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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개소문의 사망/驚蟄節末候膺化爲鳩 薔薇花風5日(陰2/7)丙寅

solpee 2021. 3. 17. 22:47

《唐紀17 高宗 麟德 2》 (乙丑, 665)

 


 ⑩. 황상이 웅진도위 부여융과 신라왕 김법민에게 명령을 내려서 옛날에 있었던 원한 관계를 풀어 버리라고 하였는데, 8월 13일에 웅진성에서 동맹을 맺었다. 

 ⑩. 上命熊津都尉扶餘隆與新羅王法敏釋去舊怨;〈去,羌呂翻。〉八月,壬子,同盟于熊津城。

 

 유인궤는 신라· 백제· 탐라· 왜국의 사자를 바다에서 배를 태워 서쪽으로 돌아오게 하였는데, 마침 태산에 제사 지내는 일에 모이게 하였고, 고리에서도 태자 고복남을 파견하여 와서 제사를 지내는데 참석케 했다.

 劉仁軌以新羅、百濟、耽羅、倭國使者浮海西還,〈耽羅國,一曰儋羅,居新羅武州南島上,初附百濟,後附新羅。〉會祠泰山,高麗亦遣太子福男來侍祠。

 

 

《唐紀17 高宗 乾封 元年》 (乙丑, 666)

 

 

 ④. 고리의 연개소문이 죽었다. 맏아들인 연남생이 대신 막리지가 되었다. 처음 국정을 처리하게 되자 나가서 여러 성을 순시하면서 그의 동생인 연남건과 연남산으로 하여금 남아서 후사를 처리하게 하였다. 어떤 사람이 두 동생에게 말하였다.

 "연남생은 두 동생이 압박하는 것을 싫어하여 속으로 제거하려고 하니 먼저 계책을 세우는 것만 못하다."

 두 동생은 이를 믿지 않았다.

 ④. 高麗泉蓋蘇文卒,長子男生代爲莫離支,〈卒,子恤翻。長,知兩翻。〉初知國政,出巡諸城,使其弟男建、男產知留後事。或謂二弟曰:「男生惡二弟之逼,〈惡,烏路翻。〉意欲除之,不如先爲計。」二弟初未之信。

 

 또 어떤 사람이 연남생에게 말하였다.

 "두 동생은  형이 돌아와서 그들의 권력을 빼앗을까 두려워하여 형을 막고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한다."

 연남생은 몰래 가까이 하는 사람을 파견하여 평양에 가서 이를 살펴보게 하였는데, 두 동생이 잡아서 이를 알고 마침내 왕명으로 연남생을 불렀다. 연남생은 두려워서 감히 돌아가지 못하니,  연남건은 스스로 막리지가 되어 군사를 내어 그를 토벌하였다. 

 又有告男生者曰:「二弟恐兄還奪其權,欲拒兄不納。」男生潛遣所親往平壤伺之,〈伺,相吏翻。〉二弟收掩,得之,乃以王命召男生。男生懼,不敢歸;男建自爲莫離支,發兵討之。

 

 연남생은 달아나서 別城을  지키면서 그 아들인 연헌성으로 하여금 궁궐에 와서 구원해주기를 청구하게 하였다. 6월 7일에 우교위대장군 글필하력을 요동도 안무대사로 삼아서 군사를 거느리고 그를 구원하게 하였는데, 연헌성을 우무위장군으로 삼아서 길을 인도하게 하였다.

 男生走保別城,使其子獻誠詣闕求救。六月,壬寅,以右驍衞大將軍契苾何力爲遼東道安撫大使,將兵救之;以獻誠爲右武衞將軍,使爲鄕導。〈驍,堅堯翻。契,欺訖翻。苾,毗必翻。大使,疏吏翻。將,卽亮翻。鄕,讀曰嚮。〉

 

 또 우금오위장군 방동선과 영주도독 고간을 행군총관으로 삼아서 함께 고리를 토벌하게 하였다.

 又以右金吾衞將軍龐同善、營州都督高侃爲行軍總管,同討高麗。

 

 ⑧. 9월에 방동선이 고리군을 대파하였는데 연남생이 무리를 인솔하고 방동선과 합하였다. 조서를 내려서 연남생을 특진· 요동대도독으로 삼고, 평양도안무대사로 삼으며, 현토군공으로 책봉하였다.

 ⑧. 九月,龐同善大破高麗兵,泉男生帥衆與同善合。詔以男生爲特進、遼東大都督,兼平壤道安撫大使,封玄菟郡公。帥,讀曰率。使,疏吏翻;下同。菟,同都翻。

 

 ⑩. 겨울, 12월 18일에 이적을 요동도행군대총관으로 삼고, 사열소상백인 안륙 사람 학처준을 부관으로 삼아 고리를 치게 하였다.(뜬금없이 9월에 대파하고 연남생을 평양도안무대사까지 임명하고선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을까?) 방동선과 글필하력은 나란히 요동도행군부대총관 겸 안무대사는 예전과 같게 하였으며, 그들의 수륙제군총관이며 아울러 운량사인 두의적· 독고경운· 곽대봉 등은 나란히 이적의 지휘를 받게 하였다.

 ⑩. 冬,十二月,己酉,以李勣爲遼東道行軍大總管,〈【章:十二行本「管」下有「兼安撫大使」五字;乙十一行本同;孔本同;張校同;退齋校同。】〉以司列少常伯安陸郝處俊副之,〈安陸縣,漢屬江夏郡,宋分屬安陸郡,隋、唐屬安州。處,昌呂翻。〉以擊高麗。龐同善、契苾何力並爲遼東道行軍副大總管兼安撫大使如故;其水陸諸軍總管幷運糧使竇義積、獨孤卿雲、郭待封等,並受勣處分。〈處,昌呂翻。分,扶問翻。〉

 

 하북에 잇는 여러 주의 조부는 모두 요동으로 보내어 군사용으로 공급하였다.곽개봉은 곽효각의 아들이다.

 河北諸州租賦悉詣遼東給軍用。待封,孝恪之子也。〈郭孝恪事太宗,戰死於龜茲。〉

 

 이적은 그의 사위인 경조 사람 두희공과가 함께 가서 공훈을 세우는 효과가 있기를 바랐다.  두희공은 가난하기 때문에 이를 사양하자 이적이 이를 부담하였는데, 다시 노복과 말이 없다고 사양하자 또 이를 부담하였다. 두희공은 끝까지 사양하고 마침내 岐陽山 속으로 도망하여 숨으면서 사람들에게 말하였다.

 "공께서는 나를 가지고 법을 세우려 할 뿐이다."

 勣欲與其壻京兆杜懷恭偕行,以求勳效。懷恭辭以貧,勣贍之;復辭以無奴馬,〈贍,昌豔翻;下同。復,扶又翻。〉又贍之。懷恭辭窮,乃亡匿岐陽山中,謂人曰:「公欲以我立法耳。」

 

 이적이 이 소식을 듣고 눈물을 흘리면서 말하였다.

 "두랑은 성격이 소략하고 방임적이어서 이런 생각을 혹 가졌겠구나?"

 마침내 중지하였다.

 勣聞之,流涕曰:「杜郎疏放,〈今人猶呼壻爲郎。〉此或有之。」乃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