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狄仁傑의 以逸待勞 전략/穀雨節 中候鳴鳩拂其羽 酴釄(도미: 찔레꽃 일종)風1日(陰3/14)癸卯

solpee 2021. 4. 25. 02:21

《唐紀22 則天后 神功 元年》〈丁酉, 697年

 

 

 ㉕. 겨울, 윤10월 21일에 유주도독 적인걸을 난대시랑으로 삼았고, 사형경 두경검을 봉각시랑으로 삼았으며, 아울러서 동평장사로 삼았다.

 적인걸이 상소하였다.

 ㉕. 冬,閏十月,甲寅,以幽州都督狄仁傑爲鸞臺侍郎,司刑卿杜景儉爲鳳閣侍郎,並同平章事。

仁傑上疏〈上,時掌翻。〉以爲:

 

 "하늘이 4夷를 낳아 모두 선왕의 영토 밖에 있게 하였으니, 그러므로 동쪽은 滄海(渤海 당시 해안선은 서수까지였다.)가 막고 있고, 서쪽은 流沙(사막)가 가로막고, 북쪽은 커다란 사막이 가로지르고, 남쪽은 오령이 가로막고 있으니, 이는 하늘이 이적을 제한하며, 안팎을 갈라놓은 것입니다.

 「天生四夷,皆在先王封略之外,故東拒滄海,西阻流沙,北橫大漠,南阻五嶺,此天所以限夷狄而隔中外也。

 

 전적에 기록되면서부터 교화하는 덕이 미치게 되어, 3대에는 다 다를 수 없었던 것들을 국가가 다 겸하게 하였습니다. 시인들은 태원을 쳐서 정벌한 것을 자랑하였고, 아름다운 강(長江)과 漢水에서 시작되었으니, 곧 3대의 ㅁㄴ 후예들이 모두 국가의 영역 안에 들어와 있습니다.

 自典籍所紀,聲敎所及,三代不能至者,國家盡兼之矣。詩人矜蒲伐於太原,美化行於江、漢,〈《詩‧六月》,宣王北伐也。其《詩》云:「薄伐玁狁,至于太原。」又《漢廣》之詩,美文王之道被于南國,美化行乎江、漢之域。〉則三代之遠裔,皆國家之域中也。

 

 만약에 마침내 경계 밖으로 무력을 사용하여 멀리 떨어진 다른 곳에서 공로를 구하지만, 정부의 창고에 있는 알맹이를 마르게 하여 쓸데없는 땅을 가지고 다투는 것이고, 그 사람을 얻는다고는 하나 부세를 늘이기에는 부족하며, 그 땅을 얻었다고는 하나 농사를 짓거나 길쌈을 할 수 없고, 오로지 먼 곳에 있는 이족에게 관대를 사용하게 한다는 명성을 구하는 것이며, 근본을 굳게 하고 사람을 편안하게 하는데 힘쓰는 술책이 아니니, 이는 진 시황과 한 무제가 행하였던 바이며, 5제와 3왕이 하였던 일은 아닙니다.

 若乃用武方外,邀功絕域,竭府庫之實以爭不毛之地,得其人不足增賦,獲其土不可耕織,苟求冠帶遠夷之稱,〈冠,古玩翻。稱,尺證翻。〉不務固本安人之術,此秦皇、漢武之所行,非五帝、三王之事業也。

 

 진 시황은 병사를 다하고 무력을 끝까지 사용하여 힘써 넓은 땅을 구하였지만 죽은 사람이 마치 마와 같아서 천하가 무너지고 반란하는 데까지 이른 것입니다. 한 무제가 4이를 정벌하자 백성들은 곤궁하여 도적이 벌떼처럼 일어났는데, 말년에 뉘우치고 깨우쳐서 병사를 쉬게 하고 수자리를 그치게 하니, 그러므로 하늘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始皇窮兵極武,務求廣地,死者如麻,致天下潰叛。〈事見《秦紀》。〉漢武征伐四夷,百姓困窮,盜賊蜂起;末年悔悟,息兵罷役,故能爲天所祐。〈事見《漢武帝紀》。〉

 

 근래에 국가에서 빈번하게 해마다 군사를 내보내니 드는 비요이 더욱 커져서, 서쪽으로는 4진을 지키고 동쪽에서는 安東(新城: 今 古碑店)을 지키며, 옮기고 징발하는 것이 날로 덧붙여져서 백성들은 텅 비고 피폐하였습니다.

 近者國家頻歲出師,所費滋廣,西戍四鎭,東戍安東,調發日加,〈調,徒釣翻。〉百姓虛弊。

 

 지금 관동에는 기근이 들고, 촉과 한에서는 도망하며, 강과 회 남쪽에서는 거두며 요구하는 것을 그치지 않으니, 사람들은 생업을 회복할 수 없어 서로 이끌며 도적이 되어 뿌리의 밑동이 한 번 흔들려서, 근심과 걱정이 앝지 않습니다. 이렇게 된 까닭은 모두 蠻貊(만맥: 남방족 과 북방족)과 쓸모없는 땅을 가지고 다투며, 자식처럼 백성들을 키워야 하는 도리를 거슬렸기 때문입니다.

 今關東饑饉,蜀、漢逃亡,江、淮已南,徵求不息,人不復業,相率爲盜,本根一搖,憂患不淺。其所以然者,皆以爭蠻貊不毛之地,乖子養蒼生之道也。〈貊,莫百翻。〉

 

 옛날에 한 원제는 가연지의 꾀르 받아들여 朱崖郡을 철폐하였고, 선제는 위상의 책략을 써서 차사의 전지를 버렸는데, 어찌 쓸데없는 명성을 우러러 받들고 높이려고 하지 않았겠습니까마는 대개 사람의 힘을 수고롭게 하는 것을 꺼린 것입니다.

 昔漢元納賈捐之之謀而罷朱崖郡,〈事見二十八卷初元二年。〉宣帝用魏相之策而棄車師之田,〈事見二十五卷元康二年。〉豈不欲慕尚虛名,蓋憚勞人力也。

 

 근래에 정관 연간에 9姓을 이겨서 평정하고 나서, 이사마를 세워 가한으로 삼고 여러 부를 통괄하도록 한 것은 대개 이적이 반란을 일으키면 이를 정벌하고 항복하면 이를 다스리려는 것이었고, 밀어서 떨어뜨려 망하게 하고 튼튼하게 보존하려는 뜻을 얻고,  멀리서 지켜서 사람을 수고롭게 하는 군역을 없게 한 것이니, 이는 가까운 날에 있었던 훌륭한 법도이며, 변경을 다스리는 옛 이야기 입니다.

 近貞觀中克平九姓,立李思摩爲可汗,使統諸部者,〈見一百九十[五]卷貞觀十三年。〉蓋以夷狄叛則伐之,降則撫之,得推亡固存之義,〈《書‧仲虺之誥》曰:推亡固存,邦乃其昌。推,吐雷翻。〉無遠戍勞人之役,此近日之令典,經邊之故事也。

 

 가만히 말씀드리면 마땅히 사사나곡슬라를 세워서 가한으로 삼고 그에게 4진을 맡기며, 高氏의 끊어져버린 나라를 이어주어서 그들로 하여금 安東(今 遼陽)을 지키도록 하십시오. 멀리 있느 지방에서 군비를 아껴서 요새에서 무장한 병사들을 합병하여, 이적으로 하여금 침략하여 업신여기는 걱정이 없게하면 곧 좋을 것인데, 어찌 반드시 그 근거지로 끝까지 가서 땅가아지나 개미와 같은 무리들과 더불어 길고 짧음을 비교하여야 하겠습니까!

 竊謂宜立阿史那斛瑟羅爲可汗,委之四鎭,繼高氏絕國,〈謂高麗也。〉使守安東。省軍費於遠方,幷甲兵於塞上,使夷狄無侵侮之患則可矣,何必窮其窟穴,與螻蟻校長短哉!

 

 다만 마땅히 변방의 병사들에게 칙서를 내리셔서, 지키어 대비하는 것을 삼가도록 하고, 척후를 멀리 보내며, 물자와 군량을 모아두고, 그들이 스스로 이르기를 기다려서, 그런 다음에 그들을 쳐야 합니다.

 但當敕邊兵,謹守備,遠斥候,聚資糧,待其自致,然後擊之。

 

 편안함을 가지고 지친 사람을 기다리니 전사들의 힘은 두 배로 되고, 주인으로서 손님을 막으니 우리가 5그 편리함을 얻는 것이며 성벽을 굳게 지키고 들을 깨끗이 하니, 노략질해도 얻는 것이 없게 되어 자연히 두 적(突厥과 吐蕃)이 깊게 들어온다면 미끄러져 넘어질 염려를 갖게 되고, 얕게 들어오면 반드시 노략질하여 얻을 이로움이 없게 됩니다. 이와 같이 몇 년 동안 하면 두 오랑캐를 치지 않아도 항복하게 할 수 있습니다. 

 以逸待勞則戰士力倍,以主禦客則我得其便,堅壁清野則寇無所得;自然二賊深入則有顚躓之慮,淺入必無寇獲之益。如此數年,可使二虜不擊而服矣。」〈二賊、二虜,皆謂突厥、吐蕃。〉事雖不行,識者是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