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刺史避箭,人誰致死: 자사가 살을 피하면 누가 죽으려 하겠는가?/ 驚蟄節中候倉庚鳴(꾀꼬리 운다)棣棠花(산앵두)風3日(陰1/29)己未

solpee 2021. 3. 11. 17:46

《唐紀15 高宗 永徽 4年》 (癸丑, 653)

 

 

 ⑥. 애초에, 睦州(절강 순안) 여자인 진석진은 요사스러운 말로 무리들을 현혹시키면서 弟夫 장숙윤과 더불어 군사를 일으켜서 반란하여 스스로 文佳황제라 하고, 장숙윤을 복야로 삼았다. 10월 30일 밤에 장숙윤이 무리를 인솔하고 동려를 공격하여 이를 함락시켰다.

 ⑥. 初,睦州女子陳碩眞〈吳孫權分丹楊立新安郡,隋仁壽三年置睦州,大業初,廢州爲遂安郡,唐復爲睦州。〉以妖言惑衆,〈妖,於喬翻;下同。〉與妹夫章叔胤舉兵反,自稱文佳皇帝,以叔胤爲僕射。甲子夜,叔胤帥衆攻桐廬,陷之。〈吳分富春立桐廬縣,屬吳郡,隋、唐屬睦州。《九域志》︰縣在州東一百五里。項安世曰︰桐廬縣,魏黃初四年,吳置,以桐溪側有大椅樹,垂條偃蓋,旁蔭數畝,遠望如廬,因謂之桐廬。帥,讀曰率。〉

 

 진석진은 종을 치고 향을 사르면서 병사 2천 명을 이끌고 모주와 어잠을 함락시키고 나아가서 흡주를 공격하였으나 이기지 못하였는데,  양주 자사 방인유에게 칙령을 내려서 군사를 발동하여 그를 토벌하게 하였다. 진석진은 그의 무리인 동문보를 파견하여 4천 명을 거느리고 무주를 노략질하게 하니, 자사 최의현이 군사를 발동하여 이를 막았다.

 碩眞撞鍾焚香,〈撞,直江翻。〉引兵二千攻陷睦州及於潛,〈於潛縣,漢屬丹楊郡,晉、宋屬吳興郡,梁、陳屬錢唐郡,隋、唐屬杭州。宋白曰︰《吳越春秋》,秦徙大越鳥語之人寘之朁。闞駰《十三州志》︰「朁」,讀爲「潛」。《吳錄‧地理志》︰縣西有朁山。舊「朁」字無「水」,至隋加「水」。於,如字。〉進攻歙州,不克。〈歙,音攝。〉敕揚州刺史房仁裕發兵討之。碩眞遣其黨童文寶將四千人寇婺州,〈將,卽亮翻;下同。〉刺史崔義玄發兵拒之。

 

 백성들 사이에서는 진석진이 신령함을 가져서 그의 군대를 범접하는 사람은 반드시 멸족된다는 유언비어가 돌아서 군사와 무리들은 흉흉하고 두려워하였다. 사공참군 최현적이 말하였다.

 "군사를 일으키면서 순리에 의지 하여도 오히려 성공하지 못하는데, 하물며 요망한 것을 의지하다니 그것이 오래 갈 수 있겠는가?"

 民間訛言碩眞有神,犯其兵者必滅族,士衆兇懼。〈兇,許勇翻。〉司功參軍崔玄籍曰︰〈功、倉、戶、兵、法、士參軍,所謂州判司也。〉「起兵仗順,猶且無成,況憑妖妄,其能久乎!」

 

 최의현은 최현적을 선봉으로 삼고 스스로 주의 군사를 거느리고 그 뒤를 이어서 下淮水에 도착하여 도적을 만나서 서로 싸웠다. 좌우에서 방패로 최의현을 막으니 최의현이 말하였다.

 "자사가 화살을 피하면 사람들 가운데 누가 죽으려 하겠는가?"

 그것을 치우라고 명령하였다.

 義玄以玄籍爲前鋒,自將州兵繼之,至下淮戍,遇賊,與戰。左右以楯蔽義玄,〈楯,食尹翻。〉義玄曰︰「刺史避箭,人誰致死!」命撤之。

 

 이에 사졸들이 일제히 분발하니 도적의 무리들이 크게 무너지고 참수한 것이 수천 급이었다. 그 나머지 무리들이 돌아와 자수하는 것을 들어주었다. 전진하여 모주의 경계에 도착하니 항복하는 사람이 만을 헤아리게 되었다. 11월 2일에 방인유의 군사가 합쳐져서 진석진과 장숙윤을 붙잡아 그를 목 베니 나머지 무리들이 모두 평정 되었다.

 최의현은 공로로 어사대부에 임명되었다.

 於是士卒齊奮,賊衆大潰,斬首數千級。聽其餘衆歸首;〈歸首,式又翻。〉進至睦州境,降者萬計。〈降,戶江翻。〉十一月,庚戌,房仁裕軍合,獲碩眞、叔胤,斬之,餘黨悉平。義玄以功拜御史大夫。〈御史大夫,天子耳目官也,非以賞功。厥後崔義玄承中宮旨繩長孫無忌等,豈不忝厥官哉!

 

 

《唐紀15 高宗 永徽 5年》 (甲寅, 654)

 

 

 ③. 3월, 14일에 무덕 연간의 공신인 구골통 등 13명에게 관직을 추가로 올려 주었다.

 애초에, 왕왕후에게는 아들이 없어서 소숙비가 총애를 받았는데 왕왕후가 이를 질투하였다. 황상이 태자였을 적에 태종에게 들어가서 시중을 들다가 재인인 武氏를 보고 그녀를 좋아하였다.

 ③. 庚申,加贈武德功臣屈突通等十三人官。

初,王皇后無子,蕭淑妃有寵,〈《考異》曰︰《新》、《舊唐書》或作「蕭良娣」。《實錄》皆作「良娣」,廢王后詔亦曰「良娣蕭氏」。按當時後宮位號無良娣名,唯漢世太子宮有良娣。疑高宗在東宮時,蕭爲良娣,及卽位,拜淑妃也。〉王后疾之。上之爲太子也,入侍太宗,見才人武氏而悅之。〈才人,晉武帝所制爵,視千石以下;宋、齊之時,以爲散職;梁於九嬪之下,置五職、三職,才人位列三職,比駙馬都尉;唐承隋制,才人五人,正五品。〉

 

 태종이 붕어하자 무씨는 무리들을 좇아서 감업사에서 비구니가 되었다. 기일에 황상이 절에 가서 예불을 하였는데, 그녀를 보게 되었고 무씨가 눈물을 흘리니 황상도 눈물을 흘렸다.

 太宗崩,武氏隨衆感業寺爲尼。〈《長安志》曰︰貞觀二十三年五月,太宗上仙,其年卽以安業坊濟度尼寺爲靈寶寺,盡度太宗嬪御爲尼以處之。程大昌曰︰以《通鑑》及《長安志》及呂大防《長安圖》參定,《通鑑》言武氏在感業寺,《長安志》在安業寺,惟此差不同。然《志》能言寺之位置及始末,則安業者是也。〉忌日,上詣寺行香,見之,武氏泣,上亦泣

 

 왕황후가 이 소식을 듣고 몰래 무씨로 하여금 머리카락을 기르게 하고 황상에게 그녀를 후궁으로 받아들이도록 권고하였는데, 숙비에 대한 총애를 갈라놓고자 한 것이었다. 무씨는 똑똑하고 지혜가 있고 권모술수를 많이 가지고 있어서 처음으로 궁궐에 들어오자 겸손한 말과 몸을 굽히며 황후를 섬겼더니, 황후는 그를 아껴서 자주 황상에게 그녀가 아름답다고 칭찬하였다.

 王后聞之,陰令武氏長髮,〈長,知兩翻。〉勸上內之後宮,欲以間淑妃之寵。〈間,古莧翻。〉武氏巧慧,多權數,初入宮,卑辭屈體以事后;后愛之,數稱其美於上。〈數,所角翻。〉

 

 얼마 되지 않아서 크게 총애를 받아서 소의에 임명되었고, 황후와 숙비에 대한 총애는 점차로 쇠퇴하였는데, 다시 서로 함께 그녀를 참소하였으나, 황상이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다.

 未幾大幸,〈幾,居豈翻。〉拜爲昭儀,后及淑妃寵皆衰,更相與共譖之,上皆不納。

 

 소의는 그녀의 아버지에게 관작을 추증하고 싶었으나 명목이 없었는데, 그러므로 공신을 포상하는 일에 의탁하여 무사확의 이름이 들어가게 하였다.

 昭儀欲追贈其父而無名,故託以褒賞功臣,〈【章︰十二行本「臣」下有「徧贈屈突通等」六字;乙十一行本同;孔本同;退齋校同。】〉而武士彠預焉。〈爲廢皇后、淑妃張本。彠,一虢翻。