온 것이 되고 윗사람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며, 장사들이 중요하게 되고 조정은 가볍게 여겨질 것이니, 그 느끼고 추대하는 마음도 역시 오늘에 비할 것이 아닙니다. 기회는 한 번 잃으면 이를 후회하여도 따라잡지 못합니다!"

 「不可。今田興奉其土地兵衆,坐待詔命,不乘此際推心撫納,結以大恩,必待敕使至彼,持將士表來爲請節鉞,然後與之,〈此大曆、貞元之弊也。爲,于僞翻;下亦爲、正爲、度爲、當爲同。〉則是恩出於下,非出於上,將士爲重,朝廷爲輕,其感戴之心亦非今日之比也。機會一失,悔之無及!」

 

 이길보는 평소에 추밀사 양수겸과 서로 관곌흘 맺엇고, 양수겸도 역시 그를 위하여 황상에게 말하였다.

 "고사를 보면, 모두가 중사를 파견하여 위로의 말을 선포하였는데, 지금 이 진에만 홀로 없으니 아마도 다시 타이르지 못할까 걱정입니다."

 황상은 끝내 중사 장충순을 파견하여 위박에 가서 위로의 말을 선전하고 그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가 이를 논의하고자 하였다.

 吉甫素與樞密使梁守謙相結,守謙亦爲之言於上曰︰「故事,皆遣中使宣勞,〈勞,力到翻。〉今此鎭獨無,恐更不諭。」〈言恐其更不諭上意也。〉上竟遣中使張忠順如魏博宣慰,欲俟其還而議之。

 

 18일에 이강이 다시 말씀을 올렸다.

 "조정에서 은혜를 베풀고 위엄을 보이는 장단점은 이 한 번의 거사에 있으며 때와 기회는 애석하니 어찌 이를 버리겠습니까? 이로움과 해로움은 아주 분명하니 바라건대 성스러운 마음으로 의심하지 마십시오. 장충순이 가는 것을 계산해 보건대, 비로소 응당 섬주를 지났을 것이니, 빌건대 내일 아침에 즉각 백마를 내리셔서 전흥을 절도사로 제수하신다면 오히려 따라 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癸卯,李絳復上言︰〈復,扶又翻。〉「朝廷恩威得失,在此一舉,時機可惜,柰何棄之!利害甚明,願聖心勿疑。計忠順之行,甫應過陝,〈甫,始也。陝,失冉翻。〉乞明旦卽降白麻除興節度使,猶可及也。」

 

 황상이 유후로 제수하고자 하니, 이강이 말하였다.

 "전흥이 공손하고 순종하기를 이와 같이 하는데, 은전을 베푸는 것이 순서를 따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면 그로 하여금 특별히 감격하게 하지 못할 것입니다."

 황상이 이를 좇았다.

 上且欲除留後,絳曰︰「興恭順如此,〈言興守朝廷法令,申版籍,請官吏,異乎河北諸鎭之爲也。〉自非恩出不次,則無以使之感激殊常。」上從之。

 

 19일에 전흥을 위박절도사로 삼았다. 장충순이 아직 돌아오지 않았는데, 제서로 내린 명령이 이미 위주에 도착하였다. 전흥이 은헤에 감격하여 눈물을 흘리니 병사들 가운데 북을 치며 춤을 추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甲辰,以興爲魏博節度使。忠順未還,制命已至魏州。興感恩流涕,士衆無不鼓舞。

 

 ③. 이강이 또 말하였다.

 "위박은 50여 년 동안 황제의 교화에 물들지 아니하였다가, 어느 날 아침에 6 주(위·박· 패· 위· 전· 상)의 땅(하북성 남부)을 들어가지고 와서 귀부하였는데, 하삭의 심장부를 도려내서 반란하는 소굴을 기울게 하였으니, 그들이 바라는 것보다 지나치게 무거운 상을 내려주지 않으면 사졸들의 마음을 위로할 길이 없고, 사방에 있는 이웃들에게 사모하도록 권고하는 것이 되지 못합니다. 청컨대 내고에 있는 전 150만 민을 꺼내어 그들에게 사여하십시오."

 ③. 李絳又言︰「魏博五十餘年不霑皇化,〈魏博自田承嗣以來倔強拒命,至是四十九年。〉一旦舉六州之地來歸,〈六州,魏、博、貝、衞、澶、相。〉刳河朔之腹心,傾叛亂之巢穴,不有重賞過其所望,則無以慰士卒之心,使四鄰勸慕。請發內庫錢百五十萬緡以賜之。」

 

 좌우에 있는 환관들이 말하였다.

 "주는 것이 지나치게 많으면 후에 이것에 맞먹는 일이 있을 경우에 장차 어떻게 그것을 줍니까?"

 황상이 이강에게 말하였더니 이강이 말하였다.

左右宦官以爲「所與太多,後有此比,將何以給之?」上以語絳,〈語,牛據翻。〉絳曰︰

 

 "전흥은 땅을 오로지하는 이익을 탐내지 않고 사방에 있는 이웃으로부터의 걱정거리를 돌아보지 않으며 성스러운 조정에 목숨을 귀부하였는데, 폐하께서는 어찌 작은 비용을 아끼시어 큰 계책을 놓치한 번 인심을 거두어들이지 않으시려 하십니까? 전이란 다 쓰면 다시 돌아오게 되어 있지만 기회와 일이란 한 번 잃으면 다시 뒤쫓아 갈 수 없습니다. 설사 국가에서 15만의 군사를 동원하여 여섯 주를 빼앗는다 하여도 1년이 걸려서 이를 이긴다고 한다면 그 비용이 어찌 50만 민일 뿐이겠습니까?"

 「田興不貪專地之利,不顧四鄰之患,歸命聖朝,陛下柰何愛小費而遺大計不以收一道人心錢用盡更來,機事一失不可復追。〈復,扶又翻。〉借使國家發十五萬兵以取六州,期年而克之,〈期,讀曰朞。〉其費豈止百五十萬緡而已乎!」

 

 황상이 기뻐서 말하였다.

 "짐이 거친 옷을 입고 채소로 된 반찬을 먹으면서 재화를 모아 저축한 까닭은 바로 사방을 평정하고자 함인데, 그렇지 않다면 다만 이를 부고에 저축하여 두어도 무엇을 할 것인가?"

 上悅,曰︰「朕所以惡衣菲食,蓄聚貨財,正爲欲平定四方;〈爲,于僞翻;下同。〉不然,徒貯之府庫何爲!」〈貯,丁呂翻。〉

 

 11월 6일에 지제고 배도를 파견하여 위박에 가서 위로의 말을 널리 전하게 하고 전 150만 민을 군사들에게 상으로 주어ㅆ으며, 여섯 주의 백성들에게는 1년간의 부역을 면제해 주었다. 군사들은 사여한 것을 받고 즐거워하는 소리가 우레와 같았다. 성덕(恒州)과 연운(치청:평로)의 사자들 가운데 몇 사람이 이것을 보고 서로 돌아보면서 얼굴색이 변하며 탄식하였다.

 "고집부리고 강한 것이 과연 무슨 이익이 있는가?"

 十一月,辛酉,遣知制誥裴度至魏博宣慰,以錢百五十萬緡賞軍士,六州百姓給復一年。〈復,方目翻。復,除其賦役也。〉軍士受賜,歡聲如雷。成德、兗鄆使者數輩見之,相顧失色,歎曰︰「倔強者果何益乎!」〈兗鄆,卽淄青、平盧軍也。鄆,音運。倔,其勿翻。強,其兩翻。〉

 

 배도가 전흥에게 군신과 상하의 뜻을 늘어놓으니 전흥이 이 말을 듣고 저녁이 끝날 떄까지 피곤해 하지 않으면서 배도를 대하는 예의가 아주 후하였고, 배도를 청하여 거느리는 주현에 두루 가자고 하여 조정의 명령을 선포하게 하였다

 度爲興陳君臣上下之義,興聽之,終夕不倦,待度禮極厚,請度徧至所部州縣,宣布朝命。〈朝,直遙翻。〉

 

 조정에 주문을 올려서 절도부사를 제수하여 달라고 비니, 조서를 내려서 호부랑중인 하동 사람 호중으로 그것을 삼았다. 전흥은 또 주문을 올려서 거느리는 부서에 부족한 관원이 90명이라고 하면서 유사가 注擬(주의:관직을 제수할 사람의 명단)하여 줄 것을 청하면서 조정의 법령을 시행하고 부세를 보냈다. 정승사 이래로 집과 건물로 참람하고 사치한 것은 모두 이를 피하고 거주하지 않았다.

 奏乞除節度副使於朝廷,詔以戶部郎中河東胡証爲之。〈証,之盛翻。〉興又奏所部缺官九十員,請有司注擬,行朝廷法令,輸賦稅。田承嗣以來室屋僭侈者,皆避不居。

 

 운(평로)· 채(창의군)· 항(성덕군)에서는육갱을 파견하여 백방으로 이간시키도록 유세하게 하였는데, 전흥는 끝내 듣지 아니하였다. 이사도가 사람을 시켜서 선무절도사 한홍에게 말하였다.

 "나는 대대로 전씨와 더불어 서로 보호하며 도와주었는데, 지금 전흥은 전씨의 종족이 아니고, 역시 양하에 있는 일을 첫 번째로 바꾸었으니 역시 공이 싫어하는 바이오. 나는 장차 성덕과 군사를 합하여 이를 토벌하겠소."

 鄆、蔡、恆遣遊客間說百方,興終不聽。〈鄆,李師道;蔡,吳少陽;恆,王承宗也。恆,戶登翻。間,古莧翻。說,輸芮翻。〉李師道使人謂宣武節度使韓弘曰︰「我世與田氏約相保援,今興非田氏族,又首變兩河事,〈言田興悉心奉朝廷,變兩河藩鎭故事。〉亦公之所惡也!〈惡,烏路翻。〉我將與成德合軍討之。」

 

 한홍이 말하였다.

 "나는 이해관계를 알지 못하겠고 조서를 받들어서 일을 행사하는 것을 알 뿐이오. 만약에 군사가 북쪽으로 황하를 건넌다면 나는 군사를 가지고 동쪽으로 가서 조주를 빼앗겠소!"

 이사도가 두려워서 감히 움직이지 아니하였다.

 전흥이 이미 전계안을 장사 지내고 전회간을 경사로 호송하였다. 26일에 전회간을 우감문위장군으로 삼았다.

 弘曰︰「我不知利害,知奉詔行事耳。若兵北渡河,我則以兵東取曹州!」〈曹州,李師道巡屬也。〉師道懼,不敢動。

田興旣葬田季安,送田懷諫于京師。辛巳,以懷諫爲右監門衞將軍。

 

 ⑤. 황상이 일찍이 연영전에서 재상들에게 말하였다.

 "경들은 마땅히 짐을 위하여 관직을 아껴야 할 것이고, 이를 사사로이 친척과 친구에게 사용하지 말라."

 이길보와 권덕여가 모두 감히 하지 아니하엿다고 사죄하였다.

 ⑤. 上嘗於延英謂宰相曰︰「卿輩當爲朕惜官,〈爲,于僞翻。〉勿用之私親故。」李吉甫、權德輿皆謝不敢。

 

 이강이 말하였다.

 "최우보가 한 말이 있습니다. '친척이 아니거나 친구가 아니라면 그 재주를 알지 못합니다.' 아는 사람에게는 오히려 관직을 주지 않고,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다시 준단 말입니까? 다만 그 재주와 기량이 관직과 서로 걸맞은지를 물어야 할 뿐입니다.

 李絳曰︰「崔祐甫有言,『非親非故,不諳其才。』諳者尚不與官,不諳者何敢復與!但問其才器與官相稱否耳。〈諳,烏含翻。復,扶又翻。稱,尺證翻。〉

 

 만약에 친척과 친구라는 혐의를 피하려 한다면 성스러운 조정에서는 많은 인사를 가지고 있는 아름다움을 이지러트릴 것이고, 이것은 바로 구차하게 편안하고자 하는 신하이지 지극히 공정한 길이 아닐 것입니다. 진실로 채용한 사람이 그에 걸맞는 사람이 아니라면 조정에서는 스스로 전형을 가지고 있으니 누가 감히 여기에서 도망하겠습니까?"

 황상이 말하였다.

 "진실로 경의 말과 같소."

 若避親故之嫌,使聖朝虧多士之美,此乃偷安之臣,非至公之道也。苟所用非其人,則朝廷自有典刑,誰敢逃之!」上曰︰「誠如卿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