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廣運 축조/立夏節(15:47)初候螻蟈鳴(땅강아지와 청개구리가 운다.)2日(陰3/25)甲寅

solpee 2021. 5. 6. 08:49

《唐紀31 玄宗 天寶 2年》〈癸未, 743年〉

 

 

 ①. 봄, 정월에 안록산이 들어와서 조현하였는데, 황상이 총애하며 대우하는 것이 매우 두터웠으므로 알현하는데 때가 없었다. 안록산이 주문으로 아뢰었다.

 "지난해 營州(今 淄博)에서 벌레가 묘목을 먹어 신이 향불을 피우고서 하늘에 기원하기를, '신이 만약 마음을 쓰는데 바르지 않거나 군주를 섬기는데 충성스럽지 않았으면, 바라건대 벌레로 하여금 신의 심장을 먹게  하고, 만약 神祇(神은 天, 祇는 地)에게 죄를 짓지 않았다면, 바라건대, 벌래를 흩어지도록 하여 주시옵소서.' 라고 하였습니다. 곧바로 새떼가 북쪽에서 날아오더니 벌레를 잡아먹었는데, 즉각 다 없앴습니다. 청하건대, 사관에게 맡기어 널리 알리게 하여 주십시오."

 이르르 따랐다.

 ①. 春,正月,安祿山入朝;〈朝,直遙翻。〉上寵待甚厚,謁見無時。〈見,賢遍翻。〉祿山奏言︰「去年營州蟲食苗,臣焚香祝天云︰『臣若操心不正,事君不忠,願使蟲食臣心;若不負神祇,願使蟲散。』卽有羣鳥從北來,食蟲立盡。請宣付史官。」從之。〈操,千高翻。〉

 

 

 ②. 이림보가 이부상서의 직책을 관장하여 매일 같이 정부에 있으면서 뽑는 일을 모두 시랑인 송요와 묘진경에게 맡겼다. 어사중승 장의가 새로이 황상의 총애를 얻자, 송요와 묘진경은 그에게 붙고자 하였다.

 ②. 李林甫領吏部尚書,日在政府,〈政府,謂政事堂。〉選事悉委侍郎宋遙、苗晉卿。御史中丞張倚新得幸於上,遙、晉卿欲附之。

 

 당시에 선인으로 모인 사람은 1만을 헤아렸는데, 입등한 사람이 64명이고, 자의의 아들인 장석이 첫째이었으므로 많은 사람들의 논의가 들끓었다. 예전에 薊 현령이던 소효온이 안록산에게 알리니, 안록산이 들어가 황상에게 말하였고, 황상이 입등한 사람들을 모두 불러서 면전에서 시험을 치르게 하였는데, 장석은 손으로 시지를 쥐고서 종일 한 글자도 쓰지를 못하여 당시 사람들이 이르기를 '曳白(예백: 백지)' 이라 하였다.

 時選人集者以萬計,〈選,須絹翻。〉入等者六十四人,倚子奭爲之首,羣議沸騰。前薊令蘇孝韞以告安祿山,〈薊縣帶幽州涿郡,時改涿郡爲范陽郡。薊,音計。〉祿山入言於上,上悉召入等人面試之,奭手持試紙,終日不成一字,時人謂之「曳白」。

 

 23일에 송요는 벼슬이 깎여서 무당 태수로 되고, 묘진경은 깍여서 안강 태수로 되고, 장의는 깍여서 회양 태수로 되었으며, 동고판관이던 에부낭중 배굴 등은 모두 깍여서 영남의 관리로 보냈다. 묘진경은 호관 사람이다.

 癸亥,遙貶武當太守,晉卿貶安康太守,倚貶淮陽太守,〈武當郡,均州。安康郡,金州,本西城郡,元年更郡名。淮陽郡,陳州。《舊志》︰金州,京師南七百三十七里,陳州一千五百二十里。〉同考判官禮部郎中裴胐等皆貶領南官。晉卿,壺關人也。〈壺關縣,自漢以來屬上黨郡,而唐上黨縣乃漢壺關縣。隋分置上黨縣,帶郡,唐武德四年分隋之上黨縣置壺關縣,治高望堡,貞觀十七年移治進流川。胐,音敷尾翻。〉

 

 

 ④. 3월, 강· 회남조용등사인 위견이 산수의 물을 끌어들여 금원 동쪽에 잇는 망춘루 아래까지 이르게 하여 연못을 만들고, 강과 회의 운반선을 모으고 역부들과 장인들을 부려서 조거(도크)를 통하게 하였는데, 백성들의 무덤을 헐어버려서 강· 회에서부터 경성에 이르기까지 백성들 사이에서 삐뚫어지고 근심하며 원망하였다. 2년 만에 완성하였다.

 ④. 江、淮南租庸等使韋堅引滻水抵苑東望春樓下爲潭,〈苑,禁苑也。潭在長安城東九里。滻,音產。〉以聚江、淮運船,役夫匠通漕渠,發人丘壟,自江、淮至京城,民間蕭然愁怨。二年而成。

 

 26일에 황상이 망춘루로 가서 새 연못을 구경하였다. 위견이 새로 만든 선박 수백 척에다 군의 명칭을 두루 써 붙이고 각각 군에서 나오는 진귀한 재화를 선박 뒤쪽에 늘어놓았는데,  섬현현위 최성보가 반소매로 된 비단 옷을 입고, 푸른 적삼은 바짓가랑이에 찔러 넣어 옷을 벗어젖힌 채 머리에는 붉은 머리띠를 하고서 배의 앞에 앉아서 득보가를 불렀고, 아름다운 여인 100명으로 하여금 성대한 옷차림을 하도록 하여 이에 화답하게 하였는데 이어진 돛대가 여러 리였으며, 위견은 무릎을 꿇고 여러 군에서 온 輕貨(경화:특산물)를 올렸으며, 이어 100개의 상아 쟁반에 음식을 올렸다. 황상이 잔치를 벌렸는데 하루 종일 걸려서야 마침내 철폐하였고 사람이 산처럼 모였다.

 丙寅,上幸望春樓觀新潭。堅以新船數百艘,扁榜郡名,各陳郡中珍貨於船背;陝尉崔成甫著錦半臂,鈌胯綠衫以裼之,〈艘,蘇遭翻。扁,補典翻。陝,失冉翻。著,陟略翻。胯,苦瓦翻。裼,先擊翻,袒衣也。〉紅袹首,〈袹,莫白翻。袹首,今人謂之抹額。〉居前船唱《得寶歌》,〈先是,民間唱俚歌曰︰「得體紇那邪。」其後得寶符於桃林,成甫乃更《紇體歌》爲《得寶弘農野》,歌曰︰「得寶弘農野,弘農得寶耶?潭裏舟船鬧,揚州銅器多。三郎當殿坐,聽唱《得寶歌》。」其俚又甚焉。〉使美婦百人盛飾而和之,〈和,戶臥翻。〉連檣數里;堅跪進諸郡輕貨,仍上百牙盤食。〈程大昌《演繁露》曰︰唐少府監,御饌器用九飣食,以牙盤九枚裝食味於上,置上前,亦謂之看食。仍上,時掌翻。〉上置宴,竟日而罷,觀者山積。

 

 여름, 4월에 위견에게 좌신기상시를 덧붙여주고 그의 요속과 이졸들에게는 차이를 두어 칭찬하며 상을 주엇는데, 그 연못의 이름을 '廣運'이라 하였다. 당시 경조우ㅠㄴ 한조종이 역시 위수를 끌어들여 서가에 연못을 만들었는데, 재목을 담아 두었다.

 夏,四月,加堅左散騎常侍,〈散,悉亶翻。騎,奇寄翻。〉其僚屬吏卒褒賞有差;名其潭曰廣運。時京兆尹韓朝宗亦引渭水置潭於西街,以貯材木。〈朝,直遙翻。貯,丁呂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