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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관을 최초로 병마사로 하다.(당 멸망 효시)/芒種節中候鴡始鳴 4日(陰5/4)壬辰

solpee 2021. 6. 12. 14:30

《唐紀54 憲宗 元和 4》〈己丑, 809年〉

 

 ⑥.  좌신책군리 이욱이 장안의 부자에게 錢 8천 민을 빌렸으나 3년을 채우도록 갚지 않자 경조윤 허맹용이 잡아서 형틀에 매달고 기일을 세워 갚게 하며 말하였다.

 "기한을 채웠으나 부족하면 사형에 처할 것을 판결한다."

 온 군사들이 크게 놀랐다. 중위가 황상에게 하소연하자 황상은 중사를 파견하여  뜻을 밝히고 본군에 넘기도록 하였으나 허맹용은 그를 보내지 않앗다. 중사가 다시 이르렀는데, 허맹용이 말하였다.

 ⑥. 左神策軍吏李昱貸長安富人錢八千緡,滿三歲不償,〈貸,吐得翻,假貸也。〉京兆尹許孟容收捕械繫,立期使償,曰︰「期滿不足,當死。」一軍大驚。中尉訴於上,上遣中使宣旨,付本軍,孟容不之遣。中使再至,孟容曰︰

 

 "신은 조서를 받들지 않았으니 사형에 해당합니다. 그러나 신은 페하를 위하여 경기에서 윤 노릇을 하고 있으니 굳세고 강한 사람을 눌러서 다스리지 않으면 무엇을 가지고서 輦下(연하: 경사)를 깨끗이 하겠습니까! 금전을 아직 다 갚지 않으면 이립은 데려갈 수 없습니다."

 황상은 그가 강직한 것을 가상하게 여기고 그것을 허락하자, 경성에서는 떨고 두려워하였다.

 「臣不奉詔,當死。然臣爲陛下尹京畿,〈京兆以長安、萬年爲京縣,餘屬縣爲畿縣。〉非抑制豪強,何以肅清輦下!錢未畢償,昱不可得。」上嘉其剛直而許之,京城震栗。

 

 

 ⑦.  황상이 중사를 파견하여 왕승종을 타이르도록 하여 설창조를 진수하는 곳으로 돌아가게 하였는데, 왕승종이 조서를 받지 않았다.

 ⑦. 上遣中使諭王承宗,使遣薛昌朝還鎭;〈使之遣還德州。〉承宗不奉詔。

 

 겨울, 10월 11일에 제서를 내려 왕승종의 관직과 작위를 삭제하여 빼앗고 좌신책중위인 도돌승최를 좌·우신책·하중·하양·절서·선흡등도행영병마사·초토처치등사로 하였다.

 冬,十月,癸未,制削奪承宗官爵,以左神策中尉吐突承璀爲左‧右神策、河中、河陽、浙西、宣歙等道行營兵馬使、招討處置等使。〈歙,書涉翻。開元二十年置諸道採訪處置使,專以觀省風俗、黜陟幽明;其後伐叛討有罪,則置招討處置使。處,昌呂翻。〉

 

 한림학사 백거이가 상주하였다.

 "국가가 정벌하면서는 응당 장수에게 책임을 지워 일을 이루어야 하는데, 근년에 처음으로 중사를 감군으로 삼았습니다. 옛날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천하의 군사를 징발하면서 오로지 중사로 하여금 전체를 통괄하도록 한 적은 아직 없습니다. 지금 신책군이 이미 행영절도사를 두지 않았으니, 토돌승최가 마침내 제장이고 또 제군초토처치사에 중임되었으니 토돌승최가 바로 도통입니다. 신은 사방에서 그 소식을 들으면 조정을 엿보게 될 것이고, 사방의 이족이 들으면 반드시 중국을 비웃을까 두렵습니다.

 翰林學士白居易上奏,以爲︰「國家征伐,當責成將帥,近歲始以中使爲監軍。自古及今,未有徵天下之兵,專令中使統領者也。今神策軍旣不置行營節度使,則承璀乃制將也;〈制將,言諸軍進退皆受制於承璀。將,卽亮翻。〉又充諸軍招討處置使,則承璀乃都統也。〈都統,謂都統諸軍,唐中世以後,專征之任。〉臣恐四方聞之,必窺〈【章︰甲十一行本「窺」作「輕」;乙十一行本同;孔本同;張校同。】〉朝廷;四夷聞之,必笑中國。〈白居易之言自《春秋》書「多魚漏師」,《左傳》「夙沙衞殿齊師」來。況吐突承璀以寺人專征乎!崇、觀間,金人有所侮而動正如此。〉

 

 폐하께서는 차마 후대로 하여금 중관으로 제장과 도통을 삼게 된 것이 폐하로부터 시작되엇다고 서로 전하여 말하도록 하겠습니까? 신은 또 유제·장무소·범희조·노종사에서 마침내 여러 도의 장교에 이르기까지 모두 토돌승최의 지시를 받는 것을 부끄러워하게 될까 두려우며, 마음이 이미 똑같지 않은데 공로가 어떻게 세워지겠습니까?

 陛下忍令後代相傳云以中官爲制將、都統自陛下始乎!臣又恐劉濟、茂昭及希朝、從史乃至諸道將校皆恥受承璀指麾,心旣不齊,功何由立!

 

 이것은 바로 왕승종의 계책을 돕고 장수들의 세력을 꺾는 것입니다. 폐하께서 토돌승최가 부지런히 힘을 들인 것을 생각하시어 그를 귀하게 하는 것은 좋고 그의 충성과 진심을 불쌍히 여기어 그를 부유하게 하는 것은 좋습니다. 군국의 대권의 경우에 이르러서는 움직였다하면 치란과 관계되고 조정의 제도는 조종으로부터 나오는 것인데, 폐하께서 어찌 차마 아랫사람의 마음을 좇아서 스스로 법제를 무너뜨리고 다른 사람들의 욕망을 좇아서 스스로 성스럽고 밝은 것을 훼손하시며 어찌 한때의 순간에 만대 이후에 비웃음을 사는 일을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此是資承宗之計而挫諸將之勢也。陛下念承璀勤勞,貴之可也;憐其忠赤,富之可也。至於軍國權柄,動關理亂,朝廷制度,出自祖宗,陛下寧忍徇下之情而自隳法制,從人之欲而自損聖明,何不思於一時之間而取笑於萬代之後乎!」

 

 이 당시에 간관과 어사가 토돌승최의 직명이 너무 큰 것을 따지고 서로 계속하였으나 황상은 모두 듣지 않았다.

 時諫官、御史論承璀職名太重者相屬,〈屬,之欲翻。〉上皆不聽。

 

 16일에 황상이 연영전에 나아가니, 탁지사 이원소·염철사 이용·경조윤 허맹용·어사중승 이이간·급사중 이원응·목질·우보궐 독고욱 등이 그것이 불가한 것을 극진하게 말하자, 황상은 어쩔 수 없이 다음날 토돌승최의 사도병마사를 깎고 고쳐서 조치하여 선위사로 삼았을 뿐이었다.

 戊子,上御延英殿,度支使李元素、鹽鐵使李鄘、京兆尹許孟容、御史中丞李夷簡、〈【章︰甲十一行本「簡」下有「諫議大夫孟簡」六字;乙十一行本同;孔本同;張校同;退齋校同。】〉給事中呂元膺、穆質、右補闕獨孤郁等極言其不可;〈《考異》曰︰《舊‧承璀傳》曰︰「諫官、御史上疏相屬,皆言自古無中貴人爲兵馬統帥者。補闕獨孤郁、段平仲尤激切。」《呂元膺傳》︰「元膺與給事中穆質、孟簡、兵部侍郎許孟容等八人抗論不可。」若據《承璀傳》,則是九人,又平仲時爲諫議大夫,非補闕,恐誤。今從《實錄》。〉上不得已,明日,削承璀四道兵馬使,改處置爲宣慰而已。

 

 이강은 일찍이 환관이 교만하고 횡포하여 정사를 해치고 충성되고 곧은 사람을 비난한다는 것을 극진히 말하였는데, 황상이 말하였다.

 "이들이 어찌 감히 참소하겠는가? 설령 그런 짓을 하였어도 짐 역시 들어주지 않았다."

 李絳嘗極言宦官驕橫,〈橫,戶孟翻。〉侵害政事,讒毀忠貞,上曰︰「此屬安敢爲讒!就使爲之,朕亦不聽。」

 

 이강이 말하였다.

 "이 무리들은 대저 인의를 알지 못하고 굽은 것과 바른 것을 구분하지 않으며, 오직 이로운 것이라면 즐기며 뇌물을 얻으면 柳下跖(유하척: 秦의 큰 도적)과 莊蹻(장교: 楚의 대도)를 칭찬하여 청렴하고 선량하다고 하고, 뜻에 어긋나면 龔遂(공수: 한 선제 때 발해태수로 명신이다)와 黃霸(황패:한 선제 때영천태수로 명신)를 비난하여 탐욕스럽고 포학하다고 하며, 기울어지고 교묘한 지혜를 사용하고 의심스러울 정도로 비슷한 단서를 얽어매서 아침저녁으로 좌우에서 스며들 듯이 그것을 넣으니 폐하깨서는 반드시 때로는 그것을 믿었습니다.

 絳曰︰「此屬大抵不知仁義,不分枉直,惟利是嗜,得賂則譽跖、蹻爲廉良,怫意則毀龔、黃爲貪暴,〈李奇曰︰跖,秦大盜也。楚之大盜爲莊蹻。師古曰︰莊周云︰跖,柳下惠之弟。蓋寓言也。龔、黃,龔遂、黃霸也。譽,音余。蹻,居略翻。怫,符弗翻。〉能用傾巧之智,構成疑似之端,朝夕左右浸潤以入之,陛下必有時而信之矣。

 

 옛날부터 환관은 나라를 무너뜨리는 사람이라는 것이 방책에 모두 실려 있으니 폐하께서 어찌 그들이 점차 스며드는 것을 막지 않을 수 있습니까?"

 27일에 토돌승최는 신책군을 거느리고 장안을 떠났고, 항주 사방에 있는 번진에게 명령하여 각기 군사를 전진시켜 왕승종을 토벌하도록 하였다.

 自古宦官敗國者,〈敗,蒲邁翻。〉備載方册,陛下豈得不防其漸乎!」

己亥,吐突承璀將神策兵發長安,命恆州四面藩鎭各進兵招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