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夫人猶水也,壅之則爲泉,疏之則爲川,通塞隨流。/穀雨節 中候鳴鳩拂其羽 酴釄(도미)風3日(陰3/16)乙巳

solpee 2021. 4. 26. 05:53

《唐紀22 則天后 聖曆 元年》〈戊戌, 698年

 

 

 ⑯. 황사 이단이 굳게 여릉왕 이철에게 자리를 넘길 것을 청하여 태후가 이를 허락하였다. 9월 15일에 여릉왕 이철을 황태자로 삼고 다시 이름을 顯으로 회복시켰다. 천하에 사면령을 내렸다.

 ⑯. 皇嗣固請遜位於廬陵王,太后許之。壬申(9/15),立廬陵王哲爲皇太子,復名顯。〈嗣,祥吏翻。復,扶又翻,又音如字。〉赦天下。

 

 17일에 명하여 태자를 하북도원수로 삼아 돌궐을 토벌하도록 하였다. 이보다 먼저 사람을 불러 모으는데.  한 달 남짓하였지만 1천 명을 채우지 못하였다가, 태자가 원수가 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부름에 호응하는 사람들이 구름같이 모이니, 얼마 되지 않아서 수사 5만을 채웠다.

 甲戌,命太子爲河北道元帥以討突厥。〈行軍元帥起於周、隋,至唐唯親王及太子爲元帥。帥,所類翻。《考異》曰:《實錄》云丙子,據《唐曆》,「甲戌,皇太子顯充河北道行軍大元帥」。《狄梁公傳》亦云:「皇太子爲元帥,以公爲副」。是先立爲太子,後爲元帥也。今從《新本紀》。〉先是,募人月餘不滿千人,〈先,悉薦翻。〉及聞太子爲元帥,應募者雲集,未幾,數盈五萬。〈幾,居豈翻。〉

 

 21일에 적인걸을 하북도행군부원수로 삼고, 우승 송원상을 장사로 삼고, 우대중승 최헌을 사마로 삼았으며, 좌대중승 길욱을 감군사로 삼았다. 당시 태자는 가지 않고, 적인걸에게 명하여 지원수사(원수대리)로 삼았는데, 태후가 친히 그를 환송하였다.

 戊寅,以狄仁傑爲河北道行軍副元帥,右丞宋元爽爲長史,右臺中丞崔獻爲司馬,左臺中丞吉頊爲監軍使。〈后分御史臺爲左、右肅政臺,各置中丞、侍御史等官。頊,吁玉翻。監,古銜翻。使,疏吏翻。〉時太子不行,命仁傑知元帥事,太后親送之。

 

 남전 현령 설눌은 설인귀의 아들인데, 태후가 발탁하여 좌위위장군· 안동도 경락으로 삼았다. 장차 떠나려 하면서 태후에게 말하였다.

 "태자가 비록 세워졌다고는 하나 밖에서 논의하는 사람들은 아직도 확정되지 못하였다고 의심하니, 참으로 이 명령을 바꾸지 않으시면, 추악한 오랑캐를 충분히 평정하지 못할 것입니다."

 태후가 깊이 그렇다고 여겼다. 왕급선이 태자에게 외조로 나가서 사람들의 마음을 달래라고 청하자, 이를 따랐다.

 藍田令薛訥,仁貴之子也,〈藍田,畿縣,屬雍州。薛仁貴,健將也,事太宗、高宗。〉太后擢爲左威衞將軍、安東道經略。將行,言於太后曰:「太子雖立,外議猶疑未定;苟此命不易,醜虜不足平也。」太后深然之。王及善請太子赴外朝以慰人心,從之。〈朝,直遙翻。《考異》曰:《實錄》,「辛巳,皇太子朝見。」或作「廟見」。蓋睿宗爲皇嗣時,止於宮中朝謁,不出外朝;今及善始請太子與羣臣俱於外庭朝謁耳。

 

 

 ⑳. 10월 17일에 적인걸을 하북안무대사로 삼았다.당시에 북쪽 사람들은 돌궐에게 몰려서 압박을 받았는데, 오랑캐가 물러나자, 주살될 것을 두려워하여 여러 곳으로 도망하여 숨었다. 적인걸이 상소하였다.

 ⑳. 癸卯,以狄仁傑爲河北道安撫大使。時北〈【章:十二行本「北」上有「河」字;乙十一行本同;孔本同;張校同。】〉人爲突厥所驅逼者,虜退,懼誅,往往亡匿。仁傑上疏,以爲:

 

 "조정에서 논의하는 사람들은 모두 거란과 돌궐에게 협박을 받아서 좇는 사람들에게 죄를 주면서, 그들의 행적은 비록 같지 않다고 하여도, 마음은 다를 것이 없다고 말합니다. 참으로 산동에서는 요사이 잇달아 군대에서 징발하여 해를 입은 것이 무거우니, 집안을 꾸려갈 길이 모두 깨지고 어떤 사람은 도망가기에 이르렀습니다.

 「朝廷議者皆罪契丹、突厥所脅從之人,言其迹雖不同,心則無別。〈使,疏吏翻。上,時掌翻。別,彼列翻。〉誠以山東近緣軍機調發傷重,〈調,徒弔翻。〉家道悉破,或至逃亡。

 

 더하여 벼슬아치들은 어부가 고기를 잡듯이 빼앗아 가니, 이 때문에 일이 일어나고 목에 찬 칼과 몽둥이 아래 피부가 아프게 떨어져 나가며, 일이 모질고 인정이 위급하여 예의와 의로움을 좇지 아니한 것입니다. 근심하고 걱정하는 땅에선 삶을 즐기지 않고, 이로움이 있으면 곧 귀부하고 또 더 늦게 죽는 것을 도모하는데, 이는 마침내 군자는 부끄럽고 욕되게 여기는 바이지만 소인이 늘 행하는 바입니다.

 重以官典侵漁,〈重以,直用翻。〉因事而起,枷杖之下,痛切肌膚,事迫情危,不循禮義。愁苦之地,不樂其生,有利則歸,且圖賖死,此乃君子之愧辱,小人之常行也。〈樂,音洛。行,下孟翻。〉

 

 또 여러 성이 거짓으로 항복하고서 혹 천병을 기다리며, 장군과 병사들이 공을 구하여 모두 말하기를 공격하여 잡았다고 하니, 신은 상을 넘치게 내리는 것이 걱정되며, 역시 죄 없는 사람이 있을까 두렵습니다. 적과 함께 지내온 곳은 나쁜 땅이 되어서 처와 자식들이 더럽혀지고 욕을 당하는 데에까지 이르렀고, 재물을 강제로 빼앗기며, 병사들이 어질지 않은 것을 믿고 알면서도 관리들은 아직은 할 수 없었고, 마침내 도적이 평정된 뒤에는 나쁜 것이 더욱 심해졌습니다.

 又,諸城入僞,〈入僞,謂降賊者。〉或待天兵,將士求功,皆云攻得,臣憂濫賞,亦恐非辜。〈以攻取之賞賞將士,則爲濫賞。以從虜之罪罪士民,則爲非辜。〉以經與賊同,是爲惡地,至於汚辱妻子,〈汚,烏故翻。〉劫掠貨財,兵士信知不仁,簪笏未能以免,〈簪笏,謂士大夫,當官而行者也。〉乃是賊平之後,爲惡更深。

 

 게다가 도적들을 불러서 이끄는데 힘쓰면서 털끝만큼도 범하지 않았으며, 지금 바르게 돌아온 것은 곧 보통사람들인데 도리어 깨지고 해를 입으니, 어찌 몹시 슬프고 아프지 않다고 하겠습니까? 무릇 사람들이란 물과 같아서 막으면 곧 샘물이 되고, 통하게 하면 냇물이 되며, 막힌 곳을 뚫으면 따라서 흐르는 것인데, 어찌 항상 변하지 않는 성품을 가졌겠습니까?

 且賊務招攜,秋毫不犯,〈言除賊務在招撫攜貳,秋毫無所侵犯也。〉今之歸正,卽是平人,翻被破傷,豈不悲痛!〈被,皮義翻。〉夫人猶水也,壅之則爲泉,疏之則爲川,通塞隨流,〈塞,悉則翻。〉豈有常性!

 

 지금 죄를 쓴 무리들은 반드시 집에 있지 않고 길거리에서 잠을 자며 풀숲을 다니고 몰래 산과 늪으로 숨어 있으니, 사면을 하면 나올 것이고 사면을 하지 않으면 곧 미쳐 버릴 것이니 산동의 여러 도적들은 이것을 좇아서 더욱 무리로 맺을 것입니다.

 今負罪之伍,必不在家,露宿草行,潛竄山澤,赦之則出,不赦則狂,山東羣盜,緣茲聚結。

 

 신은 변방에서 먼지가 잠시 일어나는 것은 걱정을 하기에는 부족하지만, 중토가 불안하면 이것은 큰일입니다. 그들에게 죄를 주면 곧 많은 사람의 마음이 두려워지고, 그들을 용서하면 몸을 뒤척이면서 저절로 편안하게 되니, 엎드려 바라건대 하북의 여러 주에 사는 사람들을 굽혀서 사면하시고 한가지로 묻는 바가 없도록 하십시오."

 제서를 내려 이를 따랐다.

 臣以邊塵蹔起,不足爲憂,〈蹔,與暫同。〉中土不安,此爲大事。罪之則衆情恐懼,恕之則反側自安,伏願曲赦河北諸州,一無所問。」制從之。

 

 적인걸이 이에 백성들을 어루만지며 위로하여 돌궐에게 몰리고 약탈당하였던 사람들을 찾아서 모두 차례대로 원래의 고향으로 돌려보냈다. 양식을 운반하여 흩어주어서 가난하여 아무 것도 없는 사람들을 구휼하게 하고, 우역을 고쳐서 돌아오는 군대를 돕도록 하였다. 혹시라도 제장과 사자들이 망령되게 대접받기를 요구할까 걱정하여 마침내 스스로 거친 현미를 머고, 그아래 사람들이 백성들을 침범하여 소동을 일으킬 수 없게 하였으며, 범한 사람은 반드시 목을 베었다. 하북이 마침내 안정되었다.

 仁傑於是撫慰百姓,得突厥所驅掠者,悉遞還本貫。散糧運以賑貧乏,修郵驛以濟旋師。恐諸將及使者妄求供頓,乃自食疏糲,〈郵,音尤。將,卽亮翻。使,疏吏翻。疏,粗也。糲,脫粟也。一斛粟得六斗米爲糲。糲,郎葛翻。〉禁其下無得侵擾百姓,犯者必斬。河北遂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